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0 / #5. 누구냐 너?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인디안 존슨 방한!]
[제로 원!]
[진짜 영웅이 오다.]
[히어로 오브 스톤!]
각종 포털 사이트마다 난리가 났다.
-차돌처럼 굳건한 남자가 왔다!
-히오스께서 오셨다!
-쥐엔장! 믿고 있었다구.
-이 난리에 그분이 없어선 안 되지.
-그런데 왔다는 소식만 있지, 어째 사진 한 장이 안 올라 오냐?
-기사에 쓰인 건 죄다 옛날 사진이네.
-애초에 히오스님 얼굴 보기가 쉽진 않잖아.
-괜히 제로원이 아니라고.
-이진법을 이해하기 전엔 알현할 수 없다!
-011010000110100100001101000010100000110100001010(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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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헌터들 중 가장 위대할지 모른다고 여겨지는 게 바로 인디안 존슨이 아니던가. 그의 등장은 한국만이 아니라 주변국까지 뜨겁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긴 이미 수십번이나 왔다 갔는데, 이제 겨우 한 번 가지고 난리도 아니네.
-존슨이 별건가?
-진정한 협객은 우리의 금강귀지.
-그는 너무 다크해. 진짜는 취화산이야.
-우리끼리 싸울 거 있나?
-뭐, 존슨도 협객인 건 인정해야지.
중국은 시큰둥한 듯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꾸준히 그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고, 일본의 경우 아쉬움을 토로하는 분위기였다.
-아앗, 쎈빠이?
-아...이건 좀 부럽다.
-하필, 저길 먼저 가다니.
-왜 여긴 안 오는 건데?
-존사마!
당장 한국으로 넘어오겠다는 이들도 몇 있긴 했는데, 이는 이전부터 이어져온 반응이기도 했다.
성녀를 비롯하여 적잖은 랭커들이 밀집되어 있는 상황이다 보니, 관광시장에 뜻밖의 물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던전 승급에 대격변 등등, 여러모로 안 좋은 이야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보고자 찾아드는 이들이 상당했다.
“햐~! 존사마래. 으하하! 이거 사람 볼 줄 아네.”
마루는 존슨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핸드폰과 하나가 된 모습으로, 통신합일(通神合一)의 경지를 구현중인 그의 모습이란, 여러모로 상상 속 영웅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제로 원이라더니.’
저러다 정말 이진법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 기세였다.
“찬데 누우면 입 돌아가니까, 이불이라도 좀 깔고 누웁시다.”
“괜찮아. 괜찮아. 풍찬노숙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아니, 어떻게 모르는 단어가 없어?”
“전 세계가 내 집이라니까.”
그러면서 다시금 각종 댓글 창들을 살피며 낄낄댔다.
“에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그가 존슨을 향해 외쳤다.
“폰 그만하고 와서 밥이나 먹어요.”
“반찬은?”
“아니, 풍찬노숙이 일상이라며, 입은 또 왜 이렇게 짧아?”
“그거야 없을 때 이야기고, 집 밥 먹을 땐 투정이 반찬이지. 흐흐!”
이마를 싸매며 스팸을 들어 보였다.
“굳 잡!”
존슨이 엄지를 세웠다.
**
한국 내에 들어와 있는 랭커는 한둘이 아니었다.
“흠...제퍼드와 이반나의 만남은 언급되지 않았군.”
그리고 이들의 관심사는 존슨의 방한보단, 두 랭커의 마찰 쪽에 좀 더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퍼드와 이반나의 마찰은 어느 매체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는데, 이는 이면을 끼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이 나라는 이면 쪽으로는 꽤 제약이 있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게다가 랭커들의 이야기이다 보니, 더더욱 드러나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아...아깝네.”
미국의 다섯 번째 히어로라고 불리는 랭커, 레이널드는 여러 기사들을 찾아보다가,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따로 올라온 보고서가 있긴 하나, 아무래도 언론 매체를 통해서 확인하는 게, 여러모로 읽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가 좀 올라와야, 핑거 스냅으로 화끈할 텐데.”
키보드 워리어들의 댓글 보는 맛이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도 잠시, 그는 화제의 중심거리로 시선을 돌렸다.
‘인디안 존슨.’
그 뒤에 숨겨진 마찰까지 버무리니, 제법 그럴싸한 그림이 나왔다.
‘혜성 길드와 광호.’
자연스레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써니.’
조금은 여성스런 느낌이 나지만, 남성의 이름이었다.
한국에서 넘어온 미국의 3번째 히어로였는데, 이 순간 그가 생각나는 건, 이번 화제가 전부 그와 인연이 있는 까닭이었다.
혜성, 이반나, 존슨.
그리고 광호!
‘써니가 한국을 떠난 게 광호 때문이었지.’
이래저래 흥미로운 요소가 갖춰져 있었다.
“팝콘 좀 준비해 놔야겠네.”
낄낄거리며 웃어 보인 그가 핸드폰을 든 뒤 번호를 찍었다.
[Sunny]
**
김연희는 뜻밖의 소식에 입술을 씹어야만 했다.
“역시, 제로 원인가.”
존슨이 마루 집에서 숙박중이란 걸 들은 까닭이었다. 그가 남다른 감각을 지녔음을 알았지만, 그래도 자신의 눈에 비할 바는 아니라고 여겼다.
“일단, 내버려 둬.”
당황하는 그녀를 진정시킨 건, 이소희의 한마디였다.
“존슨도 나와 같을 거야. 오히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서 호기심을 드러냈겠지. 감각적인 면에서 특히 예민한 사람이니까.”
그녀의 눈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저 상황이 안 맞았을 뿐이라는 의미였다. 이소희는 이어서 설명했다.
“괜히 주변에서 서성이면 뭐가 더 있는 걸로 알 테니까. 그냥 적당히 키홀만 경계하는 선에서 거리 유지해.”
사실, 존슨을 무조건 경계하는 건 아니었다.
“차라리 그가 뭐라도 알아냈으면 좋겠네.”
여타 각성자들과 달리, 가장 순수한 헌터였다. 게다가 각성여부를 떠나서, 그냥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김연희도 어느 정도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신입이 특수 개체라면, 오히려 존슨이 관리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두 여인의 기억이 오랜 과거에 잠시 머물렀다.
한국 헌터들의 암흑기라 불리던 시절이며, 여러 특수 개체들이 억압받던 시기였다.
“신입이 정말 희귀 각성의 특수 개체라면, 결국 승냥이 떼들이 달라붙을 거야.”
그 중에서 특히 불편한 이들이 있었다.
‘광호,,,’
이소희의 눈가에 그늘이 어렸다. 스승이고 또 어쩌면 연인일지도 몰랐을 사람, 그 역시 그들로 인해 떠나지 않았던가.
그 표정에서 생각하는 바를 읽어낸 듯, 김연희가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키홀 건은 존슨 덕분에 해결 된 것 같던데.”
“...하긴.”
덕분에 상념을 벗어난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이반나 그 아줌씨가 조용하네?”
분명, 존슨에 관한 소식이 들어갔을 것이건만, 생각보다 반응이 밋밋한 것이 아닌가.
“당장 쳐들어가서 끌고 나올 줄 알았는데.”
그 말에 이소희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이유가 있겠지.”
**
성난 뿔곰!
이반나의 20대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불살랐다고 볼 수 있다.
대학 시절을 보낸 것만이 아니라, 각성 이후로는 헌터로써의 기반까지 다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30대 시절은 해외에서 시작되고 끝을 맺었다. 물론 한국도 그녀 입장에서 외국이란 건 변함없지만, 그녀 개인적으로는 제 2의 고향처럼 여기는 장소인 만큼, 굳이 외국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녀의 30대는 외국, 그 중에서도 유럽 쪽에서 많은 활약이 이어졌는데, 그 무렵에 가장 자주 부딪쳤던 단체가 바로 이면의 범죄 집단 키홀이었다.
제퍼드와의 대립은 그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써, 장장 20년 남짓 이어져 온 기나긴 악연이었다.
하필 마찰을 빗은 장소가 키홀의 주 무대인 유럽이다 보니, 대부분 그녀가 손해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다행히도 그녀는 범죄자가 아닌 제대로 된 표면의 헌터였고, 덕분에 외부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버텨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존슨의 도움도 꽤 받았었다.
“후...”
이반나는 슬며시 떠오르는 존슨의 얼굴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또 무슨 헛짓거리를 하고 돌아다니는 건지.”
관련한 보고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웬 하급 헌터의 집에 빌붙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까닭이었다.
그와 관련해 짧게 통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또 황당했다.
[재밌는 녀석을 발견해서, 좀 지켜보려고.]
이에 의아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가 함께하고 있는 하급 헌터는 그녀 역시 같은 자리에서 마주쳤던 얼굴이었다.
서로 처음 봤을 터이건만, 그는 그녀는 모를 무언가를 발견했단 말인가?
‘쳇! 인정하긴 싫지만.’
존슨의 감각이 한 수 위라는 걸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가 남겼던 마지막 메시지를 떠올렸다.
[잘 자, 내 꿈 꿔~!]
이런 소소한 부분이 그의 매력 포인트였다.
한국을 제 2고향으로 생각하는 그녀를 위해, 이곳의 여러 유행어들도 조사하며 가끔 이런 식으로 끼워 넣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마주칠 때면, 그 방면의 유행어가 나왔다.
그 대부분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유발하지만, 어쨌든 소소하게나마 웃겨 주는 남자였다.
사실, 그가 그녀에게 품은 감정을 모르지는 않았다. 매번 장난처럼 껄떡대며 접근하지만, 그 모두가 진심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솔직한 심경으로는 그녀 역시 마음이 없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둘 사이에 거리감이 유지되는 건, 이래저래 복잡한 이유들이 여럿 끼어있었다.
개중 결정적 역할을 했던 얼굴도 떠올랐다.
‘써니...’
그러다 고개를 저으며 잡념을 털어버렸다.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프지.’
다시금 현 상황에 집중했다. 지금은 여기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제퍼드 그 썩을 놈이 한국에 있단 말이지.”
과거, 유럽에서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앞서 언급됐듯 키홀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머나먼 나라 한국이었다.
서로의 조건은 동등해졌다.
‘이번엔 내가 좀 더 유리하려나?’
한 때는 그녀가 활동했던 구역이다 보니, 옛 인연들도 제법 쌓여 있었다. 이미 그들 중 일부가 움직이는 중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유럽산 양아치의 명줄을 끊어놓으리라.
**
존슨은 묘한 눈으로 설거지 중인 집주인을 바라봤다.
‘으음...모르겠다. 모르겠어.’
지난 일주일동안 꾸준히 관찰하며 살폈건만, 여전히 마루라는 사내에 대한 답이 나오질 않았다.
갑작스런 빈대 짓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 대면부터 지금까지, 도통 느껴지는 게 없네.’
사실, 마루와의 첫 만남에서 깜짝 놀랐었다.
‘비각성자인 줄 알았더니.’
무려 C급 A형의 각성자라는 것이 아닌가.
북극을 비롯하여 여러 마굴에서 살아남을 수 있던 건, 전부 그의 남다른 감각 때문이었는데, 바로 그 감각이 눈앞의 사내에 대해서만큼은 도통 먹통이었다.
그 호기심에 숙박을 요청했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인해, 이렇게 일주일이나 눌러앉아버린 것이다.
‘당황스럽게 하네.’
그의 감각이 어떤 감각이던가.
일반 강화계의 순수 육체 능력자로써, 각성자들 중에서는 최하위 계층으로 분류되던 걸 꾸준히 개발시켜, 기어이 감각계로 진화시킨, 말 그대로 인간 승리의 표본이며 결정체이지 않던가.
무려 30년 역사의 자부심과도 같았다.
‘자부심이 산산조각 나는구나. 흐흐...’
지난 일주일을 상기하니 헛웃음만 나왔다.
‘여러모로 미스터리한 놈이야.’
그래서 물었다.
“누구냐 너?”
이에 마루가 한심하단 듯 돌아봤다.
“제발 영화 좀 그만 봅시다.”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 방콕엔 영화야.”
**
지난 일주일, 마루는 뜻밖의 하숙인으로 인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던전과 마굴을 돌아봤을 존재이며, 가장 치열한 현장을 살아봤을 생존자이기에, 그와의 생활은 여러모로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어른이 아이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듯, 틈틈이 자신의 지난 경험담을 풀어놓고는 했는데,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교보재였다.
틈틈이 끼워 나오는 경험자의 소소한 팁 같은 경우, 당장 활용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게 여럿 있었다.
개중에는 현장에 대한 시각적인 변화도 컸다.
지금껏 그의 전투 방식을 살펴보자면, ‘비각성 헌터’로써 쌓아올린 개념 위에, PP의 ‘게이머’로써 만들어진 공식이 덧씌워진 상태였다.
하지만 존슨은 철저히 ‘각성 헌터’로써 바라보는 시야를 제공해줬다.
존슨과의 생활은 여러모로 공부가 됐다.
그로 인해 던전과 몬스터 그리고 세상에 대한 세계관이나 관점 등이 더 넓어진 것이다.
“언제까지 있을 생각입니까?”
입버릇처럼 그를 재촉하는 것과 달리, 그 내심은 좀 더 머물렀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었다.
“에~이, 좋으면서 튕기기는.”
“아...제발!”
간혹 나오는 존슨의 반응으로 인해, 때때로 진심이 될 때도 있지만, 분명 그와의 생활은 유쾌한 면이 더 많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궁금하기도 했다.
‘이야기로 듣는 게 이 정도인데, 같이 현장을 뛰면 어떨까?’
그에 대한 호기심은 오래지 않아 해소됐다.
존슨 왈!
“방값은 쩔로 대신한다.”
뜬금없는 현장 실습이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