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승부의 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레이드급 몬스터에게 포위될 줄이야.”
“이런 건, S급 던전에서나 경험하는 일인데.”
“미치겠네.”
“이게, 대체 몇 마리야?”
김연희는 팀원들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좋지 않다고 여겼다.
저들의 준비가 어찌나 철저했던지 레이드 급 몬스터가 지속적으로 투입되는데, 그 때문에 쉴 시간도 없이 전투가 이어지며, 어느새 포스의 잔량이 위험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괜한 미련까지 생겼다.
‘그 인간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언니가 이렇게 위험한데.’
이선!
그녀로써는 꼴도 보기 싫은 인간에게 기대고 싶어진 것이다. 저 멀리 여전히 솟구치고 있는 화려한 불기둥을 봤을 때, 이선 역시도 상상을 초월하는 강자와 격돌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초인이겠지?’
그 정도는 돼야 이선을 저처럼 붙잡고 있을 수 있으리라. 어쩌면 저들 입장에서는 이선의 존재로 인해, 저 의문의 초인이 묶여버렸으니, 오히려 변수로 작용했을지도 몰랐다.
‘누굴까?’
과연, 그들을 노리는 게 누구일지, 이 정도까지 준비할 수 있는 집단은 또 어디인지, 의문만 겹겹이 쌓여갔다.
그러는 와중에도 철저한 팀워크를 발휘하며 기어이 레이드급 몬스터들을 전부 잡아내는데, 그 즈음 의문을 해결해 줄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혜성 특수 1팀이라...과연, 이 나라를 대표하는 팀 답네.”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좀 봐, 오늘 수입이 짭짤하겠는데.”
“게다가 미모 좀 봐라.”
“마녀 소리를 듣는다던데, 얼굴하고 매칭이 안 되잖아?”
“그래서 더 유니크 한 거지. 흐흐!”
중간중간 불쾌한 내용들이 귀지를 채워 넣는 와중에, 김연희는 갑작스레 등장한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이번 사건의 주최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키홀!’
후방에 보이는 몇몇의 얼굴이 낯익었던 것이다. 키홀과의 마찰을 염려하며,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들을 전부 머릿속에 입력해 놓은 것인데, 거기에는 중요도가 낮은 인물도 전부 포함되어 있었고, 덕분에 찾아낼 수 있었다.
자연히 광호에 대한 의심도 더욱 커졌다. 구정국와 카일리, 각기 광호와 키홀의 브레인들이 만남을 가졌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가 보통 실력자가 아니야.’
키홀의 요원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불청객들을 쭈욱 살피는데, 개중 몇몇은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바트, 라브라, 에릭, 크라이...’
이면의 문제아들이 한 가득이었다.
죄다 그 바닥에서 방귀깨나 뀌는 이들로써, 후방에서 구경중인 키홀의 요원들이 기세등등한 이유가 있었다.
김연희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 말에 그녀가 눈여겨봤던 이면의 문제아 중 한 명이 나섰다.
“뭐, 배편이건 뭐건 죄다 막혀서 빠져나갈 길이 없겠지.”
현상금도 제법 두둑하게 걸릴 터였다.
‘라브라.’
김연희가 그를 보며 두 눈을 얇게 떴다. 목소리의 당당함이 묘하게 거슬렸다. 아무 걱정이 없다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뭐, 그렇다고 혜성이 이 나라에서 최고는 아니잖아? 게다가 특수 1팀이 잡히면, 지위가 꽤 떨어질 것 같은데. 흐흐!”
거기서 확신했다.
‘광호, 이 새끼들이!’
그들이 뒤에 있지 않고서야, 저리 자신하기 어려운 것이다. 입술을 짓씹는 가운데 그녀 어깨위로 올라오는 손이 있었다.
‘언니?’
이소희가 가볍게 어깨를 두드리며 앞으로 나서는 것이 아닌가. 그들 팀이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레이드 급 몬스터들을 전부 커버할 수 있던 건, 그녀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칠 대로 지쳤을 것이기에, 팀원들 사이에 둔 채 김연희가 나선 것이 아니던가.
이소희의 등장에 이면의 문제아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휘익~! 휙~!”
“여제라더니, 확실히 보통 포스가 아니네.”
“바바리 좀 걷어 봐, 몸매가 잘 안 보이잖아.”
“슬슬 포스도 바닥일 텐데, 그냥 곱게 항복하는 게 어때?”
“오우! 눈빛 봐, 지리겠네.”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함인 듯, 더더욱 불쾌한 내용들은 쏟아내며 화를 돋우는데, 그게 먹힌 것인지 이소희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잡히더니, 거센 포스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됐다며 몇몇 이면의 주민들의 입 꼬리가 올라가는 가운데, 오래지 않아 그들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는 게 보였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기운이...너무 넘치잖아?’
‘아직도 저 만큼 포스가 남았다고?’
‘어째, 느낌이 싸 한데.’
‘설마...’
포위망을 갖춘 이들은 하나같이 실력자들로써, 각자 그만큼의 경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런 만큼 보는 눈 역시 정확했다.
그 때문에 이소희의 모습에서 공통된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S급?’
‘초인.’
‘랭커!’
이소희가 주변을 돌아보며 한 마디 던졌다.
“꿇어!”
쩌저저저저적...
그에 맞춰서 대지가 얼어붙기 시작했다.
* * *
드래고니안!
DG는 장비 전체의 명칭이지만, 그 핵심은 장갑이라 할 수 있었다.
-포스 증폭률, 최대 2배까지. OK?
이를 위해선 착용 장비의 데미지 축적량이 필수이긴 하나, 상대가 상대인 만큼 그 정도는 금세 뽑아낼 수 있었다.
파파파파파팍...
마치 빙판길 위를 미끄러지듯, 순식간에 다가든 제퍼드가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존슨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보인다!’
그 못지않은 움직임으로 마루가 이리저리 몸을 흔들며 피해내는데, 완벽히 피하기란 어려워 때때로 맞고 막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럴 때마다 DG의 장비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었다.
이에 놀란 듯, 제퍼드의 동공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설마 이 정도로 완벽히 대응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듯싶었다.
물론, 거의 샌드백 수준이나 다름없다 보니, DG가 붉게 물드는 건 순식간이었다. 옷 안쪽에 착용 중임에도, 장비의 색깔 변화가 선명히 느껴졌다. 뜨겁게 달궈지는 그 감각이면 충분했다.
붉은 빛으로 타들어가고 있으리라.
마루는 반격의 타이밍을 노리는 한편, 존슨이 했던 이야기를 상기했다.
-놈을 잡고 싶다면 타격보단 관절기야.
어지간한 타격은 스킬을 통해, 타격의 에너지를 저 광활한 대지 속으로 흘려버린 다는 것이다. 제퍼드를 허공에 띄워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스킬 따위 무시해버릴 타격이라면, 어느 정도 데미지가 들어가긴 하겠지만, 그래도 제대로 먹히긴 어려울 거야.
대지와의 일체화가 진행 중일 땐, 어지간한 하드 탱커 이상으로 육신이 단단해지기 때문이었다.
그 같은 이야기를 상기하며 마루는 더욱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주짓수 검은 벨트의 실력을 보여줄 때였다.
‘이놈이!’
제퍼드는 샌드백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전진을 하는 마루의 모습에서 존슨을 떠올렸다. 절묘한 타이밍의 기막힌 태클이었다.
‘같이 지냈다더니.’
아무래도 자신의 약점에 관해서 제법 논의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앞서 발재간을 놀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처럼 안겨드는 이들은 과거에도 여럿 있었다.
‘땅울림!’
순간, 대지가 크게 흔들리고 그 진동이 전신으로 올라오며, 전신 가득 요란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게 파동이 되어 안겨들던 마루를 튕겨냈다.
파앙...
“큭...”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마루를 향해, 제퍼드의 권격이 쏟아졌다.
‘젠장!’
마루는 축적 데미지를 발산하며 이를 정면으로 받아냈다.
파아아앙....
장갑은 제 역할을 확실히 하며 에너지를 증폭 발산, 제퍼드의 권격을 맨손으로 받아내는 위엄을 보여줬다.
‘젠장! 손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고드는 충격파 때문에 손목이 아렸지만, 그는 이를 악 물며 제퍼드의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당겨지는 힘을 이용해 함께 딸려가는 한편, 그대로 양 손을 교차해 손목부터 비틀며 관절기를 시도했다.
“흥!”
제퍼드가 코웃음을 치며 팔을 터는데, 가벼운 동작과 달리 감당키 어려운 거력이 실려 나왔다.
할 수 없이 손목을 놓고 물러나는 가운데, 문득 제퍼드는 마루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발견했다.
삐...
그리고 귓가에 들려오는 불쾌한 잡음이 시선을 손목으로 움직였다.
마치 시계라도 되는 듯, 아담한 무언가가 그의 손목에 착용 되어 있었는데, 빨간 불빛이 점등되는 모습에서 답이 나왔다.
‘폭탄!’
깨닫는 순간 이미 화력을 뽐내고 있었다.
퍼어어엉...
“크읏!”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었다. 화력도 상당했던 듯 일순간 왼팔에 마비가 오는 걸 느꼈다.
바로 코앞에서 터진 폭발물로 인해 이명이 들리는 와중에, 그 사이로 끼어드는 또 다른 잡음이 있었다.
타앙...탕...
거리를 벌리자마자 바로 BG-eye로 난사를 시작한 것인데, 스토킬 스킬로 인해 모든 총탄이 급소를 향해 춤추듯 꺾어져 들어왔다.
퍼퍼퍼퍼퍼퍽...
스킬 덕분에 어지간한 탱커는 명함도 못 내미는 몸뚱이가 됐다지만, 급소를 집요하게 노리는 타격 때문인지, 데미지가 제법 들어오는 걸 느꼈다.
으득!
치미는 분노로 이빨을 갈아 마시며, 제퍼드의 신형이 쭈욱 미끄러졌다. 그 말도 안 되는 고속 이동에 마루는 총기를 집어넣을 시간도 없이, 상대를 맞아야만 했다.
급한 대로 건가드를 펼쳐가며 응수하지만, 저돌적인 제퍼드의 몸통 박치기 식 진격으로 인해, 간격 싸움에서 금세 제압당하니, 결국 총기를 던지며 맨손 박투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퍼퍼퍼퍼퍼퍽...
또 다시 샌드백 신세였다.
하지만 존슨에게 단련한 가드 덕분인지, 제대로 들어오는 공격은 없었다.
‘막고, 막고, 흘리고, 쳐 내고!’
착용중인 DG가 타오를 듯 열기를 내는 것으로 봐선, 슬슬 충격파라도 한 번 발산해 줘야 할 듯싶었다. 너무 달궈지는 건 장비의 수명에 좋지 않다던 강하나의 이야기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그 전에 일단 비장의 카드를 하나 꺼내들었다.
[라이트]
번쩍!
두 눈을 부릅뜬 채, 마루의 빈틈을 노리던 까닭일까?
“크아아악!”
제퍼드는 일순간 시야가 마비되는 걸 느끼며 통증을 호소했다.
아껴뒀던 마법 스킬을 선보일 때였다.
[가스 가스 가스]
“후우우우...”
마루가 숨결을 크게 내뱉는 순간, 마치 입김처럼 뻗어나간 초록빛 연기가 제퍼드의 안면을 뒤덮었다. 독가스 계열의 스킬이었다.
“컥!”
제대로 들어간 듯, 제퍼드가 숨 넘어 가는 소리를 하는 게 들렸다. 아마도 폐부가 쥐어짜는 고통을 맛보고 있을 터였다.
‘몸뚱이가 단단하면 내부에서부터 박살을 내면 그만이지.’
중독 중첩을 위해 단검을 뽑아든 그가 마법을 부여하며 휘둘렀다.
카앙...
앞서 총탄이 튕겨 나올 때 직감하긴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몸뚱이일 줄이야.
마루는 눈살을 찌푸리며 단검을 회수했다.
시야가 안 보이는 와중에도 선천적인 초감각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일까?
제퍼드는 제법 날카로운 공격을 퍼부으며 그를 밀어냈는데, 관절기를 염두에 둔 방어로 여겨졌다.
상관없었다.
‘애초에 관절기는 미끼였으니까.’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건, 초반 격돌에서 이미 깨달은 상태였다.
그 때문에 기존에 준비해왔던 방법으로 상대할 결정을 내린 것인데, 그가 구상한 방법은 간단했다.
마법!
PP의 방식을 따 온 것으로써, 게임 내에서 하드 탱커를 상대하는 공식 같은 거였다.
‘물리 바보는 물리 외적인 걸로 상대하면 끝이지.’
존슨의 이야기를 종합해 봤을 때, 제퍼드는 결코 물리력으로 상대하려 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 때문에 방식을 달리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그 역시 물리계열에 통달하다 보니, 마법적인 공부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스킬 조합을 위해 이리저리 익혀놓은 것들이 제법 되지 않던가.
대부분이 기초에 기본 스킬이더라도, 좀 전의 라이트와 같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발현한다면, 충분히 극적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라이트가 먹힐 줄은 몰랐는데.’
그게 들어간 시점에서, 이미 흐름은 그의 것이나 다름없었다. 2차 전직을 한 몽크와 잘 어울리는 마법을 하나 더 펼쳤다.
[사방연탄]
마치 한 대의 피아노로 네 명의 연주자가 연주를 하듯, 홀로 네 가지 다른 기운으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점해야지 발동하는 스킬이었다.
한 차례 시야가 점멸돼야 제대로 발동되는 단점이 있어, 활용하기가 까다로운 스킬이었다. 그 때문에 게임 내에서는 거의 사장되다 시피 한 스킬이기도 했다.
[태세전환 - 터틀, 버드, 울프, 스킨]
제퍼드를 중심으로 네 가지 기운을 연계시키고 났을 때, 타이밍 맞게 그의 시야가 조금씩 회복되는 게 보였다.
그리고 당혹감에 물드는 눈빛과 이내 하얗게 질려가는 안색이 보였다.
언뜻 경악감에 탈색 된다고 보이지만, 실상은 대지와의 일체화가 풀리면서 흙빛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뿐이었다.
어느 정도 시력을 회복한 듯, 제퍼드가 마루를 노려보며 물었다.
“너...대체 정체가 뭐냐?”
그가 이토록 당황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사방연탄, 이 스킬은 환상계열 마법으로써 제퍼드의 약점을 정확히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관절기니 뭐니 하는 걸 노릴 것 없이, 직접적으로 스킬 자체에 비수를 박은 것이다.
‘빙판? 호수?’
제퍼드는 자신이 거대한 얼음 위에 서 있는 걸 보며 전율해야만 했다. 게다가 눈보라까지 휘몰아치니, 주변은 온통 하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대체, 스킬이 몇 개야?’
이게 환상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초감각을 지닌 그의 감각으로도 거짓을 밝혀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완성도 높은 환상이란 의미였다.
대지와의 일체감도 그 때문에 풀려버린 것이지 않던가.
“B급 A형 정마루. 알 만큼 알잖아?”
마루는 히쭉 웃으며 훌쩍 달려들었다. 그러며 존슨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대지와의 일체감이 사라지면?
‘이빨 빠진 호랑이지!’
앞서 폭발물들로 빼 놓은 기운까지 계산해 봤을 때, 승부의 추는 분명 그를 향해 기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