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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 / #15. 선 제시.

2020년 대격변이 발생하고, 세계는 던전과 몬스터라는 새로운 세상과 조우했다.

이 무렵 등장하기 시작한 수많은 각성자들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 갑작스런 변화 속에서, 세계 균형의 일부분이 무너졌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1세대 각성자들의 활약 속에, 세계는 안정을 찾아갔고, 다시금 일상을 회복해갔다.

1세대 각성자!

사실, 세상은 잘못 알고 있다.

그 무렵에 등장한 모든 각성자를 1세대로 표현하고 있지만, 각성자들은 2020년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몬스터 역시 그 전부터 세상 이면을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대격변이라 불리면서, 세상 표면에 드러난 게 2020년일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1세대 각성자들은 사실 두 종류로 나뉘어야 했다.

0세대와 1세대!

데스워치는 바로 그런 0세대 각성자였다.

어쩌면 현장을 뛰는 마지막 0세대 각성자일지도 몰랐다. 아직 살아있는 이들이야 제법 될 것이나, 대부분이 10~20년 즈음에 은퇴한지 오래였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면의 헌터라고는 하나 나름의 상징성을 지닌 각성자이기도 했다.

게다가 한때나마 최강에 가장 가까웠던 사내로 불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한 시대를 대표할만한 존재인 것이다.

WHA의 초대 협회장 마르코의 등 뒤를 지키던 만큼, 그 강함이야 오래 전부터 증명됐다. 물론 둘 사이의 관계가 어긋나며 멀어지긴 했지만, 손꼽히는 강자인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자연히 그에게로 쏠리는 시선도 한 둘이 아니었다.

그 때문일까?

-데스워치가...죽었다?

이면의 주민답지 않은 관심도 속에서, 그의 부재가 빠른 속도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비록 표면에 드러날 수 없는 사건이지만, 업계에 귀가 열린 이라면, 누구하나 빠질 것 없이 관련한 소문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존슨 VS 데스워치!

두 사람의 매치가 이뤄졌음이 밝혀졌고, 여전히 멀쩡한 존슨과 달리, 그 어디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데스워치!

소문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망할 영감탱이!”

제퍼드는 전에 없이 분노했다.

평소 격식 있는 말투를 사용하던 그가 이처럼 막말을 일삼는다는 게 증거였다.

“감히! 내 호의를 이렇게 무시해?”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계획마저도 망가트려 놓았다. 존슨과의 악연을 상기하며, 훌륭한 체스 말이 되어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더더욱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최소 나이트(Knight)급, 어쩌면 면 퀸(Queen)이 될 수도 있는 체스 말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멋대로 달려들었으면, 이겨야지! 아니, 적어도 살아 나오기라도 해야 할 거 아니야!”

특히, 그의 이름값을 팔아가며 미국 이면의 주민들을 여럿 끌어들인 만큼, 상황이 더더욱 골 때리게 되어버린 것이다.

“존슨...으득! 존슨! 인디안 존슨!”

분노에 찬 음성이 방안 가득 터져 나왔고, 밖에서 대기 중이던 카일리를 비롯한 키홀의 일원들은 몸서리를 치며, 두려움에 벌벌 떨어야만 했다.

**

“결국...그렇게 됐나.”

이반나는 어느 정도 둘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었던 터라, 그 승부의 결말이 그리 후련하진 않았으리라 여겼다.

‘찾아가 봐야 하나?’

핸드폰을 들고 고민하던 것도 잠시, 아무래도 직접 만나러 가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타이밍에 찾아온 얼굴이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선배!”

“...너?”

정말로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게 절대 이곳 ‘한국’에 있을 수 없는, 있어선 안 되는 얼굴이 그녀 앞에 나타난 까닭이었다.

“이...선?”

미국의 3번째 영웅이 나타난 것이다.

“변함없이 소녀 같네요.”

그가 웃으며 이야기한다.

‘......’

첫사랑의 미소였다.

**

인디안 존슨!

1세대 각성자로써 그의 명성은 WHA의 초대 협회장과도 비견될 거라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 만큼 그에게 쏠리는 시선 역시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관심이 자연스레 그 주변인에게 번져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했다.

“정마루!”

이미 그의 이름은 여러 길드의 입방아에 오른지 꽤 됐다. 존슨이 곁에 머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었다.

게다가 건가드 영상으로 인해,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이름이 되기도 했다.

혜성이라는 간판 덕분에 쉬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숙박중인 존슨의 무게감이 얹어졌으니, 이래저래 눈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에 데스워치의 이름값까지 더해졌다.

존슨과 데스워치, 그 승부가 어떻게 된 건지, 아직까진 그럴싸한 가설만 난무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루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저들의 최종 목적지에 함께했기 때문이다. 제주도행 배편만 확인해 봐도 이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데스워치야 바닷길을 건너긴 했다.

하지만 그의 동선은 꾸준히 체크되고 있다 보니, 그 부분들을 조합하여 구도를 잡아내는 건 어려운 게 아니었다.

그 때문일까?

마루를 찾는 이들이 늘어버렸다.

“묻고 싶은 게 있다!”

이 같은 말과 함께 은밀히 찾아드는 것인데, 그에 대한 마루의 대처는 간단했다.

“안 사요! 도 말고 돌 믿습니다! 알라 후 아크바르!”

손을 휘휘 저으며 빠르게 멀어져버리는 게 답이었다. 당연히 상대의 반응도 좋을 수가 없었다.

“장난하는 거냐!”

“이런, 씨발!”

버럭 성을 내면서 이를 드러내는데, 그럴 때면 마루는 자신이 왜 유명세를 탔는지, 그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푸슉! 퓨퓨퓩...

건가드를 직관하는 영광을 안겨준 채, 찾아오는 족족 쫓아내고 행패를 부리는 족족 박살내줬다.

“끄아아아아악...”

알탈의 현장이었다.

물론, 그라고 해서 처음부터 이런 반응을 보인 건 아니었다.

“저도 잘 모릅니다.”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자,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그리 이야기하며 발을 빼고자 했는데, 이를 쉬이 믿어주지 않는 것이다.

“죽었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째선지 이마저도 쉬이 믿으려 하질 않았다.

“갑자기 말을 바꾸는 게 이상한데?”

“좀 더 자세히 대화를 나눠봤으면 좋겠는데.”

“따로 시간 좀 내줄 수 있겠나?”

“우리와 함께 가자.”

특수 능력자를 통해, 진실 여부를 판별하려는 것이다.

저들이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강짜를 부리니, 슬슬 마루의 대처도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고, 종래에는 총질까지 난무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저들이 존슨의 존재를 알면서도 찾아오는 이유가 뭘까?

“후우...요즘 집 비우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가?”

데스워치와의 마지막 대화 때문인지, 몸이 좀 괜찮아 진 이후로는 외출이 잦아졌고, 그로 인해 발생한 공백의 시간이 점차 늘어나자, 눈치만 보던 이들이 하나 둘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존슨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인지, 이름깨나 날리는 이들이 직접 오기보단, 적당히 푼돈으로 부려먹는 놈들뿐이라, 적당히 손봐주는 걸로 충분하단 점이었다.

“이 흐름이면, 그것도 얼마 안 갈 것 같긴 한데.”

마루는 그리 중얼거리다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주둥이를 잘 못 놀렸다며 제 입을 매질하는 사이, 그의 전방을 가로막는 얼굴들이 있었다.

한 눈에 정체를 알아봤다.

‘키홀...’

모를 수가 없었다.

북한산에서 쌍둥이들과 함께 한 차례 마찰을 빗은 바 있던, 바로 그 얼굴들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을 이끌던 이도 함께 있는 게, 단단히 작정하고 온 느낌이었다.

당연히 아는 척을 하진 않았다.

“나마스떼!”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적당히 헛소리를 하며 발길을 돌렸다.

‘아...그냥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어야 하나?’

하지만 입이 늘어나서, 자주 먹을거리를 사러 나와야 했다. 지금도 장 보러 나오는 길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집에만 있으면, 아예 집으로 찾아올지도 모르니.’

이래저래 골 때리는 상황이었다.

“길 좀 묻겠습니다.”

무리의 리더, 카일리가 그리 말하며 접근했다.

그의 헛소리에도 불구하고 제법 정중한 태도로 말문을 건네 오는데, 이마저도 무시할 수 없어 결국 받아줘야 했다.

“왜요? 데스워치가 어디 사는지 궁금합니까?”

정곡이었던 걸까?

뜨끔한 얼굴로 카일리가 바라보는 가운데, 마루가 짜증 섞인 음성으로 한 소리를 늘어놨다.

“아니. 대체, 모른다고 하는데, 왜 자꾸 찾아와서 사람 귀찮게 하고 지랄이야. 뒈졌다고 하면 못 믿겠다고 또 지랄이고, 어쩌라는 건데? 아오, 썅! 정말 대가리에 총구녕을 내 줘야 정신을 차릴래? 부랄 한 짝으로는 개념이 안 차?”

뜬금없는 막말 퍼레이드에 카일리는 벙찐 표정이 된 채, 사정없이 귀지를 채워 넣어야만 했다.

“카~악, 퉤잇!”

그렇게 어벙벙한 와중에 마루가 한바탕 퍼붓고 난 뒤, 마무리로 걸쭉한 가래를 뱉어내며 발길을 돌리는 게 보였다.

그 뒷모습을 얼마나 보고 있었을까?

뒤늦게 정신을 차린 카일리가 잔뜩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잡아.”

기다렸다는 듯 수하들이 움직였다.

퓨퓩...

그 순간 은밀한 소음이 그들 사이를 스쳐갔다.

퍼퍽!

“억!”

그것이 총성이었음을 깨닫는 건, 수하들이 사타구니를 붙잡고 무너지는 광경을 본 이후였다.

카일리가 깜짝 놀란 얼굴로 마루를 바라봤다.

마루의 점퍼 사이로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었고, 거기서 뿌연 연기가 새나오는 게 보였다.

여전히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태였건만, 시야도 잡지 않은 채 후방의 목표물을 정확히 조준한 것이다.

하나같이 사타구니를 잡은 게 그 증거였다.

“으으...내...내가...고...”

“...자라니...흐윽!”

전율적인 관경이었다.

‘과연, 총기 각성자라는 건가.’

경이로운 솜씨였다.

그 정확한 스킬을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대단한 것이라 짐작했다. 저처럼 준비동작도 무시한 채, 정확한 사격을 한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증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니...존슨과 한 달이나 같이 지냈지.’

그와 사냥터를 돌기까지 했다.

모르긴 몰라도 적잖은 배움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할 수 있었다.

세계 최강으로 손꼽히는 랭커 중 한명의 가르침을 전해 받았을 테니, 기존의 실력보다 반수 이상은 높게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제퍼드도 한 차례 마루를 확인하고는 등급을 상향하라던 게 떠오르며, 새삼 긴장감이 솟아나는 걸 느껴야만 했다.

‘이미 B급으로 수정해 놨었는데...’

어쩌면 거기서 좀 더 올려야 할지 몰랐다.

‘괜히 왔나?’

두렵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상대 분위기나 실력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손해가 제법 날 것 같았다. 특히, 이 주변은 상대의 영역이지 않던가.

‘그레이 셰이드가 한 방에 당했었지. 으음...’

그렇다고 안 올 수도 없었다.

-확인하세요!

무려 제퍼드의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데스워치의 생사를 알아오세요.

한동안 다른 세력처럼 푼돈으로 사람을 부려서 찔러봤지만, 쉬이 견적이 나오질 않았고, 결국 이렇게 직접 움직인 것이다.

더 시간을 끌기에는 제퍼드의 분노가 두려웠다.

‘데스워치가 살아있어도 문제, 죽었어도 문제지만...그래도 기왕이면 죽었어야 하는데.’

만약 살아있으면서도 제퍼드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거라면, 그건 정말 대형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확답을 위해 찾아온 길이었다.

‘선을 지켜야 하나...’

카일리가 급히 외쳤다.

“함께 온 탐지 능력자가 있다. 한 가지 물음만 대답해 주면 귀찮게 안 하마.”

일종의 거짓말 탐지기 같은 능력으로써, 그를 통해 확답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 외침에 마루가 슬쩍 뒤돌아 봤다.

그러며 물었다.

“공짜로?”

순간 짜증이 팍 치솟았지만, 애써 억누르며 말했다.

“얼마를 원하지?”

이에 마루가 완전히 신형을 돌리더니, 팔짱을 끼는 게 보였다.

“선 제시!”

욕지거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

적당히 존슨 핑계를 대며, 솜씨 좀 보여줄 생각이었다.

‘그 양반한테 배웠다고 둘러대면, B급까진 괜찮을 것 같았는데.’

마루는 그리 생각하다가 웃어버렸다

‘흐흐...그게 또 이렇게 풀려버리네.’

탐지 능력자의 질문 하나를 놓고, 어마어마한 금액이 들어온 것이다.

“1억이라니!”

그렇게 웃던 와중에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더 불러볼 걸 그랬나?”

키홀 덕분에 불청객들의 발길도 줄어들 터, 이걸로 충분했다며 만족했다.

“흐흐흐흐...”

어찌나 기분이 좋았던지, 이날은 하루 내내,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까지 입 꼬리가 광대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실성했냐?”

존슨의 놀림마저도 즐거웠다.

**

‘개 같은 놈!’

카일리는 입술을 짓씹으며 마루와의 만남을 떠올렸다.

-천?

초반에는 적당히 낮춰 부르며 간을 봤건만, 짜게 식어버린 눈빛을 확인하며 급하게 뻥튀기를 시켰다.

그렇게 5천만까지 올랐을 때, 겨우 표정이 풀리는 걸 봤고, 이제 됐구나 싶은 마음에 안도하려는 찰나, 마루가 외쳤다.

-억!

검지를 바짝 세우던 모습이 어찌나 얄밉던지.

정말, 억 소리가 나올 뻔 봤다.

“...목숨 값이니까. 싸게 먹힌 거다!”

애써 최면을 걸며 스스로를 달랬다.

실제로도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무려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정보이지 않던가. 충분히 적정가라 여겨도 됐다.

게다가 그 같은 진실 덕분에 제퍼드의 분노도 일정부분 다스릴 수 있었다.

단지, 괜히 당한 것 같아서 속이 끓을 뿐이었다.

‘목숨 값이니까. 싸게 먹힌 거다!’

그렇게 속을 달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수하가 뜻밖의 얼굴과 함께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개코?’

의아해서 물었다.

“무슨 일이지?”

그 물음에 수하가 답했다.

“이놈이 이상한 소리를 해서 한 차례 돌아보는 중입니다.”

“왜?”

“그게, 저희 애들한테 아이언슈트의 냄새가 난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자세히 말해 봐.”

카일리의 시선이 개코에게로 돌아갔다. 그 매서운 눈빛에 개코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어린 얼굴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게...”

충격적인 내용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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