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08화 (108/325)

#8. 그르다.

어느새 한 달이란 시간을 넘어, 이제는 두 달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 장소에 이렇게 오래 머문 게 얼마만이지?’

존슨은 그리 생각하며 지난 과거를 떠올렸다.

길어봐야 일주일이고 아주 드문 경우가 발생했을 때나 보름 정도?

그 이상 한곳에 머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유라면 다양했다.

세계 곳곳에 널려있는 다양한 마수지대와 해결되지 않은 던전 등,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은 넘쳐났다.

게다가 과거에는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를 경우, ‘그’가 찾아오는 문제도 있었다.

데스워치!

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삼촌...’

암에 걸렸다는 걸 알아버린 뒤, 더는 피하면 안 된다고 여기며 그의 최후를 받아주지 않았던가.

데스워치가 아니더라도 그를 쫓는 이들이 제법 많건만, 이제는 머문다는 것에 대해 별다른 압박감이 느껴지질 않는 걸 봤을 때, 다른 무엇보다 데스워치의 의미가 컸고, 그 때문에 더더욱 유목민 생활이 심각했던 것 같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우직하게 머물러 있을 필요가 있었다.

던전 승급을 비롯한 한국의 이상현상?

아니다.

‘흐흐...연애해야지!’

이반나가 이곳에 있는 이상, 그 역시 최대한 한 자리에서 버텨 볼 생각이었다.

게다가 추가적으로 그를 붙잡고 있는 문제도 있었다.

‘제퍼드.’

분명, 그는 일을 벌일 것이라 예감했고, 존슨은 그걸 기다리는 중이기도 했다. 이반나를 목표로 움직일 것을 아는 만큼, 더더욱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써니가 몰래 들어와서 숨어있는 이유도 그 놈 때문이겠지.’

명확한 이유까진 파악하지 못했지만, 키홀 측에서 광호와 접촉했다는 걸 알고 있었고, 혜성과 이반나의 연결고리 등을 생각해 봤을 때, 이선의 행동들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잡아내야지.’

안광을 번뜩이고 있을 때, 문득 핸드폰이 진동을 했고, 이를 본 그의 표정을 단번에 풀어져버렸다.

[달링]

화면에 뜬 이름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 * *

B급 되었다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이제 저희 혜성에서 관리하는 모든 던전의 출입권한이 생긴 겁니다.”

마루는 이소희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돌아봤다. 특수 1팀의 팀원들이 환영의 박수를 치고 있는 게 보였다.

“이젠 정말로 빡세게 돌아보자.”

“그동안 편했지? 이젠 죽어나는 거야.”

“승급 던전 안정화 작업, 이젠 남의 일이 아니야. 네 일이다. 흐흐!”

“Welcome~!”

“Hellcome~!”

승급 던전의 초기 대응은 끝났고, 내부 진입으로 연결된 만큼, 최소한의 안정화는 마쳤다고 볼 수 있지만, 말 그대로 ‘최소’였다.

안정화 작업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상태였고, 그런 만큼 손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그러니 마루의 합류에 환호성이 나오는 것이다.

“네 영상 잘 봤다.”

“대체 어떤 스킬을 각성해야지, 트라굴 아홉을 한 방에 쓸어버리누?”

“나중에 건가드 강의 한 번 어떠냐?”

“우리 측 루키들이 너한테 교육 좀 받을 수 없냐고 자주 요청하더라.”

“아카데미에서도 연락 왔다던데?”

특히, 마루는 이미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가 아니던가. 그의 건가드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가 넘쳐나건만, 심사 당시에 나왔던 1초살 영상의 경우, 그저 감탄만 나올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게다가 이제 막 각성 1년차인 만큼, 사념폐해에 대한 걱정도 없는 상황이 아니던가. 그의 값어치는 기준치를 월등히 상회했고, 그만큼 기대감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일까?

팀원들은 말로만 B급이라 언급할 뿐, 뇌리에서는 A급 각성자와 같은 선상에 놓고 있는 상태였다.

혜성의 특수 1팀이라는 실력자 그룹 내에서도 중상위권 이상의 포지션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마루의 경력과 실력은 인정하고 있던 바, 그런 그가 등급까지 훌쩍 상승해서, 말 그대로 업그레이드가 돼서 돌아왔으니, 환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하! 반쯤은 저주에 가까운데요.”

마루가 웃으며 그들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틈틈이 연락 정도는 주고받았고, 몇 차례 간단히 출근했던 일도 있던 만큼, 어색함 같은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 바로 움직여야지.”

김연희가 팀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고, 일제히 장비를 챙기면서 이동을 준비했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듯, 승급 던전의 안정화는 현재 진행형 중으로써, 최근에 승급했던 A급 던전들의 경우, 혜성의 특수 팀에서 전담 중이었다.

물론, 대부분 관리자가 따로 있긴 했는데, 이는 기존에 던전을 컨트롤하던 하위 그룹의 존재로 인해, 관련 영역을 인정하기에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 대신 이런 던전의 경우에는 혜성의 관리 목록에서 우선순위가 떨어지고는 했다.

이번 던전 지대는 애초에 던전의 등급이나 중요도 자체가 중급 단계였던 탓에, 단 하나만 빼고 전부 하위 그룹에서 관리했던 터라, 정산 비율의 조정을 통해 관리등급을 다시 나눈 상태였다.

승급으로 지대 자체에 변화가 발생하면서 상황이 변한 것인데, 등급도 등급이지만 승급이란 기현상을 겪은 탓에, 이제는 혜성의 관심도 역시 높은 편에 속했다.

만약 하위 길드의 수준이 부족했다면, 관리 자격을 박탈했겠지만, 아슬아슬하게 균형이 맞았다. 게다가 비율 조정을 하면서 지원을 약속한 만큼, 일말의 미흡함도 메울 수 있었다.

현재 특수 1팀이 움직이는 것도 그런 지원의 일부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도착과 함께 관리 길드인 ‘바르다’의 길드장이 그들을 반겨왔다. 40대 중반의 건장의 체격의 사내로써, 바르다 길드의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그와 닮아있었다.

‘워우, 몸들이...근육이...와우...’

어찌나 바른 생활들을 하는 건지, 죄다 근육이 울긋불긋 성난 외형들을 하고 있었다.

이후 바르다 길드의 안내를 받아 던전 내부로 진입을 시작했다.

“한 명씩 차례차례.”

“진입!”

“진입!”

왠지 군부대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할까?

바르다 길드의 페이스에 따라 던전 내부에 자리를 잡는 가운데, 이소희를 비롯한 조장들이 따로 모여 길드장과 간략 회의를 진행했다.

마루는 당장 마땅히 할 일이 없었던 만큼, 주변을 둘러보며 던전 내부 분위기를 살피는 등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기다렸다.

그러던 중, 의아한 점이 발견됐다.

‘어째...표정들이 잔뜩 굳어있네?’

묘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는 몇몇 바르다 길드원들이 눈에 띈 것인데, 그들 시선을 쫓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얼음여제 이소희를 연신 곁눈질 하는 걸 본 까닭이었다.

‘하긴, 팀장님이 보통 미모가 아니시지.’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바바리가 바람에 펄럭일 때면, 절로 시선이 흔들릴 만큼 마력 수준의 매력을 지닌 여인이었다.

그들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어느새 간략 회의를 마친 듯, 이소희를 비롯한 조장과 길드장들이 다가왔다.

“준비는 다 됐겠지?”

이소희의 물음에 팀원들이 각자 한 마디씩을 했다.

“언제든 지시만 내려 주십쇼.”

“OK입니다.”

“출발 하시면 됩니다.”

사냥터를 정했으니 슬슬 움직일 때였다. 바르다 길드원의 전문 안내자들이 앞장서는 가운데, 던전 사냥을 위한 본격적인 이동이 시작됐다.

* * *

던전 바깥, 바르다 길드의 진영에서 멀지 않은 장소, 카페를 끼고 있는 건물 옥상에서 막 뽑은 커피를 음미 중이던 사내가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찍었다.

-타겟 진입!

그리고는 뜨끈한 커피를 호로록 넘겼다.

* * *

기다리던 문자가 왔다.

“토끼가 굴에 들어갔습니다.”

카일리의 이야기에 제퍼드가 웃으며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시간을 드린 만큼 실패는 용납하지 않습니다.”

보기 드문 미남자의 그림처럼 부드러운 미소였건만, 그게 이토록 섬뜩하게 느껴질 수 있을 줄이야. 카일리는 마른침을 삼키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준비는 완벽합니다. 반드시 성공 할 겁니다.”

* * *

바르다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은 A급 던전이지만, 사냥은 별 문제 없이 잘 진행됐다.

혜성 특수 1팀에게 A급 던전은 일상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곳 던전은 굳이 비유하자면 A-급이라 할 수 있지 않던가.

어려울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걱정되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상위 던전 경험은 처음인 마루 정도였는데, 그 역시 자신의 역할을 문제없이 수행하면서, 모두의 걱정을 덜어주고 있었다.

타앙...

저 멀리 저격 포인트에서 정확한 타이밍에 파고드는 치명적 탄환이란, 팀원들의 호흡을 한결 여유롭게 만들며, 그들 사냥을 한층 간결하게 이끌었다.

1초살 영상에서 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저격은 말도 안 될 만큼 정확했다. 그야말로 백발백중으로써, 한 번을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현장에서 체감하는 건 차이가 있어서, 경험치가 높은 혜성의 요원들도 적잖이 놀라야만 했다. 특수 1팀은 공통되게 마루가 그들 저격조보다 윗줄이란 느낌을 받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신입이었네.’

그들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지만, 가끔 실수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건만, 마루는 절대 그런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각성 스킬이 명중 계열이란 말도 있었지.’

‘이 정도면 빼박인데.’

‘유도탄이라고 해도 되겠네.’

‘워우! 안정감보소.’

마루로 인해 저격조의 지원 및 표적 사격의 완성도가 올라가니, 자연스레 등 뒤에 대한 걱정도 대폭 줄어들었고, 덕분에 팀원들은 한층 과감하게 몬스터의 품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완벽한 호흡이었다.

혜성 특수 1팀이 한국에서 손꼽히는 걸 알게 해 주는 장면의 연속으로써, 안내자로 함께하던 바르다 길드의 요원들은 감탄을 연발할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로 묘한 눈빛을 교환하며 신호들을 나누는 모습들을 보이는데, 워낙 은밀한 수신호인데다가 혜성은 한참 사냥에 집중하고 있던 탓에, 누구도 이를 알아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를 눈치 챈 이가 있었는데, 그건 그들의 수신호를 살폈다고 하기 보단, 행동 자체에서 의문을 느꼈다고 봐야 했다.

‘뭐지?’

저 멀리서 저격에 집중하고 있던 마루가 그 주인공이었는데, 스토킬 스킬 덕분에 좀 더 편안한 저격이 가능해진 덕분일까?

전장을 넓게 보며 상황을 살필 여유를 부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안내자들의 기이한 움직임을 캐치해 낼 수도 있었다.

‘왜 빼는 거지?’

슬금슬금 자리를 이탈하는 모습에 의아해 하다가, 이내 모든 안내자가 그처럼 행동한다는 걸 알고는 의문을 느꼈다.

‘왜?’

자연스레 저들의 행동을 관찰하게 됐고, 오래지 않아 불길한 예감을 받아야만 했다.

‘저거, 설마...트랩인가?’

은밀히 빠져나가며 곳곳에 무언가를 설치하는 모습을 발견한 것인데, 만약을 대비해야 한다는 마음에 급히 무전을 들었다.

그 순간 등 뒤로 밀려드는 싸한 느낌이 있었다.

서걱...

“피했어?”

섬뜩한 예기가 발밑을 스쳐가고, 그와 동시에 날아드는 음성이 하나 있었다.

마루가 놀란 얼굴로 음성의 주인을 바라봤다.

4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사내였는데, 마치 맹수를 연상시키는 날카로운 발톱을 양 손에 매달고 있었다.

강화계의 신체변형 능력자라는 걸 알게 만드는 외형이었는데, 지금 마루에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기척도 없이 다가왔다고?’

한 순간 느껴졌던 희미한 살기가 아니었다면 정말 위험했을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구?’

오직 그 홀로 자리하고 있어야 할 저격 포인트건만, 몬스터도 아닌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그 부분에서 이미 커다란 오류가 발생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더욱 당혹스러운 건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호...족제비 놈 발톱을 피하다니.”

“제법인데.”

사내의 후방으로 세 명이나 더 있던 것이다. 헌데 그들 중 하나가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키홀?’

북한산에서 아이언슈트 차림으로 만났던 키홀의 요원 중 한명이었는데, 그를 확인한 순간 상승한 지능 스탯이 현 상황을 빠르게 분석해줬다.

‘작업장이구나!’

바르다 길드의 안내자들이 보여줬던 모습이 떠오르며, 그들 역시 이 무대의 일원임을 알 수 있었다.

‘바르다가 아니라 그르다였네. 썅!’

아주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