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70화 (70/325)

070 / #20. 경고문.

그를 만류하던 글귀들이 떠올랐다.

‘아...모두가 하지 말라는 건, 하면 안 되는 거구나.’

마루는 이번 던전을 통해 얻었던 깨우침을 상기하며, 최종보스의 전방을 지키고 있는 사내들을 살폈다.

형형색색의 나비가면과 넥타이를 맨 채, 마치 수행하듯 서 있는 모습이 뜻밖의 단어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집사!

그 숫자는 무려 다섯이었는데, 가면의 색깔이 또 인상적이었다.

블루, 핑크, 레드, 옐로, 그린!

전대물의 전형적인 색상과 포지션을 잡고 있었는데, 마루의 시선이 닿자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또 황당했다.

‘뭔, G-New 특전대냐?’

과거의 유명 만화를 떠올리게 만드는 특정 포즈로 마무리하는 모습에선 얼이 빠져버렸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뒤, 자세를 가다듬었다.

지뉴 특전대, 아니 집사들이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후우우우...”

패턴을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 조사한 바, 저들 다섯이 격투계열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던전의 대다수가 격투가였다. 좀 더 정확히는 그래플러 계열로써, 달라붙고 엉겨 붙는 솜씨가 하나같이 선수급이었다.

문득,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들이 떠올랐다.

던전의 패턴이나 함정 등은 잘 나열되어 있었다. 어찌나 꼼꼼히 적어놨는지, 누구나 도전하고 싶게 만들어진 것이다.

완성도 높은 공략집이었다.

단지, 그 끝에 경고문이 박혀있다는 게 핵심이었다.

‘씨발! 경고문 끄적거릴 시간에. 저런 몰골을 찍어서 올리라고.’

사진이나 영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선정성 논란을 의식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짜른 것인지, 그럭저럭 용납할 수준의 물건들만 몇 장 올라와 있었다.

안 된다. 가지 마라. 그곳은 지옥이다. 등등, 입으로는 말리고 있지만, 공략본의 완성도는 등을 떠미는 느낌이 강했다.

-나만 당할 수 없지.

-같이 죽자!

대충, 그랬다.

상념은 거기까지였다. 어느새 집사들이 그를 포위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완전히 진형이 갖춰지기 전에 움직이는 게 좋았다.

‘태세전환, 울프.’

붉게 피어난 기류에 집사 레드와 핑크가 반응했지만, 마루의 목표물은 그린이었다.

‘탱커 먼저.’

공략집의 내용이 떠올랐다.

[흔한 격투계열처럼 보이지만, 숨겨진 버프를 하나씩 지니고 있습니다.]

던전을 지나오며 비슷한 경우를 수차례 겪어봐서 크게 이상하진 않았다.

[이놈들은 서로의 몸을 부비는 걸로 특이스킬을 발동시키는데, 그린의 역할이 팀원들의 방어력을 증가시켜주는 거라, 기왕이면 이놈을 먼저 잡고 가는 게 좋습니다.]

힐러 계열도 있었지만, 탱커가 건제할 경우, 딜 자체가 제대로 들어가질 않기 때문에, 그린이 1차 목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워어어어어!

그린이 포효하며 그와 맞섰다.

파파파팡!

언뜻, 레슬러와 타격가의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마루는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꾸준히 팔다리를 뻗었고, 그린은 맞으면서도 꿋꿋이 안으로 파고들려 노력했다.

다른 네 명의 집사들이 주변을 에워싸며 그린을 지원하는 터라, 마루의 손발이 수시로 꼬였고 간격 유지도 쉽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그린만 바라보며 달려들었다.

그러며 공략집에서 언급한 포인트를 떠올렸다.

[절대 땀을 흘리게 두면 안 됩니다.]

그 뜨끈한 액체가 늘어갈수록 놈들의 특이스킬도 위력을 더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놈들은 기름기가 없어서 이를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을 듯싶었다.

물론, 땀 한 방울 없는 승리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은 모두가 인정하는 탱킹한 던전이기 때문이다.

‘파티로 왔더라면 모르겠지만.’

화력 조합으로 일방적인 몰매를 놓는다면 이야기가 다를 것이나, 그는 솔로 플레이 중이었다. 저놈들의 타고난 체력과 방어력을 상기해 봤을 때, 땀이 흐르고 버프가 발동되는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마루는 그 해결책을 떠올리며 인상을 구겼다.

[혹시, 땀을 보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간단히 해결하는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걸 훔치면 됩니다.]

공략집은 말했다.

[먼저 달려들어서 부비세요. 버프를 강탈하는 겁니다.]

‘씨발!’

[효과는 반감되지만, 그래도 방어력이 올라가니까. 한층 수월하게 사냥을 할 수 있답니다. 흐흐흐흐...]

끝자락의 묘한 웃음이 이제야 이해됐다.

이래저래 그린만 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꾸준히 타격을 넣다 땀이 흐르는 순간, 온몸으로 달려들며 뜨거운 육체의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이다.

보스 방을 들어오기 전, 각오를 다질 정도로 두려운 일이었다.

주짓수 블랙 벨트?

현 상황의 유일한 위안거리이자 방파제였지만, 그럼에도 스며드는 공포심은 어쩔 수 없었다.

이를 잊기 위해서 더 열심히 손발을 놀리며 전투에 몰입하는데, 이는 집사들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원치 않던 순간이 찾아와 버렸다.

주륵...

그린의 볼 위로 흐르는 한줄기 땀방울과 함께, 헐벗은 그의 육신이 조금씩 번들거리는 게 보였다.

약속의 시간이었다.

‘젠장!’

피눈물을 삼키는 심경으로 달려들었고, 달라붙었다.

“으아악!”

비명, 아니 절규 속에서 뜨거운 부비부비가 시작됐다.

**

공략집은 이야기했다.

[다섯 놈들의 버프를 전부 강탈할 수 있다면, 보스 냥반 잡는 건 일도 아니죠.]

왜 ‘냥’반이라 했는지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포인트는 다섯 집사와의 정열의 쌈바였다.

그린의 방어력처럼, 다른 네 명의 집사들도 특수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공격력의 레드, 속성력의 블루, 항마력의 옐로, 회복력의 핑크.]

‘그 중에서 블루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

저들이 사용하면 마기가 되지만, 그가 갈취하면 성력이 되어 상극의 기운을 뻥튀기 시켜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옐로의 항마력을 뺏는 것 역시 중요했다. 몽크의 신성공격이 약화되는 걸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이 있었다.

[무조건 한 놈씩 패야 합니다. 데미지가 축적되는 만큼 땀샘분비가 촉진되거든요. 이걸로 특수스킬 발동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놈들은 그냥 적당히 커버하면서 시간 지연만 하세요.]

공략본의 내용들이 매 포인트마다 리플레이 되며, 그의 행동방침을 정해줬다.

이 와중에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덥썩!

마루가 열정의 비비기를 시전하면, 나머지 집사들은 마치 구경이라도 하는 듯, 한 걸음 물러나서 포지션만 잡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혹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도 그럴게 지금까지 한 번 덮쳐지면 나머지 놈들도 그 위로 몸을 던져댔던 터라, 그라운드 기술을 기겁하며 피해 온 것이지 않던가.

‘집단 난...투도 싫고, 끈적거리는 느낌도 싫고.’

어쨌든 이는 지금까지 어떠한 공략본에도 나오지 않은 내용으로써, 생각해보면 혼자서 여길 들어오는 사람이 없기에, 여태껏 발견되지 않은 비밀이라 여겼다.

생각해보면 파티로 온 이들의 경우, 인원을 분배해서 나머지 집사들을 커버했을 것이니,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기가 어려운 게 당연했다.

‘저 눈빛이 불편하긴 한데.’

뜨거운 형제애가 느껴진다면, 착각일까?

어쨌든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버프를 수집할 수 있었다.

수집 순서는, 방어, 공격, 항마, 속성, 회복으로써, 의외로 회복력이 가장 후미에 배치되어 있었다.

[장기전만 각오한다면, 회복력은 굳이 중요시 할 필요 없습니다. 순서는 방어력을 뺏은 뒤 공격을 쑤시고, 항마력을 지운 뒤 성력을 박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버프를 4개까지 수집하고, 마지막으로 핑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캡틴 플......’

옛 고전만화의 주제가가 환청마냥 지나가는 와중에, 문득 저 뒤에서 방관하고 있던 보스가 움직였다.

‘저냥반이?’

머릿속으로 공략본이 자동 재생됐다.

[마지막 한 놈이 남으면, 보스 냥반이 움직일 겁니다. 채찍을 휘두르는데...]

그 부분에서 잠시 사고가 정지했다.

“허억!”

봐서는 안 될 걸 봐버린 까닭이었다.

‘저...저게 왜 늘어나?’

앞으로 우뚝 서 있던 의문의 꼬리가 솟아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두 배가량 길어졌다 싶을 즈음, 보스가 팔짱을 낀 채 허리를 흔들었다.

촤악!

그 순간 빨랫줄처럼 쭈욱 늘어나는가 싶더니, 핑크 집사의 등짝을 매섭게 가격했다.

‘저...저게 채찍이었어?’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촤악! 쫙! 쫘아아악...

채찍질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쉼 없이 핑크를 두드리는데, 고통에 몸부림치는 핑크의 얼굴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그건 마치, 흥분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눈이 맛탱이가 갔는데.’

채찍질이 이어질 때마다 핑크의 눈에 광기가 짙어졌고, 그와 동시에 덩치는 조금씩 부풀었으며, 피부색은 점차 핑크빛으로 물들어갔다.

하앜...핫...흐아아앜!

숨소리도 거칠어지는 게 불쾌지수가 배로 상승하는 느낌이었다.

눈의 피로와 무관하게, 일단 보이는 걸로 판단해 봤을 때, 버프가 부여되고 있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를 방해하면 안 됐다.

[그냥반이 하는 걸 방해하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 빡쳐서 달려들거든요. 최대한 터치할 일 없게 조심하세요. 그냥반 무서운 냥반입니다. 흐흐...]

무섭다면서 왜 웃느냔 말이다. 당시에는 이해 못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너도 한 번 당해봐라! 흐흐...

저 채찍질을 보라.

촤악! 쫘악! 촤좌-짜악!

부르르...

두려움에 몸서리가 쳐졌다.

‘절대 맞고 싶지 않아!’

보스에 대한 공포심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사이, 핑크 집사는 변화를 거듭했다.

그렇게 덩치가 머리 하나쯤 더 커지고, 피부는 부담스런 살구빛이 되었을 즈음, 드디어 채찍질이 끝을 맺었다.

촤라라락...

그리고 거짓말처럼 꼬리가 줄어드는 게 보였다.

“악!”

거기서 또 한 차례 눈의 피로가 가중됐는데, 상황에 대한 경계인지 그도 아니면 흥미를 표하는 것인지, 줄어든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이런, 젠장!’

그 분노를 한껏 담아 핑크 집사에게 달려들었다.

변신 시간, 아니 버프부여도 끝난 만큼, 이제는 보스를 시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부여된 버프는 별 거 아니었다.

[원래 다섯 놈들에게 분배됐을 버프를 혼자 독식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핑크 집사의 능력을 상기하면 결론은 간단했다. 회복력이 다섯 배가 된 것이다. 굳이 핑크를 마지막에 남기는 건 이런 이유도 끼어있었다.

일인분이 감당할 수 있는 버프의 한계치가 있지만, 보스의 채찍질로 신체가 변형되며, 이를 수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릇의 크기를 늘렸다기 보단, 보조 용기를 만들어낸 느낌이 강했다. 감당할 수 없는 걸 억지로 쑤셔 박은 거였다.

핑크 집사의 눈이 돌아간 게 이를 증명했다.

크으으으...크으...

침을 질질 흘리며 광기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핑크빛 피부와 부담스런 육체미가 더해지니, 이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똥을 퍼먹으라고 하지.’

이를 악물며 주먹을 휘둘렀다.

퍼퍼퍼퍽...

**

힘겨운 여정이었다.

“으아아아!”

그 때문에 던전을 나왔을 때, 기쁨의 포효가 터져버렸다. 마침 쏟아지는 빗물이 시원하게 그의 전신을 씻겨줬다.

마루는 던전 속 끔찍했던 악몽을 씻어내듯, 그렇게 한참을 포효하며 빗물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이런 그의 모습에 몇몇 대기자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는데, 마루는 오히려 그들을 이상하게 바라봤다.

아니, 불쌍하게 여겼다.

동정했다.

‘쯧...’

그래서 경고해줬다.

“님아 그 칸을 건너지 마오.”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잘 모르시나 본데, 여기가 전직 던전 중에서 가장 만만한 곳입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파티원 부족하면 여기로 가야 된다고요.”

“아저씨. 괜히 이상한 소리 말고 가시죠.”

“안 사요.”

잡상인 취급까지 받아버렸다.

‘썩을 놈들!’

물론, 이해 못 할 부분은 아니었다. 저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이곳까지 흘러든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태도가 괘씸했다.

뒤통수에 대고 쌍 엿을 날려준 뒤, 휙 하니 발길을 돌렸다.

‘일단, 장비 수리먼저.’

헐벗은 채로 나올 수 없어서, 일단 기존 장비를 착용하고 나왔지만, 내구도가 0이라서 방어구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욕깨나 먹겠네’

내구도 1과 0은 수리 난이도의 차이가 배 이상 뛰는 탓에, 허파is토스의 망치가 정수리로 떨어지는 것도 각오해야 할 터였다.

이동 중에 던전의 모든 영상들을 삭제했다.

개인용 시점으로 자동 촬영되는 영상들로써, 마치 기억에서도 지워버리겠다는 듯, 모든 자료를 깔끔히 정리했다.

그렇게 모든 자료들을 소각한 뒤, 깨달았다.

‘아...이래서 영상 자료가 부족한 거구나.’

선발대 역시 그와 같은 절차를 거친 거였다.

던전 속 끔찍했던 기억을 지우고, 앙마들을 잊어버리기 위해, 간절한 바람을 담아 모든 자료를 삭제한 것이다.

꿈에 나올까 두려운 경험이었다.

그 때문에 이런 식으로 지워버리는 것으로 눈을 달래고 뇌를 다독이며 가슴을 풀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기 어려운 기억이었을까?

“으아아악!”

그날 밤, 꿈속에 앙마가 나왔다.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놈.

Ang-마구니!

보스의 기억이 그를 괴롭혔다.

잠이 오질 않았다. 잠들 수 없었다. 혹시나 눈꺼풀이 감길까 두려움에 떨며 컴퓨터를 켰고, 그렇게 뜬금없는 공략본의 제작이 이어졌다.

사진이나 영상 자료는 없었지만, 아주 상세한 경험담을 적어놨기에, 그 퀄리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마치, 던전의 모든 기억을 이 공략본 속에 토해낸다는 심경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써내려갔고, 날이 밝을 즈음 완성시킬 수 있었다.

마무리로 경고문구 역시 잊지 않았다.

[거긴 지옥입니다. 가지 마세요.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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