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 / #14. 흑화한당!
자그마한 돌하르방을 보며 고민했다.
“이걸...삼켜야 하나?”
마루는 오염된 여의주를 흡수할 무렵, 그 당시의 기억을 상기하며, 일단 그 방면으로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이번 건 삼키기엔 부담감이 너무 컸다.
‘크기도 그렇고...모양도...’
그 같은 이유로 일단 품에 안고서 PP에 접속해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마침, 존슨도 동네 마실을 나간 상황이다 보니, 이 틈을 이용해서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아무래도 게임을 통해 성장하는 탓일까?
접속과 성장 과정 속에서, 그도 모르는 어떤 변화가 현실에서 발생할까 걱정 돼, 존슨이 머무는 중에는 되도록 접속을 자제하고 있었다.
가끔 접속하더라도 쌍둥이들에게 몇몇 지시를 내리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 때문에 성장도가 뜻밖의 정체구간에 걸린 상황이었지만, 존슨의 경험담과 여러 노하우를 전해 받은 걸 생각해 본다면, 결코 시간낭비나 손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이를 통해서 게임의 지원 없이, 순수하게 스스로의 깨달음을 얻어, 작게나마 한 걸음 나아가기도 했다.
이래저래 알찬 시간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존슨이 없는 틈을 타 접속한 뒤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혹시?’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인벤을 열었고, 그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흑화한단(黑和限團)]
돌하르방이 요상한 이름을 지닌 채 담겨있었다. 그걸 꺼내드는 순간이었다.
-킁킁...킁...우왓! 이거 뭐야?
초롱이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인벤을 나오는가 싶더니, 화들짝 놀란 얼굴로 신물을 껴안았다. 그러더니 마치 사탕이라도 되는 듯, 혓바닥으로 이리저리 핥아대는 것이 아닌가.
-마...맛있어! 우와아앙~!
정말로 사탕인가 싶은 의혹이 드는 순간이었다.
-흑화한당~!
왠지 위험한 맛이란 의심도 들었다.
실제로도 꼬마 드래곤은 취기라도 올라오는지, 반쯤 헤롱 거리는 표정으로 돌하르방을 껴안고 뒤집는 등, 몸부림을 치며 난리를 부렸다.
-이히히~히히!
전형적인 주사의 한 장면이었다.
이건 위험하다 싶어서 강제로 떼어놓고 다독이니, 오래지 않아 고롱거리며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를 조심스레 여의주 속으로 돌려보낸 뒤, 돌하르방은 인벤을 조작해 격리시켰다.
“요거, 아주 위험한 물건일세.”
짧게 감상평을 늘어놓은 뒤, 스킬창을 열었다.
[사신변환 - 청룡(!), 백호(?), 현무(?!), 주작(?)]
과연, 스킬창에 변화가 생긴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 물음표와 느낌표가 공존하고 있는 모습에 의아해 클릭해 보니, 뜻밖의 내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신변환 - 현무 계승 중(진행률 : 1%)]
이런 식으로 변화가 발생한 것인데, 자연스레 현무암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워낙 깊이가 있어서, 하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도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가운데, 문득 궁금해졌다.
‘사신변환이 완성되면 어떤 모습일까?’
기존 태세전환은 기본 3%의 증가에서 시작해, 전환기의 증가에 따라 3%씩 추가되며, 최종적으로 15%까지 이르렀다.
물론,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각 스킬을 전환시키는 게 중요한데, 한 가지 스킬만 장기 유지할 경우엔 12%효과에서 끝이었다.
괜히 전환기라 불리는 게 아니다.
어쨌든 그런 태세전환과 달리, 사신변환은 시작부터 기본 10%에서 스타트를 끊었다.
무려 3배나 뻥튀기된 것이다.
기대감이 커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
마루의 건가드 영상은 해외에서 상당한 화제가 됐다.
이는 광호 길드의 구정국이 직접 전문가를 통해 작업을 한 결과였는데, 과정이야 어찌 됐건 한 차례 불꽃을 피운 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반면에 한국 내에서는 그 영상의 화제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었는데, 이는 중간에 구정국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라기 보단, 애초에 한국에서는 천천히 끓어오르게 조장을 해 놨기 때문이었다.
그 화제성이 올라오는 사이, 이런저런 물밑작업을 펼쳐서 짧고 굵게 사건을 터트리는 게 아닌, 굵고 길게 이야기를 끌고 나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런 던전의 연속 승급으로 인해, 상황이 급변하면서 그에 관한 통제권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구정국이 깔아놓은 기존 억제력이 유지되는 탓인지, 마루의 영상은 한국 내에서는 화제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터 관련 사이트를 살피는 이들 사이에선, 분명한 인지도를 얻어나가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서 특히 영상을 자주 돌려보는 이들은 헌터 아카데미의 교육생이나, 이를 준비 중인 수험생들이었는데, 그만큼 마루의 건가드는 퀄리티가 뛰어나다 보니, 자연스레 발생한 현상이었다.
임시안 역시 그들 중 한명이었다.
헌터 아카데미를 지원했다가 전부 떨어지고, 군 입대를 계획 중이던 찰나, 영상을 발견하고 흠뻑 빠진 것이다.
더더욱 놀라운 건, 여동생의 이야기를 따르면 인연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닌가.
‘장관장...’
너무나도 배우고 싶은 건가드의 주인공이 지인이었다.
그를 만나고 싶어 아카데미 준비한다며 접어뒀던 PP도 다시 시작했는데, 어쩐 일인지 최근 접속률이 낮아져서,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따로 메시지를 넣어 놓기도 했다.
[간만에 파티 한 번 하실래요?]
적당히 어울리다 슬쩍 현실에서의 만남을 계획해 볼까 싶었는데, 이마저도 답장이 없어서 허사가 됐다.
이래저래 만날 기회가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마음만 급해져왔고, 결국 고민하고 또 고심하다 결정을 내렸다.
“누나!”
평소 자제하던 인맥을 사용하기로 했다.
“갑자기 만나자고 하고, 웬 일이야?”
KHA의 직원인 김나연을 찾아간 것이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네가?”
의외라는 얼굴로 사촌동생을 바라보다,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한 마디 했다.
“아카데미에 소개서 써 달라는 거면, 부모님 허락 먼저 받아와야 된다.”
겨우 일개 직원이 무슨 소개서냐 싶겠지만, 그녀는 KHA의 직원이기 이전에 대형 길드의 직계였다.
아는 이들이 별로 없긴 하나, 어쨌든 이를 앞세운다면 임시안을 억지로 합격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그런 부탁이었으면, 차라리 고모부를 찾아갔지.”
‘수미 누나도 있고.’
한참 성장세에 있는 블록 길드 특수 1팀의 진수미와도 사촌이다 보니, 그 방면으로 추천서를 얻는 방법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건, 부모님께서 주변 지인에게 기대는 걸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쳇...고모부만 나서도 참 편할 텐데...’
참으로 절묘한 인연으로써, 고모의 딸이 김나연이었고, 이모의 딸은 진수미였는데, 그 양쪽 모두 헌터 업계에서 활약하는 중이었다.
“그래? 그렇다면야...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게 뭔데?”
김나연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바라보는 가운데, 임시안이 최근 1픽이 된 영상을 재생시켰다.
“이 사람을...”
‘찾아주라.’
그렇게 말을 끝맺기도 전에 답이 나와 버렸다.
“어? 마루씨 영상이네.”
눈이 휘둥그레진 가운데, 김나연이 이야기를 이었다.
“너도 이 영상 봤구나.”
“...아는 사람이야?”
왠지 그런 기색이라 물으니,
“당연하지. 작년까지만 해도 주기적으로 각성 측정하러 찾아왔는데.”
그 순간 임시안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에게는 다양한 버전의 건가드 영상이 존재했는데, 개중에는 얼굴이 자세히 나온 촬영본도 있었다.
“설마...”
그 영상 속 얼굴은 분명 30대를 훌쩍 넘긴 것으로써, 게임 속 장관장과도 제법 매치가 되는 연령대였다.
김나연이 동생의 반응에 아차 싶어서는 입을 막다가, 이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사실, 이거 비밀인데, 이 아저씨가 작년에 잠깐 화제가 됐던 늦깎이 각성자야.”
“맙소사!”
그 순간 마루를 만나고 싶은 이유가 한 가지 더 늘어났다.
**
아직 몸 상태가 정상인 건 아니었다.
“푸후우우...”
존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척, 태연을 가장하며 동네를 돌고는 했다.
그를 지켜보고 있을 무수한 시선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는 위치였다.
‘제퍼드!’
데스워치를 통해 놈의 계획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상황 변화도 전해 받았다. 그렇잖아도 유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건가.’
생각 이상으로 복잡한 위치에 있음을 알았다.
‘어지간하면 모른 척 지나갔을 텐데...’
상대의 위치나 중요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더 돌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사에 개입하는 걸 자제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철저히 던전을 파헤치고, 마굴을 헤집으며,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로써 남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인간사에 개입할 때가 있었는데, 이번 것 역시 그런 경우에 포함되는 상황이었다.
‘역린은 건드리면 안 되는 거야.’
제퍼드, 그는 뒤집힌 비늘을 뒤집었다.
**
이게 참 당혹스럽다고 해야 할까?
“아무것도 안 하고 월급 받는 것도 참, 민망하네.”
마루는 그리 중얼거리면서도 연신 올라가는 입 꼬리를 감출 수가 없었다.
승급현상 이후, 여전히 그의 길드 활동은 휴면상태였는데, 이는 그의 자격증이 혜성 특수 1팀의 상황과 안 어울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던전 수준이 수준이다 보니, 생각 이상으로 안정화가 오래 걸리고 있었는데, 그래도 혜성이란 이름값은 하는 것인지, 안전지대 구축은 끝냈다는 것이다.
‘B급으로 올려야 하나?’
그 때문에 아주 잠시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다는 생각으로 애써 자제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놀고 있건만, 혜성에선 월급을 쏴 줬다.
분명, 용병 계약임에도 불구하고 정식 계약에 버금가는 형식을 갖춘 탓일까?
다달이 기본급이 들어오는 것이다.
헌팅 후 정산 비율을 조절하는 걸로도 충분하건만, 이렇게까지 대우를 해 주니, 이래저래 혜성에 애정이 쌓여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언젠가는 그만의 팀을 만들려 계획하고 있지만, 일단 그 전까지는 최대한 비벼볼 생각이었다.
‘혜성의 노하우도 최대한 빨아먹어야지.’
한 번 꽂은 빨대는 최대한 오래 찍어놓는 것이다.
“놀면서 먹는 월급이란...캬아~취한다!”
새삼 대기업의 위상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순간이었다.
‘그나저나...이 형님은 요새 바쁘네.’
마루는 존슨의 빈자리를 바라봤다.
슬슬 몸 상태가 괜찮아진다 싶더니만, 동네 마실을 넘어 지역 마실을 나가버린 듯싶었다.
‘역시, 그것 때문인가?’
본의 아니게 데스워치의 유언까지 들어버리지 않았던가. 거기까지 이르는 모든 대화도 엿들어 버렸고, 그 때문에 존슨을 신경 쓰게 만드는 ‘상황’도 알게 되었다.
‘이반나하고 그렇고 그런 사이였을 줄이야.’
물론, 이에 관해선 약간 일방적 관계다 보니, 그가 생각하는 바와 좀 달랐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로 존슨의 외출이 조금씩 잦아지고 또 길어지고 있었다.
짐작건대 그 나름의 인맥을 통해, 이런저런 조사 및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제퍼드...유럽의 키메라!’
그 역시 키홀과의 마찰이 있던 탓에, 이래저래 신경이 쓰이는 인물이기도 했다.
“응원만 할 게 아니라, 나도 좀 거들어야 되나?”
그는 레베카를 불렀다. 존슨 때문에 접촉을 자제하고 있던 터라, 얼굴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키홀에 대해서는 꾸준히 조사하고 있지?”
“예. 아무래도 현재 가장 신경 쓰이는 집단이니까요.”
다행이라 여겼다.
“그 자료들 좀 보고 싶은데.”
기다렸다는 듯 레베카가 문자를 보냈고, 관련 파일이 한 가득 날아들었다.
과연, 손꼽히는 전문가답다고 해야 할까?
‘와...’
실로 어마어마한 자료들이었는데, 거기에는 데스워치가 했던 이야기들 중, 정보가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도 여럿 담겨있었다.
‘유럽이 이런 걸 준비 중이었어?’
잠시 고민하던 그가 레베카를 향해 물었다.
“이 자료를 형님께 보여줘도 될까?”
존슨도 나름의 정보력을 갖추고 있겠지만, 기왕이면 여러 관점에서 다양하게 자료가 구비되는 게 낫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미 그에게는 현무암 사건 등으로 인해, 자신의 특별함이 발각된 상태인 만큼, 어느 정도는 드러내도 괜찮다는 결론도 내린 상태였다.
그의 물음에 레베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손을 떠난 자료입니다. 애초부터 마루님을 위해...”
“어라? 저번에 호칭 정리 끝냈잖아?”
“...오빠를 위해 준비한 거니까. 편하게 사용하면 됩니다.”
“기왕이면 말투도 더 부드럽게 해 주면 좋을 텐데.”
그에 대해선 반응이 없었다. 호칭도 겨우 바꿔놓은 만큼, 당장 거기까지 바라는 건 욕심임을 알기에, 마루는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
해가 떨어진 뒤에야 귀가한 존슨은 뜻밖의 자료에 놀라버렸다.
“이거, 뭐냐?”
그 물음에 마루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키홀은 나도 맘에 안 들어서. 따로 준비해 봤는데, 어째 도움은 좀 되겠어?”
존슨은 그 물음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허...당연하지! 이거, 나도 구하기 힘든 정보도 상당하잖아.”
그러더니 마루를 향해 물었다.
“너 진짜 정체가 뭐냐?”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그 얼굴에, 마루가 웃으며 말했다.
“브라더!”
존슨의 짜게 식은 표정이 뒤따랐다.
“......”
상처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