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 / #18. 환영합니다.
카일리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향이 없다고?”
특수한 스킬을 지닌 개코의 이야기였고, 그 말이 뜻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비각성자라고?”
그래서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 움직임이?”
핸드폰에 띄워놓은 영상 속으로 화려한 건가드가 펼쳐지는 게 보였다. 마루에게 유명세를 안겨준 그 영상이었다.
‘준각성자?’
한 차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준각성자라면, 굳이 혜성에서 데려가진 않았겠지.’
들은 정보로는 김연희라는 명 스카우터가 직접 찍었다고 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꽝을 뽑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이를 통해서 특수 스킬을 지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2세대 각성자로써 준각성자 역시 상당수 경험한 바 있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한계점을 잘 알았다.
‘저런 움직임...불가능하진 않지만, 그건 신체계열 아티팩트를 지녔을 때나 가능하지.’
뿐만 아니라 그들도 한계점을 벗어나기 위해, 수시로 뱀플을 사용하면서 도핑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마루의 총기류 각성론을 상기해 봤을 때, 이래저래 걸리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직접 그 사격 실력을 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관련한 영상도 몇 개 찾아냈고, 정보도 수집할 수 있었는데, 백발백중이란 게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명사수였다.
결론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특수 각성자!’
이능계면서 강화계의 특성을 지닌 제퍼드처럼, 남다른 스킬을 보유하고 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확실히 뭔가가 있긴 있나 보군.”
새삼 인디안 존슨이 함께하는 이유까지 의문이 닿았다. 상념은 거기까지였다.
딸랑...
저 한편으로 오늘 만나기로 한 얼굴이 들어오고 있었다.
‘구정국!’
광호 길드의 사냥개였다.
**
불현 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인가?’
마루는 자신이 가족들에게 전했던 스킬 ‘활력의 춤’을 떠올렸다.
그저 동생에게 각성의 재능이 있던 걸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그 때문에 생겼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습게도 이는 가족력 때문이었다.
이상한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증명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가족 중 한명이라도 각성자가 있으면, 나머지 가족에게도 각성자로써의 가능성이 있다.]
던전의 공기를 맡는다거나 여러 실험 등의 편법이 아닌, 정통한 방법은 순수하게 유전적 문제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이는 지난 30년간의 통계에 근거한 발표였다.
그 같은 의미에서 봤을 때, 마루의 가족 중에는 각성의 재능을 지닌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친척들을 전부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친가 외가 할 것 없이 전부 각성자와는 인연이 없던 것이다.
마루가 막 헌터를 시작하던 무렵, 각성자와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둘 나왔었는데, 당시 가족들이 이를 내세우며 반대했던 것도 떠올랐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여동생의 각성 소식에, 활력의 춤 스킬을 떠올리는 건 당연한 흐름일지도 몰랐다.
-사실 오빠가 각성을 해서, 살짝 기대하긴 했었는데, 정말로 각성해버렸네. 헤헤!
여동생의 이야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난 특수 케이스야.’
여의주로 인한 각성으로써, 정상적인 각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안타깝게도 그걸 밝힐 순 없었다.
‘간만에 전화했기에, 용돈이야기나 할 줄 알았더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화제가 튀어나와버린 것이다.
“후...잠시, 좀...일단, 나중에 통화하자.”
마루는 그렇게 대화를 미뤄버렸다. 이래저래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았던 까닭이었다.
그가 활력의 춤을 전수한 건, 가족들의 건강을 위한 조치일 뿐이었다. 스킬 자체의 능력치 자체가 회복력 증가로 한정되어 있지 않던가.
‘아프지 말라고 전한 게...하!’
물론, 약간의 욕심이 없진 않았다.
‘그것도 결국 건강 때문이었는데.’
활력의 춤으로 기운이 쌓이는 걸 알았지만, 극히 미미한 티끌 수준일 뿐이었다.
그 때문에 이를 통해서 일반적인 건강보단 좀 더 윗줄, 과거에 존재했다던 준각성자 수준의 강건함을 바랐다는 정도?
그건 말 그대로 ‘준’ 각성으로써, 실제 각성을 기대했던 건 아니다.
“후우...”
한숨을 길게 늘어트리며 미간을 부여잡았다.
갈등 끝에 밖으로 나섰다.
건물 밖,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버티고 선 청년이 보였다.
임시안!
슬슬 3월이라 봄기운이 올라오고 있지만, 여전히 겨울 잔재가 남아 마지막 발악을 하는 시기다 보니, 오히려 더 위험한 시기이기도 했다.
‘벌써 며칠 째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처럼 저렇게 나와서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 그 강한 의지가 전해져왔다.
‘쟤도 참...독하다. 독해!’
마루의 등장 때문인지, 찬바람에 하얗게 질린 와중에도 활짝 핀 얼굴을 하는 모습이 조금은 미련하게 느껴졌다.
“나오셨습니까!”
후다닥 달려와 넙죽 고개를 숙여 보이는 그 모습에, 마루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너는 왜...”
하지만 채 끝맺지 못한 채 닫아버렸다.
‘...그렇게까지 헌터가 하고 싶은 거냐?’
막상 물으려는 순간, 자신의 계기가 떠올랐던 까닭이었다.
‘하긴, 나도 시답잖은 이유였지.’
그런 주제에 뭔가 거창한 대답을 기대하려 했던 게 우스웠다. 그래서 질문을 다시 삼켜버린 것이다.
잠시간 관찰하듯 임시안을 살피기만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그가 꺼낸 건 결국 뜻밖의 내용이었다.
“...버틸 수 있겠어?”
그의 말에 벙찐 표정이 됐던 임시안이, 이내 그 의미를 깨닫고는 활짝 핀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넵! 질기기론 오우거 힘줄만큼 끈덕진 놈이 바로 저 임시안입니다. 믿어주십시오.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그 말에 한숨을 푹 내쉰 마루가 손짓했다.
“일단, 몸부터 좀 녹이자. 곧 뒈지게 생겼네.”
그렇게 임시안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
흥미로운 정보였다.
-키홀의 카일리가 광호 길드의 구정국을 만났습니다.
존슨은 그 소식에 제퍼드의 꿍꿍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혜성 VS 광호!
이 나라에선 모를 수 없는 관계였다.
“단순한데...확실하네.”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저 같은 공식의 끝에 이반나와 그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건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동선이었다.
“하여간, 제퍼드 그 자식, 잔머리 하나는 인정해야지.”
워낙 험한 시기를 헤쳐 온 탓인지, 제퍼드의 설계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제퍼드!
그는 이능계이면서 강화계의 특성을 지녔고, 거기에 타고난 초감각까지 지닌 각성자였다. 성장기가 순탄하기 어려운 특수 케이스인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각성을 한 탓에, 더더욱 주변의 관심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에는 이면의 골칫거리들도 상당수 끼어있었다.
여러 불법적인 실험실과 연구소들이 특히 그에게 눈독을 들였다.
실로 다사다난한 성장기를 겪은 것인데, 이는 한 인간의 인성을 말아먹기에 충분한 경험이었으리라.
현 키홀의 수장이자 친형인 바이퍼 덕분에 그가 살아남을 수 있던 것인지, 만약 그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실력을 쌓기 전에, 여러 위험한 연구소의 실험체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지도 몰랐다.
이러한 성장과정 덕분인지, 그는 이면의 주민이란 그림자가 지닌 악의를 잔뜩 품은 채 어른이 돼버렸다.
과거, 오다가다 몇 번 마주친 적 있지만, 그의 과거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인간사 개입 자체를 자제하다 보니,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었다.
악당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먹을 쥐기엔, 키홀이라는 배경도 상당했고, 이 바닥 자체가 악의로 넘쳐나는 공간이다 보니, 쉬쉬하며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폭발하며 부딪치는 사건이 발생했으니, 제퍼드가 이반나를 초죽음 상태로 몰아갔을 때였다.
‘그 때 모가지를 따버리는 건데...’
만약, 키홀의 수장 바이퍼가 직접 나서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 무렵에 제퍼드의 목숨을 거뒀을 것이다.
“혜성을 엮어서 이반나를 잡고, 나를 치고 싶단 말이지.”
그가 슬쩍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혜성이라...’
슬며시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거기에도 괴물이 한 마리 살고 있는데.’
하숙집 주인이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재밌겠네.”
과연, 함정 카드가 어떤 식으로 발동할까?
“흐흐...”
**
간만에 만나는 동생이었지만, 반가운 마음보단 답답함이 더 컸다.
마루는 얼굴 가득 먹구름을 깔아놓은 채, 창밖을 살폈다. 이제나저제나 동생이 오기만을 기다리길 한참, 저 멀리서부터 여동생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저...저...”
벌써부터 한 소리가 나오려 했다.
‘한 겨울에 무슨 스커트를...’
짧아도 너무 짧았다. 아니나 다를까 주변 늑대 놈들의 시선이 뒤를 쫓는 게 보였다.
‘눈깔에 먹물을 쪽 짜버릴까 보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여동생이 들어오는 걸 기다렸다.
잠시 후, 카페 문이 열리고 정다솜이 다가왔다.
“오빠~!”
그 애교 넘치는 음성에 노기가 사르르 사그라지는 걸 느꼈지만, 애써 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한 소리를 했다.
“날도 추운데 무슨 미니스커트야?”
“에~이, 그 정도는 아니다. 이 정도 길이면 보통 치마지, 게다가 이제 3월이라고.”
“꽃샘추위도 몰라?”
“그러게 추워야 하는데, 신기하게도 별로 춥질 않네.”
마루는 그 대답에서 답을 직감했다.
“신체 계열 각성했냐?”
“오~! 역시 베테랑 헌터. 단번에 알아보네.”
작은 단서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간단히 음료를 주문한 뒤, 여동생을 향해 물었다.
“엄마하고 아빠는?”
“아직 몰라. 히히! 오빠한테 첨으로 말한 거야.”
집안에 경력자가 있는 만큼, 일단 그에게 먼저 의논하고자 한 듯싶었다.
“각성했다고 해서 굳이 헌터를 할 필요는 없어.”
슬쩍 돌려서 말한 것이지만, 의도는 분명했다.
헌터는 안 돼!
정다솜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빠는 각성자도 아니면서, 15년이나 헌터를 했잖아.”
이걸 또 그렇게 받아치면 할 말이 없었다. 집안에 풍파를 일으켰던 과거가 새록새록 떠올랐다.
‘내가 죄인이지...’
“...굳이 헌터를 하고 싶은 이유는 뭔데?”
그 물음에 정다솜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딱히 할 게 없어서?”
시원찮은 대답에 마루가 눈살을 찌푸리는데, 정다솜의 이야기는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솔직히 난 꿈도 없고, 이렇다 할 재능도 없잖아. 대학교도 적당히 성적 맞춰서 들어간 거고.”
그나마 머리는 나쁘지 않아서, 어찌어찌 수도권 내에 있는 대학에 붙었지만, 그게 또 대단찮은 수준까진 아니었다. 게다가 학과에 관련해서 큰 흥미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진짜 ‘재능’이라고 할 만한 게 생긴 것이다.
“헌터라는 게 위험하다는 건 나도 잘 알아.”
마루로 인해서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단 재능이 생겼잖아. 위험하다고 경험해 볼 생각도 없이, 흥미도 없는 대학생활을 하고 싶진 않아.”
문득, 깨달았다.
‘아...스무살이구나.’
여동생의 나이를 상기했다. 생각해보니 저 나잇대 청춘들은 꿈이나 미래 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였다.
“게다가 오빠 혜성 길드 소속이잖아.”
“그건, 왜?”
“왜긴 왜야. 혜성은 소속 길드원 가족 중에서 각성자가 생기면, 아카데미 추천장하고 지원금 나오잖아.”
‘확실히...그런 게 있었지.’
정다솜이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장학금 받을 자신은 없어서, 수백 수천 내면서 대학교 다니려니 눈치 보였는데, 아카데미 들어가면 혜성 특혜로 공짜나 다름없잖아. 헤헤!”
이 부분에선 여동생의 마음고생이 엿보였다. 흥미도 없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서, 의미 없이 돈다발을 불사르려니 내심 신경이 쓰였던 모양이었다.
마루는 고민하고 갈등하다 결국 이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정 헌터가 되고 싶으면, 일단 나한테 좀 배워.”
정다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심 바라던 일이 이뤄진 까닭이었다. 가족 중에 헌터가 있으면, 자연히 그 방면으로 관심이 기울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그녀는 마루의 건가드 영상도 봤고, 해외의 여러 경력자들이 보이는 호평도 확인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오라비가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인지도 알게 됐다.
“역시, 오빠가 최고야!”
심경이 불편한 와중에도 여동생의 애교에 미소가 걸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열다섯이란 나이 차이 때문에 딸처럼 키운 탓인지, 유독 약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쓸데없이 당연한 소리 말고, 크흠! 스킬이나 말해 봐.”
“에...스킬은 가족 간에도 비밀 이랬는데?”
“어차피 가르치다 보면 대충 견적 나오니까, 괜히 피곤하게 굴지 말고, 불어.”
“으우...”
“엄마 아빠는 분명 반대하실 텐데, 나도 거기에 합세할까?”
원래는 침묵할 거였으나, 빌미만 준다면 언제든지 반대의사를 내비칠 의지가 가득했다.
“치사하다!”
결국 스킬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스킬 : 칠전팔기]
“회복계열이래.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이라나? 으...바퀴벌레가 뭐야. 바퀴벌레가. 아니, 원래 이 뜻이 아니지 않나? 회복이면 오히려 구사일생 같은 게 의미는 더 어울릴 것 같은데.”
마루는 잘 됐다고 생각했다.
“뜻은 됐고, 좋은 스킬이네. 쎈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쎈 거야. 이 바닥은 명줄 잡고 버티는 게 핵심이다.”
그러며 활력의 춤 특성을 떠올렸다.
‘회복 특화였지.’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무래도 관련해서 좀 더 많은 가설을 세워놔야 할 듯싶었다.
‘그나저나, 칠전팔기라...어째 순수 회복과는 좀 다른 의미가 숨어있을 것 같은 느낌인데.’
그 부분은 차후 성장에 따라 밝혀질 거라 여겼다. 물론, 성장 과정에 의해 정말 구사일생 같은 느낌으로 번질 수도 있긴 했다.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상황을 정리하고 있을 때, 정다솜이 웃으며 물어왔다.
“그럼, 내가 오빠의 첫 번째 제자인 거네?”
“안 됐지만, 넌 2등이야.”
“...설마, 제자도 있던 거야?”
마루가 웃으며 말했다.
“걔는 수강료 낸다.”
정다솜이 물었다.
“그 손은 뭔데?”
“뭘까?”
“...아니지?”
“평등세상! 세상에 공짜가 어딨니?”
“야!”
결국, 여동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환영합니다. 고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