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Fire!
장수난!
B급 A형 헌터라고 알려져 있는 정보업계의 요원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는 A급의 헌터로써,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뛰어난 실력 그리고 능력을 지닌 헌터였다.
하지만 그는 굳이 이런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얇고 길게!’
그 나름의 생존법칙이기 때문인데, 그런 이유로 어지간하면 위험한 임무는 맡지 않았지만, 최근에 할 수 없이 그답지 않은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이반나와 존슨!
하필, 옛 인연들이 부탁을 해 온 까닭이었다.
‘큼...그 대신 이건 따블이니까.’
양쪽에서 따로 의뢰가 들어왔던 탓에, 모른 척 하며 그들 연인에게 양손으로 의뢰비를 거둬들인 것이다.
‘미안하지만, 나도 곧 셋째가 나올 예정이라.’
양심 따윈 고이 구겨서 차버렸다.
‘흐흐...’
그렇게 시작된 제퍼드 감시 임무는 생각 이상으로 험난했다.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이 방면에서는 톱클래스 수준의 재주를 지녔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그의 위치가 발각될 것 같은 아슬아슬한 위기감이 넘쳐났던 것이다.
‘어우...이래서 랭커들 의뢰는 받으면 안 되는데.’
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자식들을 생각하니, 생존욕구가 불타오르며 어떻게든 위기는 피해내게 만들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라?’
기이한 감각이었다.
‘묘...하게 긴장감이 덜한데.’
자신도 모르는 새 깨달음이라도 얻어, 은신 능력이 올라가기라도 한 걸까?
아주 잠깐 그런 행복한 고민도 해 봤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핸드폰을 들어야만 했다.
-새가 떴다!
의뢰인들에게 문자를 보내 줬다.
* * *
이반나와 존슨은 마침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그러다가 동시에 문자를 받아야만 했는데, 이내 꼭 같은 모습으로 굳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서로의 변화를 확인하고는 설마 하는 얼굴로 각자의 문자를 살피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SN?”
“너도 SN?”
둘의 표정이 동시에 와락 구겨졌다.
“장수난 이 자식이!”
이반나의 욕설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존슨이 그녀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럴 때가 아니야. 놈이 대리까지 세우고 움직였어. 오늘이 D-day라는 거야.”
“젠장!”
확실히 지금 급한 건 따로 있었다.
“그리고 SN이 실력은 확실하잖아. 지금 연락 온 건 SN뿐이야.”
의뢰를 한 건 장수난 한 명 만이 아니었건만, 남다른 실력을 증명하듯 홀로 변화를 알아채며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결국 이반나도 인정해야만 했다.
“코찔찔이 시절에, 그렇게 밥을 먹여줬는데, 이렇게 멕이다니.”
물론, 분노가 싹 사라진 건 아니다 보니, 결국 차후에 개별 면담이 있을 듯싶었다. 존슨은 그 모습에 장수난의 명복을 빌어주며, 급히 이동을 시작했다.
* * *
생각지도 못한 등장에 당황하던 것도 잠시였다.
‘괜찮아. 문제없어!’
존슨에게 복날 개처럼 쳐 맞으며 단련한 덕분인지, 강제 케어력이 발동되며, 마루의 정신 회복은 생각이상으로 빨랐다.
제퍼드 앞에서는 제법 호기를 부렸지만, 사실 존슨과의 술래잡기에서 승리해 본 적은 없었다.
‘그 양반 더럽게 빠르지.’
대련 중에 맞다가 지쳐 도주를 할 때도 여럿이었는데, 매번 덜미를 잡혀서 돌아와야만 했다.
이래저래 몸 쓰는 건 괴물이었고, 이는 추격전에서도 남다른 수준을 발휘했다. 각종 스킬로 가속하며 내달리는 마루도 그에게서는 도망칠 수 없던 것이다.
“잡을 수 있으면 잡아 봐!”
이렇게 외치며 냅다 줄행랑을 친 것도, 연기의 일부분이었다.
그 순간 제퍼드가 화살처럼 쏘아지며, 그의 뒤로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마루의 머릿속으로 존슨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단, 제퍼드는 땅과 떨어트려 놓는 게 중요해!
자연계의 땅속성 스킬 보유자로써, 강화계의 특성까지 지닌 특수 스킬 보유자라는 설명을 들었던 것인데, 그런 이유로 근접전을 펼치는 걸 선호한다며, 무조건 달라붙으려 들 거란 설명을 들었다.
‘이 작자도 괴물이긴 하네.’
짧은 순간, 존슨보단 느리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도주가 쉽진 않을 거란 견적까지 뽑을 수 있었다.
바로 그 시점에서 반전했다.
휘릭!
급작스레 몸을 뒤집으며 반동과 회전력을 이용해 내뻗는 일격이었다.
일련의 과정이 너무도 매끄러웠는데, 이는 존슨과의 대련을 통해 숙달시킨 일격이기 때문이었다.
-튀는 척 하다가 이렇게 뒤집고, 빡! 여기서 발꼬락을 요렇게 힘을 빡 주면서, 비틀면 힘의 전달이 요렇게...
마루는 권격을 내뻗으면서, 한편으로는 제퍼드의 발밑을 살피고 있었다. 단숨에 그의 덜미를 잡으려고 뛰어오른 덕분에, 발밑이 붕 떠있는 게 보였다.
‘그렇지!’
아주 완벽한 구도였다.
-땅과 멀어지면 능력치도 반감되니까. 그 때 제대로 치는 게 중요해.
빠악!
정확히 내지른 일격이었다.
“크흐으음!”
놀란 얼굴로 제퍼드가 물러나는 게 보였다.
‘쳇!’
마루가 입맛을 다셨다. 모든 게 완벽했지만 상대는 그의 기준을 뛰어넘는 존재, 랭커라 불리는 초인이었다.
막혀버린 것이다.
하지만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던지, 그를 보는 눈빛이 크게 달라진 것이 보였다.
마치, 먹잇감을 보던 것 같은 기색이 싹 사라진 것이다. 그러더니 입가에 걸려있던 특유의 미소를 지우며 말했다.
“실례했군요. 설마, 이 정도의 실력자였을 줄이야.”
단 한 번의 마찰일 뿐이지만, 겨우 그것만으로도 마루가 지닌 괴력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3명의 A급을 상대할 때도 보통은 아니라고 여겼지만, 좀 전의 일격은 그런 예상을 한참 웃돌았기 때문이다.
욱씬...욱씬...
제대로 가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끈거리는 팔뚝의 통증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준비된 일격이라서 그 위력이 뻥튀기 된 경향도 있었지만, 제퍼드로써는 알 수 없는 스토리다 보니, 평가를 상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제대로 대접을 해 드려야겠군요.”
그와 동시에 기세가 일변하는 게 보였다.
드드드드드드...
그리고 주변 일대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스킬을 발동시키고 있다는 증거로써, 존슨에게 들었던 설명 그대로였다.
-놈이 대지의 힘을 끌어오면, 땅울림이 있을 테니까. 바짝 긴장하는 게 좋을 거야.
뿐만 아니라 존슨의 피부색 역시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는데, 하얗다 못해 투명한 수준이던 그의 피부가 짙은 갈색 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땅속성의 기운을 끌어와 그 스스로 땅의 일부로 변이하는 과정이었다.
자연계와 강화계의 특성을 모두 지닌 특수 스킬 보유자답게, 속성과 변이의 콜라보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 즈음, 마루는 이미 등을 보이며 도주로에 오른 상태였다. 비겁이건 뭐건 그딴 걸 생각하기에는 상대와의 격차가 너무 분명했다.
이를 보며 제퍼드는 서늘한 안광을 빛냈다.
‘건방진 놈!’
과거에도 저처럼 움직이던 이들이 있었다. 남다른 발재간을 지녀서 이리저리 날뛰며, 그를 농락하려 들던 이들이었다.
땅 속성 스킬 특유의 묵직함으로 인해, 그는 탱커에 가까운 재능을 보유하고 있던 터라, 그런 이들을 잡으려다 보면 매번 손해를 보기 일쑤였고, 그 때문에 관련해서 많은 고민을 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이었다.
‘완벽하게 대지와 일체를 이루면, 거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지!’
동양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기술명이 떠올랐다.
축지(縮地)!
‘그 수준까지 이른 건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속도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마루는 남다른 감각을 통해, 말도 안 되는 고속 접근을 느끼며 뒤를 돌아봤고, 이내 기겁해야만 했다.
마치 빙판길을 타듯, 제퍼드의 신형이 땅 위로 쭈욱 미끄러지며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피부의 색깔이 여전한 갈색빛인 걸로 봐선, 대지와의 일체감은 여전히 유지 중인 듯 보였고, 그 때문에 상황이 더욱 골치 아프게 됐다는 걸 직감했다.
‘이런 건 설명에 없었는데.’
존슨이 알고 있는 정보도 결국 과거의 것이니 만큼, 지난 세월 사이에 변화와 발전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 부분 역시도 존슨이 언급한 바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알려주는 정보에 너무 의존하면 안 돼. 알다시피 천재라고까지 불리던 놈이니까. 약점을 그냥 내버려 뒀을 리가 없지. 그러니 그냥 참고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할 거야.
덕분에 당혹감에 빠져서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건 막을 수 있었다.
마루의 손이 빠르게 품을 오갔다. 동작 자체는 그렇게 보여줬지만, 실제로는 아공간을 들락거리고 있는 거였다.
지금 이 순간, 존슨과의 대결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비장의 카드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그건 실로 기이한 풍경이었다.
‘저게 어떻게 저기서?’
제퍼드쯤 되는 실력자도 일순간 사고가 마비될 만큼, 너무나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무리 품이 넓다고 해도, 결코 그 안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나올 수 없는 그런 물건이 잔뜩 쏟아져 나온 까닭이었다.
수류탄을 비롯한 각종 폭탄들이 안면을 향해 날아드는 게 보였다. 개중에는 결코 저 품에서 나와선 안 되는 크기도 보였다.
가장 놀라웠던 건, 마루의 양 어깨 위에 걸쳐진 물건이었다.
‘바주카포?’
무슨 만화 같은 장면이라고 해야 할까?
‘저 커다란 게 어디서?’
의문을 느끼는 찰나,
푸슈우욱...
포가 발사됐다.
어찌나 놀랐던지 회피 타이밍을 놓쳐버렸고, 그렇게 각종 폭발물들에게 간격을 허락해버렸다.
콰콰콰콰콰쾅...
마루의 입 꼬리가 히쭉 올라갔다.
‘강철 아저씨 특제 포탄이다.’
물론, 그 정도로 랭커를 처리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거리에 대한 이득은 취할 수 있었다.
각종 가속 스킬을 중첩시키며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데, 거기에는 강하나의 새로운 장비 역시 도움이 됐다.
-각반에 데미지를 축적시키면, 이 발판 뒤쪽으로 파동을 발산할 수 있는데, 공격보다는 튈 때 사용하면 딱 일 거야.
그 때문에 평소 일정 데미지 이상을 축적시켜 놨는데, 지금 그 효과를 제대로 보고 있는 중이었다.
파앙! 팡...파아앙...
순식간에 거리를 벌리는 가운데, 저 뒤편에서 분노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아아!”
방어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데미지가 전혀 없진 않았으리라. 무려 강철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만든 특수 폭발물들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는 한 종류로 끝이 아니었다.
파파파팍...
도주하는 와중에 그의 손이 빠르게 품을 오가는데, 한 번 품을 뒤적이고 나올 때마다 다양한 종류의 폭탄물이 쏟아져 나오고는 했다.
그 종류가 실로 다양했는데, 이는 PP에서 2차 전직을 하면서 아공간 역시 업그레이드가 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존 8칸이던 아공간이 2배로 훌쩍 뛰어오르며, 무려 16칸으로 늘어난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었던 터라, 3차 전직을 향한 기대감이 한층 커지던 순간이기도 했다.
콰앙! 콰앙! 콰아아앙...
간단한 타이머 설정과 함께 던져뒀던 덕분인지, 등 뒤로 쉼 없는 폭발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사이사이 끼어드는 분노의 포효가 입 꼬리를 말아 올렸다.
던져놓은 폭탄이 제퍼드의 이성을 극한까지 뒤집어놓고 있는 것이다.
“정-마-루-!”
섬뜩한 외침도 뒤따르니, 절로 흥이 올랐다.
‘여기서부터는 트랩을...’
제법 거리를 벌렸다는 결론 아래, 마루는 좀 더 세심한 조절이 필요한 폭발물을 설치하며 몸을 빼는데, 시간 소모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화력도 남다른 물건들이었다.
차원방벽으로 물리력에서 보호되는 몬스터였다면, 그 효과가 반감됐을 것이나, 상대는 순수 인간이지 않던가.
제아무리 초인이라 불리는 랭커라 해도 그 카테고리를 벗어날 순 없었다. 포스를 통해 나름의 방벽을 세우겠지만, 그런 식으로 기운으로 소모하는 것 역시 환영이었다.
그러다 치명상이라도 한둘 들어간다면?
가장 이상적인 상황일 것이다.
-전쟁이라도 나가냐?
강철이 그런 의문을 느낄 만큼, 어마어마한 화력을 아공간 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존슨과의 집요한 대련을 통해, 초인에게는 어느 정도의 화력이 필요할지 견적을 냈던 만큼, 제퍼드 역시 충분한 피해를 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파이어 인 더 홀(Fire in the hole)!”
신명나는 외침과 함께 화려한 폭죽놀이가 시작됐다.
퍼펑! 퍼퍼퍼펑! 퍼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