< #14. 똥국. >
흥미로운 영상이었다.
“주머니 속의 송곳.”
성녀 레아는 이곳의 격언을 입에 담으며 리튜브의 영상을 재차 재생시켰다.
‘역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 정도의 건가드라니.’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프렌차이즈 스타니 뭐니 하면서, 성국이 깔아놓은 레일만 달려왔다고는 하나, 그래도 랭커에 이르는 경력이나 경험은 거짓이 아니었다.
때문에 마루의 전투가 지닌 퀄리티를 모를 수가 없었다.
‘건가드가 이만큼 화제가 된 게 얼마만이지?’
메인이 아닌 보조적 성격이 짙은 보호기이고, 그나마도 보조 성격이 짙은 총기 각성자의 기술이었다. 그런 태생적 한계로 인해 화제성의 범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는 이들 사이에서만 공유되며 언급될, 그들만의 리그에서 끝나는 게 보통일 이야기였다. 실제로 지금까지 올라왔던 건가드 영상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묻히며 흘러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꾸준히 언급되는가 싶더니 예상 이상의 화젯거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부분에서 짐작되는 바가 있긴 했다.
‘누가 수작질을 부린 건가?’
위치가 위치다 보니 남다른 관점에서 상황을 살피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서 마루가 위험해지진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최근 들어온 소식에 일부 안도할 수 있었다.
‘벌써 레베카를 눈치 챘을 줄이야.’
이래저래 놀랄 소식들이 한 가득이었다.
‘1년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앞전의 만남에서 마루가 드러난 것 이상의 실력자임을 알아봤다. 남다른 발전 속도를 확인한 순간이었지만, 그래도 성장 속도의 한계치를 잡아놓고 있긴 했다.
끝없이 성장할거란 기대와 믿음이 있긴 했지만, 나름의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헌데, 그런 예상을 깨버린 것이다.
‘항상...상상 그 이상이네.’
레베카의 은신을 알아봤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A급!’
각성하고 1년도 안 된 늦깎이 신입의 성장속도라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무슨, 게임 같은 분이야. 후훗!’
그녀가 이곳을 와야 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성장하신 만큼, 주변의 위협도 늘어가겠지.’
이를 대비하기 위해 ‘계시’가 내려진 것이리라. 레베카를 통해서 건넨 ‘물건’을 떠올렸다.
‘잘 전달 됐겠지?’
**
“Oh, my god!”
마루는 감동어린 눈으로 왼손 검지의 묵주반지를 바라봤다. 레베카가 성녀 레아의 선물이라며 전해준 것이었다.
“아티팩트라니.”
더군다나 지금 당장 너무나도 간절한 가호가 깃들어 있었다.
[회복]
거창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물건 하나만으로도 컨디션 1점이 올라갔고, 덕분에 북한산 여정의 후유증도 최소화 할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핸드폰 배경화면을 띄웠다.
성녀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God bless you!”
**
“알아냈어!”
김연희는 그리 말하며 이소희를 찾았다.
“영상 올린 놈. 드디어 찾아냈어.”
“누군데?”
“광호길드.”
그 순간 예상되는 이름이 있었다.
“구정국?”
“어! 똥국이 그놈이었어.”
역시나였다.
“목표는?”
이소희의 물음에 김연희가 실소하며 말했다.
“뻔하잖아. 우리 옷가지에 똥물 좀 튀겨 보겠다는 거지. 똥국이가 하는 일이 뭐 그렇지.”
실제 상황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영상 속 대인전의 주인공이 혜성 길드의 헌터라는 소문과 함께, 혜성을 향한 좋지 못한 소문들이 하나둘 퍼져나가고 있었다.
“댓글부대를 움직여서 조직적으로 작업한 거야.”
국내에서 영상의 화제성이 올라오는 속도에 맞춰, 찬찬히 물밑작업을 한 것이다.
어차피 해외에서 뜬 영상이다 보니, 포텐이 터지는 건 확실한 부분이었기에, 이런 밑밥들이 깔렸을 때 효과도 배가 되는 걸 노린 것이다.
“하여간 똥국이가 이런 쪽으로는 비상하다니까.”
물론, 혜성이라도 마냥 샌드백처럼 맞아주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들의 전문가도 움직이며 맞대응 중이었다.
“일찌감치 조직적인 흐름을 읽어놔서, 우리도 밑밥은 꽤 깔아놨으니까. 어찌어찌 가드는 할 것 같네.”
김연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소희가 문득 물었다.
“네 말처럼 잔머리가 비상한 놈인데, 겨우 이걸로 끝일까?”
“에~이! 겨우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 이걸로 영감들이 신입을 보는 시선이 매섭다니까. 괜히 가드해주는 우리만 피곤해졌잖아. 언니도 광고 몇 개 더 찍어야 한다며.”
“......”
이래저래 마찰이 많았던 것이다. 영상 속 주인공은 모자이크가 되어있고, 혜성길드 헌터라는 부분도 그저 소문 수준이다 보니, 직접적인 잘못이 있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영상 속 내용물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이란 건 무시하기 어려웠고, 이참에 그녀들을 곱지 않게 보던 간부들이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이번 일로 영감들이 얼마나 시끄러웠는데. 게다가 여전히 귀찮게 구는 중이잖아. 그런데 겨우라니.”
하지만 이소희는 묘한 예감을 받았다.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오래지 않아 그 이유가 밝혀졌다.
**
아티팩트로 인해 북한산 여정의 후유증을 최소화 했지만 해결한 건 아니었다.
물론, 그 덕분에 몸져눕지는 않았지만, 당장 게임을 켜도 할 게 없던 터라, 마루는 가볍게 몸을 풀러 밖으로 나왔다.
E급 게이트!
정말로 간단한 소일거리였다.
그 때문인지 장비도 몇 안 챙겼고, 그나마도 아공간으로 인해 실제는 동네 마실 나가는 차림과 다를 것도 없었다.
투웅!
뜻밖의 오버클럭이라고 해야 할까?
‘백발백중에, 원샷 원킬이네.’
지니고 있는 장비가 워낙 좋다 보니, 게이트에서 나온 몬스터들이 호흡 한 번을 뱉기도 전에 죽어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혼자서 싹 쓸어버리진 않았다.
‘상도덕이 있지.’
그 역시 오랜 시간 밑바닥을 기었던 경험 때문일까?
‘하나 둘 도착하네.’
알람 혹은 호출을 받고 달려온 하급 헌터들이 등장할 즈음, 일선에서 물러났다.
저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여기서 들어오는 경험치야 얼마 되지도 않고.’
과거, 얼음여제와의 첫 만남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녀가 경험치 정산을 무시하며 돌아가던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니 상위 헌터들이 하급 게이트를 안 오지.’
그 와중에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는 건, 하급 헌터들이 위험할 때 적절히 도와주기 위한 조치였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건, 강 건너 싸움 구경을 하기 위함이 아닌 것이다. 쓰디쓴 과거가 있는 만큼, 저들 하급 헌터들에게 괜히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투웅...퉁...
실제로 몇 차례 위기상황이 발생했는데, 그때마다 마루의 적절한 개입으로 하급 헌터들의 뒤를 지켜줄 수 있었다.
이에 하급 헌터들이 가슴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일종의 감사표시 신호였다. 누군지 모를 서포터를 향한 고마움을 내비친 것이다.
뜻풀이를 하자면, [그대 호의를 가슴에 새긴다] 뭐 대충 그런 의미였다.
어쨌든 이런 마루의 든든한 지원에 힘을 얻어, 하급 헌터들은 한층 과감하게 전장에 뛰어들 수 있었다.
다 함께 모여서 으쌰으쌰 힘을 낸 덕분일까?
게이트는 깔끔히 정리될 수 있었다.
마루는 멀찍이서 헌터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슬쩍 시선을 돌려 주변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런데...어째, 여기는 이면 놈들이 하나도 없네.”
최근에는 D급 이상의 게이트만 뛰었기에 몰랐는데, 이곳에는 이면의 헌터가 도통 보이질 않았다.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끼어드는 그들 입장에서도 나름의 기준점이 있던 것이다.
‘E급은 너무 시시하다 이건가.’
물론, 그들 입장에서야 D급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심심풀이 땅콩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오랜만에 훼방꾼 없는 일상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하...생각한지 얼마나 됐다고.’
문득, 마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다가오는 훼방꾼의 기척 때문이었다. 착각일거라 여길 수도 없는 게, 일직선으로 오직 그를 향해서 걸어오고 있었다.
저격을 위해 잡아놓은 언덕 위의 포인트가 아니던가. 이 근방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자체가 의심해 볼 만한 일이었다.
대충 장비를 정리하며 손님맞이를 준비했다. 그렇게 맞이한 불청객의 얼굴이 실로 뜻밖이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저를 아는 모양이군요.”
혜성 길드에 들어가며 자연히 알게 된 정보들이 있었는데, 불청객은 그 정보의 최상위권에 위치한 존재였다.
‘구정물!’
혹은 똥국이라고 불리는 사내.
“반갑습니다. 광호길드 정보팀의 구정국이라고 합니다.”
너무도 정중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마루가 그에 대해서 들은 정보 중에는 괜찮은 내용들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긴, 앞뒤가 다른 인사가 한둘은 아니지.’
이 바닥의 생리가 아니라, 그냥 인간사의 기본 생리를 기준으로 봤을 때, 충분히 이상할 건 없는 이야기였다.
물론, 혜성과 광호의 관계를 생각해 봤을 때, 혜성에서 얻은 구정국의 정보를 100%신용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C급 A형 헌터 정마루씨 맞으시죠?”
그러며 내미는 손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 듯, 마루가 이를 맞잡으며 말했다.
“저를 찾아오신 겁니까?”
구정국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가 정보팀 일 외에도 따로 스카웃 팀에도 한 발 걸치고 있답니다.”
“...설마?”
“예. 정마루 헌터님께 좋은 말씀 드리러 왔습니다.”
순간 전도하러 온 건가 착각해 버렸다. 스카웃 제안이니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무조건 혜성에서 받는 조건의 두 배를 드리죠.”
너무 좋은 말씀이었다. 그 때문에 두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제 조건이 어떻게 될 줄 아시고...”
마루의 당혹감 섞인 음성에 구정국이 웃었다.
‘아무리 좋아봤자 C급이지.’
물론, 그런 부분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여전한 표정과 태도를 유지한 채, 최대한 정중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저희 광호에서 정마루 헌터님을 그만큼 생각한다고 여겨 주십시오.”
당연히 구정국의 내심은 달랐다.
‘영상 때문에 골치깨나 썩였을 텐데, 영상 주인공까지 빼돌리면? 흐흐!’
여기에는 여러 포석도 깔려있었다. 그 중 하나를 마루가 물어왔다.
“겨우 C급 헌터일 뿐인데. 제 뭐를 보고 그렇게까지 평가를 해 주시는지 궁금하군요.”
“당장의 가치야 그렇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정마루 헌터님의 미래가치를 믿고 베팅을 하는 겁니다.”
“미래라고요?”
“예. 이런 말씀을 드리면 좀 이상하지만, 사실 저는 혜성 길드의 김연희 팀장을 신뢰합니다.”
신뢰? 적대적 관계에서 쉬이 나올 수 없는 단어였다. 하지만 구정국은 그런 부분도 어렵지 않게 입에 담을 수 있는 사내였다.
“스스로도 사람 보는 능력이 있다고 자신합니다. 하지만 이게 참, 민망하게도 김연희 팀장에 비할 바는 못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며 말한다.
“정마루 헌터님은 그런 김연희 팀장의 눈에 든 인재죠. 안 긁은 복권이라는 게 제가 내린 판단입니다.”
이는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김연희, 그년 눈이라면 정확하지.’
긁지 않은 복권이지만 절대 꽝이 아닐 터였다. 무조건 당첨일 것이며, 그것도 높은 확률로 대박일 게 분명했다.
혹시나 당첨금이 낮다면?
그 역시 대비하고 있었다. 내던진 수는 하나지만 파생된 기로는 수십이었다.
‘영상을 써먹으면 될 뿐!’
현재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마루였다. 그 때문에 문제가 될 거라 여기기보단, 오히려 그걸 빌미로 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게 포인트였다.
‘포장하기 나름이지.’
이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그들이 품고 있는 게 이득이었다.
당첨금이 높을 경우에는 역으로 이를 커버해야겠지만, 그 때는 오히려 웃으며 케어 할 수 있을 터였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러 왔지만.’
기왕이면 꿰어가는 게 베스트인 것이다.
“대우는 최고로 해 드리겠습니다.”
구정국이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 #14. 똥국. > 끝
ⓒ 주작(朱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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