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져줄...
이변은 없었다!
혜성 길드를 비롯해 네임드급 강자들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생각지도 못한 세계적인 영웅, 인디안 존슨이라는 손꼽히는 실력자까지 끼어있는 판이었다.
A등급 몬스터 웨이브?
이래저래 변수가 많은 게 웨이브라고 하지만, 이만한 전력을 지니고서도 막아내지 못한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됐다.
특히, 일찌감치 전면에 나선 여러 네임드급 헌터들의 활약에 의해, 생각 이상으로 수월한 방어전이 이어지면서,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안정적으로 웨이브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화제가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인디안 존슨의 웨이브 참전.]
[제로 원, 그 압도적인 실력에 대하여.]
[세계가 인정하는 최강자!]
[그가 최고인 이유.]
어쩌다 보니 모습을 드러내버린 존슨이지만, 기왕 나선 김에 제대로 하자면서 작정하고 전장을 휘저었는데, 범위 계열이 아니더라도 그 실력만큼은 진짜였고, 이는 상위 몬스터들이 등장하는 3차 웨이브부턴,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대개 길드의 실력자 서넛이 붙어야 하는 몬스터라 할지라도, 그는 홀로 짓이기고 박살내 버리며, 마치 전차처럼 저돌적으로 전진을 거듭했고, 통로 주변을 홀로 압도하는 위엄까지 보여줬다.
그 전율적인 광경은 라이브로 생생히 카메라에 잡혔고, 전국으로 그리고 세계로 전파 됐다.
A급 던전 웨이브가 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계적인 관심이 쏟아질 만한 사건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중심에 인디안 존슨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관련 영상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덕분에 가장 빠르게 현장에 도착해, 양질의 영상을 뽑아낼 수 있었던 LBC의 경우, 기쁨의 환호성이 반나절가량 이어졌다고 한다.
어찌됐건 그의 등장으로 인해, 한국의 여러 매체들은 특히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간 방한했다는 소식만 있었을 뿐, 대외적으로 얼굴을 드러냈던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방한에 대한 내용마저 의심이 깊어지고 있던 상황이건만, 당사자가 직접 웨이브 현장에 등장하더니, 진정한 월드 클래스의 위력까지 보여준 것이다.
소란의 목소리는 싹 사라지고, 그에 대한 찬양의 목소리만 높아져 갈 뿐이었다.
-누가 우리 형을 의심했느뇨?
-건방진 종자들!
-믿어라! 그러면 구원받을 거시야!
-제로 원, 제로 원, 거리는 이유가 있었네.
-아니, 어떻게 혜성 길드를 쩌리로 만들어 버리냐?
-보스 몬스터 잡을 때, 와...A급 던전인데, 보스 몹이 불쌍하긴 처음이더라.
-그냥 딱 멱살 잡고, 뒈지게 후두려 패는데, 후두부가 박살나버림!
이 와중에 새롭게 거론되는 화젯거리도 있었다.
-그런데, 저 몰골...저번에 그거 아님? 이반나 영화관 데이트, 여기 링크 올린다. 확인점.
-어라? 그러고 보니, 저 몰골...
-저 꼬라지...
여기는 살짝 악플인 듯 아닌 듯 미묘한 구간이었다.
-아아...그런 거였어.
-젠장! 인디안 존슨이었다니.
-용안을 몰라 뵀다니, 내가 미친놈이지.
-눈깔 파러 감.
-난 주둥이 꿰매러 감.
-이반나와 존슨, 에헤헤! 얼레리 꼴레리~...흑...
-훌쩍...
-외롭다...
-서럽다...
씁쓸한 댓글들도 제법 많았지만, 대체적으로 둘 사이를 축복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더 많았다.
이반나와 존슨 둘 모두, 한국이란 나라에서 워낙 인지도가 높은 탓인지, 악플이라 할 만한 건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화제가 됐던 건 따로 있었다.
[제로 원의 형제!]
[하급 헌터의 반란]
[혜성의 선견지명?]
[액션 건가드의 주인공,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하다.]
인디안 존슨이 형제라고 선언하듯 외쳤던 그 사내, 바로 마루에 대한 이야기로 들썩이고 있던 것이다.
-아니, 대체 정체가 뭐야?
-C급 A형 정마루!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잖아. 건가드 영상도 그렇고, 무려 인디안 존슨하고 형제 먹는 것까지. 말이 안 되잖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존슨이 저렇게 어부바하는 건 손에 꼽힐 거라고 본다.
-내가 저 뒤쪽에 소식통이 좀 있는데, 듣기로는 비공식 제자라는 소문이 있더라.
-하...건널목 소식지 또 나왔네. 건너건너 어쩌고저쩌고, 그놈의 헛소리 좀 작작 했으면 좋겠다. 존슨이 뭐 아쉽다고 저런 늙다리 하급 헌터를 제자로 들이는데?
-그건 나도 인정. 제자는 좀 오바고, 그냥 보이는 것만 믿자. 브라더라잖아. 형제면 충분한 거 아닌가? 스튜던트 보단 브라더가 윗줄 아님?
-뭐가 어찌 됐건, 우리나라에 제로원의 의형제가 있다는 거잖아.
-형제의 나라!
-존슨 어차피 무국적자인데, 이참에 못 끌어옴?
-아...그것은 희망!
-망상!
-0상!
댓글 반응들이 실로 화려했다.
“이 정도면 영감들도 백기 들었겠는데.”
그래서인지 김연희의 입 꼬리가 광대를 자꾸 건들고 있었다. 길드의 윗선을 제대로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연신 웃음보가 간질거린 탓이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돼.”
그에 반해 이소희는 평소 이상으로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존슨과의 연결고리가 마루씨에게 좋은 작용을 한 건 사실이지만, 이번 웨이브 사태로 인해서, 윗선은 존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진 상태야.”
그 말이 뜻하는 건 간단했다.
“바깥 풍경과 달리, 내부, 위쪽은 마루씨에 대한 불만이 커졌겠지. 지금 분위기도 있고, 이미지도 관리해야 할 테니, 대외적으로는 마루씨를 내칠 수 없을 거야. 하지만 내부적으로 사건을 만들어서 스스로 나가게 만들 수도 있어.”
대 영웅의 도움으로 웨이브가 한 결 편안해진 건 사실이었다.
특히, 범위계열의 1~2차 웨이브가 아닌, 한 마리 한 마리에 무게감이 실리는 3차 웨이브 이상부터, 그의 영향력이 한층 더 강해지며, 전체적인 전장의 호흡 자체를 컨트롤 해 버릴 정도였다.
누가 봐도 존경스럽고 긍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끝이 좋지 못했다.
“길드 입장에서는 손해가 너무 컸어.”
존슨이라는 거인으로 인해, 길드는 웨이브 사태에서 만족스런 수확을 거둘 수가 없게 돼버렸다.
집요할 만큼 자신의 공적을 챙긴 존슨 때문이었다.
“아니, 존슨 그 아저씨는 뭐가 아쉽다고 그렇게 열심히 정산을 해 가는 건데. 보니까 한 푼을 안 놓치려 하더만.”
김연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투덜거리자, 이소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런 소리 마. 그분이 하는 일이 오히려 옳아.”
합당한 공적에 따른 정산을 받는 건, 헌터라면 당연히 챙겨야 할 최우선의 철칙이 아니던가.
“게다가 나쁜 의도로 한 행동도 아니잖아.”
“...그거야 그렇지.”
이 부분에서는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당장 몇몇 기사만 클릭해 봐도 존슨의 씀씀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인디안 존슨, 웨이브 사태로 벌어들인 수익, 전액 기부!]
[사태 인근 지역의 모든 피해자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길 원한다고 밝혀...]
[2차적으로는 불우한 아이들에게......]
여느 때처럼 그의 손에는 한 푼도 남아있지 않았고, 그 같은 모습에 더욱 환호하며 사람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영웅에게 어느 누가 감히 악플을 달 것이며, 투정을 부릴 수 있겠는가.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그의 몰골은 정말 빈곤 그 자체였기에, 너무도 진실성이 넘쳤고, 그만큼 가슴에 닿는 것도 컸다.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뻐해야 마땅하지만, 안타깝게도 혜성 길드의 윗선은 전혀 다른 노선을 타려는 듯싶었다.
“그 아저씨 덕분에, 우리도 이번에 기부금 내야 한다면서, 영감들 불만이 아주 이만저만이 아니야.”
웨이브 수확도 엉망이건만, 거기에 더해 따로 지출까지 하게 생겼으니, 존슨을 좋게 보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 형제로 알려진 마루 역시도 곱게 보기가 어려운 것이다.
“내부 움직임 잘 감시해야 돼.”
“좀 편해지나 싶었는데, 오히려 더 골치 아파졌네.”
한숨을 푹 내쉬는 김연희의 어깨 위로, 업무 재해의 그림자가 가득 드리워지는 듯 보였다.
* * *
며칠 전까지만 해도 동네 한 바퀴 돌기가 힘겨웠다.
“이제는 아예 집밖을 나가기도 어렵잖아!”
성난 마루의 음성에 존슨이 슬쩍 시선을 피하며 젓가락을 놀렸다. 그 모습에 마루가 매섭게 접시를 빼버렸다.
“뭐 잘한 게 있다고, 꾸역꾸역 소고기를 집어 먹는 건데?”
“워어...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더니, 이젠 짐승 취급도 안 하는 거냐?”
“몬스터와 동급이다!”
존슨은 마루의 일갈에 상처 받은 얼굴로 조용히 젓가락만 놀릴 뿐이었다.
깨작거리며 김치를 찢어먹는 그 모습이 또 어찌나 짠한지, 결국 접시를 돌려줄 수밖에 없었고, 이에 존슨은 기뻐하면서도 혹시 몰라, 애써 숨죽이며 열심히 고기를 입에 넣었다.
언제 또 뺏길지 모를까 두려운 듯, 거의 목구멍에 쑤셔 박으며, 저장하는 수준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몰골이었다.
상황 자체가 맘에 안 들긴 했지만, 사실 존슨의 행동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복수심이 일정부분 작용한 건 틀림없겠으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마루를 골탕 먹이고자 형제 발언을 한 건 아니었다.
거기에는 숨겨진 의도 역시 존재했다.
‘날 위한 조치였겠지.’
생방송으로 전 국민 앞에, 어쩌면 세계를 향해서, 목청 가득 선포한 것이다.
[브라더!]
그를 형제라 외쳤고, 이는 즉 마루의 뒤에 인디안 존슨이라는 세계적 영웅이자, 손꼽히는 강자가 자리하고 있단 뜻이기도 했다.
마루가 어느 정도 제 실력을 선보이며, 나름의 기지개를 폈던 만큼, 그의 이런 지원은 닥쳐올 여러 시련의 잔가지들을 알아서 쳐내 줄 터였다.
그게 바로 존슨의 이름값이었다.
앞으로 마루를 건드리고자 하는 이들은 존슨의 이름값까지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고맙기는 한데, 굳이 이런 방식일 필요는 없었잖아.’
분명, 복수심의 비율이 제법 높았을 거라 확신했다.
‘그래놓고 처먹기는 또 더럽게 잘 처먹어요.’
고기는 마루가 먼저 약속한 거라며 집요하게 달라붙더니, 기어이 투 플러스 특급 한우를 얻어먹는 것이 아닌가. 카트 가득 담아오던 모습을 떠올리니, 지금도 열불이 났다.
[나 거지야.]
그러면서 앓는 소리를 하는데, 약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도 자기 쓸 거는 좀 남겨야 하는 거 아니야.’
이 부분을 언급하면,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급하면 산에 먹을 거 많다.]
지난 세월 동안, 너무도 철저하게 야생에 특화되어 버린 것이다.
‘누우면 잠자리, 둘러보면 먹거리랬나.’
그가 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어버렸다. 그 행동에 지레 놀란 듯, 존슨이 허겁지겁 고기를 챙기는 게 보였다.
‘아...이 형님 정말...’
동경하던 영웅과의 생활이지만, 이게 마냥 좋다고만 할 수는 없는 듯싶었다.
‘환상 한 점이 남아나질 않네.’
남아있는 건 궁상뿐이었다.
* * *
잔뜩 사왔던 투 플러스 한우가 전부 소진되던 날, 기다렸다는 듯이 존슨이 입을 열었다.
“조심해.”
그 뜬금없는 이야기에 의아해하던 찰나, 연달아 뜻밖의 내용이 튀어나왔다.
“제퍼드가 너 노리는 것 같더라.”
“...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와중에, 존슨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앞전에 웨이브에서 잠깐 봤었어. 그 때 그놈이 뭘 했나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어째 너 있는 쪽으로 동선 확인하는 느낌이더라.”
말문이 막혀 멍하니 있기를 한참, 이내 정신을 차린 마루가 버럭 성을 내며 외쳤다.
“아니, 그걸 왜 지금 이야기하는 건데?”
존슨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확실한 건지 애매해서, 계속 상황 되짚어 보기도 했고, 나도 요새 좀 바빴던 터라...”
“바쁘긴 개뿔, 매일 데이트하러 나가니까 좋습디까?”
“흐흐...”
늦바람이 무섭다고 하던가?
존슨 이반나 커플은 한 차례 마음을 확인하고 나자, 수시로 만남을 나누며 이런저런 데이트를 했는데, 재미있는 건 가금씩 올라오는 사진들이 참, 50대 지긋한 중년의 사랑이라기 보단, 청춘들의 분홍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묘하게 간질거리는 느낌이었다.
“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파르페 빅 사이즈 먹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먹고 소화시키는 것만 해도 반나절은 간다.”
“후우...흰소리는 집어 치우고, 그래서 제퍼드가 나를 노린다는 게 무슨 소립니까?”
“아, 그거? 당시 상황만 되짚자니 애매해서, 전체적인 그림을 놓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노릴 법도 하겠더라고.”
존슨이 웃으며 말했다.
“이면 쪽으로 소문 쫙 났잖아. 네가 내 제자라며.”
“아...”
느낌이 팍 왔다.
“아무래도 이반나보다는 네가 잡기 편하지 않겠냐?”
“아니! 날 잡아서 뭐한다고?”
“나 빡치게 하는 건 성공하겠지.”
“......”
말문이 턱 하니 막혔다.
“그런 의미에서...”
소화라도 시키려는 듯, 존슨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스트레칭을 하며 말했다.
“스파링 한 판, 어때?”
“...What?”
“제퍼드를 만나도 도망은 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냐?”
말인 즉,
“형이 다져줄...아니, 키워줄게!”
“...the F...?”
불길한 단어가 들렸던 건, 착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