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 #7. 일석이조!
너무나도 신기한 일이었다.
‘이리 쉽게 내부로 진입한다고?’
마루는 묘한 눈으로 존슨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북한산 마수지대는 처음 오는 게 분명할 텐데, 마치 수차례 경험한 듯, 태연한 걸음으로 이동을 거듭하더니, 너무도 수월하게 마굴의 안쪽까지 발길을 옮기는 것이 아닌가.
당연히 그 와중에 만나는 몬스터들도 상당했는데, 그들의 처리 방법도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돌아본 던전이 몇 갠데, 첫 보면 딱이지. 대충 생태계를 이해하고 나면, 어디에 어떤 놈들이 자리 잡고 있을지 견적이 나오거든.”
‘아니. 형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마루의 탐지 스킬과는 무관하게, 순수한 그의 경험치에서 나오는 전문적 견해였다.
“몬스터들의 상성상극을 잘 이해하면, 이놈 끌어다 저놈 잡고, 저놈 끌어다 요놈 물릴 수 있지.”
‘아...그렇습니까? 하!’
듣고 있던 마루는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면 틈이야 알아서 나는 거고, 거기로 쏙 들어가기만 하면, 길이 열리는 거지. 이놈들이 한 동네 산다고 서로 쉬쉬해서 그렇지, 일단 붙여놓기만 하면 서로서로 씹고 뜯고 맛보는 게, 아주 다이내믹 하다니까.”
쉽게 말하고 있지만, 그 모든 과정은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대한 노하우의 결정체였다.
존슨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곁에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따라하라고 한다면 일단 고개부터 젓게 될 것 같았다.
다양한 탐지계열 스킬로 무장한 덕분에, 어찌어찌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수월하게 등산을 거듭하길 한참, 돌연 발길을 세운 존슨이 마루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때? 이 정도면 저격 포인트로 딱 아니냐?”
“...너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지대 깊숙이 들어온 만큼, 현재 그들이 머물고 있는 장소는 위험구역이나 다름없었다.
마루의 본래 실력을 놓고 봤을 때도, 제법 위험도가 높건만, 그런 장소에 C급 헌터를 데리고 온 것이다.
“이게 또 재밌는 점이야. 각 구역마다 절묘한 경계구역이 있단 말이야. 힘깨나 쓰는 놈들끼리 부대끼는 장소라고 해야 하나?”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경계선이 의외로 또 안전하다니까.”
그 말처럼 어설픈 몬스터는 감히 기웃거리지도 못했고, 구역의 주인들은 옆집과의 마찰을 우려한 듯,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물론, 놈들이 보내는 살벌한 기세 때문에 오금이 저릿했지만, 그것만 견뎌낼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저격 포인트를 찾기란 어려웠다.
“그렇다고 오래 비비면 안 돼. 원래 이 바닥에서 지박령 타입은 명이 짧은 거 알지? 유목민 타입이 오래가는 거야.”
집 밖에서 꽹과리 소리가 요란하면, 결국 집주인이 나서는 법이듯, 참다 참다 못 한 터줏대감들이 등판하기 전에, 후다닥 내빼는 게 중요했다.
“다음 포인트로 이동!”
그렇게 사냥이 물 흐르듯 연결되는데, 놀라운 건 그렇게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존슨이 나서는 일은 별로 없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 깊은 곳까지 들어오고, 이 험난한 곳에서 길을 찾아내는 등, 그가 하는 일 자체가 뛰어난 활약이었지만, 사냥 자체에는 관여하는 바가 적었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경험치 독식이라니.’
너무나도 생경한 버스 노선이었다.
‘이런 쩔도 있구나.’
말 그대로 완벽 그 자체였고,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역시...’
제로 원의 명성이 과언이 아니었다.
바로 조금 전까지 전형적인 집돌이의 모습이었던 게 거짓말 같았다.
이번 사냥의 포인트는 몬스터가 주는 경험치가 아니었다. 바로 저 거대한 사내가 품고 있는 경험치야 말로, 그가 보고 살피며 얻어내야 할 것이었다.
‘인디안 존슨!’
그 이름이 새삼 뇌리에 각인됐다.
**
아낌없이 베푸는 것 같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
‘흐흐! 정신을 못 차리네.’
존슨은 실실 웃으며 마루를 바라봤다.
그간 지켜본 결과, 제법 괜찮은 녀석이라는 판단을 내렸기에, 어느 정도 노하우를 방출하는 건 아깝지 않았다.
노하우를 아낄 생각이었다면?
‘집필 같은 걸 하면 안 되지.’
살아남기 시리즈 덕분에 비행기 값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던가.
‘아꼈다 똥 될라!’
물론, 모든 노하우를 서적에 휘갈기는 건 아니다 보니, 마루에게 알려줄 건 여전히 넘쳐났다.
그 같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생각 이상으로 과하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건 사실이었는데, 이는 마루의 사고를 어그러트려 놓기 위함도 있었다.
“와우!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아...이런 식으로 풀이할 수도 있을 줄이야. 어라? 저 상태로도 트랩이 발동 된다고요? 맙소사!”
딱 봐도 노하우를 수습하느라 바빴고, 그로 인한 흥분으로 들썩이는 중이었다.
경계심이 한층 흐트러진 상태인 것이다.
물론, 주변 경계를 하긴 하겠지만, 적어도 그에 대해서는 방어체계가 제로에 가까웠다.
바로 그 부분을 파고들며, 집요하게 마루를 관찰했다.
그 결과,
‘각성자가 맞네.’
너무 뻔한 결론이라 여길지도 모르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평상시 마루에게선 어떠한 기세도 읽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랜 전장의 경험 때문인지 특유의 묘한 분위기는 있었지만, 포스와 관계된 건 전혀 인지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혹시 하는 마음이 있었다.
‘준각성자인 줄 알았더니.’
지금은 없지만, 대격변 초창기에는 존재했던 이들이다.
아티팩트!
바로 그 특별한 힘을 빌려, 각성자의 세계를 엿보는 것으로써, 여기서 언급되는 아이템이란 사람의 손으로 제작된 게 아닌, 아주 가끔 던전에서 나오는 특수한 물건이었다.
각 헌터 자격증을 보면, D급만이 아니라 C급 너머로도 A형과 B형을 체크하며, 각성과 비각성자의 구분을 나누는 이유도 거기 있었다.
거기에는 물론 여러 시민단체에서 반발한 까닭도 있긴 했다.
[C급부턴 각성자만 가능하단 거냐?]
[비각성자라 무시하는 건가?]
[당장 시정하라!]
[과거를 반성하라!]
등등, 여러 마찰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핵심을 집어보자면, 과거에는 아티팩트의 힘을 빌려 각성자의 한계에 도전하는 이들도 존재했기에, 상위 등급에도 A형과 B형의 구분을 둔다는 점이었다.
저들 시민단체의 반발에는 이런 기준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는 ‘진짜’ 각성이 아니라는 말로 반발했다가, 더 큰 역풍을 맞기도 했었다.
그리고 초기 준각성자들의 압력도 일부 행사된 바, 결국 모든 등급에 B형 기준이 새겨진 것이다.
지금이야 모든 던전이 대형 길드에 통제되는 탓에, 준각성자가 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는 만큼, 혹시나 하는 의심을 했었다.
‘준각성자는 아니야.’
저격 순간, 방아쇠를 당기는 찰나, 번뜩이며 솟구치는 그건 분명 포스였다. 애초에 마석에 압력을 가하던 모습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단지, 지금은 그 기운의 뿌리를 살피고자 하는 것인데, 찰나의 순간 번뜩이다 사라지는 포스 탓일까?
여전히 미스터리만 남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모습들을 볼 때면, 자꾸만 떠오르는 만남이 있었다.
[가장 평범한 듯, 비범한 사내를 만나면 이걸 전해주게.]
뭔 개소린가 싶겠지만, 그 말을 한 존재를 상기하면 마냥 헛소리로 치부하기도 어려웠다.
‘히말라야의 문지기!’
세상은 모른다. 심지어 이면도 그를 모른다.
그 역시 우연히 마주칠 수 있었으며, 이마저도 문지기가 의도한 만남이었을 뿐, 스스로는 찾을 수 없는 존재였다.
‘정말, 그게...사람인지도 의문이고.’
어쨌든 문지기가 준 ‘물건’으로 인해, 지금까지 ‘평범’을 가장할 수도 있지 않았던가.
그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초감각으로 유명한 제퍼드가 그의 내상을 알아채지 못했을 정도였다.
‘눈치 챘더라면 그렇게 얌전히 물러날 리가 없지.’
게다가 이어졌던 이반나의 구타까지.
‘아...그건 좀 치명적이었지.’
웃기는 게,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더 활짝 웃으며 맞아줬었다.
어쨌든 그처럼 특별한 물건이었다.
‘이젠, 없어도 충분하지만.’
오래도록 품고 다닌 덕분인지, 비슷한 재주를 부리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있다 없으면 허전한데.’
짧게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품에 있는 물건을 쓰다듬었다.
‘그래도 일단, 좀 더 지켜보자.’
관찰자의 시선이 집요하게 목표물을 쫓았다.
**
개코!
언젠가부터 주변인들이 그를 부르는 명칭으로써, 실제로 그가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건 아니었다.
단지, 지니고 있는 특수 스킬로 인해 붙여진 별명이었다.
[스킬 : 킁카킁카]
이 우스꽝스런 명칭 때문에 제대로 스킬명을 밝히긴 어려워, 에둘러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능력은 아주 간단했다.
[기운을 맡을 수 있다]
냄새가 아닌 기운, 포스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추격에 특화되어 있는 능력자였다.
세계적인 명성은 없었지만, 적어도 한국 내에서는 제법 유명세가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이름값 대부분이 이면에 걸쳐있단 점이었다.
젊은 시절에 쳤던 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면에 발을 담갔고, 특수한 스킬 덕분에 제법 괜찮은 조직에 소속될 수 있었는데, 그런 이들을 하청으로 부리는 자들이 나타났다.
키홀!
유럽이란 거대 무대에서 방귀 좀 뀌는 클랜이었다. 그들 사이의 격차는 너무나 선명해서, 하청이라도 감지덕지 할 수밖에 없었다.
K리그에 프리미어리거가 나타난 격이랄까?
그나마도 클래식도 아닌, 2부리거들 틈에 끼어든 것이라고 할 것이다.
Top급의 팀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인 건, 놀랍게도 개코가 지닌 추격술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한동안 어깨가 으쓱거렸지만, 오래지 않아 커다란 부담감과 압박감에 시달려야만 했다.
말도 안 되는 의뢰 때문이었다.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북한산 마수지대에서 사람을 찾아내는 건데, 관련한 특징도 체격 정도가 전부였다.
[이 놈과 비슷한 체격이다.]
그러면서 키홀의 요원 한 명을 내세우는데, 정말 순수하게 그게 끝이었다.
오직 그의 능력에 의존한 추격인 것이다.
게다가 ‘사건의 현장’자체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거기에 묻은 희미한 포스의 잔재만으로 추격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만 했다.
‘으으...제퍼드라니. 실패라면 키메라에게 뜯겨져 실험실로 팔려나갈 거야. 젠장! 빌어먹을!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아이언슈트!’
간절한 바람이 통했던 것일까?
“찾았다!”
놀랍게도 아주 선명하고도 진한 포스의 잔재가 남아있던 것이다. 희미한 흔적을 매일 되뇌었던 덕분인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헝~!”
그간 얼마나 시달렸던지, 저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
그토록 기다렸던 소식임에도, 반쯤은 포기하고 있던 연락이었다. 그 때문에 보고를 듣기가 무섭게 바람처럼 달려갔다.
카일리는 순식간에 현장에 도착한 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아이언슈트의 실력이라면, 이런 곳이 어울리지.’
현장은 북한산 마수지대의 심처에 있었다. 그를 골치 아프게 한 상대였지만, 그 실력만큼은 인정하는 바였다.
개코에게 붙여줬던 정예들도 긴장할 만한 곳이었다.
‘부담감 때문에 무리하게 들어온 건가? 그래도 덕분에 꼬리를 잡았군.’
흥미로운 점이라면 현장의 보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이었는데, 전투를 펼쳤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냥, 쉬어 갔던 장소인가?’
의문을 내비치는 한편, 관련한 정보 수집에 집중했다.
전문가인 개코와도 수차례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현장 정보가 정리됐다 싶을 즈음, 1차 보고를 위해 제퍼드에게 각종 사진을 첨부한 파일을 보냈다.
그 순간 뜻밖의 문자가 날아왔다.
[대기하세요.]
저대로 된 정식 보고서가 아니건만, 벌써 관심을 보인다?
‘뭐지?’
그 같은 의문은 제퍼드의 등장과 함께 해결됐다.
“역시, 제로 원이군요.”
“...예?”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등장이었다.
“후후! 여기 이 외곽의 흔적들에서 그의 재주가 보이네요.”
“설마...?”
“이거이거, 아이언슈트와 제로 원께서 아는 사이인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언슈트는 미국의 히어로 만화 주인공이었죠? 이게, 우연일까요?”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래도 역시 전문가를 부르는 게 낫겠죠?”
제퍼드가 말을 끝맺을 즈음이었다.
“날 부른 이유가 이것 때문인가?”
새로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히익!”
어찌나 놀랐던지, 카일리는 일순 호흡곤란까지 와버렸다.
‘데...데스워치!’
전신이 사시나무 떨 듯,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는 그뿐만이 아니라, 자리하고 있는 모든 이면의 주민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었다.
데스워치!
그는 이면의 주민이지만, 동시에 이면의 이레귤러 같은 존재였다.
혹자는 그가 악인을 참하러 이면에 뛰어들었다고 이야기할 만큼, 수많은 이면의 주민들이 그의 손에 쓸려나간 것이다.
원래 표면과 이면의 경계를 걷던 사내였지만, 과거의 어느 사건을 기점으로 표면 세상을 버린 것인데, 이면의 입장에선 반가워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 이후 일말의 자비마저도 사라져버린 것이다.
지금이야 백발이 성성해져, 예전 같은 활동량을 보여주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명성은 여전히 남아있어, 존재 자체로 두려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저...저자가 여길 어떻게?’
일행들의 시선이 제퍼드에게로 향하는 가운데, 그가 특유의 그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제로 원의 전문가가 보시기엔, 이 흔적들이 어떤 것 같습니까?”
“...놈이 맞군.”
데스워치가 확답했고, 제퍼드가 웃으며 말했다.
“이거,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군요. 쥐새끼의 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더니, 놈이 뜻밖의 대어까지 물고 있었군요. 하하하핫! 명분까지 챙길 수 있다니. 푸하하핫!”
저처럼 폭소하는 건 드문 일인지라, 모두들 긴장해야만 했다. 기분 좋다는 이유로도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이기 때문이었다.
“쯧!”
다행히 데스워치의 존재로 억제가 된 것인지, 이내 웃음기를 죽이며 그가 이야기했다.
“이런 걸 이쪽 동네에선 이렇게 표현한다죠?”
자연스레 귀가 기울어지는 가운데,
“누이 좋고, 매부 조커!”
가만히 듣고 있던 개코가 몸서리를 쳤다.
‘위...위험한 발음인데?’
번역기 오류인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