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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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 / #16. 웃긴 놈!

존슨은 마루의 정보를 살피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놈, 이거...교황청과 인연이 있나?”

각 단체마다 사용되는 보고서에는 각자 정보의 나열 방식이나 양식 등, 나름의 개성이라 할 만한 것들이 존재하는데, 마루가 전한 파일에서 그런 걸 읽어낸 것이다.

물론, 나름대로 숨기려 한 흔적들이 보였지만, 워낙 다양한 정보들을 섭렵해 온 경험이 있는지라, 그 위장 방식에서도 패턴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를 분석하고 나온 걸 다시 헤집으니, 교황청과의 연결고리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누굴까?’

정보 퀄리티를 생각해 봤을 때, 보통 지위가 아닐 거란 예상이 들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최근 한국을 방문했던 교황청의 인사들이 하나 둘 스쳐 가는데, 그러던 중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성녀?’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저어버렸다.

“에~이, 설마...”

그러다 굳어버리는 얼굴.

‘...설마?’

한 가닥 의혹이 동공을 두드렸다.

**

카일리가 멀리 사내를 보며 물었다.

“저 자가 아이언슈트냐?”

이에 개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좀 전, 목표물이 편의점에 들어갈 때 함께 따라 들어가, 밀폐된 공간 속에서 직접 확인하고 나왔다. 저 자는 아이언슈트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언슈트와 관계가 있는 건 확실합니다.”

그의 몸 곳곳에 묻어나던 냄새를 맡았다.

카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서, 갑작스레 개코가 아이언슈트 정보를 들고 왔을 때, 그가 꺼내놓은 이야기에 깜짝 놀랐었다.

-몇몇 분들 사이로 아이언슈트의 향기가 진하게 남아있더군요. 어쩌면 오늘 아이언슈트 본인을 만났거나, 관계자와 마주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인원을 모아놓고 보니, 마루를 만나러갔던 이들이었다.

‘어쩌면?’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이곳을 찾았고, 마루를 살피면서 개코에게 확인을 부탁한 것이다.

‘C급 A형 정마루...놈이 아이언슈트일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확실히 할 필요는 있으니까.’

개코의 탐색 결과, 본인이 아닌 주변인이라는 걸로 결론이 났다. 예상했던 상황인지라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한편, 이 주변의 감시망을 더욱 두텁게 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존슨과 마루 그리고 아이언슈트!

셋의 연결고리를 이어놓은 채, 그렇게 상황을 정리하며 철수하려던 찰나였다.

“저기...그런데...”

개코가 조심스레 말문을 건네 오는 것이 아닌가.

“무슨 일이지?”

그 표정에서 묘한 두려움이 읽히는데, 흥미로운 건 시선의 끝이 목표물과 닿아있단 점이었다.

“...지금 저 자...정말로 각성자가 맞습니까?”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일단 대답은 해 줬다.

“맞다. C급 A형의 정마루. 최근 화제가 됐던 건가드 영상의 주인공이기도 하지.”

그의 대답에 개코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미지를 향한 공포가 동공에 머무는 것 같았다.

“뭐냐? 뭐가 문제지?”

카일리의 재촉에 개코가 연신 마른침을 삼키다, 어렵사리 답했다.

“냄새를 맡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지?”

“저 자, 아무런 냄새도 나질 않습니다.”

아이언슈트의 흔적은 맡았지만, 목표물 자체적인 향기는 없었다.

의미를 이해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향이 없다고?’

후각으로 각성자를 탐색하는 개코가 아니던가. 헌데, 그런 개코의 후각에 걸리는 게 없다?

“맙소사!”

경악성이 터져버렸다.

**

마루는 간만에 작정하고 PP를 즐기는 중이었다.

‘형님도 없으니까.’

맘껏 레벨 작업에 열중할 수 있었다.

물론, 존슨이 언제 돌아올지 모를 일이지만, 이 역시 나름의 해결책을 마련해 둔 상황이었다.

-너로 정했다! 초롱아.

그렇게 아이를 파수꾼으로 세워놓은 것이다.

-우앙~! 호봇 장난감 세트다.

거기다가 극장판 애니메이션까지 구비해 놨고, 각종 군것질거리를 가득 채워놓은 결과, 든든한 파수꾼에게 집을 맡길 수 있었다.

혹시라도 존슨에게 발각될 경우?

-도마뱀 연기 잘 할 수 있어!

각종 선물공세에 눈이 돌아간 듯, 초롱이는 드래곤의 자존심 따윈 시원하게 구겨버렸다.

결정적으로 한 가지 더,

-나, 신물 열 번 꿀꺽 할래!

흑화한단을 놓고 벌인 딜이었다.

-안 돼! 세 번.

-아홉 번?

-네 번!

그렇게 조절을 한 결과, 다섯 번 핥는 것으로 합의를 볼 수 있었고, 초롱이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간만에 쌍둥이들을 불러들였다.

“내줬던 숙제들은 다 했고?”

그의 물음에 임수현과 임지현 남매는 나날이 초롱초롱해지는 눈빛으로, 그를 향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옙!”

“넵!”

마루는 그들을 통해 스킬에 대한 여러 가설들을 실험하며 증명 중이었는데, 그 중에서 최근 확인하고 있는 건, 조합형과 개별형 스킬의 차이점이었다.

기존 스킬의 발전형태인 조합형 스킬과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스킬, 그 둘은 저들 남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게 실험의 포인트였는데, 오늘은 그에 대한 해답을 확인할 시간이었다.

“조합형 스킬을 재현할 때는, 기존의 포스 운용법이 좀 더 매끄러워졌는데, 개별형은 그런 느낌이 별로 없더라구요.”

있기는 있단 소리인데, 기존에 익혀뒀던 스킬의 발전형인 조합형 스킬이, 좀 더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역시...’

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분석에 들어갔다.

이미 기본을 다져놨던 조합형 스킬과 달리, 개별형 스킬은 다시 새로운 씨앗을 심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터, 영향력 행사가 부족한 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게다가 개별형 스킬의 경우,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종류가 많은 터라, 발전시키기도 수월하지 않을 것이기에, 마루는 조합형으로 진로를 잡은 채, 저들의 발전 방향도 정리할 수 있었다.

물론, 저들이 개별형 스킬에 들인 노고를 허사로 만들지는 않았다.

‘지금 익히고 있는 조합형 스킬을 쭈욱 올려나가다 보면, 결국 개별형 스킬하고 연결시킬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의 거리가 제법 걸리겠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쓰일 수 있는 걸로 고른 것이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계산을 끝낸 뒤 제시한 과제였다.

이를 가지고서 남매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 이는 마루 본인의 스킬 활용법에 관한 거였다.

‘가성비 쩔었구나.’

최근 남매는 포스 운용법에 대한 깨우침이 조금씩 쌓여가면서, 기존의 스킬 발현법이 상당히 소모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1의 힘을 내기 위해서 3~4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했다는 것인데, 마루의 가르침으로 스킬 재현에 도전하고, 그렇게 포스 활용법을 새로운 관점에서 이해하게 되니, 그 부분에 대한 낭비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다고 한다.

아주 미미한 수준이라, 당장 큰 의미를 지니진 않겠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상황이니 만큼, 차후에는 분명한 영향력을 발휘할 터였다.

그런 의미에서 마루 본인의 스킬 활용 방식은 1의 힘을 1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놀라울 만큼 가성비가 뛰어난 활용법이었단 걸 알게 됐다.

이는 숙련도와도 무관했다.

그 부분이 발동 시간에 영향을 끼치기는 하나, 기운 자체를 낭비하는 경향은 없었다. 오히려 그 같은 낭비를 줄이기 위해, 발동 시간에 텀을 둬 가면서 숙련도를 체크하게 만든 것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가성비를 더 높일 수는 없을까?’

존슨에게서 이런저런 깨달음을 얻은 탓인지, 왠지 불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이건, 좀 더 고민해 봐야겠네.’

마루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한 뒤, 쌍둥이에게 차후 진행해야 할 과제들을 나눠줬다.

“그럼, 오랜만에 버스 좀 몰아보자.”

본격적인 레벨 작업 시간이었다.

과연, 쌍둥이 파워라고 해야 할지, 가끔 들어와서 혼자 작업하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경험치가 쌓여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19레벨까지만 찍자.”

마루는 명확한 목표를 지니고 있었는데, 이는 바로 그 시점이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육성 루트를 탈 경우, 150레벨이 되면 900스탯을 쌓을 수 있었다.

원래라면 850스탯으로 끝나야 할 것이나, 특수 퀘스트가 발동되며, 50스탯을 따로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150레벨을 2.5차 전직이라 부르는 이들도 많았다.

총 스탯 900레벨의 분기점!

119레벨이 정확히 그 경계에 닿아있던 것이다.

‘예상대로라면...’

그 타이밍에 승급 현상이 발생할 터였다.

기대감을 지닌 채, 쌍둥이의 버스에 탑승했고, 그렇게 고대하던 119레벨에 이르렀다.

[레벨 : 119]

[힘 : 175+5(+25)]180 [지능 : 175(+35)]175

[체력 : 178+2(+35)]180 [정신력 : 175+5(+35)]180

[민첩 : 175+5(+35)]180

[스탯 : 5]

하지만 스탯을 바로 올리지는 않았다.

‘곧 존슨 형님이 돌아올 테니까.’

그가 자리를 비우는 시간에, 여유를 두고 스탯을 찍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루 뒤,

“사복사복 조심히 다녀와요~!”

“나갔다 올게, 임자.”

적당한 농으로 존슨을 내보낸 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탯을 올렸다.

그리고,

[정마루]

[각성 등급 : A]

[컨디션 : 8]

[스킬 : 오염된 여의주] [#] [*] [@]

전율이 함께했다.

**

K-POP에 관심이 많아, 결국 한국이란 나라까지 유학을 와 버린 탓일까?

대학 동아리도 그 분야와 관련된 걸 찾아서 가입했다.

그리고 2년 뒤, ‘그’를 만났다.

이선!

화제의 신입생이었다.

별 이유 없었다.

‘여전히 잘 생겼네.’

연예인이 울고 갈 만한 외모였다.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많은 게 변했네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그의 음성이 들렸다.

‘목소리도 여전하고...’

사실, 그의 외모보다 그의 목소리가 좋았다.

이반나는 변함없이 매력적인 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옛 감정이 새록새록 솟아나는 걸 느낀 까닭이었다.

그녀가 한국을 떠난 이유도 결국 그와 관련이 있지 않던가.

같은 동아리의 선후배로 활동하다, 비슷한 시기에 각성하며, 함께 격변의 시기를 건너왔다.

첫 만남에 이미 호감 이상의 감정을 지니고 있던 탓인지, 그를 향한 감정은 나날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마음을 쫓아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접근에 그 역시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함께 오랜 시간을 부대껴왔던 까닭인지,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그들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썸이라 해야 할까?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미묘한 관계가 형성됐다.

딱 거기까지였다.

우습게도 그의 사랑은 그녀가 아니었다.

이선희!

다시 생각해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필요에 의해 받아들인 제자였다. 이선의 남다른 화염계열 스킬을 잠재울 수 있는 게 이선희의 냉기였기 때문이다.

순수하지 못했던 그의 의도를 알기에 안타깝게 여겼고, 그 때문에 이선희를 아껴줬었다.

그 와중에 김연희와 인연이 닿아 제자로 들인 것이기도 했다.

‘생각해봐야 속만 쓰리지...’

떠올리기 싫건만 자꾸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눈앞에 바로 그 첫사랑이 얼쩡대니, 자꾸 옛 추억이 아른거리는 것이다.

웃기는 건, 존슨과의 만남도 눈앞의 사내로 인해 이뤄졌다는 점이었다.

존슨은 당시엔 아직 WHA 소속이었는데, 그가 한국을 찾은 건 이선을 협회로 스카웃 하기 위함이었다. 해외까지 유명세를 탈 만큼, 그의 화염은 뜨거웠으며 또 그만큼 화려했던 것이다.

‘그 무렵엔 지금처럼 꾀죄죄하지도 않았지.’

직함도 있었고 국적도 있었으며, 돈도 제법 들고 다니는 편이었다. 심지어 그 무렵엔 지금 같은 캐주얼이나 빈티지가 아닌, 딱 맞은 맞춤정장만 입던 신사였다.

‘변함없는 건 성격뿐인가.’

그의 생각에 잠시 실소가 나와 버렸고, 이 모습에 이선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뭐 재밌는 거라도 봤습니까?”

바로 그 시점에서 이반나는 깨달았다.

“...옛사랑이 떠올랐지.”

여전히 매력적인 사내 덕분에, 웃기는 놈을 알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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