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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7 / #2. 불문율.

인디안 존슨에게 국적은 없다.

“나는 세계에 봉사할 것이다.”

그 같은 말을 남기며 스스로 국적을 포기한 까닭인데, 추가적으로 언급하자면 단체에 소속되는 것 역시 포기했다.

WHA의 최고위급 간부로써,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위치였기에, 모든더더욱 그의 선택은 존중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를 동경하고 또 존경하며 따르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이들을 규합하여 하나의 세력을 만들지는 않았다. 그저 동일한 목적의식을 내세우며, 세계 봉사에 이바지할 뿐이었다.

“기왕 멋지게 내려왔으면, 멋지게 좀 살아. 이렇게 거지같이 돌아다니지 좀 말고.”

이반나의 타박에 존슨이 흐흐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그래도 오늘은 씻고 나왔어.”

“그럼, 이 냄새는 뭔데?”

“아! 빨래를 안 했네.”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어우, 상처받게 뭘 그렇게까지 하냐.”

“복장 제대로 갖추기 전까지는 옆에 올 생각하지 마.”

존슨은 이 타이밍에서 이미 불길한 미래를 예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도전 버튼을 눌렀다.

“내 아를 낳아도.”

언제고 이곳 한국에서 쓰였다던 유행어를 던졌고, 턱이 돌아갔다.

“으아으어...”

존슨이 어긋난 턱을 바로잡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어으...프로포즈 명대사라고 들었는데, 안 통하다니.”

“장난 칠 생각하지 말고, 던전 조사 결과나 말해 봐.”

“사나이 순정을 이렇게 짓밟다니.”

“팍, 씨!”

주먹을 눈앞에서 흔드는 모습에, 존슨이 거북목이 되선 화제를 전환했다.

“던전 조사래 봤자, 내가 뭘 알겠어. 그 방면의 전문가들이 우르르 몰려갔다며, 걔들이 모르는 걸 나라고 알 수 있겠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반나는 기대하고 있었다. 어쩌면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던전과 마굴을 경험했을지 모르는 존재였다.

남다른 시야와 관점을 지녔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아...놔, 내가 또 그런 눈빛에 약한데.”

존슨이 그리 투덜거리며 자신의 턱을 쓸었다. 한 대 맞고 정보까지 부는 건 너무하단 시위였다.

“식사권?”

“좀 더 쓰지.”

“쯧! 영화권까지.”

“아...짜다 짜.”

“쓰읍!”

눈매가 변하는 모습에 마지노선임을 깨달은 듯, 존슨이 한 발 물러났다. 그러며 아껴뒀던 정보를 풀어놨다.

“대격변의 전조니 뭐니 하는 건 아니야.”

“그리 확신하는 이유가 뭔데?”

“정상적인 던전의 승급현상은 저렇게 발생하지 않으니까.”

“...설마?”

“진짜 승급에 대해서 내가 좀 알지.”

새삼 놀라버렸다.

‘이 미친놈이 안 돌아본 데가 없는 줄은 알았지만, 설마 승급 던전도 이미 경험했을 줄이야.’

그 눈빛이 반갑다는 듯 존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직접 찬양해도 돼. 칭찬은 나누는 거라잖아.”

짜게 식은 눈으로 이반나가 말했다.

“영화권을 찢는 조건이라면.”

“크흠! 때론 가슴에 담아두는 것도 좋지.”

그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던전 승급은 저렇게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게 아니야. 순차적으로 하나씩 진행되는 거지.”

마치 주춧돌을 쌓아올리듯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단번에 건물 하나가 들어선 꼴이니. 일반적인 승급으로 볼 수 없지.”

그러면서 잠시 뜸을 들였다.

“갑자기 또 왜?”

“이건, 추가요금이 붙는 정보라서.”

“쯧! 알콜권 추가.”

“그렇지. 술이 빠지면 섭하지.”

잠시 멈췄던 이야기가 다시 진행됐다.

“사실, 던전은 승급이란 게 이뤄질 수가 없어.”

이건 또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지금까지 등장한 던전이란 걸 간단히 설명하자면, 완제품이라고 할 수 있어. 더 나아질 수도 부족할 수도 없는, 딱 그 형태가 기본이며 전부인 완성형 던전인 거지.”

그러며 말한다.

“여기 한국에서 발생한 승급 현상은, 더 나아질 수 없는 던전에 보조 배터리를 붙인 거야.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멋대로 불법 건축물을 올린 격이지.”

그러며 당장 최근의 정보도 언급했다.

“듣자하니 중심부 지하에 던전이 추가됐다며? 무슨 마트료시카도 아니고, 던전 속에 던전이라니. 어쨌든 이 경우에는 땅 속에 불법 건축물을 들인 거네.”

가만히 듣고 있던 이반나가 물었다.

“좀 전하고 말이 다르잖아? 직접 정상적인 승급을 경험해 봤다며?”

“아~그거? 게임에서.”

파앙!

매섭게 날아든 스트레이트가 존슨의 귓불을 스쳤다. 급히 고개를 꺾지 않았더라면, 얼굴 반쪽이 날아가지 않았을까?

“어우, 좀 진정해. 무작정 손부터 쓰지 말고. 일단 이야기나 마저 듣지?”

“개소리 지껄이는 순간, 알지?”

그리 말하며 주먹을 흔드는 모습에, 존슨이 재차 턱을 쓸었다. 아직 통증이 남아있는 만큼, 경고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알잖아? PP가 어떤 게임인지.”

“......”

한정된 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까지 언급되니, 이반나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괜히 게임 속에서 던전을 헤집고 다니는 줄 알아?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공부라니까.”

“...그래서?”

“묘한 소문이 돌더만? 기물이니 아이템이니. 들어본 적 있지?”

갑작스런 언급에 이반나의 눈이 얇아졌다.

“설마, 그게 진짜라는 소리야?”

“내 생각에는 그래.”

그 말을 한 대상이 존슨이기 때문인지, 소문에 진실성에 추가되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정말 심각해지는 건데.”

“뭐, 그렇겠지. 기존 힘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단 뜻이니까. 조금 과장되게 생각하자면, 새로운 규칙이 세워질 수도 있겠네. 기득권층은 죄다 대가리 좀 깨지겠어. 흐흐!”

존슨이야 재미있다는 듯 이야기하지만, 이는 마냥 웃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언급했듯 던전의 등급을 조절한다는 건, 그만큼 특별한 의미이기 때문이다.

“......”

이어지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존슨이 손을 내밀었다.

“자, 심각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그럼 정산의 시간이지? 밥 먹고 영화 때리고 알콜. OK?”

이반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쇼핑 먼저.”

“아, 빨래?”

“아니. 쇼핑. 그 옷은 버리자.”

“빈티지 스타일이야.”

“빈곤과 빈티지는 달라. 좌석 따로 잡고 밥, 영화, 술 때릴 생각이면, 그렇게 가도 되고.”

“...가자. 쇼핑.”

그렇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개조됐다.

**

예상했던 그대로의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네가 좀 친다며?”

마루는 쓰게 웃으며 자신을 가로막은 사내를 바라봤다.

‘이면에서 왔나?’

생긴 건 확실히 암흑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애초에 그가 혜성 특수 1팀이라는 걸 알면서, 날을 세울만한 일반 길드는 몇 없었다. 적어도 이곳 한국 내에서는 그랬다.

선택지는 자연히 축소되니, 이면의 주민만이 남는 것이다.

그들 역시도 혜성이란 이름에 어느 정도는 경계심을 세우고 있을 터, 결국 그를 찾는 건 멋모르고 생각 없는 문제아 정도였다.

“C급 주제에 이름깨나 날리던데, 같은 C급으로써 같이 좀 놀아보자.”

대충 이딴 대사를 지껄이며 찾아오는 불청객들이 늘었다.

‘회사 근처로 방을 잡아야 하나?’

짜증이 팍 올라왔다. 그렇다고 이사를 하자니, 이 부근에 깔아놓은 장비들을 회수하는 게 너무 번거로웠다.

게다가 초롱이도 자주 현실에 나와 있는 탓에, 주변과의 거리감을 유지할 필요도 있었다.

‘일단.’

마루는 달려드는 불청객을 바라봤다.

타앙!

정확한 타이밍에 몸을 뺀 뒤, 가볍게 총알을 박아 넣었다.

“끄아아악!”

사타구니를 붙잡은 채 비명성을 내지르는 모습이 너무도 처절해 보였다. 마루가 놈의 대가리에 총구를 가져다 대자, 순간 비명이 멎었다. 신음이야 어쩔 수 없었지만, 눈치를 보며 최대한 숨을 죽이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마루는 그 모습을 유심히 내려다보다, 이내 실소하며 총구를 거뒀다.

“목숨 값으로 알 하나면 남는 장사야.”

그렇게 불청객을 떠나보낸 뒤,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마시고 있을 때였다.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슬며시 다가온 레베카가 말문을 열었다.

“어우, 성녀님을 모신다는 애가 못하는 말이 없네.”

레베카의 표정이 굳어지는 걸 본 마루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이면의 주민이라고 다 악질은 아니야.”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직접 발을 담가봤기에 더 잘 알았다.

“그리고 딱 봐도 띨빡이잖아. 그냥 개념 없는 애새끼들이 와서 까분 것 가지고, 멱을 따네 마네 할 필요가 있나. 게다가 감당 못 할 수준도 아니잖아. 너도 알다시피, 이젠 내가 좀 쳐.”

농담처럼 말하며 웃는 모습에 레베카가 경고하듯 말했다.

“상식 없는 자들이기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새 음료수를 비운 마루가 빈 병을 바라보며 상황 정리에 들어갔다.

‘한동안 같이 지낼 인연이니까. 아무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번쯤 제대로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네.’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내가 사실 멱따는 걸 별로 안 좋아해. 입으로야 죽이네 마네 하는데, 몸뚱이는 알아서 자제할 줄 알거든.”

레베카의 머릿속으로 마루의 지난 행적이 스쳐갔다.

‘확실히...’

자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는데, 그 기색을 읽은 마루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렇다고 오해하진 말고. 이 바닥 생활만 15년이야. 안 좋아하는 거지 못 하는 게 아니야. 그동안 대가리에 구멍 낸 애들만 모아놔도 사열종대로 연병장 두 바퀴는 될 걸.”

그러며 말했다.

“애초에 생목숨 잡는 걸 좋아하는 게 몇이나 되겠어.”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방아쇠를 당길 뿐, 좋아서 총구를 놀리는 이들은 몇 없었다.

레베카의 집요한 시선에 쓰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었다.

“나도 그럴 때가 있었지. 조금이라도 구린내가 나면 일단 쏘고 보자는 시절.”

기억하기론 얼추 10년 전 즈음일 것 같았다.

“한창 혈기왕성할 때였지.”

갑작스레 시작된 옛날이야기에 레베카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마루라는 사내의 개념이 일부 언급될 것임을 짐작한 까닭이었다.

“알다시피 내가 작년까진 비각성 헌터였어. 이 업계의 밑바닥을 구르면서,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지냈단 말이야.”

심지어 이면까지 흘러갔다 온 경험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우리 같은 밑바닥 헌터들은 몬스터 사냥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서, 사람 사냥도 할 때가 많아.”

용병으로 이리저리 팔려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뭐, 일찌감치 일선에서 물러나 사체닦이나 하면 좀 편하긴 한데...내가 고집이 좀 쎈 편이거든.”

마루는 당장 작년까지도 포기할 줄 몰랐다. 그 덕분에 기적과 조우한 것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만큼 더 힘들고 험난한 삶이었다.

“그 날도 그런 날이었지.”

장비 값 좀 벌겠다고 인간 사냥에 나선 날이다.

“그날따라 유독 영점이 잘 맞더라고.”

백발백중까진 아니더라도, 열에 여덟은 명중할 만큼 컨디션이 좋은 날이었다.

“돈 깨나 만지겠다 싶었지.”

기분 좋게 웃으며 전장을 정리하다가 깨달았다.

“하...이전까지 웃고 즐기던 친구 놈이, 내 손에 대가리가 깨졌더라. 한두 놈도 아니야. 그것도 모르고 실실 쪼개면서 장비 값이나 계산하고 있었으니.”

거기다가 품을 나눈 여인까지.

“빌어먹을 경험이야.”

진영이 달라서 생긴 불상사였다.

“실수였지.”

너무도 혈기왕성하던 시절이기에 벌인 실수였다.

‘비각성자 주제에 너무 깊은 인연을 만들었어.’

선을 긋는 법을 몰랐던 거다. 그래서 어중간한 친분이 아닌, 제대로 맺은 인연들을 제 손으로 끝장내버린 것이다.

거의 트라우마 수준의 경험이었다.

“그건...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비일비재한 사건이다 보니, 레베카는 그리 말하며 어렵사리 위로의 말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알아. 원래 이 바닥 생리가 그런 거란 거. 그래도 막상 내 일로 닥치니까, 이게 또 이야기가 다르더라. 겪어봐야 안다는 말, 그 때 실감했지.”

그렇게 업계에 대한 회의가 일며, 한 반년가량 거리를 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사체 처리 쪽으로 넘어가서 푼돈이나 만지고 있었는데. 이게 참, 이 바닥 생리가 더러워서. 거지같은 꼬라지가 너무 많아. 흐...옆에서 보다보니까 다시 발을 들이게 되더라.”

차라리 그 날 사건이 터졌을 때, 일찌감치 업계를 떠났다면 모를까. 한 발 걸치고 있던 미련으로 인해, 다시금 그 늪 속으로 더 깊이, 더욱 진득하게, 더더욱 처절하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진창이며 바닥이었지만, 바뀐 게 하나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한 번쯤 생각하게 되더라.”

어디서 또 친구를 형제를 동료를 쏴 갈길지 모를 일이었다.

“혹시, 또 알아? 좀 전에 살려 보낸 놈이 옛 친구의 동료나 동생일지. 적어도 기회 한 번은 줘야지.”

실제로 그렇게 보낸 인연 덕분에, 은퇴한 옛 동료와 다시 만났던 일도 있었다.

물론, 보내기 전에 간을 보기는 한다. 앞서 총구를 머리에 대고 지켜보던 것 역시, 그런 과정의 한 부분이었다.

“이게 또 재밌는 게 그런 인연도 제법 쌓이면 뒷심이 되더라고.”

그의 정보원 중에는 그쪽 연결고리도 상당했다.

레베카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불문율은...꼭 지켜지는 게 아닙니다.”

혹시 모를 부분이 언급되자, 마루가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쩌겠어. 일단 믿어보는 거지.”

이 바닥에 대표적인 불문율이 하나 있다.

[가족은 건들지 말라!]

그 불문율이 세워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던가. 나의 가족이, 적의 혈육이, 형제와 동료가, 그저 인연이라는 이유만으로 표적이 되어, 의미 없는 핏물만 쌓여나간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죽음 속에서 만들어진 불문율이었다.

“지금 대형 길드의 회장님이니 뭐니 하는 양반들도, 복수심을 참아 넘기며 불문율을 지키고 있잖아.”

거기에는 이면의 거물들 역시 끼어있었다.

“교황청도 비슷하지 않나?”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에 웃어 보인 마루가 이야기를 이었다.

“이걸 어긴다는 건, 글쎄...적어도 이 지구상에선 살고 싶지 않다는 뜻 아니겠어?”

불문율을 세운 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는 일이며, 그들의 분노마저 사는 행위였기에, 더더욱 어길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난 15년의 경험을 되짚어 봤을 때, 실제로도 불문율이 어긋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그마저도 대부분 사전에 차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뒤쪽 애들도 제 가족은 소중한 거지.”

서로서로 경계선을 감시하는 것이다.

“웃기는 게 뭔지 알아? 이면에 들어가면 그런 쪽 교육을 가장 먼저 한다는 거야. 불문율 목록으로 만든 책자도 있다니까.”

실제 경험담이니 믿어도 됐다.

“뭐, 그렇다고 아무나 봐 주는 건 아니야.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아무리 말려도 멱을 딸 걸. 이래봬도 내가 눈칫밥만 15년이라, 내 살 궁리는 확실히 하는 편이거든. 흐흐!”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조금 전 불청객은 그냥 어설피 이면 밥 좀 먹은 개념상실의 애송이일 뿐이었다.

원래 이 정도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을 생각이었는데,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흐름을 타 버린 것인지, 좀 더 깊이 내딛고야 말았다.

“하지만, 만약, 만에 하나, 정말로 불문율이 깨지는 일이 발생한다면...”

말끝을 흐리다 웃어버렸다.

“울겠지. 피눈물도 흘릴까?”

그리고 복수에 나서리라.

“짐승처럼 살면서도, 짐승이 되진 않았는데, 그때는 정말 짐승이 될 지도 모르지.”

마치 농담을 뱉듯 이야기를 던졌다.

“불문율을 어긴 놈도, 불문율을 세운 놈도, 불문율을 믿은 놈도. 힘닿는 데까지 전부 지워버릴 것 같긴 하네.”

너무나도 태연한 음성이라 오히려 더 서늘했고, 그로 인해 레베카는 심장이 차갑게 식는 느낌마저 받아야 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쩌면...?’

눈앞의 사내는 어딘가 고장 난 걸지도 몰랐다.

‘비각성 헌터로 15년이나 현장을 지켰으니.’

표면적으로는 분명 대단한 경력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여러모로 문제가 많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불문율!’

그건 반드시 지켜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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