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14화 (114/325)

#14. 제퍼드.

초인!

대격변과 함께 시대가 바뀐 지금, 이제는 그 존재 자체가 거의 전술핵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존재 자체만으로 국가의 가치를 전체적으로 상향시킬 만큼, 어마어마한 값어치를 지닌 것이다.

어지간한 대길드 하나 만큼의 위력을 지녔다고도 알려져 있어서, 걸어 다니는 대길드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였다.

그 등장만으로 전 세계가 들썩일 만한 존재가 바로 초인이며 랭커라는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이소희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다.

벽을 넘은 게 최근에 발생한 일이기도 하거니와, 아직 벽 너머의 것들을 수습하느라 바쁜 이유도 컸으며, 결정적으로 곧 다가올 ‘사건’을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오늘이 그 날이 될 줄은 몰랐지만.’

광호의 구정국와 키홀의 카일리가 만남을 가졌다는 점에서, 오래지 않아 그들이 목표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받고 있었다.

이반나와 존슨의 경고도 있었기에, 더더욱 전력을 숨길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 때문에 김연희에게까지 비밀로 하며, 비장의 카드로 남겨놓은 것이기도 했다.

이는 이선의 등장으로 분노하며 몬스터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와중에도 가까스로 이성의 끈을 붙잡으며, 초월자의 기세를 드러내진 않았다.

오늘이 ‘사건’의 날이라는 걸 알았기에, 더더욱 숨겨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 결과, 결정적 순간에 치명적인 반전을 꾀할 수 있었다.

쩌저저저저적...

그녀가 기세를 드러내고, 본격적으로 초인의 면모를 드러내니, 포위망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초인...’

‘맙소사!’

‘족 됐다!’

‘젠장! 이런 말은 없었잖아.’

혜성 특수 1팀을 둘러싼 이면 주민들의 안색이 일제히 탈색되기 시작했다.

키홀에서 공을 들여서 실력자들만 끌어들인 만큼, 그들은 눈앞의 여인이 ‘진짜’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더더욱 다급해졌다.

‘대체, 핌프는 뭘 하는 건데?’

‘빌어먹을! 여제가 초인이라고?’

‘이거, 계약 위반 아닌가?’

‘씨발? 지금이라도 튈까?’

분위기가 단숨에 혜성 쪽으로 기울어가는 가운데, 1선에 나섰던 라브라가 한껏 기세를 끌어올리며 외쳤다.

“겁먹지 마! 초인이래 봤자, 결국 혼자다! 저쪽은 지켜야 할 놈들이 한둘이 아니야.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린 것들까지 지켜야 하니까. 우리가 더 유리해!”

그 외침에 이소희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과연 그 외침이 통한 것인지,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던 이들을 비롯해, 바짝 얼어있던 놈들까지, 눈빛이 바뀌며 기세가 돌변하는 게 보였다.

‘틀린 건 아니지만, 정답도 아니지!’

이소희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버틸 수 있지?”

그건 질문이면서 명령이기도 했다.

“걱정 마!”

김연희가 대답하고, 다른 팀원들도 일제히 각오를 다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 모습에 이소희가 옅은 미소를 띄웠다.

그녀는 자신의 팀원들을 믿었다. 그야말로 정예 중의 정예들이 아니던가. 감히 한국 최고라고 자부하며, 세계에도 통한다고 자신하는 게 바로 그녀의 특수 1팀이었다.

“믿는다!”

때문에 그리 말하며 훌쩍,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 * *

정보!

승부를 가른 건 거기에 있다고 여겼다.

제퍼드와 마루, 둘 사이에는 분명한 격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말도 안 되는 접전을 펼쳤고, 종래에는 승부의 추가 결코 기울 수 없는 방향으로 기울기까지 했다.

그 차이는 언급했듯 정보의 유무 때문이리라.

마루는 존슨 덕분에 제퍼드에 대한 공부와 대비를 잔뜩 할 수 있었다. 비록 지난 세월 사이의 변화에 대해서는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지만, 기존 버전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전체 구도를 그릴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달리 제퍼드는 마루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이었다.

기존에는 총기류 각성자 정도라는 정보만 지니고 있었고, 그나마 업데이트 된 게, 이곳 현장에서 멀티 각성자라는 정도의 추가 정보였다.

그 내용물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섣불리 마루를 잡으려 했던 시도가 실수라 할 것이다.

물론, 그 오차가 스킬 한둘이라면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나, 마루는 그 단위가 훌쩍 뛰어, 상상을 아득히 초월해버렸다.

오류 범위가 너무 컸고, 여파도 컸다.

‘후욱...후...후우...인정해야겠군.’

제퍼드는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감에 따라, 자신이 오만했다는 걸 받아들였다.

본격적인 사냥에 돌입하며, 머리로는 상대를 초인 수준으로 여긴다고 해 놓고선, 본능은 여전히 B~A급 수준으로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정보의 부재에 더해, 몸과 머리의 그 같은 오류까지, 상황을 최악까지 몰아붙이게 충분한 요소들이 잔뜩 있었다.

초감각 덕분에 결국 환상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이미 상황과 상태는 최악으로 치닫게 된 이후였다.

드득...드드득...

다시 대지의 기운을 끌어올려 보지만, 지친 육신은 제대로 된 흐름을 연결해주지 않았다. 선택의 순간이 왔음을 알았다.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빌어먹을, 저 따위 놈에게 등을 보여야 하다니.’

다시 끌어올린 대지의 기운을 모아, 크게 한 방 내지르던 순간, 제퍼드의 신형이 돌연 반전하며 퇴로를 향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어...”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며, 워낙 뜻밖의 반전이던 탓에, 마루도 잠시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채, 그저 멍청하니 그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다.

사방연탄의 환상 스킬이 풀린 뒤, 대지와의 일체화가 시작됐을 때, 바짝 긴장하며 몸을 움츠리고 있었건만, 이 무슨 반전이란 말인가.

정신을 차렸을 땐, 제퍼드는 이미 저 멀리 점이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이에 마루는 다급히 가속계열 스킬들을 중첩시키며 그 뒤를 쫓아 달렸다.

‘놓치면 안 돼!’

반드시 잡아야 했다.

솔직히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몸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내주기엔 상황이 좋지 못했다.

‘내 비밀을 전부 알고 있잖아.’

물론, 여의주나 이런 세부적인 걸 들킨 건 아니지만, 멀티 스킬이나 아공간 등, 보여선 안 될 것들을 너무 많이 보여 버렸다.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 대신 반드시 죽인다는, 그야말로 필살의 각오로 모든 걸 오픈한 거였다.

존슨에게도 보인 적 없는 것들을 잔뜩 쏟아 부은 상대가 아니던가. 만약 놓쳤다간 뒤가 피곤해질 확률이 높았다.

작정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이면 세상에 풀어버린다면?

‘미친놈들이 달려들기 딱 이지.’

특히, 실험실을 끼고 있는 집단이 움직인다면?

‘상상도 하기 싫네.’

키홀 역시도 그 속에 포함될 게 분명했고, 어쩌면 전 세계의 이면 집단이 사냥꾼이 돼서, 그를 사냥하려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추격자와 도망자가 반전되어버린 상황 속에서, 마루는 새삼 제퍼드의 이동기가 번거롭다고 여겼다.

대개 방향 전환을 하는 타이밍이면 속도가 반감되기 마련이건만, 그의 경우에는 마치 미끄러지듯 너무도 부드럽게 방향을 전환해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일까?

가속 스킬 중첩으로 순수 속도만 놓고 봤을 땐, 분명 그가 앞서고 있건만, 수시로 이뤄지는 방향전환에 의해 도통 거리가 좁혀지질 않았다.

‘젠장! 또 꺾었어.’

제퍼드의 방향 전환을 확인하자마자, 마루는 급제동 후 죽어버린 속도를 강제로 부추기며, 급속 가속을 연계했다.

그에 따른 과부하가 무릎을 치고 올라왔다.

지끈...

게다가 마루의 경우에는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반면, 제퍼드의 경우에는 대지와의 일체화가 그의 포스를 일정부분 보충해주는 탓에,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불리한 건 그였다.

‘이거, 이러다가 재반전해서 달려들면, 역으로 관광 당할 수도 있겠는데.’

그 같은 부분까지 경계하며 뒤를 쫓아야 하니, 이래저래 죽어나는 기분이었다.

이런 부분을 제퍼드도 느끼고 있는 듯, 언뜻 속도를 조절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마치 그를 유혹하는 듯 했다.

-들어 와! 잡아 봐!

그 순간 반전하며 역공을 퍼부을 거란 두려움에, 선뜻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기가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게 어중간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추격을 거듭하길 한참, 문득 마루는 체력이 바닥에 닿았음을 느꼈다.

“허어억...허억...허억...”

더 이상 조절이 되지 않는 거친 호흡과 풀려가는 무릎이 가속 스킬을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서 갈등이 발생했다.

‘그냥, 보내줘야 하는 건가.’

더 이상 무리했다간 반전에 당해버릴 확률이 높았다. 애초에 승부를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며 상대이기도 했다.

힐끗 거리며 그를 돌아보는 제퍼드의 얼굴 위로, 비릿한 미소 한 줄기가 떠오르는 게 비쳤다. 지친 모습을 확인한 것인지, 속도가 줄어드는 것도 보였다.

상상하던 최악의 상황이 펼쳐지려는 듯싶었다.

‘젠장!’

그 모습에 입술을 짓씹는 순간이었다.

쿠르르릉...

천둥이 치고,

콰앙!

제퍼드가 하늘 높이 튕겨나갔다.

“커허어억!”

이 뜻밖의 반전에 마루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는 가운데, 그의 귓전을 두드리는 반가운 외침이 있었다.

“브라~더!”

입 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존슨의 등장이었다.

* * *

이반나는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정말, 괴물이 됐네.’

동시에 목적지를 전달받은 뒤, 함께 전력으로 뛰어나갔다. 하지만 순식간에 뒤처지고야 말았다.

인디안 존슨!

그는 지난 세월동안 또 다른 격에 오른 듯싶었다. 각성 종류가 다르다면 또 모를까, 순수하게 몸뚱이를 사용하는 계열인 만큼, 이 같은 거리감은 그들 사이의 격차를 알려주는 것 같아, 괜스레 입맛이 썼다.

‘내 남자가 대단하다니까 좋긴 한데, 마냥 즐겁진 않네.’

그녀 역시 세계적인 헌터이며 랭커다 보니, 경쟁심리가 튀어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쯤이면 도착 했으려나?’

의문 속에서 주변을 돌아봤다. 존슨이 한바탕 휘젓고 지나간 건지, 바르다 길드 요원들이 시체마냥 너부러져 있는 게 보였는데, 그들 사이로 존슨이 남긴 신호가 보였다.

이를 뒤적이니 던전 내부 지도로 드러나는데, 거기에는 혜성 특수 1팀의 금일 사냥터가 표시되어 있었다.

뇌리에 입력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 * *

한바탕 요란하게 바닥을 뒹군 제퍼드가 믿기 어렵다는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쿨럭...컥...제로...원?”

인디안 존슨, 그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던 것이다.

그가 어떻게 여기 있냐는 듯, 눈빛과 얼굴 가득 의문을 내비치는 가운데, 어느새 마루 곁으로 다가선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푸하하하! 이거 원, 도주만 해도 다행이다 싶었더니, 역으로 관광 중이었을 줄이야. 과연, 마이 브라더!”

거리는 멀었지만 남다른 감각을 통해, 일찌감치 둘 사이의 추격전을 감지한 것이다.

한껏 웃음을 터트린 그가 제퍼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몰골이 아주 우습게 됐구나.”

“빌어먹을...”

얼굴 가득 여유가 넘치는 존슨의 모습에서, 제퍼드는 이 자리가 자신의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직감했다.

‘곱게 죽어주진 않겠다.’

발악을 하듯, 흐름이 원활하지 않던 대지 깊숙이 강제 접속을 시도했다.

그와 동시에 한 가득 끌어올리는 대지의 기운이 그의 전신을 크게 뒤집기 시작했다. 한계 이상으로 기운을 끌어들이니, 군데군데 혈관이 터지며 곳곳에서 피가 솟구치는데, 그만큼 기세는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었다.

이를 본 마루는 등허리가 쭈뼛 서는 걸 느꼈다.

‘작정하고 덤볐으면...’

저 기세를 봤을 때, 결국 그가 패배하는 그림만 그려졌다. 순식간에 피범벅이 되는 제퍼드의 모습을 봤을 때, 그만큼 부작용이나 반동도 큰 듯 보였지만, 어쨌든 그 역시 비장의 카드가 한 장 쯤은 숨겨져 있었다는 부분에서, 목 언저리가 서늘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인가.”

존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마루에게 물었다.

“마무리는 내가 해도 되겠지?”

“제발, 그렇게 해 주십쇼. 플리즈~!”

그러며 마루는 손을 흔들며 물러났다. 이에 고개를 끄덕인 존슨이 양 주먹을 쾅쾅 부딪치며 제퍼드를 향해 다가갔다.

그 모습에 제퍼드가 물었다.

“놓아줄 생각은 없겠죠?”

“당연하지.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잡을 수 있겠어.”

“제가 죽으면 키홀에서 들고 일어날 겁니다.”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인데, 정면으로 받아줄 테니까. 후회 없이 뛰어들어 봐.”

“하...”

제퍼드의 두 눈 가득 분노의 불길이 타올랐다. 자신이 지쳤다고는 하나, 대지와 일체화를 이룬 그의 육신은 최강의 탱커이며 전차였다.

특히, 목숨을 담보로 한껏 기운을 끌어올린 지금은 정상 상태일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상태가 아니던가.

그걸 정면으로 받는다?

“당신의 오만, 건방, 반드시 박살내 드리죠!”

맘에 들진 않지만, 덕분에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고 여겼다. 그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는 걸 알면서도, 일단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단 한 방에, 모든 걸 건다!’

전력을 끌어올리는 여파일까?

드드드드드드...

전에 없이 요란한 땅울림이 울리며, 지진마냥 주변 일대를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 모습에 존슨이 히쭉 웃으며 호흡을 고른 뒤 자세를 잡았고, 이를 본 마루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쳐갔다.

‘저건...’

데스워치와의 일전에서 보여줬던 마지막 일격.

기억을 되새기던 찰나, 제퍼드가 땅거죽을 해일처럼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순간, 거대한 어둠이 대지를 휘감는 가운데, 존슨의 정권이 전방을 향해 무심히 뻗어나갔다.

전과 같은 섬광은 없었다.

그럼에도,

어둠은 부스러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