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 / #21. 제자?
어쩌다보니 유명세를 얻는 경험을 자주 했다. 장관장이나 호로로도 그렇고, 그레이 셰이드와의 마찰로 발생했던 1차 건가드 영상도 그 종류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유명세는 처음이었다.
“와...”
마루는 헛웃음을 지으며 주변을 돌아봤다.
“형님! 존경합니다.”
“싸인 좀 해주시면 안 돼요?”
“건가드는 정말 군대에서 익힌 겁니까?”
찬거리 좀 사려고 잠깐 집 앞에 나온 것이건만, 하나 둘 그를 알아본 이들이 몰리는가 싶더니, 금세 포위망에 갇혀버린 것이다.
-얼굴 좀 가리고 나가.
존슨의 경고를 무시한 게 후회됐다.
‘벌써 이 정도로 반응이 올라온다고?’
혜성에서 작업을 할 거란 소리를 들었기에, 어느 정도 유명세가 이어질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화끈할 줄이야.
‘며칠이나 됐다고...아니, 이 정도로 화제가 될 영상인가?’
그 역시 작정하고 영상을 촬영하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과한 반응이 아닌가 싶었다.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싸부님!”
“날 가져요. 엉엉!”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적당히 둘러대며 내뺐다.
“아앗! 게이트가, 출동 명령이, 죄송합니다.”
헌터에게 있어서 사냥이란 건 언제나 최우선 과제인 만큼, 주변을 에워싸던 사람들도 결국 길을 열어줬다.
그 와중에 뒤를 쫓아오는 몇몇 애들이 보여, 이리저리 골목길을 타며 따돌려야만 했다.
“후아...이게, 무슨 일이야?”
어렵사리 집으로 돌아오니, 그의 몰골을 본 존슨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이리저리 붙잡힌 탓에 몰골이 엉망이 됐고, 그 때문에 바로 알아본 것이다. 마루도 그제야 제 모습을 확인하고는 투덜거렸다.
“아아...제로 원 코스프레라니.”
“그게, 어떻게 나야!”
“훗! 아는 이들은 다 알지.”
옥신각신 잠시간 말다툼이 이어졌다.
“어느 정도 띄워줄 것 같긴 했는데, 이건 너무 밀어주는 거 아닌가?”
마루는 혜성의 지원이 너무 과하다고 여겼다. 그의 떨떠름한 반응에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놓치고 싶지 않단 뜻이지. 너도 느끼고 있잖아?”
“...대체, 나한테 뭘 보고 이러는 건데.”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니지?”
그 부분에선 마루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아껴왔던 질문을 꺼내들었다.
“형님은 제 뭘 보고서 함께하시는 겁니까?”
초반에야 동경하던 영웅과의 동거가 감사해서 함께했고, 중반에는 함께하며 다양한 공부를 배울 수 있어서 넙죽거렸다.
생각할 시간도 없이 흘러온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품게 되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이 정도까지 베푸는 이유가 뭐지?’
존슨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을 줬다.
“아무것도 못 봤지.”
이에 마루가 눈살을 찌푸리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같이 있는 거다.”
“...말이야 방구야?”
“성질 급하긴, 찬찬히 들어.”
타박과 함께 존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전에 말한 적 있지만, 나는 스킬 덕분에 감각이 좀 남다르거든. 이게 어느 정도냐 하면, 겁 없이 던전에 뛰어들고 마굴을 헤집고 다닐 만큼, 좀 특별한 수준이야.”
초반에는 미흡한 감각이었지만, 생사를 오가는 무수한 경험 덕분에, 초월적 영역에 이른 것이다.
“그런 내 감각으로도 너한테서 느껴진 게 없었어.”
“...아무것도?”
“전혀!”
그제야 마루도 존슨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혜성 길드의 김연희도 마찬가지일 걸.”
“아...”
마루는 떠오르는 게 있었다.
‘인재 당첨 확률이 백퍼라고 했지.’
그저 눈썰미나 감 정도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였고, 자연스레 결론은 스킬로 이어졌다.
“솔직히 혜성의 공주님이 사람 보는 눈 하나만큼은 나보다 윗줄이지.”
그 같은 결론에서 존슨은 이야기했다.
“이번 띄우기는 작정하고 보내는 러브레터야. 끝까지 같이 가자고 너한테 작업 거는 거라고.”
거기까지 이야기 한 뒤, 이번에는 존슨이 물었다.
“나도 좀 묻자. 성녀하고는 무슨 관계냐?”
“......”
너무도 뜬금없이 들어온 한 방이었을까?
일순 마루의 표정이 경직되며,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등, 당혹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렸다.
‘역시...’
존슨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반의 확률로 그냥 찔러 본 것인데, 타이밍을 잘 잡은 덕분인지, 반응을 통해 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는 지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알아낸 정보였다.
마루가 건네줬던 키홀의 정보자료도 큰 도움이 됐는데, 거기서 성국 특유의 정보처리 방식을 읽은 까닭이었다.
한솥밥을 먹으며 꾸준히 관찰한 결과, 마루에게 묘한 가호가 펼쳐져 있고, 그로 인해서 기운을 읽어낼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기운에 대해 거듭 궁리하다가 키홀의 정보자료가 떠올랐고, 성국을 연상시킨 뒤 성녀까지 생각이 닿게 만든 것이다.
“크...대충 견적 나왔네. 표정관리 좀 해라.”
존슨이 실소하며 말했다.
“걱정 할 거 없어. 나쯤 되니까 겨우 눈치 챈 거지, 다른 사람은 쉬이 못 알아볼 거야. 그건 혜성의 공주님도 마찬가지일 걸.”
김연희의 특별한 눈이라 할지라도, 성녀의 가호를 꿰뚫을 수 없을 거라 여겼다.
그처럼 숙박하며 지켜본다면 또 모를까.
‘성녀가 내린 가호라면, 납득이 가네.’
작년 가을 즈음, 한 차례 교황청을 지나던 무렵, 먼발치서 성녀를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못 봤다고 생각했다.
‘전혀 다른 사람 같았으니...’
성국에서 계획한 프렌차이즈 스타가 아니라, 정말로 진짜배기 성녀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한테 가호나 축복 같은 걸 펼쳐놓은 느낌인데, 솔직히 그것 때문에 평범함은 곱빼기니까 걱정하지 마라. 나도 애초부터 신경 써서 안 봤으면, 전혀 몰랐을 걸.”
그 말이 그나마 마루를 안심시켰다.
“외형 자체가 좀 남다르긴 하지만.”
“어떻게요?”
“장시간 전장에서 굴러먹은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거 있잖아. 인상이 굳어버리는 거.”
딱 그 수준의 외형적 분위기, 그게 보이는 것의 전부였다.
‘그것만으로도 포스가 있긴 하지.’
존슨은 이런 부분을 통해 마루의 과거가 얼마나 험했을지, 어림짐작으로 유추해 낼 수 있었다.
“아니, 내 인상이 뭐 어때서요?”
“좀 구리긴 하지.”
“거울이나 보시죠.”
“나 면도하고 차려입으면 연예인 따귀를 좌우로 후릴 수 있어.”
“......”
짜증나게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고 다니는 몰골이 엉망이라 그렇지, 말끔히 정리하고 제대로 갖춰 입는 순간, 헐리우드급 명품 페이스로 둔갑하는 것이다.
“너무 신경 쓸 거 없어. 혜성의 공주님이나 거기 여왕님은 믿어도 괜찮으니까. 너한테 해 될 일은 없을 거야.”
고개를 끄덕이다 문득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그런데 왜 공주님이라고 합니까?”
김연희를 아는 관계자들은 대부분 마녀라고 부르기 일쑤였기에, 자연히 드는 의문이었다.
“왜긴, 마이 달링의 제자니까.”
“아...”
시덥잖은 이유였다.
**
광호의 구정국은 허탈하게 웃어버렸다.
“한 방 먹었네.”
마루에게 깔아놨던 밑그림이 제대로 구겨져버린 것이다. 이래저래 바쁜 일정 때문에 뒷전으로 밀린 계획이었다.
손을 놓고 있었던 탓이지, 뜻밖의 반전으로 인한 심적 타격도 크진 않았다.
적당히 담배 두어 개비 몰아서 피우는 걸로 충분했다.
“그래도 이 정도로 푸쉬를 해 주다니.”
혜성까지 싸잡아서 욕 먹을 구도였기에, 작전을 펼친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건 좀 과하다고 여겨졌다.
상황 정리 차원을 벗어난 까닭이었다.
“흠...정마루...”
간만에 그 이름을 입에 담아봤다.
‘...뭔가 있긴 있는 모양이네.’
김연희가 직접 점찍은 걸로 모자라, 존슨까지 곁에 붙어서 이것저것 가르쳐 준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기간이 어느새 한 달을 넘어가자, 알게 모르게 도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인디안 존슨의 제자라...”
C급 A형 헌터라는 기준을 아득히 벗어나는 영광이었다.
“...하긴, 놓칠 수 없겠네.”
그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터, 이를 유추하고자 담배를 한 개비 더 입에 물었다.
그가 옥상 너머의 풍경을 배경으로 상념에 빠져있을 때, 조용히 그 모습을 관찰하는 시선이 하나 있었다.
‘구정국...많이 늙었네.’
광호 길드를 제 집처럼 넘나들 수 있는 사내로써, 그는 바로 미국의 3번째 영웅이라 불리는 이선이었다.
한 때는 아끼던 동생이다 보니, 변해버린 모습에 괜히 울적해지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이곳 광호 길드에 대한 감정부터가 남달랐다.
‘...광호...광호...후우.....’
과거에는 이곳이 그의 집이었다.
아니, 그 모태가 되는 태호 그룹이야 말로 그의 뿌리가 아니던가. 이선희처럼 직계는 아니었지만, 가족 모임을 꾸준히 참석하며 친분을 쌓아왔다는 부분에서, 이선희와는 입장이 달랐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라 괜히 가슴이 쓰렸다. 이래저래 오고 싶지 않았던 장소였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과거 인연들을 통해 내부 정보를 끌어내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 순간 자신의 방한이 발각될 수 있는 만큼, 이래저래 제약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유로 광호의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구정국을 쫓아다니며, 은밀하게 시국을 읽는 중이었다.
**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옥타브의 높이만큼 눈 꼬리도 높다.
‘어우 듣기 싫어!’
조금이라도 흠이 보이면, 어떻게든 트집을 잡는 인간이다 보니,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치솟았다.
김연희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겉으로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길드장 구준영을 바라봤다.
“기껏해야 C급 A형 따위의 하급 헌터한테 이 정도의 자금을 투자한다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일을 크게 벌렸나?”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다 보니, 페이스를 잃지 않은 채 태연히 답할 수 있었다.
“소문도 못 들으셨나요?”
“...무슨 소린가?”
“그 C급 A형의 하급 헌터가 인디안 존슨의 제자라는 소문이요.”
구준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기껏해야 소문 아닌가. 팩트를 가져와서 이야기해야지, 그런 풍문에 기대서 판을 키웠다는 건가?”
“글쎄요. 풍문일지 팩트일지, 그건 판단하기 나름이죠. 그러고 보니 인디안 존슨과 비슷한 상황이네요. 그 역시 WHA의 초대 협회장의 제자라는 이야기가 있었죠.”
초반에는 상당수가 안 믿는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존슨의 영웅적 행보가 더해지니, 이제는 어떻게든 둘 사이를 엮으려고 난리였다.
“풍문? 팩트? 포장지만 잘 씌워 놓으면, 가짜도 진짜가 되고, 진짜는 명품이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면서 포인트를 놓치지 않았다.
“당장 팩트를 원하신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네요. 바로 그 인디안 존슨이 C급 A형의 하급 헌터와 한 달이 넘게 생활 중이라는 거죠.”
그 부분에선 구준영도 합죽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김연희는 이 기세를 놓치지 않고 몰아쳤다.
“화제의 하급 헌터가 바로 저희, 혜성의 소속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소재가 있는데, 시나리오를 안 짜는 건 직무유기 아닐까요? 저는 제 역할에 맞춰서 최선을 다한 것뿐입니다.”
구준영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됐네!’
그 모습에 김연희는 한 고비 넘겼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인디안 존슨의 제자, 그게 아니더라도 형제라는 포지션은 충분히 갖출 수 있을 겁니다. 영웅과의 친분과 그 이미지를 저희 혜성으로 끌고 올 수 있다면, 오히려 지금 사용한 자금은 푼돈으로 취급할 만큼의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말발이 먹히는 것인지, 결국 구영준이 두 눈을 감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져버렸다.
백기 신호였다.
**
카일리는 골머리가 터질 것 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
광호 길드와의 본격적인 연계가 시작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막 설계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제퍼드는 당장 계획을 실행하라며 목을 죄고 있었다.
‘따로 시간벌이를 할 방법이 없을까?’
상황이 어찌나 답답했던지, 구정국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할 뻔 봤다. 그랬다가는 당장 제퍼드에게 모가지가 날아갈 확률이 9할 이상이기에, 애써 갈증을 달래야만 했다.
“후우...굵직한 사건이라도 하나 터졌으면...”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기라도 한 걸까?
웨에에에에에에에엥....
재난경보가 떴다.
몬스터 웨이브!
정말 굵직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