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설마?
카일리는 내심 답답함이 컸다.
‘젠장! 직접 현장을 봐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키홀을 주시하고 있는 눈동자가 너무 많은 탓이다. 그 때문에 주요 인사들은 자리를 지킬 필요가 있었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키홀의 브레인 역할인 그를 비롯해서, 몇몇 특출난 이들은 특히 더 대외적으로 모습을 비출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제퍼드 역시 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던가.
만약 그가 움직인다면 그 즉시 이반나와 존슨이 따라붙을 수 있는 만큼, 작전이 헝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반나와 존슨을 만나는 건, 그들을 낚을 미끼가 준비되어 있을 때였다.
혜성의 여제와 마녀 그리고 마루.
막 계획이 실행된 참이기 때문인지, 이를 확인할 수 없는 답답함이 더 컸다.
이런 감정은 스스로만 갉아먹을 뿐이기에, 애써 가슴을 달래며 믿음을 강조했다. 그럴만한 요소도 넘쳐나지 않던가.
‘핌프가 있으니까.’
그가 누구던가.
제퍼드와 같은 선상에서 노니는 이면의 랭커였다. 몇몇 미친 짓으로 인해 이래저래 말이 많은 인물이기는 하나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성녀를 건드렸던 건, 지금도 회자될 정도지.’
그가 막 초인의 반열에 올랐을 때, 가장 처음으로 했던 미친 짓이 바로 교황청의 성녀를 납치하려던 시도였다. 지금이야 그녀도 랭커로 불리지만, 당시에는 한참 육성 시스템에서 성장 중이던 만큼, 핌프를 감당하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대물림되는 프렌차이즈 스타라는 생각에 이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듯, 핌프는 과감히 성녀에 대한 욕망을 드러낸 것이다.
게다가 그 무렵에는 일종의 ‘초인뽕’으로 인해, 세상이 전부 자신의 발아래에 있다고 여기던 무렵이기도 했다.
그 때문일까?
‘지닌 세력을 전부 털렸지.’
이탈리아 출신으로써 그 방면의 마피아들을 잔뜩 거느리고 있던 핌프였건만, 이 사건을 계기로 교황청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추가적으로 성녀의 의미가 프렌차이즈 스타 이상이라는 걸 세상이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어쨌든 그 때문에 고향땅인 이탈리아를 더는 밟을 수 없는 신세가 되어버렸는데, 이후로도 비슷한 미친 행동들이 잔뜩 있어서, 자체적으로 입국 금지가 된 나라가 몇몇 더 존재한다는 게 함정이었다.
‘미친놈이지만, 그래도 실력은 진짜니까.’
믿고 또 믿었다.
그러면서도 불안함을 지우긴 어려웠던지, 수시로 그의 시선이 제퍼드의 방문으로 향하는 건, 생존을 향한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 * *
사실, 끝까지 자신의 등장을 알릴 생각은 없었다. 그저 조용히 유령처럼 왔다가 귀신처럼 사라질 생각이었다.
하지만 핌프의 존재가 생각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이면에서도 알아주는 미친 작자가 아니던가. 그런 인물을 캐스팅 했을 줄이야.
‘이 정도까지 준비했다고?’
생각 이상으로 키홀의 작업장 규모나 퀄리티가 높단 생각과 함께, 과감히 봉화를 피워 올리게 만들었다.
그녀라면 이 불길의 의미를 알아채리라.
‘어쩌면...’
그녀에게 자신이 왔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이선의 잡념은 딱 거기까지였다.
핌프, 트라비오가 어느새 지척에 이른 것이다.
쿠르르르르릉...
* * *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되는 줄 알았다.
“......”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고장 난 로봇마냥 전장이라는 것도 잊은 채, 모든 동작이 멈춰버렸다.
그 때문일까?
-베타. 특수 돌발 B!
김연희가 움직이며 무전을 전파했다.
저 멀리, 뜬금없이 피어오른 봉화의 의미는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아끼는 주변인들이 사랑했던 사내, 그 인간에 대해서는 그녀 역시도 제법 알기 때문이다.
“언니! 정신차려.”
팀장님이나 알파 같은 외침이 아닌, 이런 식의 호칭을 사용한 건, 정말로 상황이 급박하단 의미였다.
우워어어어어...
그 타이밍에 맞춰서 멀리 피어를 발산하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희의 외침보단 그 강렬한 포효에 정신을 차린 듯, 이소희의 동공에 초점이 돌아왔다. 그러더니 언뜻 분노한 모습으로 잔뜩 기세를 피워 올렸다.
쩌저저저저저저적...
그녀를 기점으로 주변 일대가 빠른 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 차가운 기세에도 불구하고, 김연희는 ‘앗! 뜨거’ 하는 모습으로 후다닥 물러났다. 그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폭발할 만도 하지. 멋대로 떠나버린 그 썩을 놈이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이후로도 연락 한 번을 없던 인간이었다. 긴 세월 응축되며 눌러뒀던 감정의 골이, 지금 이 순간 분수처럼 솟구치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덕분에 성난 포효와 함께 등장했던 몬스터만 당황했다.
자신 이상으로 사나운 존재가 시퍼런 안광을 번뜩이며, 마치 철천지원수를 보듯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크워?
당혹감 어린 시선 속으로, 여제가 일으킨 눈보라가 하늘 높이 휘몰아치는 게 담겼다.
휘오오오...
* * *
바카라를 포함한 3인은 전부 A급의 실력자들이었다. 비록 그들의 돌격대장인 바카라가 초반에 격침당하는 불상사가 있었다지만, 남은 둘 역시 A급의 실력자인 만큼, 리프레쉬 할 기회가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회복은 허락되지 않았다.
처음 키홀의 요원이 무언가를 입에 담고, 그 모습에 경직된 마루가 이성을 잃은 듯, 그에게 미칠 듯 달려드는 모습에, 기회라고 여기며 뒤를 노렸다.
그러나 이 순간 반전이 일어나며, 두 사람을 덮쳐오는 것이 아닌가.
모든 게 연기였다는 걸 깨닫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비밀을 들켰다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곧 뒈질 놈인데.’
평소와 달리 자비를 베풀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으웃!”
“이놈이!”
물론, 두 명의 실력자들도 쉽게 당하지는 않았다. 아슬아슬하게 마루의 간격에서 발을 빼 내는데, 그들이 알아둬야 할 건 마루가 근접전의 달인이기는 하나, 요 근래 그에게 유명세를 얹어준 건, 바로 총기술에 관한 재주였다는 것이다.
타타타탕!
이젠 ‘건 어택’이라고까지 불리는 마루의 건가드는 어설픈 거리감을 허락하지 않았다.
“젠장!”
발목이 잡혀버린 채, 그렇게 마루가 요구하는 간격을 허락해야만 했다.
“2대 1이야!”
“붙어!”
둘 다 A급에 이른 실력자들이 아니던가. 각기 근접전과는 거리가 있다고는 하나, 기본 가락이 있는 만큼 마루의 간격 속에서도 치열한 접전이 이뤄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푸후우우우우...”
폭발적으로 움직인 여파로 인해, 심장이 널을 뛰듯 펄떡거렸지만, 그 덕분에 빠르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
마루는 제 발밑에 누운 3명의 A급 실력자들을 내려다보며 호흡을 정리했다.
말 그대로 전력으로 움직여 둘을 때려눕혔다. 바카라가 회복할 타이밍을 줄 생각이 없었기에, 일말의 손해도 감수하며 밀어붙였고, 덕분에 자잘한 생체기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치명적인 건 없었으니, 그 와중에도 주요 타격점은 피해간 것도 있지만, 새롭게 구한 방어구의 도움도 제법 컸다.
그리고 이 모습을 본 키홀의 요원 조엘은 전율했다. 눈앞의 존재가 북한산의 그 괴인이 맞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전부...속고 있었어...’
체형이 다른 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전투 방식이나 거기에서 비쳐지는 독특한 아우라 등, 분명 북한산의 아이언슈트가 맞았다.
‘총기류 각성? 그런 것 따위가 아니야.’
그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다.
“멀티...스킬...”
그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 어느새 날아든 마루의 권격이 그의 두개골을 짓뭉개고 있었다.
퍼억!
* * *
내 비밀이 들켰다. 반드시 죽여야 한다.
대충 그런 시나리오와 기세로 달려들며 미끼를 던졌고, 덕분에 월척을 낚아 올릴 수 있었다.
마루는 아주 간단한 설계를 통해, 손쉽게 A급의 실력자 셋을 잡고, 키홀의 문젯거리도 깔끔히 해결했다.
‘건가드 영상이 이렇게 도움이 되네.’
분명, 총성이 울린 시간은 짧았건만, 저들의 뇌리에는 그의 건어택이 강하게 박혀있던 듯, 순간적으로 거리조절에 대한 오류가 발생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게 발목을 잡고 간격을 잡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습격자들을 전부 처리한 마루는 멀리 전장의 상황을 살폈다.
앞서 무전으로 날아든 ‘특수 돌발 B’의 지시를 들었기에, 팀원들이 작업장을 눈치 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확인 결과 흐름도 나쁘지 않아 보였기에, 당장 합류하기 보단 다른 루트로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일단...저 방향은 가면 안 되겠네.’
저 멀리 하늘을 불사를 듯, 거대한 불길이 솟구치는 곳이 보였다. 저격 포인트에 있다 보니 더더욱 잘 보였다.
한 눈에 봐도 전율적인 광경인지라, 저 방향은 제외 1순위였다.
“통수에는 통수가 제 맛이지.”
마루가 그리 중얼거리며 이들 습격자의 뒤를 노리기 위해, 던전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려는 찰나였다.
짝짝짝짝!
돌연 박수소리가 터지는가 싶더니, 저 한편에서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억!”
그 얼굴을 확인한 마루가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삼켰다. 키홀 요원을 보고 한 번은 떠올렸던 얼굴이 돌연 튀어나온 까닭이었다.
부드러운 미소가 인상적인 사내.
‘...제퍼드?’
오금에 힘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 * *
너무도 낚고 싶은 미끼였다.
인디안 존슨!
그를 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준비물이기 때문에 직접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이를 위해서 이면에서 유명한 변신술사도 불러들였다.
“카멜레온,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하하! 맡겨만 주십시오. 완벽히 연기해 드릴 테니까.”
그렇게 며칠간 그의 곁에 숨어서 그의 행동패턴이나 방식 등을 완벽히 모방한 카멜레온은, 이내 완벽한 ‘가짜’가 되었다.
제퍼드!
그는 그렇게 주변의 모든 시선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었다.
“알고 계시겠지만, 제 연기는 기세까지 흉내 낼 수는 없습니다. 노력은 해 보겠는데, 당신과 저 사이의 격차 때문에, 결국 발각될 겁니다.”
유통기한이 짧다는 게 참으로 아쉬웠지만, 그 잠깐으로도 충분히 맛보고 즐길 수 있을 터였다.
* * *
깜짝 놀랐다.
‘뭔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제퍼드는 마루의 전투를 구경하며, 그야말로 온몸으로 전율해야만 했다.
‘설마, 멀티 스킬 각성자였을 줄이야.’
마루를 바라보는 동공 위로 위험한 불빛이 번뜩였다.
‘제로 원을 잡는 미끼로 끝낼 수준이 아니었네.’
그의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건 하나였다.
‘실험실에 들이면 딱이겠군!’
키홀은 이면을 살아가는 클랜이었고, 그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악질 집단이었다.
그런 만큼 소문만 무성한 이면의 실험실 역시 몇몇 지니고 있었는데, 그 스스로가 이런 실험실의 피해를 입어온 만큼,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더욱 최악으로 여겨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더 웃기는 건 남의 실험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그 때문에 이쪽으로도 이래저래 말이 많은 편이었다.
츄릅...
군침을 삼키며 입맛을 다시는 그의 모습에서 본능적 위기감을 느낀 듯, 마루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는 가운데, 제퍼드가 입을 열었다.
“설마, 내게서 도망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그 물음에 마루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버렸다.
“......”
반응을 기대하고 물은 것도 아니지만, 대답도 뜻밖이었던 탓에 제퍼드의 표정에 실금이 가는 가운데, 마루가 입을 열어 물었다.
“작정하고 튀면, 존슨도 백기를 드는데, 잡을 수 있겠어?”
오금이 풀렸던 것도 잠시일 뿐이었다. 존슨과의 꾸준한 대련 덕분인지, 빠르게 심정적 안정감을 찾았고, 이처럼 반격하는 여유까지 보여줄 수 있었다.
‘솔직히 무섭긴 하지만...’
냉정하게 판단했을 때, 존슨보다 위라는 생각은 들진 않았다. 그의 뇌리에는 여전히 산자락을 무너트리던 존슨의 일격이 강하게 박혀있었다.
그건 절대적 강함의 척도였다.
게다가 이미 데스워치와 존슨의 격전을 통해, 랭커들의 전력도 눈에 담은 경험이 있지 않던가.
마루가 입 꼬리를 말아 올리며 물었다.
“설마, 날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제퍼드의 표정에서 여유가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