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 / #11. 사신 변환!
2차 전직 이후로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커다란 변화라고 한다면, 초롱이가 던전을 넘어 바깥세상까지 나올 수 있게 된 점이라거나, 마루의 육신이 한 차례 변화를 얻는 등, 당장 현실적인 변화만 봐도 이 정도였다.
그렇다면 PP 내에서는 어떠할까?
스킬의 진화!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모든 게 변하기보단 마루의 선택에 의해 진화를 고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연공법과 여러 전용 스킬들을 고심하던 끝에, 그가 고른 건 몽크의 대표적인 기술이자, 가장 자주 사용했던 스킬이었다.
‘연공법은 휴식도 필요하고, 몸뚱이도 굴려야 하니까. 이래저래 제한이 있는 것보단, 언제든 발동 가능한 태세전환 스킬이 딱이지.’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태세전환]
이내 스킬을 클릭했고, 진화가 시작됐다.
[태세전환이 사방신의 기운을 받습니다.]
[신수 진화를 시작합니다.]
[띠링!]
[태세전환->사신변환]
[진화가 완료됩니다.]
그 순간 이어진 퀘스트가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사신변환 스킬을 완성하라!]
이게 무슨 헛소린가 싶어서 스킬 목록을 클릭해 보니, 이게 웬일?
[사신변환 - 청룡(!), 백호(?), 현무(?), 주작(?)]
단 하나의 스킬에만 느낌표가 떠 있었는데, 유일하게 사용 가능한 스킬의 목록이기도 했다.
나머지 세 스킬은 사방신의 신물을 통해서만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PP에 사방신 설정이 없는 건 아닌데...’
중앙 대륙에는 세계 각국의 여러 신화가 어우러져 있었고, 거기를 파헤치다 보면 어느 정도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중앙 대륙 진출 이후로 꾸준히 관련 정보를 수집 중이긴 했다.
‘도서관에도 도통 답이 없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현실판 퀘스트였던 것이다.
“아...”
마루의 반응에 노인, 현무암이 웃으며 말했다.
“뭔가 생각나는 게 있나 보군. 사방신과 관련된 것이라면, 아마도 그게 정답일 걸세.”
절망적인 내용이었다.
‘아니, 현실에서 사방신의 신물을 어떻게 찾으라고?’
일말의 기대감을 품은 채, 현무암을 향해 물었다.
“신물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흘...찾아주길 바라지 말게, 스스로 찾는 거라네.”
“하지만 제 앞에 나타나시지 않았습니까.”
“제주도까지 왔잖나. 앞마당까지 왔는데 마중 정도는 나와야지. 게다가 난 이미 어느 정도는 개방된 정보기도 하고.”
그러며 존슨을 바라보는데, 그로 인해서 일종의 ‘락’이 풀렸다는 의미였다. 이에 마루가 재차 물었다.
“어느 정도 방법은 알려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뭐, 소소한 정도라면.”
마른침을 삼키며 귀를 기울였다.
“명당을 찾아보게.”
“...예?”
“자넨, 이곳 제주도가 원래 어떤 장소 같나?”
“휴양지 아닙니까?”
그 말에 현무암이 웃으며 말했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사방신이 있었네. 그 중 몇은 지고한 격을 얻어서 하늘 저 너머로 승천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존재들은 세상에 남아 자연으로 흩어지거나, 자연의 일부가 되고는 했지.”
때로는 산맥의 일부가 되고, 또 어느 때는 바닷길을 새롭게 만들었으며, 언젠가는 저 드높은 하늘에 녹아들며 대기를 단단히 받쳐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슬쩍 땅바닥을 두드린다.
“여기도 그렇다네. 고대의 신수 현무가 죽고 남긴 사체가 기나긴 세월 풍화되어, 이렇게 지도의 한 부분이 된 거라네.”
아찔한 이야기였다.
‘제주도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운데, 현무암이 말했다.
“왜? 믿기지 않나? 신수라는 건 때론 지고한 존재를 태우며 세상을 활보해야 하는 존재라네, 오히려 이 정도 크기가 당연하지. 흘...개중에 좀 큰 편이긴 하지만, 덕분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
찾아보면 이런 장소가 제법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현무암이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자넨 마지막 한 조각만 얻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 말에 마루의 시선이 존슨에게로 향했다.
맞는 말이었다.
앞전에 둘의 대화를 엿들으며, 이미 존슨에게 무언가가 있고, 그게 현무암이 주려던 것과 같다는 걸 직감하고 있었다.
짐작건대 나머지 두 신물 중 하나가 아닐까?
“그 물건에 관해서는 내 관할이 아니야. 히말라야의 그 친구가 저쪽에 넘겼으니, 지금 관리자는 존슨이란 저 사람 몫이네. 그가 자네에게 자격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어련히 넘기겠지.”
“...혹시 시험 같은 거라도 있는 겁니까?”
퀘스트란 언제나 시련이 있기 마련 아니던가.
“흘...날 찾아내는 과정 자체가 문제인데, 뭘 더 시험하겠나. 게다가 난 그분의 의지 앞에서는 약하다네.”
히쭉 웃어 보인 현무암이 제 품을 뒤적였다.
“이것이 내 사명이라네.”
그러더니 자그마한 돌하르방 하나를 꺼내는 것이 아닌가.
“푸른 신수는 이 세상의 마지막 수호자로써, 이건 그분이 떠나기 전, 수많은 현무의 사체에서 모은 정기일세.”
긴 세월 품고 있으며 잘 숙성시켰다며 웃었다.
“참고로 형태는 그냥 내 취향이네. 흘...”
이후 몇몇 주의사항 등이 이어졌다.
**
존슨은 결계 바깥에서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저 안쪽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내용이 들리는 건 아니었다.
‘내가 펼친 결계지만, 진짜 잘 만들었다.’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도 잠시, 그래도 자신이 만들었기에 내부를 엿보는 정도는 할 수 있었고, 덕분에 돌아가는 분위기를 살피는 게 가능했다.
‘마루 저 녀석...뭔가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특별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몰래몰래 엿보길 한참, 문득 노인이 품 안에서 뭔가를 꺼내드는데, 직감적으로 그게 그가 지닌 물건과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형태나 분위기는 달라보였지만, 동일선상에 놓인 무언가 이리라.
그걸 건네며 마치 주의사항을 알리듯 신중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고,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까지 확인했다.
그 즈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것도 저 녀석을 위한 건가.’
가슴팍을 쓰다듬었다. 그곳에 ‘신물’이 있었다.
자신의 것도 마루를 위해 준비된 것일 터, 긴 시간 함께해 온 ‘동료’인 만큼,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품을 다독이며 헤어짐을 대비하는데, 뜻밖의 소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의 신물은 차후를 기약하세나.”
“...예?”
대화가 끝난 뒤, 다시금 결계 안으로 들어왔을 때, 현무암이 그리 말하며 존슨에게 좀 더 신물을 맡기는 것이 아닌가.
그 이유를 묻자,
“워낙 깊이가 있어서, 하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네.”
그러면서 마루에게도 말했다.
“좀 전에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자네가 원래 지니고 있던 그분의 신물은 ‘완성’된 것이기에, 자네를 배려할 수 있는 거지만, 이건 그렇지 않으니 소화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걸세.”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나머지는 굳이 내가 말해주지 않더라도, 자연히 알게 될 게야. 자네에겐 자네만의 놀이마당이 있을 테니. 그곳에서 배우게나.”
묘한 이야기였지만 왠지 이해가 됐다.
‘PP를 말하는 건가.’
마루는 고개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혹시, 이걸 제게 주시면, 어르신께선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뭘 걱정하는지 아네, 그것 덕분에 지금껏 살아올 수 있던 건 사실이긴 하지. 그게 사명이었으니까. 하지만 없다고 해서 바로 끝나는 건 아니라네.”
신물 덕분에 기나긴 세월을 버텨왔지만, 그와 동시에 신물로 인해서 이곳에 묶여있던 것이기도 했다.
“가끔씩 짧게 바깥바람 정도야 쐴 수 있었고, 덕분에 친우들과도 만날 수 있었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네. 하지만 이제 자네로 인해 사명을 마칠 수 있었으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자유로이 훨훨 떠돌아 봐야지. 흘흘...”
그리 말하며 웃는데, 정말 시원한 웃음이었다.
이빨이 듬성듬성 빠져서 그런 게 아니라, 모든 걸 내려놓은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새하얀 미소였다.
만남은 거기까지였다.
**
간만에 잡은 꼬리였다.
그 때문인지 전성기를 떠올리게 할 만큼 무리해가며 능력을 발휘해가며, 뒤를 밟을 수 있었다.
“갑자기 한라산이라...”
데스워치는 새삼스럽단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이런, 위험한 곳을 좋아하는 건 여전하군.”
그 때문에 매번 추격이 쉽지 않았던 것이지 않던가.
‘인디안 존슨!’
어느 시점부턴 그 기척을 잡기가 워낙 어려워져서 더더욱 쉽지 않은 추격이었다.
그 보다 한 수 아래였던 무렵부터 발생했던 기현상으로써, 짐작건대 남다른 탐험 정신으로 인해, 기척을 지워주는 독특한 아티팩트를 얻었을 거라 유추해 볼 뿐이었다.
‘놈...한 곳에 이렇게 장시간 머물다니.’
덕분에 간만에 뒤를 잡은 것이기도 했다.
그냥 따라잡는 걸로는 부족한 탓에, 이처럼 신중히 뒤를 밟은 뒤, 나름의 무대 설치까지 확실히 해야 했다.
‘쥐새끼처럼 날랜 놈이니까...’
어디로 내려올지는 모르지만, 어떤 동선을 타야 선착장으로 갈 수 있을지는 알기에, 올라갔던 방향을 추정하여 대략적인 무대설비를 마쳤다.
데스워치!
그 이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시간과 관련된 스킬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를 극한까지 개발시켜 이면의 랭커가 된 인물이었다.
지금의 상황들은 이를 활용한 것으로써, 시간 조작 능력을 통해서 과거를 읽어내는 초능력, 사이코 메트리를 일부분 흉내 낸 것이다.
여기까지 추격한 것도 그런 과정을 밟은 것이기도 했다.
‘산 중턱에서 더는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는 이유까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준비는 더 쉽겠군.’
거리를 좁히지는 않았지만, 주변 기억을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황파악을 할 수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참에 확실히 끝을 볼 생각이었던 터라, 전성기를 떠올릴 만큼 과감히 손을 쓰는 중이었다.
‘이번에 놓치면 언제 또 만날 줄 알고.’
특히, 각자의 사정을 생각해 봤을 때,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
현무암은 헤어지기 전, 이상한 말을 남겼다.
[과거를 몰고 다니는 자가 뒤를 쫓고 있더군. 조심하게나.]
그 말에 마루는 의문을 느꼈지만, 존슨은 마치 올 게 왔다는 듯한 표정으로, 잔뜩 굳어버린 얼굴로 전에 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절대 나서면 안 된다.”
기이한 건, 그리 말하는 존슨의 표정에서 묘한 슬픔이 묻어나온다는 점이었는데, 그 눈빛에 담긴 깊이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야만 했다.
현무암이 했던 말의 의미를 깨닫는 건, 한라산 마수지대를 막 벗어났을 즈음이었다.
‘누구?’
백발이 성성한 영국 신사 한 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인데, 존슨의 기세가 일변하는 모습을 통해, 현무암의 경고가 노인에게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노인이 대단한 실력자라는 것도 직감했다.
투둑...투둑...툭......
별 기세를 내비친 것도 아니건만, 그의 팔뚝을 타고 오르는 닭살을 보라, 짐작건대 노인의 존재감에 의한 현상이라 여겼다.
묘한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노인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그제야 존슨도 입을 뗐다.
“잘 지내셨습니까?”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
“지난 20년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더니 돌연 벼락같은 기세를 뿜어냈다.
“네 놈 스승이 내 제자를 죽인 그날부터, 단 하루도!”
순간, 마루는 등허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꼈다.
‘맙소사!’
바깥을 살아가는 이들은 모를 것이나, 그는 이면을 살아봤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특히, 존슨을 동경해서 관련한 정보도 따로 수집했던 만큼, 더더욱 노인의 존재를 모른다는 게 말이 안 됐다. 이면의 랭커인 만큼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지만,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데스워치...으음!’
신음성이 절로 나왔다.
‘...결국 그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WHA의 초대 협회장이 형제와 다름없는 친우의 제자를 제 손으로 처단했다는 내용으로써, 이후 친우와 갈라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면에만 떠도는 이야기였는데, 중요한 건 이후의 스토리였다.
‘똑같이 복수한다면서 초대 협회장의 제자를 노린댔지.’
그리고 그게 존슨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부분에서 또 다른 풍문의 진위여부도 확인할 수 있었다.
‘존슨이 초대 협회장의 제자라는 게 진짜였구나.’
하나같이 이면과 얽혀있어서, 바깥에선 제대로 듣기가 어려운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의 영웅이 어째서 스승의 유지가 깃든 WHA를 떠난 것인지, 관련한 풍문도 속속들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흔들며 털어버렸다.
지금 중요한 건, 데스워치와 제로원의 역사였다.
“스승님께선 돌아가셨습니다.”
“안다, 알아!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거냐? 애초에 나는 똑같이 복수하겠다고 결심했었다. 놈이 내 제자를 죽였으니, 나는 놈의 제자를 죽이는 거다. 놈이 살아있건 없건, 달라지는 건 없어!”
결국 존슨이 목표라는 건 변함없었다.
“저승에 있는 네 놈 스승이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만들 거다. 반드시 통곡하게 만들 것이야!”
그 외침과 동시에 데스워치의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파문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러나!”
이에 존슨이 마루를 향해 외치며 훌쩍 뛰어올랐다. 다급히 몸을 빼는 마루의 시야 가득, 다양한 시침과 초침들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대체, 이건...뭐야?’
두 눈을 휘둥그레 뜨는 와중에, 존슨의 외침이 들려왔다.
“좋습니다! 저도 더 이상은 도망만 다니기도 지긋지긋 하니, 오늘 제대로 한 번 붙어봅시다. 기나긴 악연도 오늘로 끝을 맺는 겁니다!”
왤까?
마루는 그의 뒷모습에서 눈물 자국을 본 것 같았다.
그건 과연, 착각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