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 #18. Ang~!
간만의 PP접속과 함께 시야 한편이 깜빡거리는 게 보였다.
메시지가 왔다는 신호였는데, 그냥 한 두통 정도로는 이렇게 요란하지 않았다.
‘우체통이 쌓였다고?’
의아한 마음에 이를 확인하니 친구 추가 창으로 연결됐고, 거기에 들어와 있는 무수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북한산에서 만났던 쌍둥입니다.]
[수락을 안 하신 것 같은데요.]
[친추 부탁드립니다.]
[여보세요?]
[바쁜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렇게 쭈욱 메시지가 이어지며 쌓인 결과, 지금처럼 시야에 경고등까지 때려 박은 것이다.
[저기요. 살아 계신가요?]
[잊으신 건 아니죠?]
사실, 깜빡하고 있었다.
‘그동안 워낙 일이 많았어야지.’
마루는 입맛을 다시며 지난 기억을 되새겼다.
갑작스런 구정국과의 만남, 이후 뜬금없는 스카웃 제안과 던전 이용권 사용, 그로 인해 깨닫게 된 던전 승급 현상까지.
임씨 남매의 중요도가 떨어진 건,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후 지리산 마수지대에 들어가 짐승처럼 생활하며, 광기어린 스탯 작업에 돌입하지 않았던가.
그동안은 PP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딱 스탯 확인만 했지.’
VR기기를 통한 정식 접속이 아닌, 핸드폰을 통한 간이 접속으로 자신의 성장치만 확인한 것이다.
“유료라서 안 쓰려 했는데.”
경매장 기능이 요금의 주범이었다.
‘하...주머니 터는 건 PP가 갑이네.’
그래도 막상 결제를 하고 보니, 제법 유용하단 생각도 들었다. 언제든 실시간으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에만 집중하던 작년과 달리, 요즘은 외부 활동도 잦아지고 있지 않던가. 이런 상황에선 간이 접속 시스템의 활용도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통신이 가능해야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마수지대는 핸드폰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비싼 중계기까지 구입했다는 게 반전이며 함정이었다. 슬며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좋게좋게 생각하자. 난 결코 헛돈을 쓴 게 아니야!’
애써 긍정하며 임씨 남매에게로 생각을 돌렸다.
“살아있었네?”
어떻게 아직까지 무사한 것일까?
‘키홀 놈들이 선을 지킨 건가?’
예상되는 바가 없진 않았다.
남매는 그와 달리 키홀에게 당하던 입장이지 않던가. 그들 입장에서 이를 갈아야 하는 건, 임씨 남매가 아닌 아이언 슈트였다.
‘애초에 일행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들이 남매를 신경 쓸 이유라면?
‘쪽팔린 현장의 목격자? 딱 그 정도겠네.’
링 안의 일을 밖으로 끄집어 낼 정도는 아니었다. 2명의 맥스맨이 한 방 먹었다는 게 일부 불씨가 될 수는 있었다.
‘자잘한 것까지 죄다 물어뜯으면, 세상 각박해서 살겠누.’
그와 연결고리를 의심하며 남매를 조사할 수는 있을 것이나, 돌아가는 상황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리라.
던전 승급!
일주일 만에 3개의 기현상이 발생하며 난리가 난 상황인 만큼, 키홀 역시 한눈팔 시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키홀 입장에서 임씨 남매는 이래저래 중요도가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는 정확한 예상이었다.
키홀 역시 임씨 남매를 관찰하려 사람을 썼고, 키홀의 이름값으로 쓸 만한 조사원을 구해 임씨 남매의 거처까지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방구석에 틀어박혀 종일 게임만 하는 모습에 결국 의심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손봐주고 싶다는 일원이 2명 있었으니, 임씨 남매에게 당한 맥스맨들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시점부터 승급 현상이 터지기 시작했다.
마루의 예상 그대로 흘러간 것이다.
물론, 거기까진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나름 그럴싸한 가설이라며 자화자찬한 뒤, 마루는 임씨 남매의 아이디를 확인했다.
“까타르? 걸크레용?
뭘 대상으로 한 아이디인지 단번에 이해됐다.
“타르하고 걸크인가.”
앞서, 그가 북한산에서 착용했던 가면, 아이언슈트의 동료들이었다.
타르의 경우, 커다란 담뱃대를 망치처럼 휘두르는데, 거기에서 피어난 연기가 쌓이면 천둥도 부릴 수 있었다.
걸크는 한 때 유행하던 걸크러시의 기원이란 말이 있는 여성 동료로써, 흥분하면 거대한 핑크 거인이 되어 모든 걸 파괴하는 반전 히어로였다.
분노가 쌓이면 그 피부가 핑크에서 완연한 붉은빛이 되는데, 그쯤 되면 동료들도 막을 수 없다는 설정을 지니고 있었다.
왠지 이 아이디가 우연 같진 않았다. 그와의 만남을 대비해서 바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돈 낭비 참...’
짧게나마 대기 기간도 있었다. 괜한 짓을 한다며 고개를 저은 뒤, 남매가 기다리고 있을 친구 허락을 눌렀다.
뒤이어 메시지도 보냈다.
[살아 있네?]
**
드디어 기다리던 메시지가 왔다.
“만세!”
임지현이 환호하며 바로 통신을 열었다.
“살아있습니다.”
-걸크레용?
“옙! 제가 걸크레용이에요.”
임수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동생이 까타르?
“예. 제가 까타르입니다.”
-요즘 좀 바빠서 늦어버렸네.
대체 그동안 뭘 하느라 이제 접속하느냐고, 한 마디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북한산의 그 강렬한 모습을 상기하며 참아낼 수 있었다.
그와 달리 임지현은 마냥 싱글벙글이었다.
“아니에요. 남자가 바깥일 하다보면, 바쁠 수도 있죠. 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오호호홋!”
누이의 모습에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그 역시 마루에게 적잖은 콩깍지가 씌어 있었지만, 민증 사태로 일부 걷혀진 상황이었다.
게다가 옆에서 저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눈곱마저 끼는 걸 느껴야만 했다.
-혹시, 그 맥스맨 놈들이 따로 찾아오거나 하진 않았고?
“어머!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어...음. 그래.
떨떠름한 음성이었지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임지현은 얼굴 붉히기에 바빴다. 그 모습에 재차 고개를 저어보인 임수현이 입을 열었다.
“집 주변을 살피는 이가 몇 있더군요.”
-누군지 확인은 했고?
“알아보려고 접근 중이었는데, 승급현상이 연달아 터진 뒤로 철수해 버려서,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누군지 짐작할 순 있었다. 최근 남매에게 터진 사건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북한산과 맥스맨!
그 부분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필요한 정보는 얼추 전해들은 듯, 마루가 상황 정리에 들어갔다.
-당장 만나서 차후 일정을 정하고 싶지만, 지금도 바삐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괜찮지?
니들이 안 괜찮으면 어쩔 거냐는 투였지만, 콩깍지가 각막을 대처하고 있는 임지현에겐 이마저도 세레나데처럼 들리는지, 얼굴을 붉히며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당연하죠. 걱정 마세요.”
임수현이 이를 한심하게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언제쯤 다시 접속하실지 알 수 있을까요?”
그동안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 길었던 탓에, 이번에는 제대로 약속을 잡아놓고 싶었다.
-나도 뚜렷이 답을 내리긴 어렵고, 넉넉잡아 주말 정도면 연락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늦게?”
임지현이 작게 속삭였다. 통신으로 건너가는 음성은 아니었다. 혹시 밉보일까 싶어 불만을 숨기는 모습에 헛웃음만 나왔다.
누이의 뒤통수를 갈겨준 뒤, 임수현이 정리에 들어갔다.
“이만 끊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수고.
“조심하세요~!”
다급한 임지현의 외침을 끝으로 통신이 마무리됐다.
**
남매와의 대화를 끝낸 마루는 자신의 상태창을 열었다.
[레벨 : 100]
[힘 : 150+5(+25)] [지능 : 145(+35)]
[체력 : 150+2(+35)] [정신력 : 143+5(+35)]
[민첩 : 145+5(+35)]
[스탯 : 0]
마루는 자신의 스탯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수 스탯만 750으로써, 무려 130레벨에 버금가는 스탯이었다.
현실에서 그가 올린 스탯은 정확히 28개였다.
[130레벨만 채우자!]
애초에 목표를 그렇게 잡고 움직인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스탯도 제법 고르게 분배된 탓에, 더 이상 무리할 필요도 없었다. 사실, 더 하라 그래도 한계였다.
‘후...지리산 마수지대는 너무 빡세.’
수시로 상위종이 튀어나오고, 레이드 클래스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던가. 빡성장을 위해 스스로 한 선택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리게 만들었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Top3 안에 꼽히는 마수지대인 탓인지, 하루하루가 고행의 나날이었다.
덕분에 목표 스탯은 빠르게 채울 수 있었다.
“레베카의 도움이 컸지.”
숙식도 산 속에서 해결하며 치열한 전투를 거듭한 덕분인지, 나름 전우애란 것이 쌓이면서 말을 놓게 되었다.
‘장비 스탯까지 더하면, 915인가.’
하지만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도전해야 할 2차 전직 던전의 경우, 정예 중의 정예만 모여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장비까지 아주 특별했다.
‘죄다 희귀등급 아이템을 쳐 입고 있으니.’
초입의 부분에 있는 몬스터들도 그 경계에 걸쳐있는 일반등급 세트템이 기본 무장일 정도였다.
결국 장비 스탯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러니 최소 8인용일 수밖에 없지.’
한숨을 푹 내쉬던 것도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던전으로 발을 내디뎠다.
[Ang-마가 낀 사원에 입장합니다.]
도전할 수 있는 던전들 중, 가장 공격력이 낮은 던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만만하단 의미는 아니었다.
‘치명적인 던전이지.’
유저들이 뽑은 최악의 던전으로 꼽히기도 했다.
‘악명이야 많이 들었지만.’
사실, 그 역시 이곳은 첫 도전이었다.
하지만 많은 조사와 준비를 해 왔다. 그간 외부에서 스탯 작업을 하는 한편, 이곳 던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것이다.
단지 그 조사 내내 도전을 말리는 글귀가 딸려 와서, 괜스레 두려움이 커지는 것 같았다.
[가지마! 거긴 지옥이야.]
추가 글귀를 증명하듯, 던전 초입부터 아찔한 풍경이 그를 반겼다.
흐으으으...
괴이한 신음성과 함께 구릿빛 피부의 거한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를 본 마루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젠장! 옷 좀 입어라.’
눈깔을 파고 싶었다.
사실, 옷을 안 입는 건 아니었다. 단지 제대로 입지 않았을 뿐이었는데, 거한은 알몸이나 다름없는 복장을 하고 있었다.
특히, 누가 봐도 부담스러운 삼각형의 하의를 보라.
‘저건 빼박 팬츠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중심부가 부담감을 배가시켰다.
게다가 상의 역시 런닝인지 뭔지 모를 걸 입고 있는데, 짜증나게도 너무 작은 걸 억지로 끼워 넣은 듯, 가슴의 절반만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가슴에 털은...깎은 거니?’
하트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그 와중에 어깨와 다리에 착용한 갑주는 왜 이렇게 고퀄이란 말인가. 벗은 거나 다름없는 몸뚱이에 저딴 걸 붙여 놓으니, 구역질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아...씨발!”
욕지거리가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저딴 게 희귀 등급 아이템이라니.’
혹시나 드랍 될까 겁나는 건 처음이었다.
더욱 거지같은 건, 마치 보디빌더처럼 우락부락한 근육들이었다. 몸뚱이로 흐르는 개기름 때문인지, 움직일 때마다 불뚝거리며 반짝이는 게, 끊임없는 고통과 후회를 불러왔다.
글귀가 잔상마냥 스쳐갔다.
[거긴 지옥이야.]
접근하는 걸로도 충분한 용기가 필요할 듯싶었다.
‘나는 왜 몽크인가. 나는 왜...’
달라붙어야 하는 현실이 괴로웠다.
누군가는 너무 선정적인 게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이게 또 황당한 게, 이곳 사원은 남녀 따로 입장하는 장소라는 점이었다.
여성진이 들어올 땐, 누가 봐도 질투가 날 만큼 매혹적인 여성들이 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각기 담당 일진이 존재했다.
그렇게 입장과 동시에 정신력이 깎인 채 시작하는 던전이었다.
흐으으으...
거구가 그를 향해 다가오고, 괴이한 신음성이 한층 선명해졌다.
흐으으응...흐응...흥...
“이런, 씨발!”
마루가 욕설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다.
주륵...
번들거리는 개기름이 이를 흘려보냈다.
‘염병!’
흐Ang?
지척에서 터져 나온 신음성이 재차 사고를 마비시켰다.
“흐악!”
마루가 기겁하며 연타를 내질렀다.
미끌...
Ang...
끄악...
비명과 신음 속에서 치열한 전투가 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