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 / #12. 데스워치.
WHA의 초대 협회장과 데스워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다.
형제 같은 친우라는 건, 정말 말 그대로 형제처럼 자란 까닭이었는데, 그들의 집이 옆집이라거나 한 동네를 살았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같은 고아원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커 온 것이다.
친우?
피만 안 섞였다 뿐이지, 형제였다.
그 같은 이유로 존슨에게 있어서 데스워치란 삼촌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자주 웃고 떠들며, 때론 그에게 인생 상담을 하고 술잔도 기울였고, 언젠가는 함께 클럽을 쏘다니는 등, 청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곤 했다.
이들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 건, 데스워치에게 제자가 생긴 이후부터였다. 마치 친 아들처럼 아끼며 살피는 모습에, 존슨 역시 잘해주려 자주 찾았다.
처음에는 잘 지냈다.
형제나 다름없는 스승들처럼, 제자들 역시 또 다른 형제처럼 어울렸다.
그러던 중, 불현 듯 깨달았다.
‘가짜!’
데스워치의 제자가 평소 보여주는 행동 속에, 진실은 단 1%도 섞여있지 않음을 알아버렸다.
놈은 천사 같은 얼굴로 햇살처럼 웃을 줄 알았지만, 그 폐부 깊숙한 곳에는 악마가 숨을 쉬고 있었다.
어둔 골목길 사이로, 천사처럼 웃으며 어린 길고양이의 목을 비트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소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스승 역시 이를 알아버렸다.
WHA의 협회장으로써 종래에는 그 스스로를 희생해 대격변을 막았을 만큼, 그는 정의에 대한 철학이 남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의 연을 끊는 건 불가능했던 걸까?
몇 차례 경고를 남겼고, 그 때문에 놈도 자제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더 은밀하고, 더 음흉해졌었지.’
존슨은 당시를 기억한다.
‘삼촌마저 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으니...’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살육의 현장까지 발각되어 버렸다.
스승의 마지막 인내가 끊어지기에 충분한 사건이었고, 결국 직접 놈의 목숨을 끊어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일로 데스워치와의 관계는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아들처럼 여기던 제자임을 알기에, 놈이 어떤 악독한 짓을 꾸며왔는지 차마 밝히지 못했다.
‘천천히 대화로 풀어가려 하셨는데...’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대격변!
그의 스승은 그렇게 홀로 데스워치의 비난을 껴안은 채, 최후의 날을 맞이했다.
아주 잠시 옛 추억이 잔상처럼 스쳐갔고, 그 여파로 데스워치가 깔아놓은 함정에 걸려버렸다.
순간, 시야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
‘후...이것도 오랜만이네.’
그는 삼촌이라 불렀던 사내의 스킬명을 떠올렸다.
‘페스트 푸드(Past Pood)!’
왠지 건강과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명칭으로써, 포만감을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과거(Past)를 불러오고, 무게(Pood)로써 대가를 치르는 스킬...’
제 가족에게도 밝히지 않는 게 스킬이건만, 그 명칭을 비롯하여 능력치까지 알고 있는 건?
그만큼 가까운 사이였던 것이다.
‘삼촌...’
입술을 짓씹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이 공간 곳곳에는 데스워치가 깔아놓은 과거 소환의 지뢰들이 잔뜩 설치되었으리라.
수많은 시침과 분침 초침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저 중에 직접적으로 그를 괴롭힐 만한 건, 초침으로 보이는 가장 작은 바늘들이었다.
다른 것들은 주변 과거의 기억을 불러오지만, 저건 그의 과거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겨우 1초, 어쩌면 그보다 짧은 시간일까?
‘하지만 무서운 경험이지.’
다른 것들은 즉각적으로 환상처럼 그를 위협하지만, 저 작은 바늘은 그의 뇌리에 지속적인 기억을 강요한다.
‘좀 전에 했던 행동을 다시 하게 만드는 스킬...’
마치 건망증처럼, 앞전 상황을 인식하게 만들며 했던 걸 반복하도록 강요하는 것인데, 분명 했다는 걸 알면서도, 정말 했나? 이런 식의 의문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중첩이 된단 점이었고, 그러한 강요가 쌓이다 보면?
‘...건망증이 치매가 되는 거지.’
전투 중에는 특히 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였다. 오른쪽으로 피해야 하는 순간이건만, 좀 전에 왼쪽으로 피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똑같이 행동하면서, 상대의 공격에 뛰어드는 꼴이 나는 것이다.
“후웁!”
지금도 그랬다.
‘위험했어.’
아직 소중첩 상태인데다가, 여러 위험지역을 돌아다니며 쌓아올린 강한 정신력이 있어, 과거 강요를 외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역으로 반격을 내지르는데, 그 순간 데스워치가 말도 안 되는 각도로 방향전환을 하며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마치 벽처럼 차는 모습에, 옛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과거 소환...’
존슨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나, 저 장소에 분명 뭔가가 머물렀던 과거가 있으리라.
낙엽 하나로도 충분했다.
과거는 불변이다!
그 진리를 내세울 경우, 낙엽 하나라도 천근의 무게를 지닌 채, 든든한 받침대가 되어주는 것이다.
‘저 재주로 물 위를 걷기도 했었지.’
마치 신화 속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만큼 인상적이었고, 그 탓에 당시 기억은 지금도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데스워치는 이런 과거들을 중간중간 소환해가며, 변칙적인 공격이 가능했다.
‘확실히 사기적인 능력이지.’
바로 그 때문에 제자에게 노려진 거였다.
‘그 개자식은 스킬도 거지같은 걸 가지고 있어선...’
정확한 명칭 같은 건 모른다. 단지 스승에게 들어서 짐작만 할 뿐이었다.
[놈은 타인의 스킬을 훔치더구나.]
짐작건대 데스워치에게도 계획적으로 접근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용량이 얼마 만큼일지, 또 어느 정도의 스킬을 지녔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스승에게 들은 건 분명 대단했다.
‘마지막에 발악하면서 쏟아낸 스킬만 9개였댔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대량 멀티 스킬 보유자였다.
‘미래 예측도 훔쳐낸 거였겠지.’
시간이라는 공통점으로 데스워치에게 접근했고, 동질감을 얻어낸 뒤 동정심을 유발하며, 그렇게 사제의 연을 맺은 것이리라.
파아아앗...
시야를 가득 메운 시침과 분침들이 어지럽게 돌아가는 게 보였다.
‘오는구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이 장소에 발생한 과거 기억들이 무수히 펼쳐지며 환상처럼 그를 덮쳐들 터였다. 개중 몇몇은 앞서 데스워치의 발받침처럼 고정불변의 진리로써, 현상계에 영향을 주는 놈들도 있을 터, 바싹 긴장한 채 이를 피해내야 하는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이미 하고 있었지만...쉽지 않네.’
정체가 드러났음에도 한 장소에 오래 머물렀기에, 결국 데스워치와 맞부딪치는 순간이 올 줄 알았다.
무대준비까지 완벽할 거란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막상 마주하니 입안이 바싹 말랐다.
‘할 수 있다! 해 내야 한다!’
스스로를 다독였다.
지난 시간, 남다른 도전과 모험을 즐기면서 스스로를 채찍질을 해 오지 않았던가. 오늘 그 결과물을 전부 쏟아낼 것이다.
“이야아아아압!”
평소의 그라면 잘 하지 않을 기합성까지 내지르며, 시계의 환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
상대가 왜 데스워치라 불리는지, 이제는 모를 수가 없었다.
‘저런 많은 시간을 부리다니...’
심지어 그 중에는 그와 존슨의 모습도 일부 스쳐갔는데, 바로 그 부분에서 상대 능력을 유추하는 게 가능했다.
여기서 놀라운 건 이는 현재 이 장소의 과거가 아닌, 다른 장소의 과거를 끌어온 최상위의 기술이란 점이었다.
언뜻, 환상계의 능력자로 착각할 수 있으나 튕겨져 날아온 몇몇 과거 현상의 잔재로 인해, 일반적인 환상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우웃!”
화들짝 놀라며 물러났다.
과거는 불변!
그 진리를 앞세우지만, 사실 그게 통용되는 건 데스워치의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 내에서였다.
존슨의 단련된 육체는 그 불변성을 박살내기에 충분할 만큼 강건했다.
최대한 회피하고 있으나, 이곳은 상대가 마련한 전장이었고, 그 때문에 마찰을 피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렇게 부딪치고 튕겨져 나온 현상 중 몇몇이 마루를 한 것인데, 이를 직접 쳐 냈던 마루는 깜짝 놀라야만 했다.
‘이 정도 반동이라니...’
가벼운 파편에도 불구하고 손끝에 남는 저릿함이 놀라웠다. 자칫 방심했다간 마비가 왔을 정도였다.
슬그머니 거리를 더 벌렸다.
‘그나저나...역시 대단하네!’
데스워치도 데스워치지만, 역시나 그의 감상을 일깨우는 건 존슨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동일한 근접 박투의 전공자다 보니, 더더욱 느껴지는 바가 남달랐다.
‘와...몇 수 앞을 생각한 거야?’
공격을 하는 존슨에게서 몇몇 이해되지 않는 시선처리가 보였다.
과거 기억의 강요로 인한 시선 오류의 경우, 정말로 마루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존슨 스스로 의도한 시선은 마루도 읽어 낼 수 있었다.
그건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눈길이었고, 잠시의 시간이 흐르면 그 시선처리를 정확히 쫓아가는 몸놀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렇게까지 수를 유도하는 이유가 뭘까?’
옆에서 지켜보는 걸로는 알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단지 그렇게 만들어내는 결과물에 대해선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미쳤네!’
마치, 언젠가 그의 건가드 영상을 보며, 여러 헌터들이 박수를 쳤던 것처럼, 존슨의 설계도는 그에게 놀라움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난 이렇게 할 테니, 넌 어떻게 할 테냐?
이런 게 아니었다.
난 이렇게 할 테니, 너도 이렇게 해라!
그렇게 선언하는 것처럼 시선처리로 대놓고 보여주기도 하건만, 전투가 이어지다 보면 정말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다.
한 예로, 오른쪽으로 피하면 스트레이트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왼쪽에는 잽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택지는 주지만, 둘 다 정답이면서 오답인 것이다.
‘미쳤어!’
전율이 등허리를 타고 올라왔다.
**
데스워치는 이를 악물었다.
‘이놈, 더 괴물이 됐구나!’
한 때는 수시로 맞부딪치며 치고받았건만, 언젠가부터 기척을 잡기 어려워, 마찰의 발생률이 줄어들며, 부딪치는 일이 드물어져버렸다.
그래서 존슨에 대한 기본 기억이 과거에 머물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세월의 흐름과 간간히 촬영되는 존슨의 영상을 통해 분석한 뒤, 상대 수준의 격차를 조정하는 걸 잊지 않기는 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앞서간 수준이었다.
“허억...헉...허어억...”
여전히 존슨은 그의 스킬 위에 갇혀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해가 더 컸다.
빠른 속도로 체력이 깎여나가고 있었다.
이는 스킬 특성상, 과도한 시계의 현상화로 인한 등가교환의 법칙이 작용하며, 강대한 압박감이 전신을 짓누르는 까닭이었다.
환상만 불러와서 조정한다면 부담이 적겠으나, 최대한 많은 과거를 현상으로 가져온 상태였다.
게다가 존슨에게 작용되는 초침 중첩을 꾸준히 유지하기 위해, 스킬에 한 줌의 텀도 없이 발동시키다 보니, 매 순간 몸이 무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골 때리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뒷걸음질을 치고 있단 점이었다.
‘세월이 야속하군!’
전성기를 한참 지난 그와 다르게, 존슨은 여전히 전성기의 한 시절을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존슨 역시 50을 넘긴 나이라지만, 능력자를 일반인과 같은 시점에서 보면 안 되는 것이다.
‘완전 농락당하는 꼴이군.’
존슨은 그에게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꾸준히 제시하고 있었다.
극단적인 두 가지 길이 있다.
삶과 죽음!
이를 악 물며 소리쳤다.
“절대 도망가지 않는다. 흐아아압!”
비명인지 기합성인지 모를 외침과 함께, 어깨를 짓누르는 압박감을 끌고 나아갔다.
**
혹시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활로를 열어놨건만, 결국 퇴로가 아닌 전진을 선택하는 데스워치의 모습에 가슴이 울컥거렸다.
‘삼촌...’
저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납득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바임을 알기에, 그 역시 걸음을 내딛었다.
‘마지막은 확실하게!’
데스워치가 원하는 걸 선물해 줄 수 있단 확신이 든 건, 그로써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준비기간이 너무 길었지.’
그래도 포장지를 뜯는 건 찰나였다.
“푸후우우우...”
기세가 일변했다.
관전하던 마루가 돌연 오금이 풀리는 걸 느끼던 순간이기도 했다.
섬광이 지나가고,
번쩍!
벽 너머의 세계가 아주 잠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쿠르르르릉...
산자락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