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2 / #22. 스킬이란?
마루의 기억 속에서, 임씨 남매의 전투는 분명 근접박투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신관에 마법사?’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혹시, 부캐야?”
그래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본캐에요.”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듯, 대답하는 남매의 목소리 톤이 슬쩍 다운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 마루가 한숨을 푹 쉬며 물었다.
“다른 헌터들이 PP에서 어떤 식으로 직업 선택하는지 몰라?”
현실의 스킬이나 사냥법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직업 및 루트로 육성하는 것, 그게 헌터들이 PP를 즐기는 방법이었다.
그들에겐 게임이면서 훈련장이란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에, 자연스레 정해진 선택지였다.
남매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 모를 수 없었다.
‘그건, 게임을 즐기는 게 아니잖아!’
하지만 순수하게 놀이로써 마주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그 때문에 각자 취향에 맞는 캐릭터를 키운 것이다.
물론, 현실과 맞춰서 육성한 부캐가 있긴 했는데, 제대로 키운 게 아니다 보니, 레벨이 너무 낮았다.
‘그 캐릭터는 꼭 잔업 하는 느낌이라.’
자주 손이 안 갔다.
남매가 각기 신관가 마법사를 키운 건 개인적인 이유였다.
성녀와 위저드!
그냥 각기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캐릭터였다.
임지현의 경우, 지금의 성녀 레아가 아닌, 전대 성녀를 향한 동경이 신관을 픽하게 만들었고, 임수현은 각종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마법사에 대한 낭만이 있었다.
상세 내용까진 아니지만, 그저 게임으로 즐겼다는 남매의 요약 대답에 마루가 한숨을 푹 내쉬며 물었다.
“레벨은?”
“200입니다.”
순간, 마루의 동공이 흔들렸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깃든 눈빛으로 남매를 바라보며 질문을 이어갔다.
“3차 전직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마루가 남매를 향해 말했다.
“너희, 내 동료가 되어라!”
그렇게 버스기사가 채용됐다.
**
마루는 이야기했다.
“너희에게 가르칠 건 PP 스킬이다.”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에, 임씨 남매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이 순간만큼은 임지현도 콩깍지가 일부 깎여나간 듯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마루는 제 할 말만 했다.
“아무런 이해 없이, 스킬을 발동하면 몸이 알아서 따라가게 내버려 둘 거야? 그럴 거면 PC게임을 하지 VR게임을 왜 하냐? 기기 살 돈으로 국밥이나 사먹어!”
마루는 강하게 강조했다.
“스킬 이해도를 높이는 게 목표다. 현실에서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몸뚱이에 때려 박아 줄 게.”
이쯤 되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수 없었다. 남매의 동공이 잘게 흔들리는 모습에, 마루가 웃으며 물었다.
“나 못 믿냐?”
순간, 임지현은 환청을 들었다.
[오빠 믿지?]
그녀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믿습니다!”
임수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황당한 이야기가 맞았다. 남매의 반응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마루는 여기에 길이 있고 답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여기는 이유?
2차 각성!
변화가 가져다 준 깨달음 때문이었다.
**
2차 각성을 설명하자면 이러했다.
축복이 떨어지고, 성화의 불길이 피어난 뒤, 유저의 신체를 깨끗이 정화시켜 주는 것이다.
지난 경험 때문일까?
마루는 큰 물결이 들이칠 걸 알았다
‘포장지를 깔아둬야지.’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며, 방 전체에 비닐을 씌운 뒤 PP에 접속하고 전직에 들어간 뒤, 그대도 골아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윽...냄새!”
눈을 뜨기가 무섭게 코를 찌르는 찌린내를 맡아야만 했다. 지금까지 맡아본 냄새 중 가장 독하지 않았나 싶었다.
매번 변화의 순간마다 땀범벅이 되어 일어났었다. 오래지 않아 그게 몸 속 노폐물이 빠져나간 흔적임을 알았다.
이번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인데, 지금까지 중 가장 진하고 독했다. 선견지명을 발휘해서 방 전체를 포장해 두지 않았더라면?
‘이불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침대를 갈아야 됐겠네.’
물론, 비닐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 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냥 온전한 건 아니라서, 한동안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환기에만 집중해야 할 듯싶었다.
어쨌든 기다리고 기다리던 2차 각성과 함께, 마루는 자신의 신체에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몸이 너무 개운한데?’
앙마의 던전에서 쌓인 피로감이 한 번에 씻겨나간 것이다. 여전히 당시를 떠올리며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와 무관하게 육체 상태는 최상이었다.
혹시 싶은 마음에 엔트라넷을 확인해 봤다.
[정마루]
[각성 등급 : B]
[컨디션 : 9]
[스킬 : 오염된 여의주] [#] [*] [@]
놀라울 만큼 완벽했다.
은연중에 등급 상승을 기대했던 터라, 그 부분에선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웠지만, 놀랍도록 뛰어난 컨디션 때문일까?
금세 마인드 컨트롤이 됐다.
‘9점대라니.’
최고 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상의 평균치가 6~8이고, 이를 뛰어넘었을 때가 바로 9점대인 것이다.
평균치라고 언급하긴 했지만, 8점대도 드물지 않던가.
향간엔 10점대도 있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아직까진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었다.
개인용 상태창의 컨디션을 타인이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그에 관한 의문이 나올 수도 있지만, 사실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몇몇 특수 기기를 통할 경우, 엔트라넷 게시판에 자신의 상태창 일부를 등록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A급이 되면 자체적인 촬영이 가능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엔트라넷의 활용도가 높아지는 만큼,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어찌됐건 그렇게 신체의 변화를 마주한 뒤, 간단히 몸을 풀면서 각종 스킬들의 점검에 들어가는데, 그러다가 거대한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
‘아...스킬은 그냥 알맹이가 전부가 아니구나.’
그건 실로 큰 깨달음이었다.
**
마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아는 대장장이가 있는데, 그 녀석은 현실만이 아니라 PP에서도 대장간을 하더라고. 왜 그럴 것 같냐?”
끄트머리에 던진 물음에 남매가 답을 궁리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굳이 대답을 듣자고 던진 건 아니었다.
“여기서 배울 게 있다더라.”
자문자답 형식으로 마루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게임 속에 세계 각국의 공부가 있다는 거야.”
당연하게도 이는 과거 강하나와 나눴던 문답이었다.
“실제로 그 녀석은 PP를 통해서 실력깨나 쌓았지.”
이를 증명하듯 강철을 밀어내고 단야를 차지하기도 했다.
갑작스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앞서의 흐름과 붙여본다면 해답을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매가 스킬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키기 위함이었다.
“너희들이 배울 것도 마찬가지다. 스킬이란 명칭에 색안경을 끼지 마라. 세계 각국의 무술들이 총망라 된 뒤, 스킬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 된 것일 뿐이니까.”
게다가 이곳 세상에는 없는 미지의 공부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게, 마루가 생각하는 PP 스킬의 정의였다.
물론, 거기까진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현실의 변화를 통해 알게 된 스킬의 비밀이기도 했다.
‘일단 배우는 걸로 공부가 돼!’
확실히 하기 위해서 그는 사냥터로 나갔고 여러 유저들이 사용하는 스킬을 관찰하며, 자신의 가설에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같은 스킬을 사용해도, 성별이나 체형에 따라서 미묘하게 다른 모양새가 나왔지.’
놀랍게도 PP의 스킬은 각 유저들의 몸에 딱 맞게, 맞춤형으로 미세조정이 된 상태로 발동이 됐다.
거기서 결론이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너희들은 스킬을 배울 거다!”
반론은 없다는 듯, 강한 어조로 밀어붙였다.
콩깍지가 씌인 임지현이야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갔지만, 임수현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한마디 해야겠다고 여기며 입을 열려는 찰나였다.
“만약 맘에 들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떠나라.”
마루가 선수를 치며 임수현의 말문을 막았다. 그 단호한 눈빛을 정면으로 마주하길 한참, 결국 임수현의 시선이 내려갔다.
제 누이를 두고 갈 수는 없으니,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인 것이다. 그가 백기를 들어야지 어쩌겠는가.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인 마루가 다시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일단, 너희 둘은 PP의 기본 스킬부터 다시 찍어 나갈 거야. 캐릭터를 다시 키우는 걸 추천하고 싶긴 한데. 그러자니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테니. 각 직업군에 맞는 특수 스킬로 기본기를 다시 채우자.”
마법사나 신관이라 해서 신체계열 스킬이 없는 건 아니었다. 당장에 전투 마법사만 하더라도 근거리에서 각종 스킬을 화려하게 휘두르며 싸우지 않던가.
신관 역시 몽크와 성기사보단 부족할지라도, 나름 근접 박투와 관련된 스킬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전에.”
마루가 교관모드를 잠시 접으며, 손을 내밀었다.
“선납 먼저 하자.”
뜬금없는 이야기에 남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쩔 좀 받자.”
그의 가르침은 요금제였다.
**
스킬을 배운다 할지라도, 마루처럼 기운의 공명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별 의미가 없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체 변형을 통해 한층 민감해진 육신과 더 넓어진 시야를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스킬을 바라보게 되었다.
[기운 공명이 없는 스킬은, 앙꼬 없는 찐빵이다!]
껍데기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부분이 포인트였다.
“껍데기라도 있는 게 어디야?”
게다가 앙꼬보다 빵 부분을 좋아하는 이들도 많았다. 겉 표면의 미세한 한 겹 껍질만 살살 뜯어먹는 것, 마루가 즐기는 방법이었다.
현대 각성자들의 성장 방식은 간단하다.
1. 몬스터를 사냥한다.
2. 경험치(포스)를 쌓는다.
3. 각성등급을 올린다.
그 와중에 무수히 많은 실전을 거듭하며, 각자 나름의 스킬 활용도를 깨우쳐 가는데, 마루는 이 부분에 주목했다.
‘결국, 맨땅에 헤딩이잖아?’
PP와 같은 게임과 비유하자면, 전직 루트를 잡아야 하는데, 아무런 가이드가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이리저리 부딪쳐가며 육성할 수밖에 없었다.
게임이야 길을 잘 못 들면 캐릭터를 다시 키우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으니, 그게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 수 없는 의문 속에서 무작정 내달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비슷한 성질을 지녔음에도, 전혀 다른 방식의 성장루트를 타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례로, 마루는 혜성 길드의 김연희와 그를 호위하는 레베카를 떠올렸다.
‘정확히 어떤 스킬을 지닌 건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건너건너 들은 게 있었고, 옆에서 지켜보며 파악한 것도 있었다.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봤을 때, 일종의 ‘시야’ 계열 스킬인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전혀 다른 성장을 했다.
김연희 같은 경우에는 신체 계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전방에서 우직하게 들이받는 박투형 각성자가 되었다.
이와 달리 레베카는 어둠을 넘나들며, 한 점의 빈틈을 사냥하는 암살계열 각성자로 발전했다.
언뜻 비슷한 성질이건만, 전혀 다른 성장을 한 것이다.
심법이 없는 무공?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일단, 껍데기는 있잖아!’
그리고 이 외형의 완성도에 따라, 부족한 알맹이는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남매에게 강조하고 또 강요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게임에서 보여주는 것과 똑같이 재현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하게 몸뚱이에 새겨놓으라고.”
아주 작은 디테일이 명품을 만들 수 있듯, 세세한 퀄리티까지 지적하는 걸 아끼지 않았다.
“1밀리의 오차도 없어야 할 거야!”
편안한 버스를 받고난 뒤, 만족스런 승차감에 보답하고자, 남매를 닦달하며 제대로 쪼아줬다.
“올빼미들 제대로 합니다! 자꾸 팔각도가 틀어집니다. 열외하고 싶습니까?”
아주, 탈탈 털어줬다.
**
쌍둥이들의 혼을 쏙 빼놓은 뒤, 접속을 종료했다.
그 순간 그를 반기는 이가 있었다.
-어라? 건물주 왔어?
초롱이가 웃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2차 전직으로 인한 변화!
그 중 하나는 바로 눈앞의 존재, 초롱이의 현실 소환이었다. 뭔가를 발견한 듯, 마루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TV에 너무 붙지 말랬지. 멀리 떨어져서 보라니까.”
-치...
불만스레 입술을 삐죽이면서도 슬금슬금 엉덩이를 빼는 게 보였다. 그게 귀여워서 슬쩍 웃음이 나와 버렸다.
기기를 정리하며 부엌으로 향했다.
식사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