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메시지.
사실, 어지간한 장인들도 단번에 알아보긴 어려운 변화였다.
하지만 강하나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면서 마루가 사용하는 대다수의 장비를 세팅하고 정비해준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그의 미세한 변화까지도 전부 눈치 챌 수 있었고, 덕분에 일찌감치 알아챌 수도 있었다.
‘총기 각성? 웃기는 소리 하시네!’
신체계열의 곁다리 총기류인가도 싶었지만, 그렇다고 치기에는 체형의 변화가 너무 이질적이었다.
미세한 근육이나 자세 체형 등의 변화일 뿐이지만, 그녀는 단번에 그가 순수 강화계에 가깝다는 걸 직감했고, 이후로 마주할 때마다 관찰한 결과, 병장기가 아닌 순수 격투계열임을 유추해 낼 수 있었다.
그 같은 결론이 나왔을 즈음부터 조금씩 장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G-eye의 경우에는 마루가 위장을 원하는 듯 보여서, 거기에 어울려준 물건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설피 만든 건 아니었다.
명장 소리를 듣는 만큼, 허술한 무구는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네 손에 딱 맞춘 거니까. 한 번 착용해 봐.”
강하나는 그리 말하며 장갑을 건넸다. 마루는 어벙벙한 와중에도 결국 받아서 착용하는데, 정말로 그의 손에 딱 들어맞는 것이 아닌가.
이는 G-eye를 제작하면서 마루의 손을 정밀하게 체크했던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B급 자격증 따는 날 줄 생각이었어.”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왜 하필 B급까지 기다렸냐고 묻는다면, 무구에 들어간 재료 때문이었다. 저렴한 재료로 극한의 효율을 끌어냈던 G-eye와 달리, 이번에는 기본 재료부터 고급진 걸 잔뜩 쏟아 넣었다.
“어지간한 장인의 손을 거쳤으면, A급은 돼야 만질 수 있는 장비가 됐겠지만, 난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니까.”
B급부터 손에 쥘 수 있게 제한을 낮춘 것이다.
마루가 제 것처럼 손에 꼭 맞는 장갑을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피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가격이...”
그 물음에 강하나가 고개를 저어보였다.
“선물이야. 딱 그거까지 해서 내 목숨 값 퉁 치는 걸로 하자.”
“흐...그거 하나가지고 너무 우려먹는 것 같아서 미안한데. 무르기 없기다. 나 공짜라면 환장하는 거 알잖아.”
“너무 잘 알아서 탈이지.”
마루는 전혀 거부하지 않고 무구를 받아들었다. 장갑만이 아니라 각반을 비롯하여, 각종 보호구와 몇몇 병장기들도 함께 세팅되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근거리를 위주로 하는 무구들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강세나가 한 마디를 했다.
“삼촌 공짜 너무 좋아하면 대머리 된대.”
그러며 마루의 정수리 쪽을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이에 마루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왜? 너무 풍성해?”
마루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자신할 수 있었다.
[모발도발]
바로 궁극의 스킬이 함께하기 때문이었다.
‘흐흐흐흐...’
문득, 존슨의 머리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형님도 살짝 탈모기가 있긴 했지.’
갑작스런 세나의 지적 덕분에 떠오른 부분이었다.
존슨의 경우 정수리가 아닌 M자형으로써, 비율을 비롯하여 생김새까지 워낙 잘나서 그런지, 이상할 만치 티가 안 나는 느낌이 있었다.
간혹 그런 탈모 증상마저 스타일처럼 멋스럽게 보이는 이들이 있는데, 딱 그런 외형을 지닌 것이다.
‘그래도 은근히 신경 쓰는 느낌이었지.’
특히, 이반나와 데이트가 있는 날이면 유독 그 부분의 커버력이 짙어지는 걸 느꼈다.
‘나중에 선물로 모발 좀 도발시켜 줘야겠네.’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나는 신기하다는 듯, 마루의 어깨에 올라타서 머리를 둘러보고 있었다.
아이를 목말 태워주는 한편, 각 장비들을 일일이 살펴나갔다.
그의 곁에서 강하나는 여러 부위별로 특수 효과들을 언급하며, 상세한 설명들을 덧붙여줬다.
“팔 토시는 데미지 축적 기능이 있어. 가득 차면 방출할 수 있는데, 시뻘겋게 변하면 이걸 이렇게 비틀어서 옆으로 치면, 충격파가 발생할 거야. 타격 시에만 발동하는 거니까 명심해. 그리고 각반의 경우에는...”
“오오...호오...우워~!”
* * *
강하나는 지금도 생생했다.
생사가 오가던 현장, 사신의 그림자가 목전에 다다르던 그 감각, 죽음의 그림자가 머리위로 씌워질 때, 거짓말처럼 내리쬐던 한 줄기 광명의 총성!
타앙!
그리고 등장했던 얼굴이 바로 마루였다.
20대 초반,
갑작스레 각성을 하고, 더 뛰어난 대장장이가 되기 위해선 현장 요원들의 감각도 필요하단 생각에, 아카데미에 입학하고 각종 실습에 지원하며 나섰다.
그러다 돌발 상황이 발생하고 마는데, 몬스터들이 실습장을 덮친 것이다. 아카데미를 끼고 하는 실습이라지만, 결국 현장을 끼고 있다 보니 발생한 사건이었다.
교관들의 지휘 아래 학생들이 똘똘 뭉쳐서 위기를 타파하고자 노력하는데, 상황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 즈음 등장한 게 바로 마루였다.
하급 헌터라지만 그래도 제법 왕성한 활동을 하던, 청춘시절의 마루는 멋지게 등장해서 화려하게 무대를 휩쓸었다.
실력보다는 화력이라고 해야 할까?
급수에 안 어울리는 장비를 잔뜩 휘두르며 전장을 누비니, 교관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고, 그렇게 생겨난 여유는 상황 반전의 계기로 작용했으며, 결국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안전한 귀갓길로 이어질 수 있었다.
너무 뜬금없던 마루의 등장,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강철!
그녀의 부친이 부탁했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실습이라지만 현장에서 이뤄지는 거였고, 그 때문에 아카데미는 주기적으로 사건 사고가 터지고는 했다.
그런 이유로 마루에게 실습 날마다 비밀 호위를 부탁했다는 건데, 이는 아카데미 측에도 따로 연락을 해 놓은 부분이었다.
마루가 급수에 안 어울리는 화력을 자랑했던 것 역시 그런 이유였다. 강철이 직접 이것저것 챙겨준 것인데, 덕분에 정말 멋지게 등장해서 화려하게 피날레까지 장식할 수 있었다.
그 즈음부터였다.
‘이래서 흔들다리 효과가 위험한 건데...’
전에 없이 마루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자극적인 출렁다리였던지, 그 여운이 길어도 너무 길게 이어졌다.
어느새 10년 남짓,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 흘러버렸다.
생명의 은인? 목숨 값?
전부 핑계일 뿐이다. 그냥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준비하면서, 괜히 어색해지고 싶지 않아 둘러대는 말이었다.
마루의 변화를 한 눈에 알아챈 것도 이런 과정의 하나였다. 꾸준할 만큼 그를 살피고 관찰하기에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명장의 시선에 콩깍지까지 씌웠으니, 효과는 곱빼기였다.
한 때는 고백을 생각해 본 적도 있었는데, 기이할 만큼 타이밍이 맞질 않았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깨닫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린 게 문제였다. 그 사이 경력을 더 쌓아버린 마루는 조금씩 해외 쪽 헌터업계의 문을 두드리며, 이리저리 파견을 나가기 시작했고, 국내보다 국외에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 것이다.
고백은커녕 만나기도 어렵던 시기였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30대도 꺾이는 시기가 왔다. 슬슬 이 기나긴 짝사랑도 끝을 내야 할 때가 온 게 아닐까?
그런 이유로 만든 장비였다.
직접적인 고백?
나이를 먹는 만큼 용기가 사라지는 것인지,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30대를 넘고 난 이후로 특히 더 약해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진심이 담긴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 나름의 ‘러브레터’였다.
기나긴 시간의 종지부를 찍는 걸작이기도 한 만큼, 알아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아니, 알아채주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그러면서 동시에 몰랐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솔직히 자신이 없네.’
딱 마루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정반대라고 해야 할까?
청순, 가련, 청초...그런 이미지가 마루의 성향이라면 그녀는 건강미에 강하고 단단하며 억센 느낌이었다.
결과는?
“땡큐! 때땡큐~!”
그가 해맑게 웃는 게 보였다.
주먹을 부르는 얼굴이었다.
* * *
오늘도 이반나와의 데이트를 한 덕분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은 존슨은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방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삑 삑 삑 삑...
그러다가 마루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제, 오냐?”
말문을 건네다가 깜짝 놀라 물었다.
“턱주가리는 왜 그래? 어디서 한 대 맞았냐?”
그 물음에 마루가 쓰게 웃으며 답했다.
“맞을 짓을 한 모양이죠.”
아리송한 대답에 존슨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 * *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군 시절도 있고.’
마루는 몬스터 특수부대의 기억을 잠시 떠올렸다. 그 대부분이 사체 처리 쪽이었지만, 그래도 건가드처럼 몇몇 구색이 갖춰져 있긴 했다.
일단 그 무렵을 기본으로 임시안의 교육을 시작했다.
당연히 오래도록 이어질 예정은 아니었다. 바깥에서는 반년이면 클리어 할 수 있는 교육들이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여유를 둬서 그렇지, 압축교육을 할 경우에는 반절가량 줄일 수 있을 만큼, 교육량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차후에는 그가 현장에서 배웠던 것들을 위주로 가르쳐 나갈 예정이었는데, 이 부분도 제법 경험이 있었다.
현장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도 신입이라 할 만한 초짜들이 상당했고, 할 수 없이 교관 노릇을 하던 시절도 제법 있기 때문이다.
타인일 뿐이지만 일단 현장에 뛰어들고 나면 동료였다.
등 뒤를 맡길 수 없는 동료라는 건, 몬스터보다 더 무서운 것이기에, 어느 정도 기본은 하게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황당하게도 이 부분에서 유독 자주 나서게 됐었는데, 그 이유가 또 우스웠다.
군대!
그 내부의 실태가 어찌됐건, 타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는 제대로 된 군사교육을 받은 존재라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여러 현장에서 그의 경력 첫줄을 입에 올리며, 교관 노릇을 부탁하고는 했던 것이다.
귀찮았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게 또 제법 짭짤했지.’
부수입으로 입에 풀칠할 정도는 됐다.
어쨌든 그런 교육과정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임시안을 위한 커리큘럼을 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지, 정식 제자라는 포지션이 좀 껄끄러웠을 뿐이었다.
“체력은 뭐다?”
마루의 물음에 임시안이 외쳤다.
“생존이다!”
“체력은 뭐다?”
“생존이다!”
그리 외치며 미칠 듯이 뛰고 또 뛰는 임시안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 말처럼 현장에선 무조건 체력이 핵심이었다.
“체력이 빠지면 정신력도 빠지고, 그렇게 되면 사고가 굳어버린다. 대가리가 멈추면 그대로 빠개지는 거야. 생각이란 건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정신력이면 다 된다는 믿음은 버려라. 정신력과 체력은 따로 놀지 않으니까. 명심해라. 체력은 뭐다?”
“생존이다!”
악을 쓰며 뛰는 제자의 모습에 내심 만족스럽기도 했다. 의지가 남다르다는 걸 느낀 까닭이었다.
군대에서 선임으로 후임을 굴리거나, 용병으로 뛰며 교관을 하던 시절, 이 정도쯤 굴리면 대부분 나가 떨어져서 땅바닥과 블루스를 치기 마련인데, 임시안은 여전히 이를 악물고 버티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나아가고 있었다.
솔직한 심경으로 그의 젊을 적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고, 그 때문에 요즘 들어서는 좀 더 제대로 가르치고 싶다는 욕심도 조금씩 생기는 중이었다.
“매일처럼 체력단련만 해서 지겹겠지만, 이렇게 쌓은 기초체력이 현장에서 네 놈 명줄을 질기게 만들어 줄 거다.”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는 체력, 그 별 거 아닌 수준의 체력만으로도 생사가 갈릴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현장이었다.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움직이는 것, 그게 생존의 기본 공식이다.”
악착같이 임시안을 굴리는 한편, 여동생 정다솜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하고 있었다.
“너는 강화계열 각성자라서 일단 체력 부분은 좀 더 여유 있게 갈 거야.”
기초체력은 각성 순간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네가 스스로 체력단련 하는 걸 추천하긴 할 게.”
그녀에게 따로 이런 부분에 대한 교육을 하지 않는 건, 안타깝게도 마루는 비각성자들만 전문으로 가르쳤을 뿐, 각성자들을 가르쳐 본 적은 없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 부분에 대한 조언은 다른 방향에서 얻을 수 있었다.
“오늘은 내가 스파게티 요리사!”
“꺅! 인디안 존슨!”
존슨이라는 특수 교보재가 함께하고 있지 않던가. 그에게 잠시 맡겨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등장만으로도 이미 정다솜의 넋을 빼 놓는 효과가 있었다.
“이반나 언니와 사귀는 거 축하드려요.”
“하하하하!”
그 때문인지 분위기는 거의 팬 미팅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존슨은 훌륭한 스승인 건 분명했다.
함께하며 귀동냥으로 들은 공부들이 상당했고,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관점의 변화 및 깨달음을 얻지 않았던가.
그에게 맡기는 한편으론 그쪽 방면에 슬쩍 귀를 열어놓은 채, 존슨의 강의를 엿들을 계획이었다.
부족한 각성자들의 교육 체계에 대한 기초 공부 및 지식을 그로 인해서 채워 넣고자 하는, 일종의 꼼수라면 꼼수라 할 것이다.
그도 나름대로 이 바닥을 굴러먹으며 쌓인 게 있다지만, 비각성자의 관점에서 채워진 지식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만큼, 존슨의 공부는 또 한 차례 관점의 변화나 세계관의 확장 등의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그렇게 존슨의 강의를 엿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어야 하건만, 어째서인지 자꾸 시선이 제자 임시안을 쫓았다.
좀 더 정확히는 그가 입고 있는 훈련복이었다.
과거, 그가 설계했던 물건으로써, 10년이 넘었음에도 새것처럼 관리가 잘 돼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 때문인지 시선은 자꾸 훈련복을 쫓았고, 머릿속은 이번에 새로 받은 전용장비를 떠올리고 있었다.
도강을 위해 귀를 열어놨음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훈련복과 신형 장비!
둘 사이에 담긴 메시지가 너무도 명확한 탓이었다.
‘결국, 단야에서 느낀 게 사실이었단 건가.’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맺혔다.
“맞을 짓 맞네.”
남다른 회복력 덕분에 다 나았을 턱이건만, 이 아릿한 통증은 어찌 설명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