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찔끔. -여기까지 무료연재였습니다.- >
지형변화가 전혀 없진 않았다. 땅속에 거대한 공동이 생기는 작업이다 보니, 중간중간 지면이 무너지는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닦아놓은 도로 덕분일까?
“살았다!”
“으아아아!”
마루 일행은 무사히 안전지대까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땅울림이야 여전히 전해졌지만, 승차감이 울렁일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단지, 저 멀리서 발생하는 지진의 여파 정도가 퍼져오는 수준이랄까?
중간중간 승급 현상에 의한 특수개체가 등장하긴 했지만, 마루의 저격 한 번이면 깔끔히 해결됐고, 덕분에 문제없이 안전지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행하던 가드들과 짧은 인사말을 나누고 던전 밖으로 향했다.
광호길드의 일원은 아니지만, 현 상황은 임시 용병으로 처리된 상태인지라, 원래라면 긴급소집 팀이 아닌 내부의 안전지대에서 대기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에게 약조된 건 C급 던전까지였다. 이곳은 이제 B급 던전이다 보니, 등급 제한으로 커트된 것이다. 그가 빠지는데 절차상의 문제도 없었다.
물론, 그 실상은 조금 달랐다.
임시 용병이란 것도 구정국의 입김으로 구색만 맞춘 것일 뿐, 그는 철저한 외부인사가 아니던가.
던전 승급은 귀한 현상이니 만큼, 저들도 통제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이미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쳤다.
긴급출동에 의해 어느 정도 오픈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통제권은 결국 던전 지대의 주인에게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로 마루는 아웃이었다.
“아쉬울 건 없지만.”
‘그래도 좀 더 사냥할 수 있었을 텐데.’
말과는 달리 일말의 미련이 남기는 했다.
‘아니. 왜 가는 데마다 승급이야?’
투덜거리며 바깥으로 나왔을 때, 그는 바글거리는 헌터의 물결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와우!’
좀 전 안전지대에서도 상당수의 헌터가 바쁘게 돌아다녔지만, 그건 새발의 피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안쪽은 이곳 던전 지대를 관리하는 광호길드의 1차 선발대가 자리를 잡은 것이고, 외부는 주변에서 파견 온 헌터들을 비롯하여, 승급만 기다리던 이면의 무리까지 합류한 것이니, 차이가 나는 게 당연했다.
‘개떼처럼 몰려왔네.’
그러던 중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급히 몸을 숨겼다.
[혜성 길드]
일단은 그의 소속이 아니던가. 광호 길드와 라이벌 관계인만큼, 저들에게 들키는 건 좋지 않았다.
옳다구나 하며 광호의 커트에 순응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광호 길드와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만큼, 긴급 소집에도 응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조심히 현장을 벗어나는데,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아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승급, 승급이란 말이지...’
묘한 예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
헛웃음이 나오려 했다.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구정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승급의 현장을 바라봤다.
‘승냥이들이 드글드글 하네.’
혜성 길드를 포위하듯 포진하고 있던 이면의 주민들이, 이제는 그들 광호 길드에 영역표시를 하고 있었다.
“후...”
결국 나온 건 웃음도 울음도 아닌 한숨이었다.
“골치 아프게 됐네.”
두 번의 던전 승급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던 혜성 길드보다 더 난감한 상황에 처해버렸다.
‘빌어먹을 긴급출동!’
저들은 긴급 소집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인원이었다. 지대의 주인으로써 그 권한을 발휘하며 나름의 통제를 하겠지만, 결국 상당수에게 오픈해야 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인원을 최소화 할 필요가 있었는데, 이를 담당하는 게 바로 그의 역할이었다.
시간을 질질 끌 수도 없는 게, 안쪽 정리가 너무 늦춰질 경우 웨이브를 촉진 시킬 수 있는 만큼,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후우...”
한숨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
쌤통이라 여겼다.
“똥국이 놈 똥줄 좀 타겠는데. 히히!”
김연희의 이야기에 이소희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사태로 인해 혜성과 광호의 상황은 제대로 역전됐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향하던 의심의 눈길도 이번 사태로 걷어질 터였다.
특히, 긴급소집으로 인해 도착한 헌터들의 경우, 던전에 대한 출입권이 일부 인정되는 바, 광호는 하이에나 같은 이면의 주민들을 달래려면, 골머리 깨나 썩어야 할 터였다.
고소를 터트리던 것도 잠시였다.
“똥국이는 좀 더 골탕을 먹어야 돼.”
김연희의 음성에 짜증이 가득 섞여 나왔다.
“설마, 그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려 할 줄이야.”
“정마루씨에게 접촉했다지?”
“응. 그랬더라고. 언니 말이 맞았어. 혹시 싶어서 똥국이한테 신경 좀 써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놓칠 뻔 봤어.”
실로 은밀한 접근이었다. 만약 이소희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더라면, 모르고 지나갔을 터였다.
마루에게도 따로 사람을 붙여놓긴 했으나, 지난 사건으로 인해서 여러 제한을 걸어놓은 상태가 아니던가. 그쪽 방면에서 알아낼 확률은 반반이었다.
“그래서 정마루씨는?”
“몰라. 워낙 감이 좋잖아. 사람 붙이기가 쉽지 않아서, 정확한 위치 파악은 어려워. 단지...”
말끝을 흐린 김연희가 전방을 바라봤다. 새로운 사건의 중심지가 눈에 보였다.
광호 길드의 던전지대!
“이 근방으로 왔다는 것 정도?”
이소희도 시선을 돌려 지대를 쭈욱 둘러봤다. 득시글대는 사람들로 인해, 누군가를 찾기란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따로 불러서 면담 좀 할까?”
그 말에 이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내버려 두고, 구정국 쪽에 사람 더 붙여.”
“특급으로?”
“상대가 상대니까. 그리고 이번 기회에 광호 쪽에도 한방 먹여 줘.”
“하긴, 우리만 당하긴 억울하지.”
두 여인이 마치 쌍둥이마냥 꼭 닮은 눈웃음을 치며, 저 멀리 보이는 광호 길드의 본진을 바라봤다.
**
불필요한 관심을 피하기 위해, 오늘 하루는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CT는 너무 튀어.’
입맛을 다시던 마루가 눈을 반짝였다. 빈자리가 난 것이다. 후다닥 엉덩이를 걸친 뒤, 편안한 자세 속에서 좀 전 상황을 되새겼다.
묘한 예감, 알 수 없는 찝찝함 등, 그의 가슴을 간질거리는 감각을 짚어나가며, 그 이유를 파악하고자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오래지 않아 포인트를 잡아낼 수 있었다.
[아니. 왜 가는 데마다 승급이야?]
스스로가 내비쳤던 불만을 상기했다.
‘설마...’
말도 안 되는 가설이 떠올랐다. 수차례 고개를 저어봤지만 한 번 피어난 의심은 쉬이 떨쳐지지 않았다.
‘확인할 필요가 있겠네.’
작게 입술을 짓씹은 그가 핸드폰을 들었다.
**
강철은 뛰어난 대장장이로써, 아는 이들 사이에선 제법 이름값을 하는 인물이었다.
대격변의 초창기부터 활동을 해 온 덕분일까?
그는 여기저기 인연이 상당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인맥으로 소일거리 삼아 정보업계에도 한 발 걸치고 있었다.
마루 역시 그를 통해서 적잖은 정보를 제공받는데, 지인 찬스로 가격 할인이 된다는 점으로 인해, 그를 자주 찾고는 했다.
이번에도 그런 이유로 연락이 왔다.
“웬일이냐?”
-의뢰 좀 하려고요.
“저번에 의뢰하고 아직 한 달 안 지났는데, 정식으로 의뢰하게?”
지인 찬스는 날짜 기준으로 30일에 한 번이었고, 마루는 이를 꼬박꼬박 받아먹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받아간 정보라면, 혜성의 던전 승급과 관련된 것으로써, 사실 중요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단지, 승급과 관련됐다는 이유 때문에 값어치가 나갈 뿐이었다.
-에~이. 별 것도 아닌 정보였잖아요. 게다가 겨우 일주일 남았잖습니까. 당겨서 좀 씁시다. 우리 사이에.
“그래서 기어이 할인을 받겠다고?”
-가족 같은 사이 아닙니까. 하하!
“지금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다시 확인...”
-아! 치사 빤스. 너무하시네.
“매번 반값에 받아가는 네가 더 너무하지.”
몇 번의 투닥거림 끝에, 반의 반값 할인으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찬스기간도 갱신됐다.
“그래서 뭐가 필요한데.”
-던전 정보를 좀 얻고 싶어서요.
“어디까지?”
잠깐의 침묵 후에 대답이 이어졌다.
-등급은 낮아도 돼요. 그 대신......
몇몇 조건이 이어지는데, 가만히 듣고 있던 강철의 미간에 굵직한 주름 하나가 새겨졌다.
“너 임마. 설마...”
-나쁜 짓 하려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십쇼.
한 마디 하려는 찰나, 마루가 먼저 선수를 치며 그를 안심시켰다. 적절힌 개입에 말문이 끊겨버린 강철이 입맛을 다시다가 말했다.
“못된 짓 하다가 걸리면, 오함마로 기냥. 알지?”
-손모가지 소중한 거 아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런데, 아저씨 오함마 하나한테 있지 않습니까?
“이 쉐끼가. 남의 약점을.”
-흐흐!
투닥거림으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
고블린 길드의 수장 박시균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때문일까?
“길드가 크려면 일단 던전을 먹고 봐야 돼!”
이런 주장과 함께 관련 사업에 열심히 뛰어들며 이리저리 발을 뻗쳤는데, 그 결과 무려 3개나 되는 던전을 관리하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
욕심만큼 능력도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단지, 그 비율이 욕심 쪽에 좀 더 기울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하...이번에 세균이가 네 번째 던전 파고 있다더라.”
“염병! 지금도 일손 딸려 죽겠는데. 병균인가? 어떻게 멈출 줄을 몰라.”
“지랄. 하고. 자빠. 졌네!”
던전의 안정화가 진행되기 무섭게 일을 벌리는 탓에, 그의 길드원들은 죽어나고 있었다.
싼 가격에 단기 용병을 끌어와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긴 하나, 비지떡 값을 하는 것인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드 유지가 가능한 건, 욕심과 능력의 절묘한 불균형을 맞춰주는 주제파악이었다.
“이번에 노리는 건 E급 던전이라더라.”
“하...그래도 어찌어찌 운영은 되겠네.”
“아슬아슬하게 선은 잘 지킨다니까.”
“덕분에 우리만 죽어나는 거지.”
“염병!”
던전 확장에 대한 욕심과 달리, 상위 던전에 대한 과욕을 부리지는 않았고, 그게 길드의 명줄을 절묘하게 유지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부분이 마루의 선택을 받았다.
‘이 정도가 적당하지.’
강철에게 전해 받은 정보를 토대로 무수히 검토한 결과, 고블린 길드가 가장 ‘침투’하기 좋은 던전으로 결정된 것이다.
던전 승급!
지금까지 세 번의 사태를 전부 경험했고, 그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의심이 생겨버렸다.
[혹시, 나 때문에?]
정말 황당무계한 생각이지만, 요 1년 사이 불가해한 일들을 너무 많이 겪었던 까닭인지, 마냥 고개만 젓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확인을 해야 돼.’
던전 주변을 살펴본 결과, 예상했던 그대로의 만만한 경계수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던전 ‘지대’ 자체의 경계수준은 낮지 않았다. 딱 이곳, 고블린 길드의 관할 구역만 수준이 부족한 것이다.
‘사건이 발생해도, 대비는 잘 되겠네.’
막무가내로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정말 나 때문에 승급 현상이 벌어진 거라면.’
입술을 씹으며 주저하길 한참, 결국 그의 신형이 어둠을 틈타 고블린의 품속으로 스며들었다.
**
던전 승급!
갑작스레 터진 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발생한 과도한 잔업의 태풍 앞에서, 구정국은 반쯤 그로기 상태에 빠져있었는데, 그 와중에 날아든 비보가 있었다.
“다시...말해봐.”
구정국이 떨리는 음성으로 얼굴로 물었고, 이에 잠시 주저하는가 싶던 요원이 입을 열었다.
“던전 승급입니다.”
“어디서?”
“고블린 길드라고...”
“아...”
명색이 정보팀장이 아니던가. 그들 소속의 하위 길드는 죄다 꿰고 있었는데, 고블린 길드는 그 말석에 끼어있는 이름이었다.
“빌어먹을!”
불쑥 튀어나온 욕지거리가 그의 심경을 대변해줬다. 하지만 상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
“뭐...라고?”
“던전 승급입니다.”
“설마...아니지?”
그간 핼쑥해진 구정국의 모습 때문일까?
요원은 차마 답을 못한 채 시선을 피했고, 구정국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물이 찔끔 샜다.
< #16. 찔끔. -여기까지 무료연재였습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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