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 #19. 앙마는 XXX를 입는다?
[Ang-마가 낀 사원]
그곳은 실로 변태적인 던전으로 유명했다.
이는 Ang마들의 외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말도 안 되는 맷집 때문이기도 했다.
공격력은 부족하지만, 방어력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이다.
“제발. 좀. 죽엇!”
그 말을 증명하듯 마루의 무시무시한 연격 속에서도, 변태적인 복장의 앙마들은 괴상한 신음성을 내비치며, 그의 폭력을 꾸역꾸역 버텨냈다.
앙! 아항! 하앙...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마냥 당하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덥썩!
“Ang?”
“히익!”
앙마가 달라붙고, 마루가 기겁하며 몸부림을 쳤다.
놈들의 주특기를 언급하자면?
숨 막히게 끈적하고 두려울 만큼 농밀한 그라운드 기술이었다.
“으악! 끄흡! 흐악!”
마루가 비명성을 내지르며 전력으로 탈출했다. 그도 나름 주짓수 블랙 밸트의 실력자가 아니던가.
“허억...허억...”
잠깐 잡혔다 나왔을 뿐이건만, 체력이 쭈욱 빠진 것 같았다. 어쩌면 정신력에 더 큰 타격을 받은 듯싶었다. 하얗게 질린 안색이 이를 증명했다.
‘실수했나?’
돌연 후회가 밀려들었다.
‘나는 왜 몽크인가. 나는 왜?’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냥 일반 던전을 갈 걸.’
물론, 일반적인 던전이었다면,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자칫 데스를 기록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일반적인 2차 전직 던전의 경우, 패턴이 참 골치 아프게 짜여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도 팀을 짜고 다양한 상성 및 조합을 맞춰서 움직이는 터라, 이를 적절히 커버하지 못한다면 매섭게 몰매만 맞다가 끝날 터였다.
파티 조합이 중요한 게, 몬스터의 연계 흐름을 각기 분담하여 끊을 수 있고, 상성도 어그러트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던전의 시작부터 끝까지, 쭈욱 그런 식으로 사냥을 해야 하는 탓에, 혼자서는 클리어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보스방이 특히 어렵지.’
각종 준비물도 홀로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었다. 게임이라지만 인벤토리가 무한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아공간 보단 넓었다.
어쨌든 그런 일반 던전들과 다르게, 이곳은 일단 방어 특화형 던전이다 보니, 장기전을 각오하며 버틸 수만 있다면, 클리어도 노려 볼 법한 던전인 것이다.
물론, 여기도 조합이란 게 있기는 했다.
저 후방에서 꾸준히 요상한 포즈를 취하는 근육돼지가 보였다.
‘썅! 어떻게 저게 힐러야?’
아무리 봐도 파이터였다.
순수하게 외형만 놓고 판단한다면, 여기 있는 앙마들 중에서 가장 강해보일 정도였다.
힐러 앙마가 취하는 포즈들은 전부 버프나 힐을 위한 동작들로써, 쓸데없이 요염한 탓에 수시로 오바이트가 쏠리고는 했다.
황당한 건, 이게 농담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우욱...’
저 포즈 자체가 정신공격의 일환인 것이다.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HP와 MP가 함께 깎여나가는, 아주 위험한 마성의 몸부림이었다.
[모발도발]
정신 보호 스킬이 아니었다면, 자칫 경직이나 둔화 현상에 걸렸을 수도 있었다. 높은 정신력에서 오는 항마력 역시 도움이 됐다.
스탯을 잔뜩 챙겨온 효과가 빛을 발했다.
‘아...제발 게다리 자세 좀 취하지 마라.’
물론, 그냥 순수하게 시야를 오염시키며 들어오는 정신적 타격은 어쩔 수 없었다.
울고 싶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
레베카는 의아한 얼굴로 자신의 호위대상을 바라봤다.
‘게임만 하는 것 같았는데.’
무슨 일이 있기에 담배를 쥐고 있는 것일까?
언제나와 같이 PP에 심취한 게임 폐인의 일상이었고, 덕분에 아주 편한 호위를 할 수 있었다.
헌데, 그녀가 모르는 곳에서 뭔가 사건이라도 터졌던 건지, 묘하게 지친 몰골로 집을 나서는가 싶더니,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다 태우는 것이 아닌가.
피우지는 않은 채, 손에 쥔 채 타들어가는 담뱃불만 바라볼 뿐이었다.
‘말동무라도 해 줘야 하나?’
은신처에 숨어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어느새 담배 한 개비가 전소했고, 그 시점에 마루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남은 담배는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었다.
찌익...찍...
슬리퍼를 끌며 귀가하는 뒷모습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느껴지는 건, 마냥 착각인 걸까?
딸랑...딸랑...
환청일까?
묘한 종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
지독한 장기전이었다.
일반적인 파티를 하고 들어왔더라면, 빠르면 하루고 늦어도 이틀 안에는 끝나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혼자였다.
‘이게, 며칠 째지?’
마루는 날짜를 헤아리다 헛웃음을 지어버렸다.
“주말까지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본의 아니게 또 다시 임씨 남매를 물먹여버린 것이다.
‘나흘짼가.’
오늘을 보내면 주말도 끝이었다.
인벤토리에 담아온 식량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진짜 최악은 따로 있기 때문이었다.
[S-M방어구 세트]
착용중인 장비의 특수창을 열었다.
[내구도 0]
모든 무구는 10의 내구도를 지니고 있다. 전투가 장기화되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게 0이 될 경우 더는 장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전설이나 신화등급의 특별한 장비 역시 마찬가지로써, 차이점이라면 그 아래 등급의 장비들의 경우, 내구도가 떨어지면 대장간에서 수리를 하지만, 전설과 신화등급 장비는 스스로 내구도를 회복한다는 점이었다.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인벤토리에 준비해 왔던 장비 수리킷도 바닥난 상황이었다. 그마저도 완벽한 수리는 불가한 탓에, 임시방편 정도밖에 되질 않았다.
지난 나흘간의 전투로 인해, 장비 스탯의 도움 없이는 던전 클리어가 불가능하단 걸 알았다.
그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 놓여야만 했다.
“으음...”
신음성을 흘리며 인벤토리를 열었다.
그 안에 담기 아이템을 바라봤다.
[보드라운 팬츠]
[보드라운 셔츠]
[자극적인 벨트]
[뇌쇄적인 숄더]
[매끄러운 부츠]
앙마가 드랍한 아이템을 하나 둘 모은 것으로써, 무려 희귀등급의 세트 아이템이었다.
‘정녕...이걸, 입어야 한단 말인가.’
바르르 떨리는 입술이 그의 갈등을 전해줬다.
“그냥, 나가서 스탯 좀 더 쌓고 올까?”
황당한 생각마저 들어버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야했다. 나흘이나 허비했건만 이걸 처음부터 다시 한다?
다른 일반 던전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쪽이라고 쉬운 건 아니었다. 앞서도 언급했듯 클리어 가능성은 더 낮은 편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해온 게 아쉬워서,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얼마나 바라만 봤을까.
결국,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다진 뒤, 인벤토리에 손을 뻗었다.
[Ang-마가 낀 세트]
그렇게 장비를 착용했다.
스탯 자체는 전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미묘한 변화 정도야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큰 변화가 없진 않았다.
기존 장비의 세트 옵션에 붙어있던 [가속]스킬 대신, 다른 종류의 효과가 따라온 것이다.
[미끄러운 바디]
지독할 만큼 경험했던 회피확률 증가였다.
‘아니, 대체 왜 이렇게 번들거리는 건데?’
각오를 했다지만 상상과 현실의 차이라고 해야 할지, 한 차례 자괴감에 빠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고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S-M 악세사리 세트]
하필 귀걸이, 목걸이, 반지는 멀쩡했다.
알몸에 악세사리?
앙마도 놀랄 패션 피플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이후 이어진 전투에서 몇몇 앙마들이 놀란 얼굴로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짝짝짝짝!
휘익! 휙!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휘파람 소리도 들었다.
게다가 몇몇 놈들은 질투 섞인 시선도 보냈으며, 어떤 놈들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흐뭇하게 바라보는 놈들도 있었는데, 마치 동료를 보는 눈빛이라 소름끼쳤다.
그게 더 싫어서 더욱 사납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이곳은 지옥이었다.
**
한국에 온 까닭일까?
‘마루님은 뭘 하고 계시려나.’
성녀 레아는 자주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이곳까지 왔음에도 얼굴 한 번을 볼 수가 없어, 더더욱 그에 대한 의문이 샘솟는지도 몰랐다.
원래라면 교황청으로 복귀를 해야겠으나, 연달아 터진 승급소식 덕분에 좀 더 머물 수 있게 됐다. 늘어난 시간 덕분인지, 차후 만남의 기회가 생길거란 기대감도 살짝 생겼다.
물론, 레베카를 통해 그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직접 보고 살피는 것에 비하기는 어려웠다.
최근에 들었던 놀라운 소식 역시 유발요소의 하나였다.
‘설마, 총기각성이 위장이셨을 줄이야.’
올 상반기 들어 최고의 반전이었다. 추가로 아직 1월이라는 것도 소소한 반전이라면 반전일 것이다.
멀리서 손가락만 까딱이는 게 아닌,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온몸으로 부딪치는 것, 저돌적인 투사형의 각성자가 바로 마루의 본질이었다.
더욱 놀라운 건 본연의 실력이었다.
‘레베카도 정면승부는 자신 없다고 할 정도라니.’
물론, 암살 계열로 성장을 한 만큼, 정당한 대결은 약하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했지만, 그렇더라도 랭커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레베카가 아니던가.
그런 그녀가 약한 소리를 할 정도라는 건, 마루의 등급이 제대로 된, 아주 알찬 A급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3개월 정도 됐나?’
작년 10월 초반에 마루와 만남을 가졌고, 어느새 1월 중순을 넘어 말경에 다다르고 있었다.
각성자가 성장을 논하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건만, 그 잠깐의 시간동안 얼마나 변화했을지, 자꾸만 기대하게 만드는 건 그가 유일했다.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이런 바람이 닿은 것인지, 그날 밤 꿈을 통해 마루의 모습을 잠시간 엿볼 수 있었다.
“허억!”
그리고 기겁하며 깨어나야만 했다.
‘뭐...뭐지?’
악몽인가 싶었다.
‘개꿈...?’
절대로 계시 같은 게 아니리라. 그럴 것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래. 헛것을 본 거야.’
끊임없이 되뇌며 스스로를 세뇌하는 건, 꿈속에서 본 광경이 너무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잘 못 본거야.’
거의 알몸에 가까운 몰골로 근육질의 사내들과 뜨겁게 비비고 부대끼며, 열정을 불사르는 광경이라니.
‘게다가 얼굴에 그건 분명히...’
망측한 기억에 얼굴이 붉어졌다.
‘악몽이야. 악몽!’
날이 밝으려면 한참 더 남았건만, 어째선지 잠자리에 들기가 어려워, 결국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야만 했다.
**
기나긴 여정이었다.
“드...드디어...”
무릎이 풀린 듯, 마루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전방의 거대 철문을 향해 다가갔다. 저곳이 바로 던전의 심장부였다.
문득, 중앙에 새겨진 글귀가 눈에 박혔다.
[Ang-마구니의 사랑방]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씨발...’
그럼에도 잔상처럼 남아버려, 문을 열기도 전에 데미지가 들어왔다. 결국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아버렸다.
“하!”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엿새인가.’
헐벗고 난 뒤, 이틀이 지났다.
그 와중에 몇몇 장비들이 새롭게 추가되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걸 꼽아보자면, 현재 그가 얼굴에 뒤집어 쓴 물건이었다.
[도미넌트 가면]
뭔가 멋스러운 이름이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이게, 어떻게 가면이야. 팬티지. 씨발!”
옆 나라의 변태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만화 원작의 영화로써, 나름의 흥행도 했던 탓인지 시리즈까지 나온 작품이었다.
‘볼 때는 웃으면서 봤는데.’
그의 입장이 되니 너무도 괴로워졌다. 그렇다고 안 쓸 수도 없는 게, 이걸 착용하는 순간 6세트 옵션이 발동되기 때문이다.
‘6세트 옵션은 정말 희귀한데.’
5와 7의 중간에 걸쳐있는 세트템은 등급유무와 무관하게, 몇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런 특별한 물건이 그의 얼굴을 덮고 있었다.
[매력적인 바디]
마치 펌핑 스킬이 중첩된 듯, 6세트 옵션으로 그의 체구가 한층 부풀었다. 하지만 효과는 그와 정 반대되는 공격력 증가였다.
‘일주일 채울 줄 알았는데.’
6세트 아이템의 위력으로 하루를 절약하며, 엿새 만에 심장부에 다다를 수 있었다.
“후우우우...”
충분할 만큼 휴식을 취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후 호흡을 고르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진 뒤 심장부로 향했다.
[Ang-마구니의 사랑방]
부담스런 글귀에 손을 얹고, 거대한 철문을 힘차게 밀었다.
그그그그그극...
과연, 육체파 던전답다고 해야 할까?
거대한 철문 역시 힘으로 열어야 하는 탓에, 적잖은 괴력을 발휘해야 했다. 어렵사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널찍한 공동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앙에는 역시나 거구의 사내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루의 시선이 최후방의 커다란 왕좌에 앉아있는 사내에게로 향했다. 최종 보스로 보였기에 자연스런 흐름이었다.
‘고양이?’
헌데, 그 복장이 기괴했다.
대다수의 앙마들이 그러하듯, 육체미를 한껏 과시하는 복장인 건 다름없지만, 그 와중에 고양이 귀가 달린 머리띠와 장갑 그리고 털 부츠 등을 신고 있어, 약간의 차별점을 두고 있었다.
‘가슴은...그냥 털이구나.’
순간, 저것도 복장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만큼 우거졌다. 목에 단 방울은 복장이 확실하리라. 못 볼 꼴에 고개를 저으며 재차 관찰을 이어가는데, 그러다가 이상한 걸 발견해 버렸다.
“허억!”
충격적인 것을 본 듯, 숨이 턱 하니 막혔다.
‘아니, 고양이 꼬리가 왜 앞에 있는 건데?’
초반엔 무슨 장비 같은 건 줄 알았건만, 이제 보니 꼬리였다.
갑작스런 불청객을 경계라도 하듯 우뚝 선 모습이, 실로 우람, 아니 위협적이었다.
“씨...발...”
욕지거리가 신음처럼 새나왔다.
이곳은 지옥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