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 #22. 몬스터 웨이브!
도비돈 길드의 수장 도비돈은 반쯤 넋 나간 모습으로 하늘만 올려다봤다.
노을빛 때문인지 노랗게 물들어가는 풍경이 그의 기분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았다.
“망했다!”
현 상황은 그 한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너무 욕심 부렸지.”
“쯧쯧쯧...좀 놓을 줄도 알아야하는데.”
멀찍이서 이를 지켜보던 길드원들이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씩 했다.
“갑자기 던전 승급 터졌을 때부터, 낌새가 안 좋았어.”
“그걸 또 지켜보겠다고 욕심내서 이 사단이 난 거지.”
“안 그래도 빠듯한데, 꾸역꾸역 소유권 주장하면서 다른 던전에 있던 인원을 빼 냈으니. 쯧쯧!”
“그러고도 던전이 제대로 돌아간 게 용하다.”
“말은 바로 해야지. 엉망으로 돌려서 이 사태가 난 건데.”
“하긴...”
길드원들은 자신들이 관리하던 던전을 바라봤다.
우우우웅...
섬뜩한 울음성과 함께 검붉은 빛의 사이한 아우라가 흘러나오는 거대한 게이트가 보였다.
언뜻 게이트처럼 같지만, 사실 그건 던전 통로였다.
입구모양의 고정 형태에서, 돌연 확장을 시작하며 불규칙한 게이트의 일렁임을 보이며 변화하는데, 그게 바로 몬스터 웨이브의 전조였다.
평소보다 배 이상 커진 모습에 절로 마른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도비돈 길드는 광호 길드 소속의 하위 그룹으로써, 개중에는 제법 실력자가 모여 있는 길드였다.
그 때문에 B~C급 던전에 대한 관리를 맡을 수 있었는데, 기존에 그들이 관리하는 B급 던전은 하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C급이었다.
헌데, 최근 C급 던전 하나가 승급현상을 겪으며 윗줄로 올라선 것이다. 2개 모두 운영하려는 욕심을 부린 도비돈이 기존 던전의 인원을 조금씩 빼서 돌렸고, 그 결과가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져버린 것이다.
승급 던전은 지켰건만, 역으로 기존 던전이 망가져버린 상황이었다.
“쯧...거 어디냐, 고블린인가? 거기는 승급 현상 발생하자마자, 깔끔하게 소유권 포기하고 광호에 반납했다던데.”
“덕분에 하위 던전 2개로 보상 받았잖아.”
“거기 길드장이 욕심은 좀 부려도, 제 주제 파악은 잘 한다더라. 그에 반해 우리는...욕심만 많으니.”
“하...짜증나네.”
“우리 커리어까지, 통째로 고춧가루네. 씨발!”
스스로도 B급의 신체 각성자인 탓일까?
도비돈은 길드원들의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저들이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그와 저들 모두, 오래지 않아 백수에 무직자가 될 것이며, 그의 경우에는 업계에서 방출 당할 확률도 높은 만큼, 모든 게 의미 없을 따름이었다.
“하...”
이민이라도 가야 할까?
갈등이 깊어지는 순간이었다.
**
사실, 언제가는 터져도 터질 거라 생각했던 상황이었다.
“승급현상 때문에 인원이 한쪽으로 쏠렸으니.”
존슨은 그리 말하며 웨이브 지역을 바라봤다. 곁을 지키던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상황이 복잡하긴 했잖아요.”
수차례 발생한 던전 승급은 문제없이 잘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하위 그룹을 비롯하여, 다른 구역 헌터들의 적절한 지원 덕분이었다.
물론, 각국에서 날아온 여러 헌터들의 힘도 크긴 했다. 하지만 그들로 인해 발생하는 2차적 문제로 인해, 오히려 골칫거리로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개중 상당수가 불순한 목적을 안고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절가량은 범죄자나 다름없는 이면의 주민들이 아니던가.
견제를 위해서라도 지원 들어온 헌터들을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 와중에 하위 그룹들은 그들 나름대로 부족한 인원을 감당하며, 힘겹게 자체 던전을 운영해야 했다.
“던전 관리도 빡센데, 이면 놈들이 이리저리 들쑤시고 다니니, 그놈들 경계도 해야 하고, 이래저래 골 때렸을 걸요.”
언제고 터질 수밖에 없는 화약고 같은 상황이었다.
“도비돈이 아니었어도, 결국 난리가 났겠죠.”
“거긴,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던데.”
“당연하죠. 웨이브 문제를 일으켰잖아요. 커리어에 똥물이 뿌려져서 앞으로 몇 년은 피똥깨나 쌀 테니, 똥 씹은 표정일 수밖에 없죠.”
“거 참, 그놈의 똥 똥, 더럽게 진짜.”
코를 막고 냄새난다는 시늉을 하는 존슨의 모습에 마루도 같은 반응으로 응수했다.
“오늘은 좀 씻었습니까?”
“하루 2번 씻는 거 모르냐?”
“그런 것 치곤...”
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이 영 꺼림칙했다.
존슨의 표정이 와락 구겨지는 가운데, 마루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니, 몰골이 얼마나 엉망이면, 그 명성을 가지고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가 없대? 햐~! 신기하네.”
“요놈 쉐끼!”
말발로 안 됨을 느꼈음인지, 존슨의 헤드락이 마루를 휘감았고, 결국 그렇게 투닥 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물론, 그 역시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너무 긴장 없는 모습에 주변의 시선이 몰리는 걸 느끼며, 적당히 상황정리를 한 것이다.
눈치껏 자리이동도 이어지는 가운데, 존슨이 마루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 있어도 되냐?”
“왜요?”
마루의 반문에 존슨이 슬쩍 후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혜성 길드하고 같이 안 움직여?”
그 말처럼, 현재 마루는 개별적으로 행동 중이었는데, 혜성을 비롯한 일정 규모 이상의 길드 대부분이 일선이 아닌, 2선 3선 등, 후방에서 뒷짐을 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루도 그들과 함께할까 싶었는데, 존슨의 행동을 보며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가요?
-웨이브잖아. 파도는 전방에서 맞아야 제 맛이지.
그러며 정말 놀러가는 사람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선으로 걸어가는데, 이를 보며 내심 반성해야만 했다.
‘내가 언제부터 네임드였다고.’
생각해보면 평생 비각성 하급 헌터로써, 고기방패나 다름없는 일선을 떠돌던 인생이 아니던가.
‘뒷짐 지고 교양이나 떠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
그런 이유로 김연희에게 별도 통보를 보낸 뒤, 즉각 전방으로 달려온 것이었다. 이 와중에 존슨의 이름을 살짝 팔았는데, 이는 행여나 뒷말이 나오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무리에서 따로 떨어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의 위치가 특수하다 보니, 생각보다 간단히 해결될 수 있었다.
용병!
계약의 수준이야 정규 급이지만, 여전히 그는 용병이란 카테고리 안에 있었고, 그런 이유로 개별 행동도 어느 정도는 용납될 수 있는 것이다.
“자아...잡담은 이쯤하고, 슬슬 시작되려나 보다.”
존슨의 경고에 마루의 시선이 던전 입구로 향했다.
슬금슬금 범위를 넓혀가던 통로가 돌연 확장을 멈추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대뜸 알을 까기라도 하듯,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통로들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몬스터 웨이브!
그저 단순히 입구 하나에서 우르르 쏟아지는 거라면, 결코 파도나 물살 같은 명칭이 붙지 않았으리라.
저처럼 순식간에 수십 수백의 통로가 형성되며, 말 그대로 폭풍처럼 쏟아져 나오기에, 몬스터 웨이브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온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검붉은 빛 사이한 아우라를 뚫고, 드디어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갈겨! 질러!”
“죽여버려!”
타타타타타타타타...
격돌의 시간이었다.
**
혜성 길드의 진영 속, 이소희와 김연희는 눈살을 찌푸리며 저 멀리 보이는 전장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네.”
김연희가 그리 말하더니 고개를 돌려 후방을 살폈다. 그들 혜성의 간부진이 잔뜩 포진하고 있는 게 보였다.
“쯧! 일찌감치 나서면 좋을 텐데.”
그녀의 이야기에 이소희도 짧게 혀를 찼다. 존슨과 마루의 행보 때문에 더더욱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걸지도 몰랐다.
거대 길드의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혜성은 시작부터 나서는 경우가 없었는데, 이는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광호를 비롯한 다른 대 길드 역시 비슷했다.
이 구역의 던전을 통제하는 건 혜성이지만, 일단 던전 지대 자체가 광호 소속의 지대이다 보니, 그들의 감시자가 저 한편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런 이유로 더더욱 무게감을 잡고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희생이 나오기 시작하네.”
김연희가 웨이브의 1선을 보며 미간을 구겼다. 멀리 최전방으로 몬스터의 물결이 헌터들을 덮치는 게 보였다.
워낙 거센 파도였던 터라, 격랑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난전으로 넘어갔고,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한 호흡 만에 수십 수백의 몬스터가 우르르 쏟아져 나오니,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일지도 몰랐다.
특히,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구역은 A등급 던전의 웨이브가 아니던가. 규모 자체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균형이 깨진 건 도비돈 길드가 관리하던 B급 던전이지만, 결국 한 에리어 안에서 발생한 사건이니 만큼, 지대 내의 모든 던전들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던전 내부의 모든 몬스터들을 단시간에 쏟아내는 게 웨이브인 만큼, 이 순간만큼은 혜성이나 광호의 악연은 뒤로 한 채, 서로의 힘을 합치는 게 정상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필사의 각오로 덤벼드는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남의 집에서 난 불난리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후방에서 뒷짐을 지고 있는 것 역시 그런 이유였다.
이들의 행태가 맘에 안 들면서도, 결국 그 일원이기에 함께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짜증어린 표정으로 전장을 바라보던 두 여인의 얼굴에, 한 줄기 미소가 스며드는 순간이 있었다.
“신입이라도 풀어줄 수 있어서 다행이네.”
김연희의 말에 이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 규모하고 상관없이, 일단 용병 포지션이니까.”
“그나저나...신입의 건가드는 확실히 월드 클레스네.”
저 멀리 웨이브의 최전선, 난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홀로 액션 무비를 찍는 사내가 한 명 있었다.
정마루!
화제 속 슈퍼 스타였다.
**
군계일학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랄까?
모두가 난전을 허덕이며 시궁창을 헤매고 있을 때, 홀로 굳건히 서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이란, 절로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모양새였다.
“저게 C급이라고?”
“아니, 저격수가 왜 저기 있는데?”
“총기류 각성자면 뒤에 빠져야지!”
“늦깎이 각성자라더니, 사념폐해는 아예 무시하는 건가?”
“와...직관 오졌다. 저게 진짜 건가드구나.”
마루는 달려드는 몬스터들을 상대로, 거의 난사에 가까울 만큼 무자비한 사격을 펼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많은 총탄 중에서, 어느 하나 허투루 쓰이는 게 없었다.
“허어...어떻게 죄다 급소에 갖다 박누?”
“미쳤다! 쏟아지는 놈들이 한 종류가 아닌데, 저 난전 속에서 종까지 구분해서, 각 유형에 맞는 급소만 맞추고 있어.”
“정말, C급 맞아?”
“몸놀림은 나보다 무뎌. 아...자괴감 드네.”
“눈이 좋은 건가?”
“머리가 좋은 거겠지.”
“아니, 뇌지컬 너무 오지는 거 아니냐고.”
마루는 딱 C급 A형 수준의 스팩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이는 육체적인 부분에 제한된 거였다.
레벨업을 통한 스탯 상승으로 인해, 그는 몸놀림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부분에서, 종의 진화에 가까운 변화를 거듭하지 않았던가.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뇌지컬’만 놓고서도, 충분히 압도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닌 것이다.
게다가 지금 당장 쏟아지는 건 던전의 하위계층이다 보니, 제한된 몸놀림만으로도 영화 한 편 찍는 건 일도 아니었다.
몸뚱이는 C급이지만, 머리는 A급이었다.
‘플러스마이너스, 평균 잡으면 B급은 되지 않겠어?’
건가드의 특성상 몸놀림보단 뇌순환이 중요하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쾌남 액션을 펼치니, 자연히 그 주변의 난전 상황이 풀어지며, 하급 헌터들의 숨통이 트일 수밖에 없었다.
마루 역시 한 때는 저들과 같은 고기방패 역할을 자처해야 했던 만큼, 최대한 주변 정리에 집중하며 하급 헌터들의 길을 열어주는데 노력했다.
그러는 한편으론 존슨의 위치도 꾸준히 확인했는데, 그의 사냥 방식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하급 몬스터를 상대로 뭐 볼 게 있겠냐 싶겠지만, 정말 작은 움직임으로 필요 이상의 효과를 끌어내는 그의 모습은 충분히 인상적이었고, 그런 만큼 꾸준히 살필 가치가 넘쳐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이목을 끌지 않는 게 놀라웠다.
‘귀신이 따로 없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동선이었다.
매 순간 이동을 거듭했다. 한 자리에 멈춰있는 경우가 없이, 꾸준히 새 동선을 짜내다 보니, 시선이 고정될 틈이 없는 것이다.
덕분에 인디안 존슨이 함께한다는 걸 아는 헌터는 없어보였다.
그 치열한 난전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하급 몬스터들로 이뤄진 1차 웨이브를 얼추 막아냈다 싶을 무렵, 긴장이 살짝 풀리며 한 차례 숨을 고르려던 찰나, 아주 은밀하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사악...
섬뜩한 예기가 날아들고,
서걱!
옷깃이 잘려나갔다.
몬스터들의 물결이 치는 전방을 주시하며 집중했던 탓인지, 등 뒤의 긴장감이 풀어져버렸던 것일까?
잘린 옷가지는 뒷목 부근이었다.
‘위험했어!’
순간적으로 C급 너머의 움직임을 보인 덕분에, 가까스로 피해낸 암습이었다.
덥썩!
습격자의 손목을 정확히 붙잡았다.
깜짝 놀란 ‘사내’가 보였다.
그랬다.
몬스터가 아닌 사람이었다.
“너 C급이...”
마루가 보여줬던 순간적인 몸놀림에서, 그의 등급 위장을 눈치 챈 듯, 경악한 얼굴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게 보였다.
“등급을...컥!”
쓸데없는 이야기가 넘쳐나기 전에, 놈의 입 안에 총구를 쑤셔 넣었다. 그 상태 그대로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얼씨구?’
넘실대는 몬스터들의 광기 사이로, 불청객마냥 스며드는 불쾌한 살기가 감지됐다.
‘하...!’
마루의 두 눈 위로 경멸의 빛이 스쳐갔다.
“쓰레기들!”
그와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핏물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