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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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9 / #4. 헤이, 브라더!

존슨은 이반나의 싸늘한 시선을 피하고자, 제퍼드를 물고 늘어지며 화제를 전환했다.

“설마, 내 앞에서 허니랑 붙어먹는 건 아니지? 마이 달링한테 달콤한 꿀을 바를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라고.”

“...여전히 표현이 참, 저질스럽네요.”

“니가 할 말이냐?”

“후후...”

묘한 미소와 함께 슬며시 발을 빼는 제퍼드의 모습에 이반나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존슨이 고개를 젓는 것으로 그녀는 말렸다.

“날 춥다. 따습게 입고 다녀. 요즘 독감 무섭더라. 잘 가고. 멀리 안 나간다.”

손을 흔들며 배웅까지 하는 존슨의 태도에, 제퍼드가 결국 진심어린 웃음을 터트리며 모습을 감췄다.

갑작스레 찾아든 폭풍우에 혜성의 요원들이 벙찐 표정을 하고 있는 사이, 존슨이 대표 격으로 보이는 이소희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유럽산 양아치가 얼굴 비친 걸 보니, 아무래도 몸조심 좀 해야겠어. 한동안 혜성에 비상 걸어두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는 이반나에게 바보처럼 웃으며 달려들었고, 짐승처럼 맞으며 쫓겨났다.

**

생각지도 못한 전개라고 해야 할까?

“그...그러니까. 여기, 이...분이...”

마루가 떨리는 음성으로 눈앞의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인디안 존슨?”

그의 반응에 존슨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으하하! 여기 또 내 팬이 계셨구만.”

그러면서 두 팔을 한껏 벌렸다. 언제든 안겨도 된다는 의미였는데, 그 순간 마루는 잠깐의 갈등을 느꼈다.

오랜 세월 바라던 영웅이 눈앞에 있건만,

‘으윽...좀 씻지.’

저 거지같은 몰골은 뭐란 말인가.

물론, 그렇다고 이 기회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똥오줌도 찍어먹던 그가 아니던가.

“형님!”

와락 안겨들고, 두 남자의 뜨거운 포옹이 시작됐다.

지켜보던 여인들의 눈빛이 차게 식었다.

**

게임 속에서 날아든 메시지에, PP를 통해 만나보고 싶단 생각을 한 적이 있건만, 뜻밖에도 현실에서 만남이 이뤄져버렸다.

인디안 존슨!

그 생각지도 못한 등판으로 인해, 마루는 널뛰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바로 옆으로 또 다른 랭커인 이반나도 있건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짧은 첫인사를 끝으로 제로였다.

그 같은 대우가 황당한 듯, 이반나는 마루와 존슨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조심스레 관찰하는 시선이 둘 있었다.

김연희와 이소희로써, 생각지도 못한 마루의 출현으로 인해 당황한 까닭이었다.

사실, 거기에는 존슨의 등장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반나의 경우엔 따로 연락이 와서 놀랍진 않았지만, 갑자기 제퍼드가 출현하고, 이어서 존슨이 등판하더니, 대뜸 마루까지 얼굴을 비춰버렸다.

당혹스러운 상황임은 분명했다.

‘눈치 챘을까?’

김연희가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는 마루의 특별함을 저 두 랭커가 알아봤을지 묻는 거였는데, 이소희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신했다.

준 랭커나 다름없는 그녀도 마루의 특별함은 알아볼 수 없었다. 진짜 랭커와의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할 것이나, 그렇다 하더라도 마루의 특별함은 감각만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여겼다.

게다가 이젠 김연희의 스킬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아니던가. 지금은 일단 당혹감을 숨기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관건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키홀의 제퍼드가 출현하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단 것이다. 덕분에 지금 이 감정변화도 적당히 묻어갈 수 있었다.

“이야~! 그것까지 읽었단 말이야?”

“당연하죠. 존슨이 집필했잖아요.”

이러한 구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두 사내는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대화에 빠져있을 뿐이었다.

“아니. 그래도 이면 쪽에 푼 서적인데, 그걸 어떻게 구했대?”

“크흠! 잠깐, 한 발만, 살짝 담갔다 뺀 적이 있어서요.”

“허...안타까운 일이군. 하긴, 15년을 뺑이쳤댔지.”

“그래도 덕분에, 존슨이 쓴 살아남기 시리즈 시크릿 버전을 구한 거 아니겠습니까. 불문율 목록도 완벽하게 정리돼 있던데요.”

“내가 또 하면 제대로 하잖아. 어설픈 건 용납 못하지. 으하하!”

“그렇죠. 그게 또 존슨의 매력이죠.”

두 사내는 정말 잘 놀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한국어를 잘 하시네요.”

번역기도 활용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개중 드문드문 튀어나오는 단어들의 경우, 순수하게 존슨의 지식으로 풀어 나오는 언어들이었다.

“흐흐! 한 때는 이 동네에서 숙식깨나 했거든.”

그러면서 슬쩍 고개를 돌려 이반나를 바라보는데, 그 눈빛에 담긴 묘한 온기가 부담됐을까?

이반나가 시선을 피해버렸다. 이에 존슨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호탕한 웃음과 함께 대화가 이어졌다.

“아니. 이렇게 좋은 친구를 키홀에서는 왜 건드리고 지랄이야?”

“그러니까요. 하아...나무는 가만히 있으려 하는데, 도통 바람이 멈추질 않네요.”

마루의 갑작스런 방문도 오늘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키홀에서 그에게 접근한다는 걸 알게 된 뒤, 혼자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하며 급히 길드로 달려온 것이다.

길드에 한바탕 난리가 났던 타이밍과 맞물렸고, 그 덕분에 꿈에 그리던 영웅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즈음 페이스관리를 끝낸 듯, 김연희가 대화 속으로 끼어들며 물었다.

“키홀에서 손을 쓴 이유도 알 수 있을까요?”

“운이 좋아서 덜미를 잡은 거라, 자세히 설명 드리긴 어렵네요.”

레베카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만큼, 마루는 적당한 수준에서 정보를 풀며 이야기했다.

“단지, 관련해서 좀 파고들어 봤더니, 그레이 셰이드가 나오더라고요.”

상당시간을 투자한 듯, 포장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레이 셰이드!”

제법 놀란 얼굴이 된 김연희가 이소희와 눈을 마주쳤다.

‘광호!’

두 사람의 머릿속에 공통된 단어 하나가 추가됐다.

**

간단히 표적만 확인하고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얼굴을 만나버렸다.

이반나와 존슨!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혜성만 좀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후후...’

아무래도 이젠 저들도 그의 얼굴을 알아버렸으니, 평범을 가장하며 주변을 살피는 건 무리라 여겼다.

‘일반인 코스프레는 못하겠네.’

크게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단지, 취미생활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정도일까?

그 부분에 대한 아쉬움도 뜻밖의 만남 덕분에 해소됐다. 제퍼드는 웃음을 흘리며 두 랭커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아니, 악연인가?’

그로 인해 사경을 헤맨 이반나와 그를 사경에 빠트린 존슨까지, 절묘하게 물고 물린 관계였다.

“후후! 사나이의 순정이란 참...”

섬뜩한 안광이 눈가를 스쳐갔다.

‘...뭉개는 맛이 있지!’

옛 기억에 빠져들던 것도 잠시, 복귀하던 중에 마주쳤던 얼굴을 떠올렸다.

‘정마루.’

그가 탄 차량이 신호 대기에 걸렸을 때, 마침 마루도 건너편에서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보고서에서 읽은 것처럼 독특한 바이크를 타고 있었다.

어쩌다 보니 직접 관찰할 기회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렇게 차창 너머로 짧게나마 살펴본 결과가 놀라웠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것 같더군요.”

그 같은 정보를 카일리에게 전했다.

“경력이 만만찮아서 그런지, 분위기가 보통이 아니더군요.”

차창 너머로 잠깐 봤을 뿐인데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각성자의 스킬과는 무관하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감이 좋은 것인데, 그 부분이 상대의 묘한 분위기를 읽어낸 것이다.

희귀한 혼성 능력에 타고난 초감각까지, 천재를 넘어 ‘괴물’이란 표현이 붙게 된 건, 그의 성격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등급이나 각성종류에 연연하지 말고, 무조건 한 수 이상 높게 계산하고 작업하세요.”

경고해 줄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카일리 역시 목표물의 주변을 돌아보면서, 마루가 보통이 아님을 직감하고 있던 터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정보 수정에 들어갔다.

**

존슨의 지식은 실로 방대했다.

‘과연, 30년 경력!’

마루의 배가 되는 베테랑으로써, 현존하는 모든 헌터를 통틀어 봐도, 그와 비견될만한 이는 몇 없을 터였다.

대격변의 초기부터 활약한 만큼, 품고 있는 역사가 남다른 것이다.

“한국은 대격변 이전 시절에도 자주 놀러 왔었지.”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요즘은 별 거 아니지만, 당시에 신기한 기술들이 이 나라에 제법 많았거든. 내가 그때는 또 제법 얼리 어답터여서, 접히는 핸드폰 좀 사겠다고 여기까지 날아오고 그랬잖아. 하하!”

소소한 이야기도 제법 흥미로웠지만, 역시나 존슨을 대표하는 건 던전과 마굴에 대한 모험담이라 할 것이다.

“크...북극에 갔을 때가 생각나네. 알다시피 이제 거긴 마물의 땅이잖아.”

완벽한 마굴이 되어버리며, 인간의 손을 벗어난 구역이었다.

“웃기는 게 그놈들이 눌러앉고 난 뒤로는 빙하가 녹네 마네 하면서, 골머리 아픈 일은 없다는 거야.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불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이런 것도 블랙 코미딘가?”

나오는 이야기 대부분이 마루로써는 절대 알 수 없는 천상계의 이야기인 탓에, 재미가 있건 없건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도 했다.

“거기는 가는 길도 엉망이야. 바닷길부터가 몬스터 천지거든. 어휴, 그 추운 북극 바다에서 수중전 하던 거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 다니까. 나오는 몬스터들도 특이한 게......”

그렇게 험난한 북극 여행기가 짧게 소개되다가도, 불처럼 뜨거운 화산행이 언급되는가 하면, 뜬금없는 히말라야 등반까지 등장하니, 흥미요소가 너무 가득해서 재미없기도 어려웠다.

“이번에는 또 어딜 돌다 왔기에, 꼬라지가 그 모양인데?”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이반나가 개입하고, 존슨이 슬쩍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제주도.”

“아...”

듣고 있던 이들이 깜짝 놀라서 존슨을 바라봤다.

북한에 백두산 마수지대가 있다면, 한국에는 제주도 마수지대가 있단 소리가 있을 만큼, 그곳은 이 작은 땅덩이로 감당키 어려운 악몽의 소굴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내 존슨의 본질을 상기하며 고개를 끄덕이고야 말았다.

앞서 이야기하던 경험담만 떠올려 봐도, 제주도보다 못한 장소가 없던 것이다. 오지 탐험의 전문가답다고 해야 할까?

“어디까지 들어갔다 왔는데?”

이반나가 물었고,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한라산이지.”

“에라, 이 미친놈아!”

기다렸다는 듯 시작된 이반나의 주먹질이 존슨을 두드렸다. 갑작스런 샌드백 신세에도 불구하고 그는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이 모든 폭력에 애정이 실려 있음을 아는 까닭이었다.

한라산!

바로 제주도의 심장부이며, 그곳 마수지대의 왕이 머무는 권좌였다. 제아무리 랭커라 하더라도 홀로 오를만한 장소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바라보던 마루는 내심 가슴이 뜨거워지는 걸 느껴야만 했다.

‘역시...’

그의 영웅은 상상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몸 좀 사려라. 이 화상아!”

퍽! 퍼억! 뻑!

“하하! 으하하! 으히히히!”

일부분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기도 했다.

**

뜻밖의 만남은 1절로 끝나지 않았다.

“헤이, 브라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어떻게 하룻밤 좀 재워주면 안 되나?”

존슨은 그리 말하며 마루에게 달라붙었다. 당혹감을 감추지 못해서 쳐다보니, 그가 뒷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한라산에서 삥 뜯겨서. 하핫!”

지갑이 없다는 걸 돌려 말한 것이다.

사실, 살아 나온 게 용한 이야기였지만, 그는 유쾌한 웃음과 실없는 농담으로 당시의 급박함을 털어버렸다.

이반나를 비롯한 지인이 없는 건 아닐 텐데, 갑자기 그에게 붙는다는 게 당혹스러웠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마루 역시 헤어짐이 아쉬웠던 터라,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숙박을 허락했다.

초롱이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만화 봐야 되는데?]

당연한 반항이 있었지만, 간단히 해결했다.

[호봇 장난감 사줄까?]

[재방송 볼게.]

그렇게 영웅을 집에 들였다.

그리고,

“...저기, 언제 가실 겁니까?”

“브라더! 하룻밤만 더 있자.”

일주일이 지났다.

‘빈대 맛 영웅인가, 영웅 맛 빈대인가?’

존슨이 외쳤다.

“밖에 눈 온다. 빈대떡 부쳐 먹자.”

마루는 깊은 갈등에 빠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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