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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 / #24. 투 플!

존슨은 저 멀리 보이는 마루의 모습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제대로 할 때가 됐지.”

그리고는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저 놈은 뭘 하는 거야?’

어느 순간부터 눈에 띄기 시작한 제퍼드가 거기 있었다.

남다른 감각을 지닌 덕분에, 순간적으로 스쳐가던 익숙한 살기를 놓치지 않았고, 그 덕분에 놈의 위치를 잡아낼 수 있었다.

은신은 제대로 했지만,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진 못한 듯, 결국 그에게 들켜버린 것인데, 어느 시점부터는 그러한 감정마저 날려버린 모양새로, 실실거리며 웃고 있지 않는가.

‘느낌이 어째, 싸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저쪽으로 빠지기엔, 이곳 웨이브의 상황이 좋지 못했다.

‘2차라서 그런지, 피해가 너무 커지네.’

중급 규모의 몬스터들이 대거 몰려나오는 탓에, 하급 헌터들의 비명성이 한층 높아져 가고 있었다.

대개 이쯤 되면 대형 길드들의 진두지휘 아래, 하급 헌터는 2선으로 물러나고, 중급 헌터 및 길드들이 1선으로 넘어오는 게 평균이었다.

‘그딴 건 전혀 없군.’

과거에도 몇 차례 한국을 방문하며, 알게 모르게 웨이브 현상에 한 팔 거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하나도 변한 게 없네.’

알게 모르게 실망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 역시 완전히 뒷짐만 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자체적으로 하위 길드원을 내보내며, 이런저런 영향력을 행사 중이었는데, 존슨 입장에서 봤을 땐 그리 맘에 드는 장면은 아니었다.

‘저 뒤에 있는 게 혜성이었지.’

거기에 광호까지, 나름대로 기억에 진하게 묻어있는 이름들이었다.

이 나라에서 손꼽히는 거대 그룹이며, 길드이기에 모를 수 없는 것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과거의 인연과 얽혀있는 탓에, 더더욱 모르기가 어려웠다.

‘그러고 보니, 써니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었는데.’

워낙 은밀한 방한이라서, 아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는데, 그의 경우에는 미국 측의 요원과 선이 닿아있어서, 운 좋게 얻어낸 정보였다.

이 타이밍에 저도 모르게 입 꼬리가 올라갔다.

‘흐흐...’

그의 등장에 바싹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반나!

아무래도 그녀의 첫사랑이며, 여전히 그녀 마음에 비수처럼 박혀있는 이름이 바로 ‘이선’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결국, 나한테 왔단 말이지!’

앞전의 데이트 신청에 종일 웃음보가 터졌던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건 그냥 평범한 데이트가 아니었다. 그녀가 옛 사랑을 떠나보냈다는 온전한 증거의 한 장면이었던 것이다.

상황이 그러하니, 어찌 기뻐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분노할 이도 한 명 있었다.

‘제퍼드...’

달려드는 몬스터를 간단히 처리하고, 또 다시 몇몇 헌터들의 목숨을 구하고 났을 즈음, 어느새 그의 모습이 은신처에서 사라졌음을 알았다.

‘돌아간 건가?’

묘한 찝찝함이 남는 순간이었다.

**

웨이브의 두 번째 물결 시작되면서, 2~3선에 대기 중이던 헌터들의 여유도 많이 사라지고, 자연스레 주시하던 눈길도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관찰자들은 남아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영향을 받는 이들도 상당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동일한 ‘변화’를 느끼며 놀람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몸짓이 달라졌어.”

“정말 C급이 맞나?”

“중고 신인이라더니, 뭐가 이래?”

“거의 쏘는 게 아니라, 패네.”

“건가드가 아니라, 건어택인데.”

“저러다 총으로 두들겨 패겠어.”

마치 진화라도 한 듯, 한층 날렵해진 몸놀림과 과감해진 몸짓은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트렸다.

“C급 A형 정마루!”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입에 담게 만들 정도로, 그는 놀라운 모습들을 연속해서 보여줬다.

“크아아아아아!”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대개 건가드라 하면, 몸을 보호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보니, 그 기본은 언제나 한 발 빠지는 포지션을 이용하는 거였다.

마루의 건가드도 분명 그 기준점은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그런 움직임에 변화가 발생했다.

전진 또 전진!

복싱으로 비유하자면, 아웃복싱을 해야 하건만, 그는 마치 인파이터마냥 상대의 품 안으로 달려들고 있던 것이다.

“크워?”

순식간에 간격을 빼앗긴 몬스터가 의문을 표하는 찰나, 이미 그 턱밑에 뜨겁게 타오르는 총구가 파고들고 있었다.

제로 거리에서의 사격이었다.

무기의 수준여부를 떠나더라도 치명적일 수밖에 없건만, 그가 사용하는 건 무려 G-eye였다.

한 발이면 충분했다.

타앙!

그렇게 한 놈을 박살내는 순간, 놈의 사체는 버려지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이용당한다.

흔히 말하는 고기방패가 되어, 다른 놈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한편, 시야를 숨기거나 속이기 위한 위장도구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선택지는 2가지로 나뉜다.

사체를 던져 시야를 어지럽히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진하거나, 이대로 고기방패를 밀어붙이며 육탄돌격을 하는 것이다.

두 가지 방식 모두 상황에 맞춰 이용했다.

포위망이 형성되려 할 때는 던진 뒤 몸을 빼고, 주변이 좀 한산하거나 동료들에 여유가 있을 땐, 그대로 방패를 밀어붙이며 달려드는 것이다.

돌격을 할 때는 그가 시선의 중점이 되며, 다른 헌터들에게 한 줌 여유를 선사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건가드가 아닌, 어택 그 자체였다.

그 나름대로 실력을 선보이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부를 보일 생각은 없었다.

‘언제나 3할은 감춰야지!’

물론, 총기류로 위장하고 있는 이상, 3할보다 많은 수준을 숨기는 거였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주변을 놀라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갑자기 스킬 목록이 바뀐다는 건, 적잖은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는 탓에, 단번에 너무 많은 걸 바꾸기는 위험한 것이다.

지금 이 변화도 상당히 과감한 시도였는데, 그나마도 존슨이라는 방파제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도전이며 모험이었다.

헌데, 여기서 또 의외의 변수가 작용했다.

“갑자기 몸놀림이 달라지다니, 뭐지?”

“실력을 숨긴 건가?”

“이 상황에? 설마.”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네.”

“승급인가?”

“오오!”

사람들의 반응이 대체적으로 한 방향으로 쏠린 것이다. 그도 그럴게 좀 전까지 전장의 최전선을 달리며, 말 그대로 하급 몬스터들을 쓸어버리며, 그야말로 ‘무쌍’을 찍던 마루가 아니던가.

이 타이밍에 승급을 한다고 해도, 왠지 납득이 갔던 것이다.

“각성 1년차 아닌가? 또 승급한다고?”

“1차 웨이브 때 봐봐. 그런 솜씨로 전장을 휩쓸었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지.”

“게다가 혜성이잖아.”

“저 정도 실력이면, 작정하고 밀어줬을 수도 있어.”

“허어...중고라고 우습게 봤는데, 전차였누.”

“땡크네 땡크!”

주변의 수근거림을 보라, 알아서 오해거리를 만들어 나가며, 방파제를 두툼하게 만들어주고 있지 않은가.

‘좋은 착각이다!’

마루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저들의 훌륭한 오해거리에 환호해줬다. 그러며 더욱 성심성의껏 건가드 어택을 보여주는데, 그의 활약이 늘어날수록 주변 헌터들의 안정감 역시 살아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는 자연스레 사기충전의 결과로 이어졌다.

모두가 환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몇몇 불편한 모습을 보이는 얼굴들이 있었다.

“흠...뜻밖이군.”

“역시, 김연희란 건가.”

“마녀가 맘에 들진 않지만, 그녀의 눈은 인정할 수밖에 없군요.”

“저 정도 실력이라면, 계약을 문제로 걸고넘어지는 것도 더는 무리겠습니다.”

“이소희의 지원까지 생각하면, 속이 쓰리군요.”

“으음...그녀들의 활약이라니, 본사에서 좋아하지 않겠는데요.”

그들은 바로 혜성 길드의 수뇌부들이었다.

이소희와 김연희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하나같이 50대 후반에서 60대를 넘나드는 연령대였다.

각기 혜성그룹 비서실을 비롯하여, 여러 루트를 통해 전대와 현 세대의 혜성 본가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이기도 했다.

“저딴 하급 헌터가 이리 화제가 될 줄이야.”

“혜성의 수치입니다.”

“그렇다고 내치기도 어려워요.”

“하필, 존슨과의 관계까지 거론되고 있으니.”

“아직까진 이면에서만 도는 이야기지만, 마녀는 이걸 수면 위로 올리려고 생각하는 듯 보이더군요.

“허어...그렇게 되면 더 이상 막을 수 없겠습니다.”

“차라리 저 친구를 저희 측에서 안고 가는 게 어떨지?”

“가능하겠습니까? 듣자하니 마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던데요. 계약서를 보면 알겠지만, 대우도 상당합니다.”

“되건 안 되건, 일단 찔러는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최후방에서 뒷짐만 진 채, 이런저런 음모를 꾸미는 사이에도, 전장의 상황은 시시각각 다양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우왓! 이 놈들은 또 뭐야?”

“지렁이들이다. 피해!”

“젠장! 피하긴 뭘 피해! 땅 속에 들어가기 전에 잡아야지.”

“파고들기 전에 잡아! 묶어! 쏴!”

수많은 길드들이 던전의 생태계를 이해하고, 그 내부를 각자의 입맛에 맞게 통제하며, 나름대로 던전 안정화를 이뤘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헛소리였다는 건, 지금처럼 웨이브가 발생하게 되면 깨닫게 된다.

지금 출현하고 있는 ‘베스웜’의 경우에도 그랬다.

아나콘다를 연상시키는 덩치에 땅 속을 헤엄치며 살아가는 몬스터로써, 광호에서 웨이브를 전파하며 알려준 던전 도감에는, 지금과 같은 몬스터가 언급된 적이 없는 까닭이었다.

안정화니 뭐니 하지만, 실질적으로 내부 깊이 파고들수록 길드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 때문인지 중급 몬스터가 출현하기 시작하는 2차 웨이브 이상부턴, 마냥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바로 이런 부분으로 인해, 대형 길드들은 각자의 전력을 아껴두는 것인데, 뜻밖의 변수로 인해 전력이 깎이는 걸 우려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만큼 많은 하급 헌터들의 희생이 뒤따르기도 했다.

“쯧...베스웜인가. 하필, 까다로운 놈들이군.”

존슨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지간하면 나설 생각이 없었지만.’

이미 그가 방한했다는 것도 알려진데다가, 몇몇은 그의 등장을 눈치 채고 있기도 했다.

적당히 몸을 숨긴 채로도 충분히 제 위력을 보일 수 있었지만, 상황의 반전을 위해서라도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우워어어어어어어...”

그는 강렬한 외침과 함께 스스로를 드러냈다.

순간적으로 전율이 일 만큼 강대한 파동이 전장을 휩쓸고, 적아의 구분 없이 모두가 경직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 외침에서 먼저 정신을 차린 건, 헌터들 측이었다. 애초에 웨이브에 더 가까운 위치에서, 던전 통로를 향해 터트린 일갈이지 않던가.

덕분에 막 땅속에 몸을 던지던 베스웜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다.

만약 땅속에 파고들게 될 경우, 웨이브 사태는 장기전으로 거듭날 확률이 높아지기에, 다른 무엇보다 놈들의 처리가 최우선이었다.

땅속성 각성자들을 따로 초빙하여 놈들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준 여부와 무관하게 베스웜이 골치 아픈 건, 이런 처리방식의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지금이다!”

“갈겨! 갈겨!”

그렇게 빠르게 베스웜들을 처리하는 한편, 좀 전의 일갈을 터트린 헌터에게도 시선이 모아지는데, 누군가 그 정체를 알아보며 외쳤다.

“인디안 존슨이다!”

그 순간, 모든 헌터들이 지저분한 몰골 사이에서 후광이 떠오르는 듯, 오묘한 착각을 받았다.

“맙소사! 정말 인디안 존슨이야.”

“워어! 제로원!”

“우리의 영웅!”

“살았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존슨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최초의 외침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알아챈 까닭이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지난 한 달 동안 함께 생활하며 겪었던 음성이지 않던가.

‘마루, 이 놈이...’

저 한편에서 히쭉거리고 웃는 마루의 모습이 보였다. 도끼눈을 한 채 노려보고 있노라니, 그가 입 모양과 손짓으로 방어했다.

-오늘 저녁 쌔고기! 한우!

손가락을 두 개 펼치며 반응해줬다.

-투 플?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그의 손가락 두 개를 오해한 헌터들이 재차 환호했다.

“승리 사인이다!”

“이겼다!”

“할 수 있다!”

“우와아아아아~!”

투 플러스 소고기 한우는 전장의 사기를 하늘 끝까지 끌어올려버렸다.

“어...음...”

당혹감 속에서 결국 존슨이 한 선택이란?

“나를 따르라!”

분위기에 취하는 거였다.

“우와아아아!”

“인디안 존슨!”

“와아아아아아~!”

“제로 원!”

그 기세가 어찌나 대단했던지, 광기에 젖은 몬스터들마저 뒷걸음질을 치게 만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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