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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 더 헌터-83화 (83/325)

083 / #8. 이렇게 생겼구나?

미국의 3번째 영웅이자 랭커, 그는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나고 자란, 순수 한국인이었다.

써니!

주변인이 그를 부르는 별명으로써, 언뜻 여성스런 느낌의 별명이 붙어버린 건, 그의 이름으로 인해 발생한 오류였다.

이선!

미국식으로 거꾸로 해서 발음하면 ‘선이’가 되는데, 그게 외국인들의 입안에서 굴려지다 보니, 자연스레 써니라는 별명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한 때는 그걸로 한국에서 적잖은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랭커였지만 자국을 버렸다는 이유로 인해, 한국 내에서 그의 위치는 그야말로 역적에 가까웠다.

그가 이민을 가야만 했던 이유를 아는 이들이야, 감히 그런 입방아를 찧지 못할 것이나, 광호와 얽혀있는 사건이다 보니, 진실은 자연히 묻히고 잊혀버렸고, 남은 건 자국을 버렸다는 불명예뿐이었다.

애초에 좋은 기억이 별로 없는 모국이었고, 그 때문에 평소에는 기억에 없는 듯, 잊은 척 모른 척 살아왔었다.

헌데, 그런 그에게 한국행을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이 터져버렸다.

“후...”

써니라는 별명이 어색할 만큼, 너무도 남자답게 생긴 사내, 선이 굵은 건장한 미남, 이선이 한숨을 푹 내쉬며 레이널드가 보낸 문자를 바라봤다.

혜성, 이반나, 광호, 제퍼드.

그 복잡한 대립에 대한 정보였는데, 이전의 던전 승급까지 생각한다면, 이래저래 모국에 큰 사건이 발생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의 신경을 건드는 건,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이선희!’

언뜻 그와 비슷한 이름을 지닌, 단 하나뿐인 제자가 떠올랐다.

한 때는 그가 가장 아끼던 소녀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의 전부가 되어버린 여인이기도 했다.

레이널드가 보내온 정보를 짚어나가다 보면, 결국 그녀에게 닿아버리는데, 그 순간 끝없는 위험신호가 뇌리를 두드리며, 그를 갈등하게 만들었다.

“하아...”

그는 결국 어떤 선택을 할지 알고 있었다.

어느새 강산이 한 번 바뀔 만큼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그녀와 관련된 소식만으로 이렇게 가슴이 들썩거렸다.

그는 자신이 내릴 결정을 모를 수 없었다.

“후우우우...”

깊고 긴 한숨이 그를 이끌었다.

**

북한산 마수지대를 함께 돌아본 결과, 하나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우리 한라산 구경 안 갈래?

존슨의 뜬금없는 소리에 마루가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다 반문했다.

“언제 방 뺄 건데요?”

“그걸 또 그렇게 받아 치냐?”

“한라산보단 인간적이네요.”

흰소리 말고 밥이나 먹으라면서 식탁으로 불러들였다.

북한산을 다녀오고 어느새 사흘, 산행에서 얻어먹은 게 워낙 많아서 그간 재촉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존슨의 헛소리에 불쑥 튀어나와 버렸다.

투덜거리며 식탁에 앉은 존슨과 식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슬며시 올라오는 호기심을 참지 못한 채, 마루가 먼저 운을 띄웠다.

“그런데, 갑자기 한라산은 뭔 소립니까?”

“우, 그게...겍...켁...꺽...”

“아니, 뭔 걸신들린 것도 아니고, 누가 뺏어먹습니까? 좀 천천히 좀 먹어요.”

험난한 던전 생활의 부작용일까?

존슨은 입 안 가득, 먹을 걸 쑤셔 넣는 버릇이 있었다. 워낙 위험한 장소를 전전하다 보니,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가 어려워, 한 술 뜰 때 크게 뜨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그 때문에 지금도 사례가 들려버렸다.

‘먹는데 말 건, 내가 잘못이지. 에휴...’

고개를 젓는 사이 겨우 안정이 된 듯, 존슨이 살짝 지친 얼굴로 마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나라에선 밥 먹을 땐 건드는 거 아니라며?”

“아니, 하아...”

‘그게 어떻게 건든 겁니까?’

뒷말은 꾸욱 눌러 삼키며 한숨만 내쉬었다. 그래도 일단 말문이 트인 탓인지, 존슨이 앞서의 화젯거리를 끌고 왔다.

“기왕이면 큰물에서 놀아봐야지. 너도 언제까지 집 근처만 쏘다닐 거냐.”

정말 그 이유 때문일까?

의심스런 눈초리로 마루가 바라보니, 이에 존슨이 내심 뜨끔하면서도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나도 곧 떠날 거고, 그러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시켜줄 수 있겠어. 그래서 이참에 제대로 한 번 좋은 일 좀 하려는 건데, 됐어! 싫으면 말고. 나 삐졌다!”

그리고는 정말 성났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와구와구 한층 거친 식사로 수저를 뜨기 시작했다.

어찌나 거칠었던지, 사방팔방 튀어나가는 밥풀이 식탁에 멀티를 놓으니, 보고 있던 마루의 밥맛을 뚝 떨어지게 만들었다.

“아...진짜, 지저분하게.”

짜증 섞인 음성으로 밥그릇을 따로 챙긴 마루가 저 한편으로 물러났고, 기회는 이때라는 듯 존슨은 완전히 식탁을 점령한 채, 미쳐버린 식탐을 발휘하고 있었다.

‘아니, 무슨...김치에 청량고추 싸 먹어?’

새삼스레 느끼는 것이지만, 머리 색깔만 아니었다면, 토종 한국인으로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식성이었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무슨 짓을...”

마루는 정면으로 펼쳐진 거대한 마굴을 바라봤다.

제주도였다.

그 너머에 우뚝 솟아있는 정점도 눈에 들어 왔다.

한라산!

결국, 이곳까지 와버린 것이다.

육지에 발을 딛고 난 뒤, 제주도의 공기까지 들이쉬고 나자, 뒤늦은 후회가 물밀 듯 밀려들며 발목을 붙잡았다.

시간 날 때마다 한라산을 언급하며, 심장부만 아니면 거기도 다른 마수지대나 다를 게 없다거나,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또 보냐는 등, 꾸준히 이어진 존슨의 유혹으로 인해, 결국 넘어가버린 것이다.

‘그래! 인디안 존슨이니까.’

앞전의 북한산 던전을 떠올렸다. 그 깊은 심처에서 그토록 안정적이 사냥을 할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더군다나 당시 그는 제 실력이 아닌, 존슨의 시선을 의식한 C급 A형의 저격수일 뿐이었다.

게다가 제주도라고 해서 모든 구역이 미쳐 날뛰는 건 아니었다. 이처럼 외곽지대는 각종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여러 헌터들의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일반 주민들이 살 수는 없지만, 이처럼 사람의 발길이 유지될만한 여지는 남아있는 것이다.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적당히 쉬어갈 만한 휴식터를 탐색하는데, 앞서 내렸던 존슨이 손짓하는 게 보였다.

벌써 방을 잡았나 싶어 다가가니, 뜻밖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돈 아깝게 방은 무슨, 이런 데가 얼마나 비싼 줄 모르냐?”

그러면서 바로 올라가자는 것이 아닌가. 이에 당황하면서 쳐다보고 있노라니, 그가 대뜸 물었다.

“네가 방값 낼 거면 잡아주고.”

“...가시죠.”

그렇게 제주도 도착과 동시에 한라산을 향한 여정이 시작됐다.

**

아무 생각 없이 한라산으로 끌어들인 건 아니었다.

‘적어도 B급 이상!’

존슨은 앞서 북한산에서 마루를 관찰한 결과, 그가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실력자임을 알아 볼 수 있었다.

포스를 읽어낸 게 아니었다.

그의 남다른 감으로도 그 부분은 캐치하지 못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상대 등급을 확인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노하우!

요리조리 풀어냈던 노하우들 중에서 하급 헌터는 할 수 없는 재주들도 있었다.

마루 스스로야 딱 C급 A형만큼만 보여줬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조금씩 천천히, 물감이 번져나가고 또 스며들 듯, 슬그머니 단계를 올려나갔고, 그 때문에 마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윗 등급의 재주들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30년 눈칫밥이 있는데, 15년차한테 털릴 순 없지!’

따라하느라 정신없는 어설픈 흉내 내기였던 탓에, 더더욱 그 등급 변화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었다.

‘최소 B급, 최대 A급!’

그 정도까지 견적을 뽑아냈기에, 과감히 한라산에 도전할 결정을 내린 것이다.

히말라야의 문지기에게 받았던 ‘물건’을 상기했다.

‘너무 엄청난 거라, 나 혼자 판단으론 답이 안 서니까.’

이전에 한라산을 찾았을 때, 우연히 마주쳤던 인물을 떠올렸다.

‘히말라야에서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게 정말 우연이었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당시 만남에서 느낀 바가 있었다.

‘한라산의 문지기!’

과거, 히말라야에서 마주쳤던 존재와 꼭 같은 분위기였다.

마루를 비롯한 주변인들에겐 가볍게 표현했었지만, 사실 당시 한라산에서 꽤 위험한 상황이었다.

‘문지기 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지.’

바로 그 문지기와 인연을 맺었던 곳이 이번 목적지였다.

‘히말라야의 문지기는 내 판단에 맡겼지만.’

이처럼 가까운데 비슷한 존재가 있다면, 슬쩍 떠넘기는 것도 나쁘진 않은 선택지라 여겼다.

‘솔직히...그냥 주긴 아깝고.’

그만큼 대단한 물건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갈등이었다.

**

라시아!

본명 임지안, 그녀는 PP를 제외하면 공부밖에 모르는 아주 착실한 모범생이었다.

재수 없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학교 수업 외에는 따로 학원을 다니지도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그렇다면 남는 시간은 뭘 할까?

“오늘도 PP~!”

기상과 동시에 삐약거리며 방학을 만끽하는 사춘기 소녀의 모습이란,

“에휴...”

한숨을 내쉬는 오빠, 임시안은 고개를 저으며 냉장고를 털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들여다보는데, 이를 본 부모님들이 일제히 고개를 저어보였다.

“후...”

나직한 한숨도 함께였다.

원래라면 체대 방향으로 진로를 잡고 공부를 했어야 하건만, 뜬금없는 헛바람이 들어서는 헌터를 한다면 난리를 치는 아들이었다.

그 와중에 정말로 아카데미 시험을 쳤고, 죄다 떨어지면서 저처럼 백수 신세였다.

더욱 골 때리는 건, 이젠 군대를 간다고 설친다는 것인데, 그 방향이 또 뒷목을 뻐근하게 만들며 혈압을 끌어올렸다.

[몬스터 특수부대에 지원하려고요.]

다행이라고 한다면, 친척들 중에 실제 헌터업계에서 뛰는 이들이 제법 있어, 이를 통해서 아들의 설레발을 좀 진정시켰다는 점이었다.

‘저걸, 어째?’

부모님들의 이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임시안은 소파와 일체화한 상태로 폰에 영상을 띄우는데, 그건 요 근래 들어 꾸준히 심취해있는 영상이었다.

[해외에서 화제 중인 건가드 영상!]

언제부턴가 이런 제목으로 올라오기 시작한 동영상으로써, 헌터업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접해본 영상이었다.

전문가들도 감탄을 거듭하게 만든, 말 그대로 ‘건가드 고수’의 교본 수준의 실전 장면이었다.

‘몇 번을 봐도, 끝내주네!’

임시안은 특히 더 거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차후 입대를 하게 된다면 중점적으로 배우게 될 기술이 바로 건가드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집중하길 한참, 문득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우는 걸 느꼈다.

임지안이었는데 출출해서 나왔겠거니 싶어, 그냥 무시하며 영상에 집중하는데, 도통 그림자가 사라지려 하질 않았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며 방해까지 했다.

“뭐야?”

짜증 섞인 음성을 내뱉는 찰나,

“어? 아저씨다.”

뜬금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이게, 오빠한테 아저씨라니.”

그렇게 짜증이 중첩되는 순간,

“그 영상, 총 쏘는 아저씨.”

아무래도 임지안이 집중하는 대상이 그가 아닌 듯싶었다. 임시안이 의아해서 여동생을 돌아보니, 그녀가 신기하다는 듯 그의 핸드폰 영상을 보고 있었다.

“헤에~! 원래는 이렇게 생겼구나.”

그 즈음 느낌이 왔다. 그래서 물었다.

“...뭐야? 아는 사람이야?”

임시안의 물음에 임지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빠도 아는 아저씨잖아.”

“내가 안다고?”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순간, 여동생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장관장.”

“...호로로?”

임지안이 웃으며 말했다.

“이 아저씨는 게임에서도 현실에서도 무쌍을 찍네.”

호로로의 18대 1영상은 지금도 여전히 PP의 한 자리를 꿰고 있는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이날,

임시안은 한동안 접었던 PP를 다시 시작했다.

**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가장 위험한 마굴을 꼽으라고 한다면, 누구하나 주저하지 않고 제주도의 한라산을 일순위로 내밀 것이다.

제주도의 외곽지대를 제외한 대부분이 몬스터들의 터전이라는 점에서, 그 위험성은 충분히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 작은 나라에 있을 규모의 마굴은 아니군.”

그 위험한 제주도의 바닷가로 노신사 한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헌데, 그건 실로 기이한 장면이었다.

전문가들에게 통제되는 선착장도 아닌, 말 그대로 바닷길 한 복판에서 물길을 가르며 등장한 까닭이었다.

데스워치!

그가 이 뜬금없는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이곳에 있단 말이지...”

서늘하니 한기어린 음성이 새나왔다.

“인디안 존슨!”

저 멀리 보이는 한라산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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