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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 / #6. 노하우.

존슨은 흔히들 말하는 일반 강화계 능력자였다.

각성 스킬이 신체강화와 연결되지만, 남다른 특성이 있는 건 아니다 보니, 그저 맨몸뚱이가 전부였고, 그런 이유로 특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인지 각성자들 사이에서 굳이 계급을 나눈다고 했을 때, 최하층으로 분류되고는 했다.

강화계의 귀족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나 이반나의 신체변형 계열이었다. 육체 강화가 더블로 진행되기에, 남다른 강건함이 그들의 자랑이었다.

대개 비각성 헌터들은 말한다.

[각성만 하면 인생이 풀릴 거다!]

하지만 각성한다고 할지라도, 어느 시기에 어떤 종류의 각성을 했느냐에 따라, 그 자체적인 계급이 나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적잖은 각성자들이 스킬을 숨기려 들지만, 실전을 통해 드러나는 기본 성질은 감출 수가 없었다.

존슨은 마루의 능력을 떠올렸다.

‘C급 A형의 총기류 각성자랬지.’

딱 중간계급이라 할 수 있었다. 각성 연령대와 무관하게 초기 성장이 빠른 반면, 사념폐해로 인한 후반 뒷심이 부족한 까닭이었다.

물론, 그마저도 부러운 스킬이긴 했다.

어쨌든 존슨은 그 흔하고도 대중적인 일반 강화계의 능력자로써, 이 험난한 업계를 30년간 버텨오지 않았던가.

초창기의 1세대 각성자로써, 그 긴 세월을 최전선에서 버텨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지만, 그의 시작은 생각 이상으로 비루했다.

고기방패 역할을 수행할 때도 많았다.

그런 이유로 더 치열하고 처절한 일상을 살아왔고, 덕분에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진화’에도 이를 수 있던 것이다.

[스킬 : 패시브 디텍트(Passive Detect)]

이마저도 별 거 아닌 것들의 조합이란 게 함정이랄까?

수동적이라는 의미보단, 소극적 혹은 주도적이지 않단 의미를 지닌 패시브에 디텍트가 추가된 것이다.

언뜻 더블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테두리 안에 있다 보니, 진화라는 표현이 쓰였다.

기존 패시브 스킬 자체가 상시 지속으로 육체가 강화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다 보니, 추가된 스킬도 상시 지속 효과로 연결되었다.

대개 각성자란 건 게임으로 치면, 기본 신체강화에 액티브 스킬이 추가되어 있는 경우였는데, 그는 패시브 하나로 통일인 것이다.

24시간 풀로 강화상태라고?

그거 좋은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 때문인지 다른 강화계보다 순간 폭발력이 부족하단 단점이 있었다.

게다가 디텍트의 경우에는 오감이 좀 더 예민해진 정도일 뿐이었다.

좀 더 건강하고 좀 더 민감해진 정도였다.

허접한 스킬이라며 좌절하기 보단, 이 둘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는데 집중했고, 건강함은 단단함으로 예민함은 예리함으로,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초인의 반열에도 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만 가득할 뿐이었다.

‘죄~다, 의미 없네.’

실소하며 마루를 향한 시선을 거뒀다. 주방 정리를 마치는 걸 본 까닭이었다. 마루가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던졌다.

“오! 땡큐.”

다량 세트로 팔리는 싸구려 음료수였지만, 존슨의 입맛에는 딱 맞았다.

‘믹스 커피도 그렇고, 싸면서도 입맛에 맞는 게 많다니까.’

개중에는 적응하면 중독되는 종류도 꽤 있었는데, 특히 국밥 시리즈가 그를 취하게 만든 매력덩이였다.

마루는 빨대를 쪽쪽대는 존슨을 보며 고개를 저어버렸다.

‘도통 갈 생각이 없어 뵈네.’

어느새 10일 남짓, 그 시간은 생각보다 짧지 않았다.

동경하던 영웅이 이제는 동네 형처럼 편하게 느껴지는 게 그 증거였다.

실제로 그런 성향이 강하기도 했다.

마침 체형도 비슷해서 그의 츄리닝을 대충 걸쳐 입은 채, 슬리퍼 찍찍 그어대며 동네 마실 나가는 모습이란, 마치 이곳 주민처럼 자연스러웠다.

‘적응력 하나는 진짜 갑이라니까.’

입버릇처럼 언제 갈 거냐고 묻게 된 것도, 그런 편안함이 작용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가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무려 동경하던 영웅과의 생활이 아니던가. 10일 정도는 ‘겨우’로 표현해도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버릇처럼 재촉하는 건, 역으로 그 역시 재촉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으우...밖에 나가고 싶다.]

추욱 처져있는 초롱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틈틈이 기회를 만들어서 현실로 불러들이긴 했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아이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오늘도 입버릇처럼 재촉해버렸다.

“대체, 언제 갈 생각입니까?”

넌지시 던져 오는 마루의 물음에 존슨이 상처받은 얼굴로 물었다.

“벌써 애정이 식은 거야?”

“징그러운 연기 좀 하지 말라니까요.”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

“으으...영화도 좀 그만보고.”

“마! 내가 임마. 느그 팀장이랑. 마. 밥도 묵고.”

“제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마루의 모습에 존슨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안 그래도 곧 나갈 예정이니까. 너무 그렇게 보챌 것 없어.”

이게 또 이렇게 나오면 아쉬움이 밀려오기 마련이었다. 언급했듯이 마루도 존슨과 지내는 게 불편한 건 아니었다.

“벌써 그 소리만 몇 번인지, 귀지가 쌓이겠네.”

그럼에도 입으로는 맘에도 없는 소리가 나왔다. 친해지고 편해지니 이런 성향도 생겨버린 것이다.

“그래도 형이 있어서 좋았잖아. 안 그래, 브라더?”

“뭐, 그건...인정.”

이에 대한 물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동경하던 영웅과의 생활이라는 점이 아니더라도, 존슨이 지닌 존재감 자체가 대단했다.

‘키홀의 수작질이 뚝 끊겼지.’

정상적인 반응은 이래야 한다는 듯, 그를 찾아오는 문제아들의 발길이 사라진 것이다.

“나 가면 다시 개수작 부리려고 할 텐데, 그때 가서 형 없다고 울면서 짜지 말고, 있을 때 잘해.”

“그래서 정말 언제쯤 갈 생각인데요?”

이에 존슨이 제 몸을 살피는 듯싶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얼마 안 남았네.”

그 같은 행동을 요 며칠간 봐 왔기 때문일까? 마루는 대충 짐작 가는 게 있었다.

“한라산에서 아주 씨게 맞았나 보네.”

“말했잖아. 지갑도 던지고 왔다고. 그 뭐냐, 빤쓰런? 그거 제대로 했다니까.”

존슨의 엉덩이가 무거워진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보니, 적당히 휴식을 취하고 있던 것이다.

그간 지켜본 바, 다행히 심각한 내상은 아닌 듯싶었다.

“그래도 슬슬 살만 한 것 같긴 하네. 브라더, 내가 버스 좀 태워 줄까? 방값은 쩔로 대신하는 거 어때?”

동경하던 영웅과의 헌팅?

“콜!”

거부할 수가 없었다.

“말 나온 김에, 지금 당장 움직이자.”

“갑자기?”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가자!”

그렇게 즉흥적인 파티가 결성됐다.

“대 출혈 서비스. 브라더한테 노하우 좀 푼다. 기대해도 좋아.”

**

일반 비각성 헌터가 마수지대에 들어가기란 쉬운 게 아니었는데, 관련한 몇몇 심사가 통과돼야 하는 까닭이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마기!

일반적인 대기와는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항마력’이라 표현되는 면역력이 필요했다.

대개 이런 항마력은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조금씩 축적되기 마련인데, 이를 유심히 관찰하던 모 대학의 박사는 주장했다.

[비각성자도 사냥을 통해 경험치를 얻는다. 단지 포스가 아닌 항마력으로 환전될 뿐이다.]

물론, 반박하는 주장도 꽤 됐다.

[항마력은 몬스터 사체만 열심히 닦아도 쌓인다.]

어쨌든 바로 그 마기라는 녀석으로 인해, 비각성자의 출입권이 통제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착용 장비에 대한 제재도 상당했다.

마수지대의 몬스터들은 차원방벽이 없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반 장비가 아닌 특수장비를 사용해야 하는 걸까?

그에 대한 의문도 바로 이 ‘마기’에 있었다.

마수지대의 완성도에 따라 마기의 농도 역시 짙은데, 마기의 타고난 특성 자체가 물리력 저하의 성질이 있는 것이다.

내부 몬스터의 등급에 따라 어우러지는 마기의 농도 역시 달라지는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방벽이 마기로 대처된다고 보면 됐다

괜히 마수지대의 핵심이며, 알파이자 오메가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존슨은 너무 쉽게 마기를 걷어버렸다.

“자, 앞전에 내가 품고 다니라고 했던 마석 꺼내봐.”

숙박 3일이 되며 좀 편해졌을 즈음, 존슨이 내린 지시사항이었는데, 지금 이 순간 그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고 있었다.

“대부분 하급 마석은 껌 값에 팔아넘기는데, 그럴 바에는 그냥 이렇게 써먹는 게 더 이득이야. 너도 괜히 푼돈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좀 써먹어. 보면 너무 짠돌이야. 고기도 좀 팍팍 쏘고, 스팸도 하루 이틀이지.”

“1절만 하시죠.”

“크흠! 어쨌든 잘 봐.”

그리 말하며 마석을 쥔 손에 포스를 담았다.

“기왕이면 자기 성질과 맞는 마석을 찾아서 사용하는 게 좋지만, 그런 게 없으면 이런 식으로 장기간 품고 다니면서, 성질을 옮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야.”

언뜻, 마석에 열기가 더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포스를 응축해 압력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저런다고 다이아몬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열기만큼은 충분히 전달되는 듯싶었다.

“똑같이 따라 해.”

그 말에 마루도 자신의 마석을 압박했다.

“열기가 느껴지는 건, 성질이 옮았어도, 본질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충작용이야. 너는 지구인, 애는 외계석, 나는 외국인. 흐흐! 라임 괜찮냐?”

“......”

싸늘한 침묵으로 충분했다.

“...괜히 제압하니 어쩌니 하면서 쓸데없이 포스량을 늘리면, 마석만 망가지니까. 이 상태 유지하는 게 포인트야.”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마석 표면의 색상에 직접적인 변화가 발생할 즈음, 그가 압박하던 포스를 거두더니 마석을 가루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몸 전체에 바르는 것이 아닌가.

의아해 하면서도 따라한 결과,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마기가...물러나고 있어?’

일반인들의 경우, 항마력이 없을 경우 호흡 곤란을 일으킬 만큼, 지독한 압박감을 지닌 게 마기라는 놈들이었다.

이는 각성자들도 은은히 느끼는 부분이었다.

헌데, 그런 놈들이 마치 일반적인 공기라도 되듯, 주변을 부유하며 스쳐가는 것이다.

“흐흐! 애들도 우리가 사람인지 몬스터인지 헷갈리는 거야. 마석 하나만 써도 이렇게 편해진다니까. 요걸로 마수지대 생활이 한층 쾌적해지는 거지.”

마루는 경이로운 눈으로 존슨을 바라봤다.

“괜히 몬스터 똥오줌을 몸에 바르는 놈들도 많은데, 냄새나게 그 짓거리를 왜 해? 게다가 그건 상황에 따라선 다른 몬스터를 불러들이기도 하니까. 개인적으론 비추다. 비추!”

그는 저리 가볍게 이야기하지만, 이 방법을 통한다면 필드 내의 안정감만이 아니라, 사냥의 지속력도 함께 올라갈 터였다.

“뭘 그렇게 놀라. 그냥 소소한 팁이라고 생각해.”

차후 알게 된 사실이라면, 이 가루는 지속시간도 제법 길다는 점과 몬스터들의 자극성까지도 낮춰준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동물형 몬스터에게 선공당하는 일은 없었다.

각성자라서 할 수 있는 재주였는데, 그런 자잘한 팁들은 사냥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 덕분일까?

소소한 부분부터 조금씩, 비각성 헌터로써의 기본기들을 수정해 나갈 수 있었다.

존슨과의 사냥은 이야기로 듣는 것 이상으로 많은 부분에서, 확실하게 그의 시야와 관점을 넓혀주는 역할을 했다.

**

한국에는 현재 다양한 랭커들이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이는 표면만이 아닌 이면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로써, 키홀의 제퍼드 역시 그런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오히려 그의 경우에는 중국을 거쳐서 들어온 만큼, 지각생이라 봐도 무방했는데, 그런 제퍼드 보다 늦게 입국하는 후발주자가 있었다.

제퍼드는 바로 그 늦깎이를 찾아 움직였다.

“간만에 뵙네요. 데스워치.”

언뜻 전통적인 영국 신사를 생각나게 만드는 노년인이 제퍼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흠...키메라인가?”

“후후! 제가 그 명칭을 싫어하는 걸 아실 텐데요.”

괴물이라 불리는 그의 이명 중 하나로써, 천부적인 초감각과 혼성 능력이라는 희귀성 등, 남다른 재주의 교집합이 잘 이뤄졌지만, 이면의 주민이다 보니 명칭 자체가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자넬 경외해서 만들어진 것이니, 좋게 좋게 받아들이게. 쓸데없는데 신경 쓰면 주름만 늘어.”

“만약, 데스워치가 아니셨다면, 진작 목을 뽑아드렸을 겁니다.”

“자신 있다면, 언제든 도전해도 좋네.”

“...도전이란 단어는 좀 거슬리는군요. 그래도 오늘은 따로 목적하는 바가 있어서 찾아 뵌 것이니, 넘어가 드리도록 하죠.”

“빨리 본론이나 말하게. 취미 생활을 방해받고 싶지 않으니.”

그 말에 제퍼드가 주변을 돌아봤다. 이곳은 한국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로 불리는 숭례문이란 장소로써, 데스워치의 취미는 방문 국가의 유적지를 하나하나 살피는 거였다.

‘그냥 관광 아닌가?’

잡념 속에서도 제퍼드가 목적을 꺼냈다.

“존슨을 찾아왔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 아는 사실은 말할 필요는 없네.”

이면에 제법 정통한 이들이라면, 데스워치와 존슨의 악연에 대해서 모를 수 없었다. 짐작건대 이번 한국행도 던전 승급 때문이 아니라, 존슨의 소식을 듣고 날아왔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 이유로 제안할 수 있었다.

“이반나를 잡아주시죠.”

“...이유는?”

“그녀만 잡으면, 존슨은 원 플러스 원입니다.”

순간, 두 랭커의 시선이 위험하게 얽혀들었고, 이내 각자의 명함 한 장을 나누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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