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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 / #9. 돌하르방!

이미 영상으로 접한 바 있었고, 수차례 반복 재생을 하며 즐기기도 했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직접 보는 박력이란 또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휘유~!”

존슨이 감탄하며 박수를 쳤다.

“그게 바로 그 소문의 건가드냐?”

그 물음에 마루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아니, 안 도와 주십니까?”

“그럴 필요도 없이 혼자서 다 처리했네.”

달려들던 몬스터들을 마루에게 떠넘긴 채, 한편에서 뒷짐만 지고 있는 존슨의 모습이란,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영상에서도 느꼈지만, 건가드 진짜 퍼펙트 하네. 내가 이 방면으로 전문가들을 꽤 아는데, 너 진짜 자부해도 되겠다.”

그러며 되새겨 보길, 마루의 건가드는 그가 아는 무수한 전문가들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와 동시에 저 유연한 몸놀림을 보며 새삼 깨달았다.

‘역시, 총기류 각성자가 아닌 건가.’

이 부분에 의한 의심은 꾸준히 이어져왔었다.

‘몸의 균형도 그렇고, 교묘한 변화도 그렇고.’

분명히 그가 접한 정보에서 마루의 키는 178로써 아슬아슬하게 180이 못 된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함께 생활하며 지켜본 결과, 180은 넘어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182인 나하고 비슷했지.’

한 눈에 알아보기엔 미묘하지만, 같이 지내며 살펴보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차이였다.

‘서른 중반에 성장했다고?’

오로지 하나, 신체 각성자들에게 제한된 이야기였다.

물론, 총기류 각성자가 2종류이긴 했다.

이능계의 특수재능과 강화계의 감각 발달의 2가지로써, 사실 진짜배기 총기류 각성자는 이능계로 분류되고, 강화계는 곁다리로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능계의 경우 정확히 총화기에 스킬을 부여한다.

반동 제어라거나 관통력 증가 탄창 확보 등등, 다양한 종류의 스킬들이 배치되어 있지만, 감각계 총기류 스킬 각성자들의 경우, 자체적인 시야에 관리에 고정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궁수를 하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확실히 상성이 맞을 경우, 그 방면으로 넘어가는 이들도 몇몇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조준경 한정이라는 등의 몇몇 제한이 붙는 스킬들이 상당하고, 애초에 순수 시야각 증가 정도만 놓고 봤을 땐, 타고난 궁수 계열의 화력을 따라잡기 어려운 이유도 컸다.

‘저건 확실히 시야각 발달하고는 다르지.’

그 때문에 총기류 각성에 대한 의문을 완전히 접을 수 없었던 건데, 제주도로 넘어온 뒤 저처럼 생생한 실전 건가드를 접하고 있노라니, 순수 육체파라는 예감이 더 강해졌다.

‘설계 솜씨는 완전 두뇌판데.’

대부분 상대가 단순한 몬스터들이면 건가드 설계도 역시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건만, 마루는 이마저도 복잡하게 설정하며 놈들의 동선 낭비를 유도하는 등, 똑똑한 전투를 보여줬다.

그래서 슬쩍 물었다.

“너 고졸 아니냐?”

“아니, 이 형님이 사람 무시하네.”

“킁!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뭘 그렇게 발끈하고 그래.”

뜨끔해선 시선을 피하며 한편에 휴식터를 마련했다.

‘거 참, 다시 봐도 신기하네.’

마루는 이를 보며 새삼 놀라야만 했다.

‘이런 현실에서 안전지대 설치라니.’

잠시나마 게임에 빠져드는 기분을 맛봤다.

[몬스터들의 상성상극만 이해할 게 아니라, 마석의 상성상극도 잘 이해하면, 이런 결계석도 직접 만들 수 있지.]

지난 북한산에서도 경험했던 것으로써, 전문적인 결계석이 아니다 보니 유지시간이나 관리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어차피 던전 내부에서 임시로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것이기에, 그런 부분은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오늘은 마석 다섯 개짜리 휴식터니까. 좀 더 편하게 쉬어도 돼.”

그냥 다섯 개가 아니라, 다른 성질 다섯이 절묘하게 얽혀있는 것으로써, 지난 북한산에서도 겨우 세 개짜리로 전체를 돌았던 걸 생각해 본다면, 새삼 제주도 마수지대의 수준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건가드는 군대에서 배운 거냐?”

“전에 묻고 뭘 또 묻습니까?”

숙박 중, 건가드 영상이 언급된 적 있었고, 관련해서 가볍게 대화도 나눴었다.

“생각보다 더 대단해서. 역시 직관의 감동은 다르네.”

“오버하기는.”

“한국 헌터들이 해외에서 잘 먹히는 이유를 알겠다.”

“...그건 그렇죠.”

마루가 비각성자이면서 해외 활동이 잦았던 건, 우습게도 바로 그 거지같던 군부대의 경험 덕분이었다.

물론, 이는 비각성자 한정으로써, 한국의 몬스터 특수부대 출신이란 경력이 추가될 경우, 그럭저럭 괜찮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사체 처리술...’

물론, 그 기본적인 실력도 나쁘지 않긴 하지만, 역시나 해외에서 주로 보는 건, ‘현장 요원’의 발골 기술이라 할 것이다.

군대에서 하루 종일 하는 게 사체 처리가 아니던가. 상병만 되도 어지간한 전문가들 못지않았다.

그 역시 이런 특이사항 덕분에 해외에서 일자리 따내기가 더 쉽기도 했었다. 몇몇은 이런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몬스터 특수부대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뺑이의 연장인데.’

마루의 표정에서 생각을 읽은 듯, 존슨이 고개를 저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체 처리가 탑재된 헌터라서 인기 있는 건 맞는데, 그래도 너 하는 거 보니까 기본기가 탄탄하단 생각이 들어서 그래. 이런 솜씨니까 한국계 헌터들의 재계약 비율이 높은 거겠거니 싶다.”

물론, 이 역시 비각성자 한정의 이야기였다. 각성자는 세계 어디나 똑같았다.

능력!

그들은 사체 처리와 같은 자잘한 잔기술이 아닌, 굵직하게 진짜 배기 실력만 확인하는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슬슬 제동 걸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너무 깊이까지 들어온 것 같은데.”

마루의 걱정 어린 음성에 존슨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 한라산도 아니잖아. 뭘 그리 긴장해. 이 정도는 겨우 외곽 부근일 뿐이야.”

“제 수준을 생각하셔야죠.”

그의 이야기에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정도는 우습잖아.”

“...뭐가요?”

“뭘까?”

반문에 반문으로 답하는 존슨을 보며 직감할 수 있었다.

‘들켰구나!’

그의 등급이 발각 됐음을 깨달았다.

이어지는 침묵의 시간 속에서, 무거워지는 마루의 표정과 달리 존슨은 더없이 가벼운 미소를 지은 채, 유유자적한 태도로 주변 풍광을 감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간의 시간 동안 생각을 정리한 듯, 마루가 정적을 깨며 물었다.

“언제 눈치 챘습니까?”

“첫 만남에?”

“......”

“그건 뻥이고, 처음 봤을 때 약간 의아하긴 했어. 같이 지내면서 의심이 커졌고, 결정적인 건 북한산에서 터졌지.”

그러면서 상세 내용을 풀어내는데, 전부 듣고 난 마루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존슨이 특유의 유머를 담아 이야기했다.

“나는 그냥 미끼를 던져븐 거시고.”

그게 바로 노하우였다.

“너는 고것을 화악 물어븐 거시여.”

마루가 고개를 저으며 화답했다.

“내가 뭣이 중헌지를 몰랐네.”

“흐흐...”

존슨이 엄지를 첫 세웠다.

**

들켰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우리 브라더의 등급이 올라갔으니, 사냥터도 올라가야 할 거 아니겠냐.”

존슨은 그리 말하며 한라산으로의 전진을 거듭했다.

“이유라던가 뭐 그런 거 묻지 않습니까?”

그래서 슬쩍 물어봤다.

“알려줄 거야?”

“......”

“그럼, 물어 뭐 해. 그냥 숨기고 싶은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그냥 나 스스로 알아내야지.”

어깨를 으쓱이는 것도 잠시, 슬슬 존슨의 기세가 돌변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턴 나도 좀 제대로 해야 하니까.”

어느새 한라산의 영역에 다다랐고, 존슨 역시 본격적으로 포스를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음무우우우우...

과연 한라산이라는 걸까?

“허...미노타우로스?”

초입부터 상위종이 튀어나온 것이다.

“먼저 간다!”

그 말과 함께 존슨이 달려 나갔다.

히어로 오브 스톤!

제로 원이라는 이야기 외에도 그를 따라다니는 이명 중 하나로써, 해석하자면 간단했다.

탱킹 쩐다!

존슨의 뒷모습에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제로 원의 탱킹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관련한 영상도 몇 개 있지만, 앞서 존슨도 언급하지 않았던가.

‘역시, 직관만한 게 없지.’

마루는 일단 원거리 딜러 포지션을 유지했다. 어차피 존슨의 포지션이 있는 만큼, 그 위치가 가장 적당하기도 했는데, 이는 한 걸음 물러나서 존슨의 액션을 눈에 담기 위함이기도 했다.

음무어어어어~!!

성난 외침과 함께 거대한 팔뚝이 휘둘러지는 게 보였다. 그 덩치는 오우거와 비슷하고 조금은 둔해 보이는 외형이지만, 외형에 속아서는 안 됐다.

간단히 정의하자면, 빠르고 강했다!

퍼어어엉!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듯, 놈이 내리친 땅거죽이 요란하게 뒤집히는 게 보였다. 시야가 어지러울 것이건만, 그 속에서도 존슨은 유연하게 대처했다.

가릴 건 가리고 피할 수 없는 건 맞으며, 물러나야 할 때는 빼고 그러다가도 스프링처럼 튕겨지며 달라붙는다.

히오스 같은 별명이 붙었지만, 그의 몸뚱이가 실제로 차돌처럼 단단해지는 건 아니었다.

놀라우리만치 근접전에 해박할 뿐이었다.

그 때문에 모든 공격을 절묘하게 흘려보낼 줄 알았는데, 정면으로 부딪치는 저 상황도 그랬다.

퍽!

앞전의 요란한 폭발성과 달리, 타격성도 미미했다.

절묘하게 그 괴력을 받아들이되, 온 몸으로 흡수하고 흘려보내는 묘기를 부린 것이다. 전신 근육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움직임으로써, 지켜보던 마루는 새삼 개안하는 느낌을 받아야만 했다.

‘스킬 없이도 저런 게 가능하다니!’

저건 말 그대로 순수 체술일 뿐이었다. 그의 근접박투가 다양한 스킬을 체화하며 몸에 익은 것이라면, 존슨은 순수하게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무수히 많은 실전 속에서 스스로 터득해 낸 몸놀림인 것이다.

[가장 많은 던전과 마굴을 경험한 자!]

그 말은 현존하는 모든 헌터들 중, 가장 많은 실전을 치렀을 거란 의미이기도 했다.

‘공부가 되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해야 할까?

다양한 스킬을 체화하는 과정에서 그 역시 육신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갔고, 덕분에 존슨의 몸놀림을 보며 작게나마 깨달음이라 할 만한 게 생겨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왠지, 스킬의 이해도가 올라간 느낌인데.

게다가 별달리 숙련도 작업을 한 것도 아니건만, 이제 막 익혀놨던 신규 스킬들을 좀 더 매끄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는 만큼 보였고, 또 보이는 만큼 알게 되었다.

“대단해!”

감탄성이 절로 나오는 와중에, 존슨이 외쳤다.

“팝콘 씹냐? 공격 안 해?”

그제야 다급히 마루도 사격을 시작했다.

타탕! 타앙...

**

제주도 하면 뭐가 생각나는가?

돌하르방!

물론, 지금은 그 대부분이 몬스터에게 박살나서 몇 남아있지 않긴 했다.

별 것 없어 보이는 돌덩이였지만, 기이하게도 몬스터들은 이를 참지 못하고 박살내고는 했는데, 학자들의 관찰결과가 놀라웠다.

결계석!

그 위력이 대단하진 않지만, 마수지대의 마기를 흩트리고, 몬스터들의 심기를 거슬리게 할 만큼은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보이는 족족 박살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전통적인 돌하르방은 섬 외곽의 구석자리에서나 살펴볼 수 있었는데, 바로 그 얼마 안 남은 돌하르방 중 하나가 돌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현무암 특유의 송송 뚫린 구멍 속에서, 새하얀 연기가 새어나오더니, 하나의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건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어느새 백발이 성성해 보이는 노인이 되어선, 바닥에 쪼그려 앉아 허리를 두드리는 모습이란, 누가 봐도 완벽한 사람이 맞았다.

특이하게도 이 계절에는 보기 드문 모시옷에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노인은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방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또 왔나?”

그러다가 눈가에 이채를 띄웠다.

“귀한 손님과 함께인가.”

노인이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끄응...날 찾는 게로군.”

고개를 끄덕이며 한라산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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