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작업장.
바르다 길드!
정말 그 이름처럼 바르게 살아가는 길드였다. 대외적인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편이었다.
각종 봉사활동은 물론이고, 여러 기부단체에 주기적인 기부도 이어지는 등, 이래저래 사회적인 이미지가 괜찮은 길드였다.
게다가 그들 외형에서 알 수 있듯이, 자체적으로도 관리가 상당했는데, 별도로 헬스 관련 영상을 촬영하며, 그 방면의 이미지도 제법 굳건히 다져놓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전부 계획된 거였다.
“좀 더 이미지를 만들어 놓은 뒤에, 빵 하고 불만을 터트리면서 혜성을 엿 먹이는 구도였는데. 내부에 지뢰를 심는 것도 나쁘지 않고, 좀 더 묵혀놨어야 하는 것을...쯧!”
구정국은 그리 중얼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이런 식으로 사용할 놈들이 아니었는데.”
상황이 묘하게 들어맞아 버렸다.
그들 길드가 관리하는 던전이 승급에 포함되어 버렸고, 그 와중에 때마침 키홀의 접촉이 있었으며, 혜성에게 물 먹일 수 있는 좋은 계획과 배역까지 준비된 상황이었다.
잡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
한 차례 고개를 끄덕였다.
광호 길드와 혜성 길드는 오랜 악연의 역사 때문인지, 서로에게 이런 식으로 비수를 박아놓은 경우가 제법 됐다.
그 때문에 바르다 길드가 아니더라도,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제법 됐다.
단지, 그 중에서 제법 쓸 만한 위치까지 올라간 게 바르다 정도라서, 일말의 아쉬움이 크기도 했지만, 예정된 결과물을 떠올리면 그 정도는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
그렇게 키홀과의 협동을 통해, 바르다의 던전 내부에 조금씩 키홀 측의 사람들을 배치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바르다가 관리하고 있다지만, 지대 자체는 혜성의 관할이다 보니, 그들의 눈이 지대 곳곳에 깔려있는 탓인데, 바르다 길드의 던전 주변에도 혜성의 감시자들은 상당수 대기 중이었다.
승급 던전이 되면서, 중요도가 높아지니 감시자의 퀄리티 역시 높아진 상황이었고, 그 때문에 더더욱 어려운 미션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상황이 절묘하게 맞물렸다.
승급 던전이다 보니, 세계 각국의 여러 헌터들이 서성이고 또 들락거리는 상황이지 않던가.
이들을 잘 활용하며 진입 구도를 만든 것인데, 때론 바르다의 길드원으로 완벽히 위장한 채, 던전 내부로 들여보내기도 했다.
그 같은 방식으로 교체된 멤버는 따로 안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이런 자자한 부분까지 전부 컨트롤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 바르다 길드의 던전 내부는 완벽한 작업장이 설치된 상황이었다.
“얼음여제와 마녀...드디어 그년들이 끝장나는 걸 보겠군.”
구정국은 즐겁다는 듯,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 * *
마루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그 자리에 떨어져있는 시꺼먼 물체가 보였다.
무전기였다.
갑작스런 습격에 다급히 피하다가 놓쳐버린 탓에, 팀원들에게 따로 신호를 보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저격이 멈춘 이상, 오래지 않아 이변을 알아채겠지만, 작업장이란 부분을 명확히 깨닫기까진 좀 더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리고 이런 시간은 혜성에게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게 분명했다.
마루의 두 눈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너희가 끝이냐?”
더 없냐는 그의 물음에 발톱을 드러낸 사내가 히쭉 웃으며 답했다.
“겨우 B급 저격수 따위한테, 이 정도면 충분하지.”
마루는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그러는 그쪽은 A급이신가 봐?”
사내가 씨익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는데, 마루의 시선은 그보다는 뒤편의 인물들에게로 향해 있었다.
‘딱 봐도 암살 계열은 아니야. 그렇다면...저 중에 기척을 숨기는 재주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건데.’
개인이 아닌 여럿을 컨트롤 하는 스킬일 확률이 높았다.
그의 이런 짐작처럼 실제로도 그들 중 한 명이 사운드 제거 스킬을 지니고 있었다.
단, 인원수가 늘어나는 만큼 이동의 제한이 커지는 탓에, 일찌감치 이 부근에 자리를 잡고 있던 것인데, 이는 바르다 길드가 던전이 관리를 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혜성의 사냥 일정에 상당부분 관여할 수 있기에, 무대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꾸밀 수 있던 것이다.
원래라면 좀 더 대기를 하다 나설 계획이었지만, 순간 마루의 분위기가 바뀌는 걸 읽었고, 뒤이어 굳어버린 얼굴로 무전기를 꺼내는 모습을 보며, 돌발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때문에 계획을 수정하며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슬슬 시간도 됐으니까. 먼저 나서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습격을 했던 사내, 바카라가 그리 말하며 키홀의 사내를 돌아보는데, 거기서 마루는 사내가 키홀과는 무관하단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는 건 현재 들어와 있는 키홀의 인원보다 많은 숫자가 작업장을 열었을 확률이 높다는 거고, 그만큼 상황이 어려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빨리 처리해야겠네.’
마루의 안광이 돌변하고, 순간적으로 기세까지 급변했다.
[태세전환 - 울프]
“무슨...”
깜짝 놀란 바카라가 눈을 동그랗게 뜰 때, 이미 마루는 화살처럼 쏘아지면 그에게도 안겨들고 있었다.
“건방진 놈!”
총기 각성자가 근접전을 걸어온다는 부분에 분노한 듯, 바카라가 매섭게 발톱을 휘두르는데, 마루는 이를 무시하며 쭈욱 파고들었다.
카앙...
스파크를 일으키며 튕겨나가는 바카라의 발톱이 보였다.
‘역시, 명품이야!’
강하나가 만들어준 보호구 덕분이었다. 전신을 채우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깨 부위는 감싸고 있는 덕분에, 이를 발톱에 내어주며 몸을 들이민 것이다.
‘무려, 드레이크의 비늘로 만든 갑주니까.’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가 아니던가.
원체 거대한 대형종이다 보니, 그 비늘도 보통 크기를 지닌 게 아니었는데, 두께 역시 상당해서 대부분 방패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강하나는 이를 특수 제련해서 극한까지 압축하고, 뒤이어 자신만의 비법으로 가죽처럼 부드럽게 만들어 놓기까지 했다.
얇고 가볍다는 이유로 무시할 만한 장비가 아니었다.
원래라면 이런 정보는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지만, 그의 곁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목을 지닌 헌터가 함께하고 있었다.
존슨!
남다른 안목으로 장비를 분석해 준 것인데, 그 순간 턱 언저리가 아렸던 건 홀로 간직할 비밀이었다.
어쨌든 상대가 A급 각성자라고는 하나,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강도를 지닌 것이다.
특히, 완전 변형도 아닌 부분 변형 정도의 어설픈 각성 상태라면, 더더욱 흠집 하나 안 났을 게 분명했다.
바카라의 품 깊숙이 파고든 마루가 스킬을 발동시켰다.
[필살]
초보존에서 허수아비를 치며 얻어냈던 성장형 스킬, 순살이 2차 전직과 함께 진화한 형태로써, 내용도 한층 업그레이드 된 상태였다.
[약점 검색]
기존에 급소만 파악해 줬던 것과 다르게, 일반적인 급소 외에도 상대의 방어력이 취약한 부분들을 찾아주는 것인데, 급소와 맞물려 있는 부위를 정확히 찌를 경우.
퍼억!
“...꺼...억...”
숨 넘어 가는 소리와 함께 바카라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무려 A급 강화계의 신체 변형 능력자인 만큼, 남다른 신체 강도를 지녔을 것이건만, 단 일격에 격침시킬 수 있었다.
“완전 변형 정도는 하고 까불어.”
마루가 그리 말하며 마무리를 지으려던 찰나, 후방에 대기 중이던 3인이 움직였다.
파파파팍!
그 중 둘의 호흡이 잘 맞았는데, 마루보다는 바카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모습에서, 키홀의 요원과 별도로 저들 3인이 한 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멍청한 놈, 당장 정신 안 차려?”
“일어나 이 새끼야!”
그들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바카라는 쉬이 일어나질 못한 채, 바닥에서 꿈틀대고만 있었는데, 급소와 약점이 맞물리는 치명적 일격이다 보니, 그만큼 여파가 오래가는 거였다.
자연 나머지의 표정도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바카라는 일행의 탱커이자 근거리 딜러라 할 수 있었기에, 그가 초반부터 무너져버린 상황이 당혹스러운 것이다.
마루는 히쭉 웃으며 손짓했다.
“드루와!”
그러면서 훌쩍 뛰어드는 건?
‘말 따로 몸 따로.’
이런 건 기본이었다.
그 와중에 마루를 감싼 아우라에서 뭔가를 느낀 것일까? 키홀의 요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
“...아이언슈트?”
마루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됐다. 이를 정면으로 마주한 요원은, 그 섬뜩한 안광에 북한산에서 만났던 가면인을 재차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내의 가면 너머로 드러났던 눈빛, 그게 꼭 저와 닮아있던 것이다.
“맙소사!”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얼굴과 외침, 그가 온몸으로 전율하는 순간, 마루가 그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필살]
정말로 필살의 각오였다.
* * *
저격의 횟수가 줄어들고, 그 퀄리티가 미묘하게 떨어지는 걸 느꼈다.
팀원들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무슨 일 있나?’
마루에게 사건이 발생했다는 걸 알아챈 것인데, 단지 거기서 떠올린 건 작업장이나 습격자 같은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몬스터에게 걸린 모양인데.”
“이거,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야?”
“괜찮을까?”
팀원들의 술렁거림에 김연희가 말했다.
“당장 무전 들어온 건 없으니까. 괜찮을 거야. 좀 더 기다려봤다가 너무 늦어지는 것 같으면, 그 때 엡실론에게 지원 좀 보내라고 하면 돼.”
그녀는 그리 말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만약, 마루가 감당하기 어려운 몬스터가 등장한 것이라면, 즉각 무전이 날아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마루가 보이는 것 이상의 실력자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큰 문제는 없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엡실론을 움직여.”
헌데, 어찌된 일인지 이소희가 그리 말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게 아닌가.
“벌써? 신입, 파이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그 말에 이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파이를 확인하는 게 아니야. 전장 주변을 살펴보라고 해. 왠지 느낌이 안 좋아.”
그러면서 안내자들을 언급했다.
“바르다 길드의 요원들이 사라졌어.”
안내자들은 전장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던 만큼, 그들의 이동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지만, 한 번 그들을 의식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여기...바르다에서 이야기한 것 이상으로 몬스터들의 수준이 높아.”
일말의 오차 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폭이 넓어지고 있었다. 사라진 안내자들과 맞물려 생각해 봤을 때, 좋지 못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김연희가 스킬을 발동시키며 주변을 살펴보는데, 크게 이상한 점은 눈에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 못지않게 이소희의 감각 역시 믿었다.
랭커에 한 발 들이고 있는 실력자의 감이었다.
“알았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전기를 들었고, 몇몇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순간이었다.
우워어어어어...
저 멀리서 거대한 피어가 발산되는 걸 느꼈다.
‘상위종?’
특히, 피어라면 레이드 클래스의 상위종일 터였다.
“이 구역은 상위종 출몰 지역이 아닐 텐데?”
“정보 전달이 잘못 됐나?”
팀원들의 의문에 김연희의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상황이 점점 최악의 구도를 상상하게 만든 까닭이었다.
“설마...”
그녀의 시선이 마루가 있을 저 멀리의 저격 포인트로 향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 * *
이면에는 다양한 실력자들이 살아가고, 개중에는 랭커라고 불리는 최상위급 포식자들도 여럿 존재했다.
세상 바깥으로 나가면 당장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이들이건만, 그들이 이면의 주민으로써 어둠 속을 살아가는 이유는 별 거 없었다.
범죄자!
그들 세상, 이면의 주민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트라비오 바센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였다.
무려 랭커급의 실력을 지니고 있지만, 세상 밖으로는 나올 수 없는 범죄자로써, 그를 뒤따르는 별명들이 그의 죄목을 이야기해주고는 했다.
난봉꾼, 포주 등등...
그는 여성 문제에 있어서 이면에서도 최악이라 불리는 이들 중 한명이었다.
때문에 그는 이번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혜성의 여제란 말이지...흐흐!”
그 명성만큼 섣불리 건들 수 없는 인물이건만, 무려 키홀의 제퍼드가 관련한 문제들을 전부 처리해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몇몇 조건들이 제시됐지만, 역시나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여제와 관련된 사항들이었다.
“호? 마녀도 제법 괜찮은 것 같은데.”
멀리 보이는 전장을 풍경을 살피고 있노라니 절로 입 꼬리가 올라갔다.
“흐흐...암고양이 같은 게, 길들이는 맛이 있겠어.”
그렇게 군침을 삼키며 움직이려던 찰나, 갑작스레 밀려든 기세가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동급 실력자의 무게감을 느끼며 표정을 굳혔다.
‘누구?’
의문을 느끼며 기세가 쏟아지는 방향을 바라봤고, 이내 불청객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경악성을 터트려야만 했다.
“피...피닉스?”
이곳 한국이라는 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얼굴이 그곳에 있었다.
이선!
써니라는 별명으로도 통하는 미국의 3번째 히어로였다.
“간만이군, 핌프(Pimp).”
역시 포주라는 뜻을 지닌 별명으로써, 그 둘은 구면이기도 했다.
“네가...여길 어떻게...?”
그 물음에 이선이 쓰게 웃었다.
“그러게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건지.”
그러면서 크게 불길을 일으켰다.
화르르르르륵...
마치 봉화처럼, 작정하고 하늘 높이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멈춰!
그 순간 트라비오가 달려들었고, 두 랭커의 격돌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