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12화 (112/325)

#12. DG.

조금은 늦은 깨달음일지도 몰랐다.

‘이걸 이제야 눈치 채다니.’

김연희는 자신의 스킬이 봉쇄당했음을 알았다. 이는 레이드 클래스급 몬스터의 등장 이후에야 눈치 챈 부분으로써, 놈이 가까이 오기 전까지는 오러가 체크되질 않았던 것이다.

‘결계!’

종류까진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시야를 어지럽히는 무언가가 잔뜩 깔려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일정 범위 너머부터는 시야가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인데, 두 눈에 의지해서 퇴로를 여는 그녀의 입장에선, 여러모로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우워어어어어...

특히, 사방에서 들려오는 이 피어를 보라.

“제대로 걸려들었네.”

눈에 담기는 건 없지만 날아드는 섬뜩한 파동을 통해, 적들이 레이드 클래스급 몬스터를 컨트롤 하고 있다는 결론과 함께, 작업장의 규모나 수준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하기 위해선, 바르다 길드의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을 게 분명했다.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닌데.’

적어도 한 계절은 걸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상황이 좋지 못한 가운데 더더욱 그녀를 답답하게 만드는 폭음이 날아들었다.

쿠웅...쿠우우웅...

저 멀리 불길이 솟구치는 방향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방향에서도 거대한 폭발성이 터져 나오고 있던 것이다.

‘신입!’

김연희는 그곳이 저격 포인트와 가깝다는 생각에, 마루의 상황도 좋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지 의아한 부분이라면, 저 폭음이 포스의 충돌이라기 보단 화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폭발이라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바르다 길드를 떠올려야만 했다.

‘폭발물까지 준비한 건가.’

마루의 안위가 걱정됐지만 그 부분은 엡실론의 지원조에게 맡기기로 했다. 전체를 컨트롤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그에게 너무 얽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수시로 들려오는 폭음으로 인해,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퇴로가 복잡할 거란 느낌을 받았다.

불안함에 입술을 짓씹는 와중에도 팀원들을 컨트롤하며 각종 지시를 내렸다.

원래라면 이소희가 맡아야 할 역할이지만, 그녀는 흔들린 이성을 바로잡기 위해 몬스터와 격전을 치르는 중이었다.

무려 레이드급 몬스터를 홀로 상대하며 한껏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얼굴이 제 색감을 찾아가는 걸 살필 수 있었다.

화려하게 날뛰느라 소비되던 포스도 점차 안정되며, 어느새 효율적인 전투를 펼치는 것도 보였다.

덕분에 그녀에 대한 걱정은 털어버릴 수 있었다.

크워어어어어...

워어어어...

그러며 새롭게 다가올 레이드급 몬스터들을 경계했다.

“온다, 준비해!

그녀의 외침에 팀원들이 각자 익숙한 포지션을 잡으며 진형을 갖춰나갔다.

* * *

엡실론 조의 서지한은 윈드서퍼 스킬을 발휘해 단숨에 마루가 있는 장소까지 날아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담당구역을 벗어나기 무섭게 발목이 잡혀야만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그를 방해하고 나선 까닭이었다.

“김바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바르다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서지한을 가로막은 건 길드장 김바른 혼자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으로 만만찮아 보이는 실력자들이 함께하고 있던 것이다.

“하하!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시나?”

김바른의 물음에 서지한이 태연히 웃어 보이며 말했다.

“내가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데, 좀 보내주면 안 될까?”

“푸하하! 이 친구 이런 상황에도 유쾌한 건 변함이 없네.”

“즐겁다니 다행이네. 그럼, 나는 박수 칠 때 떠날게.”

슬며시 발을 빼려 하지만, 김바른과 함께하고 있던 실력자들이 포위망을 갖추며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째, 처음 보는 얼굴들인 것 같은데? 바르다 길드에 이런 멋쟁이들이 있었나?”

서지한의 물음에 김바른이 웃으며 답했다.

“용병? 대충, 그렇게 이해하면 편할 거야.”

상황이 이쯤 되자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뭐가 문제라서 이러는 건데?”

서지한의 물음에 김바른이 웃으며 말했다.

“내 정체부터 물어야지.”

“...답해 줄 건가”

“사람들은 잘 모르는데, 내가 사실 태호의 핏줄이거든.”

“......”

서지한의 표정이 싸악 굳어졌다.

“미국에 넘어가서 날리고 있는 그 친구, 이선. 그놈하고 한솥밥 먹던 사이라고 보면 될 거야. 흐흐!”

태호는 즉 광호로써, 이는 혜성과 함께할 수 없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 이름이 언급된 이상 상황은 절대 긍정적일 수 없었다. 서지한의 식어버린 안색이 맘에 들었음인지, 김바른이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핫! 뭐, 방계라서 눈에 띄진 않았지만. 덕분에 이런 기회도 얻은 거 아니겠어?”

이선 역시도 똑같은 방계였지만, 그는 초인에 이를 재능이 있었다. 덕분에 일찌감치 가문에서 자리를 얻어 활약을 하지 않았던가.

물론, 그 결말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어쨌든 한 때는 방계의 희망이라 불렸던 건 분명했다.

‘이제는 내가 그 자리를 가져올 때가 됐지!’

김바른은 조용히 야망을 불태우며 서지한을 바라봤다.

“지원조는 변수가 될 가능성이 너무 커. 특히, 자네는 반드시 잡아야 할 문제아라서, 이렇게 내가 직접 커버를 치러 왔지.”

“하...이거 대우가 너무 거창해서 황홀할지경이네.”

그러며 작정하고 기세를 일으키니, 윈드서퍼 스킬과 동화된 주변 대기가 일렁이며, 바람이 폭풍이 되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격돌은 그 순간 일어났다.

* * *

제퍼드는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열이 받았다.

앞서 이반나와 존슨의 데이트 사진을 봤을 때보다, 한층 더 격한 원초적인 분노가 피어나는 걸 느꼈다.

“정-마-루!”

마치, 레이드급 몬스터들의 피어마냥, 분노의 포효 가득 포스가 사방팔방 쏟아져나갔다.

콰콰콰콰콰콰...

그에 호응하듯 주변 가득 설치된 트랩에서 폭발물들이 터져 나오며 그의 신형에 제동을 걸었다.

분노로 폭주하는 와중에도 결국 이성이 자리를 찾는 건, 마냥 성질만 부릴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자연히 머리가 돌아가는 것이리라.

‘대체, 이 많은 폭발물들이 어디서...?’

떠오르는 게 없진 않았다.

‘무한의 주머니?’

아직 그 실체가 드러난 적 없이, 그저 소문만 무성한 스킬 중 하나로써, 누군가 게임에 비유하며 언급했던 스킬이기도 했다.

게임의 인벤토리 같은 능력자도 있지 않겠냐는 의문에서 화두가 되며 떠오른 능력으로써, 앞서도 언급했듯이 그 실체가 드러난 적 없는 만큼, 아직까진 가상의 스킬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설마, 멀티 스킬에 인벤토리 스킬까지 있단 건가?’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꿈이라고까지 불리는 멀티 스킬 보유자라는 것도 황당한 판국에, 다른 종류의 환상으로 여겨지는 인벤토리 스킬까지 품고 있다?

문득, 등허리가 쭈뼛 서는 걸 느꼈다.

‘각성하고 이제 겨우 1년 차였던가?’

소름이 끼쳤다.

‘만약, 여기서 더 시간이 지나면...?’

제퍼드의 표정은 더 이상 분노에 물들어 있지 않았다.

‘반드시 잡아야 한다!’

이 순간이 놈을 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예감이 들며, 머릿속으로 상대에 대한 급을 격상시켰다.

B급에서 A급으로?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초인으로 놓고 상대한다!’

저런 특수한 능력들을 여럿 지니고 있다면, 이 역시 어쩌면 초월적인 무언가로 분류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분노도 한 꺼풀 걷혔고, 널뛰던 가슴도 한결 편안해졌다.

감정은 가라앉고 이성이 부상했다.

콰콰콰쾅!

쉼 없이 터져 나오는 폭발물 역시, 스킬의 한 부류로 여겨버리니, 한층 침착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며 판단할 수도 있었다.

‘확실히 신선한 경험이긴 하네.’

그와 같은 초인이나 거기에 인접해있는 이들의 리그에서, 이런 식으로 트랩을 깔고 화기를 쏟아내는 등, 능력 외적인 부분으로 승부를 보려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만한 화력을 담고 다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게 결정적이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결국 결판은 각자의 능력과 실력에 의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콰앙...콰아앙...

굳이 정면으로 받아줄 필요는 없지만, 그랬다간 놓쳐버릴 확률이 높았기에, 일단 추격은 계속 이어가야 했다.

어찌나 트랩 설치를 잘 해놨던지, 어설피 돌아가는 정도로는 폭발물을 피할 수가 없어서, 크게 돌아가는 구도가 잡히는데, 그랬다간 소모되는 시간이 배가 되고, 추가적으로 동선이 꼬여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합류라도 하면 골치 아파질 수도 있으니.’

먹잇감으로 삼고 움직였다지만, 혜성 특수 1팀의 전력을 우습게 여기진 않았다.

특히, 여제라고 불리는 이소희의 실력은 그도 인정하는 바였다. 짐작건대 초인의 영역을 목전에 두고 있으리라.

게다가 함께하는 마녀, 김연희 역시 대외적으로 그 유명세가 덜할 뿐, 이소희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라고 봐야 했다.

그 외에도 서지한을 비롯한 몇몇 A급 중에서도 +급이라 할 만한 실력자들까지 포진되어 있었다. 결코 가볍게 봐선 안 되는 톱클래스 파티가 바로 혜성 특수 1팀인 것이다.

‘핌프가 멀쩡하다면 모를까.’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발생해버렸다.

‘설마, 피닉스가 한국에 들어와 있었을 줄이야.’

그 한명의 존재로 인해 많은 부분이 뒤틀려버린 상황이었다. 일말의 손해는 감수하더라도, 일단은 밀어붙여야 할 때였다.

그렇게 머리를 식히고 나자, 역으로 이 상황을 즐길 요소가 마련되었다.

‘오랜만에 최고의 사냥감을 뽑았네!’

서늘한 안광을 번뜩이며, 그의 신형이 폭발 속으로 뛰어들었다.

콰콰콰콰콰콰...

* * *

일반적인 폭발물 정도로는 부족하다 여겼다.

마루는 상대가 초인이라는 걸 알기에, 좀 더 특별해야 한다는 걸 알았고, 이를 위해서 사용한 게 존슨의 공부였다.

이는 마석을 활용한 트랩으로써, 시간의 촉박함으로 인해 정말 간단한 약식 수준의 결계였지만, 그로 인해서 기존 폭발물들의 기척을 잠시 숨기거나, 교란시킬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한 호흡 혹은 반 호흡 정도만 흔들어 놔도, 충분히 성공적인 트랩이라고 봐야 했다. 그렇게 각종 트랩을 섞어가며,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화약을 뿌렸다.

분명, 이 정도면 충분해야 할 것이건만, 기이하게도 불안한 마음이 솟구치며 가슴 한편을 흔들었다.

‘아공간에 좀 더 담아둘 걸.’

생각과 달리 아쉽게도 무게 제한에 의해서 명확한 한계선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젠장! 벌써 바닥인가.’

입술을 짓씹은 마루가 마지막 트랩 너머, 저 멀리 시야를 던져 보냈다.

콰쾅...콰아아앙...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폭발성이 제퍼드의 움직임을 전해주는 가운데, 그의 불안감이 더욱 커지는 걸 느꼈다.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대충, 절반 정도는 날려 먹었네.’

제퍼드가 동선을 잘 잡는 것인지, 트랩의 반절 가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들리는 폭음 사이사이 느껴지는 공백이 그 증거였다.

이쯤 되면 초인이라도 잡을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의 화약이지만, 그것도 제대로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추격을 차단하고자 넓게 퍼트려서 설치한 탓에, 연쇄 폭발의 한계가 명확했다.

콰아아앙...

결국 마지막 저지선까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기대했던 것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폭음이었다.

‘회수할 수 있으려나?’

버려진 화약들이 아까워서, 아주 잠시 그런 생각도 해 봤다.

‘합류하는 것도 문젠데.’

저격 포인트 자체가 워낙 멀리 있기도 했지만, 가는 길도 보통 험난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피해가는 것까지, 트랩을 까는 틈틈이 이런 부분까지 커버해야 했으니, 추격자 제퍼드와는 다른 의미로써, 그 역시 골치 아픈 도주로였다.

그 때문에 거리를 벌리는 것 같으면서도, 크게 격차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현상 유지만 하는 느낌인데.’

그거라도 다행이라 여기는 자신의 모습에, 생각보다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트랩은 끝이지만 화력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 역시 근접 박투가 주 무대였지만, 벌써부터 링에 오를 생각은 없었다.

파팍...휘릭!

신형을 거세게 박차며 크게 회전을 한 그가 후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느새 양 손에 잡혀 나온 쌍권총이 보였다.

그 중 하나는 G-eye였고, 다른 하나는 B-eye라고 불리는 녀석으로써, 강철이 따로 만들어준 B급 승급 선물이었다.

-B급이니까 B-eye다. 어때? 라임 죽이지?

뜬금없이 떠오른 잡념은 방아쇠와 함께 쏴버렸다.

타앙...타타타타...

요란하니 콩 볶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아직 시야에도 들어오지 않은 제퍼드를 향해 날아갔다.

숲 속에서 각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황이건만, 그런 건 염두에 두지도 않는 듯, 과감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헌데, 그 방향이 기이했다.

때로는 하늘로 또 한때는 바닥으로, 좌로 우로, 이리저리 멋대로 두서없는 사격을 하고 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이후에 벌어졌다.

거짓말처럼 탄환이 하늘을 가르고 수풀 사이를 헤치는 등, 이리저리 춤추며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휘어지고 꺾이는 등, 멋대로 방향전환을 하는 탄환이라니.

‘유도탄 기능이야 말로 스토킬 스킬의 꽃이지!’

마루는 이를 극한까지 뽑아내며 제퍼드를 향해 저격 세례를 퍼붓는 중이었다.

말도 안 되는 각도에서 꺾어져 들어오는 저격이란?

아무리 노련한 헌터라 할지라도 당황하며 당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마법 같은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결과는 바로 전해져왔다.

오싹!

마루는 등 뒤에서 전해지는 섬뜩한 파동을 통해, 그의 저격이 제퍼드에게 한 방 먹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BG-eye의 쌍권총을 손에 쥐고, 스킬을 등에 업은 채, 화려한 총격을 쏴 갈기며 2차 화력 난사를 하길 한참.

결국, 예정된 시간을 맞이해야만 했다.

“후우우우...정말 짜증나게 하는 재주가 있군요.”

기어이 제퍼드에게 덜미를 잡혀버린 것인데, 그를 가로지르며 합류 동선을 차단해버리는 모습에서, 새로운 무구를 사용해야 할 시간임을 깨달았다.

마루는 자신의 손에 끼워진 장갑을 크게 쥐었다가 피며, 그 옥죄는 느낌을 한껏 만끽했다.

문득, 환청마냥 강하나의 음성이 스쳐갔다.

-그 녀석 이름은 ‘드래고니안’이야.

줄여서 DG라고 했던가?

-콱! 뒤져버려.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소가 나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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