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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공수레만수거(空手來滿手去)?

#16. 공수레만수거(空手來滿手去)?

상황의 급전개에는 둘의 공로가 컸다.

이반나와 존슨!

무려 두 명의 랭커가 자신들의 이름을 내걸며, 상황을 전파한 것인데, 그로 인해 혜성 길드에서도 대대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움직여야만 하는 상황이 맞긴 했다.

혜성의 내부적으로는 이선희와 간부진이 꾸준한 마찰을 일으키며, 그들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하나, 그래도 일단 한 가족이라는 이미지는 분명히 새기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사냥감으로 몰려 버린 것이다.

―내가 패는 건 괜찮아도, 남이 패는 건 못 본다!

대충 이런 이유로 간부진들까지 우르르 들고 일어나며 키홀의 거처를 포위한 것이다.

바르다 길드의 던전 방향으로도 상당수 움직였는데, 그쪽은 이반나와 존슨이 담당한 만큼, 소수 정예로 보내 놓은 뒤, 이쪽 키홀에 좀 더 신경을 쓴 상황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포위로 인해, 키홀에게 거처를 내어 주고 있던 요명707 길드는 때 아닌 날벼락을 맞아야만 했다.

키홀과 키메라의 이름값에 할 수 없이 방을 내준 것일 뿐이건만, 함께 수갑을 차야 했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에 대한 혜성 측 입장은 간단했다.

“범죄자 새끼들이 말이 많네.”

요명 길드 역시 이면의 일원이니 만큼, 그 말에 반박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혜성은 카일리를 비롯한 키홀 요원들을 잡아들이고, 이를 명분 삼아 요명 길드까지 처리하는 와중에, 몇몇 쓸 만해 보이는 이들에게는 따로 손을 내밀기도 했다.

“네 재주가 남다르다던데, 우리 쪽 정보부에서 일해 볼 생각 없나?”

그중에서 특히 많은 관심을 받은 건, 남다른 후각으로 기운을 읽어 내는 사내, 카일리에게 1픽으로 발탁되었던 이면의 주민, 바로 개코였다.

“헤헤… 소처럼 일하겠습니다.”

당연하게도 개코는 이를 넙죽 받아들이며 쉼 없이 굽실대야만 했다. 안 그러면 혜성의 감옥에서 썩어 날 판국인데,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무려 혜성이었다.

‘범죄 이력 때문에 정면에 나설 순 없겠지만, 그래도 대길드의 요원이 되는 거잖아.’

일하는 걸 봐서 차후에 경력도 깔끔히 세팅해 준다 했으니, 언젠가는 바깥세상으로 당당히 나설 수 있을 터였다.

그와 비슷하게 몇몇 남다른 재주를 지닌 이들의 경우, 혜성의 하부 그룹으로 편입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스킬을 상세하게 기록해야 했는데, 아무래도 범죄자라는 이유 때문인지, 비밀 보호나 협약 같은 건 그들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그렇게 구분된 이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이면의 주민들은 혜성에서 관리하는 감옥으로 넘겨졌는데, 키홀의 요원 역시 그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들 이름값이 있는 만큼, 더 특별하고 더 철저한 관리를 받게 될 것임은 분명했다.

일련의 처리 과정을 전부 지켜보던 김연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선희를 돌아봤다.

“영감들이 맘에 안 들긴 해도, 일 처리 하나는 확실하네.”

하지만 이선희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멍한 눈초리로 허공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모습에 김연희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 버렸다.

‘또 그놈 생각하나 보네.’

미국의 3번째 히어로, 이선은 그 기세만 한껏 내비치다 조용히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춰 버렸다.

뒤늦게 현장을 찾았을 땐, 이면의 랭커라는 핌프의 사체로 보이는 잿더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이반나가 확인시켜 준 것이니 만큼, 믿을 만한 정보였다.

그 주변의 치열했던 격전의 흔적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선 역시도 무사하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짐작건대 그 때문에 더더욱 이선희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리라.

‘타이밍이 너무 좋았어.’

시기적절하게 등장해서 그들에게 경계 신호를 보내 줬으며, 더 나아가 가장 큰 변수가 될 존재까지 처리해 놓더니, 아무 알림도 없이 멋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분명한 임팩트가 있었다.

그 와중에 부상이 심각할 게 분명하건만, 그걸 확인할 수도 없으니, 이선희의 입장에선 답답해 미칠 지경이리라.

‘이 망할 작자,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야?’

김연희는 입술을 짓씹으며 그에 대한 원망을 쏟아 냈다.

* * *

연신 귀를 후비는 모습 때문일까?

“누가 네 욕하나 보다.”

존슨의 이야기에 이선이 쓰게 웃어 버렸다. 자신을 욕할 이들이야 세상에 널리고 널린 까닭이었다.

특히, 모국인 이곳 한국에 넘쳐 났는데, 개중에서도 유독 그를 더 싫어할 얼굴이 떠올랐다.

‘연희라면 욕으로 랩도 할 수 있겠지.’

그 모습을 보던 존슨이 물었다.

“것보다 팔은 좀 괜찮냐?”

“형님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선은 제 오른팔을 바라봤다. 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핌프는 자신이 장담했던 게 거짓이 아니었다는 듯, 죽는 그 순간 팔 하나를 정말로 가져갔다.

그 말 그대로, 이 팔은 한 번 떨어져 나갔던 녀석이라는 뜻이었다.

―흐흐! 난 빈말은 안 해.

그러면서 최후를 맞이하던 핌프가 떠올랐다.

팔이 떨어져 나가는 심각한 부상이었지만, 그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 때문에 과감히 핌프의 목숨을 팔 하나와 바꾼 것이 아니던가.

피닉스라는 이명과 화려한 불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자연계 각성자로서 몸을 쓰기보단, 화염 계열의 이상 현상을 일으키며 휘두르는 게 주된 공격 패턴이었다.

물론, 근접전도 간간히 발생하는 만큼, 전력이 일부 깎이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지금처럼 미국의 ‘3번째’ 히어로 위치 정도는 지켜 낼 수 있다고 여겼다.

그렇게 팔 하나를 핌프에게 제물로 던져 주고 떠나려는 찰나였다.

―에라, 이 무식한 놈.

그 말과 함께 등장한 게 바로 눈앞의 사내, 인디안 존슨이었다.

그러더니 던전에서나 구할 수 있는 최상급의 포션을 던져 주는 것이 아닌가.

덕분에 가까스로 팔은 이어 붙일 수 있었지만, 워낙 거칠게 뜯겨 나갔던 탓인지, 완치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 꼴로 미국에 돌아가면,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니까. 한동안은 여기서 지내.

라고 말하며 데려온 곳은?

“아니, 이 좁은 방에 셋이나 비비면 어쩌자는 거야?”

존슨의 형제로 알려진 마루의 집이었다.

“브라더. 여기도 마이 브라더라니까. 형제는 때론 같이 지내는 시간도 필요하잖아.”

“하… 이 나이 먹고 테트리스를 할 줄이야.”

거실을 끼고 있는 커다란 원룸이니 만큼 정말 그 정도로 좁은 건 아니었지만, 사내 셋이 한 방에서 머문다는 게,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기는 했다.

이선도 처음에는 그게 미안하고 부담스러워 따로 방을 잡으려고 했지만, 존슨이 이를 말렸다.

“요 녀석 들어온 게 제법 알려져서, 찾는 놈들이 한둘이 아닐 거야. 이런 꼴로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잖냐.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해라.”

존슨이라는 존재 때문에 이 주변 경계는 일부 허술한 감이 있었다.

물론, 일정 범위를 넘어가면 더 탄탄해지는 반전이 있었지만, 당장 주변의 감시망 두께는 얇아서, 이선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밥값도 안 내면서.”

연신 불퉁거리는 마루였지만, 이선은 그와 며칠 함께해 본 결과, 그냥 스타일이 저럴 뿐, 정말로 쫓아 낼 생각은 없다는 걸 알았다.

“몸도 안 좋은 사람이, 거참 무슨 설거집니까?”

그렇게 말하며 수시로 그를 쉬게 한다거나.

“아플 땐 잘 먹어야 돼요.”

밥 한 공기라도 더 주려고 하는 등,

“이것 좀 드셔. 뼈에 좋대.”

이래저래 챙겨 주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으음… 이러다 살 쪄서 나가겠는데.’

너무 잘 먹고 잘 쉬다 보니, 몸이 푹 늘어지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경력이 15년 정도 됐다고 했지.’

왠지 마루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고 여겼다. 모국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는 랭커지만, 그의 과거를 아는 이들에 한해서는 그 대우가 전혀 달랐다.

환영까진 몰라도 동정심 비슷한 건 품어 주는 경우가 종종 있던 것이다.

짐작건대 마루 역시 그런 부류가 아닐까 싶었다.

“아, 언제까지 누워만 있을 건데. 복도라도 좀 걷고 와요. 청소해야 되니까.”

그러며 발로 툭툭 차는데,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랭커를 이렇게 개 족으로 아는 경우는 처음이지만.’

존슨과의 생활 덕분에 저런 성향이 생긴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이런 태도가 싫은 것도 아니었다.

―이쪽도 마이 브라더 요쪽도 마이 브라더, 그러니 우리는 브라더!

라는 존슨의 요상한 주장에 따라, 본의 아니게 형제의 인연을 맺어 버린 상황이었는데, 마루는 정말 그를 형제처럼 대해 주고 있던 것이다.

‘너무 막 대하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초반에는 제법 대우를 해 주는 것 같더니만, 며칠 지나기도 전에 이렇게 변해 버린 것이다.

언뜻 비치는 분위기가 그와 존슨을 맞물려서 보는 느낌이었다.

‘그 작자랑 나를?’

어쨌든 이래저래 신경 써 주는 모습 때문인지, 대부분 기특하게 보이는 면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 마루가 외쳤다.

“헤이~ 브라더. 어디 가십니까?”

슬그머니 이선의 곁을 따르던 존슨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장 좀 봐 오려고.”

이에 마루가 냉장고를 활짝 열었다. 먹을거리가 빵빵하다 못해 게워 낼 만큼, 가득 채워져 있는 게 보였다.

“하하….”

“하하!”

존슨이 웃고 마루가 웃었다. 묘하게 다른 웃음 속에서 마루가 휙 하니 걸레를 던졌다.

“바닥이나 닦아요.”

슬쩍 이선에게 묻어가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며, 존슨은 시무룩한 얼굴로 열심히 걸레를 짜기 시작했다.

왠지 웃음이 나오는 광경이라, 결국 이선은 실소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 * *

상상도 못 한 소식이었다.

“뭐가 어떻게 됐다고?”

싸늘해진 음성에 보고를 위해 들어왔던 정보원 제이미의 두 다리가 바르르 떨렸다. 강대한 기세가 어깨를 짓누른 까닭이었다.

호흡이 턱 하니 막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겹게 입을 열어 대답해야만 했다.

“카… 카일리를 비롯한 요원들이 전부 잡혀 들어갔다고 합니다.”

키홀의 수장, 바이퍼는 주변에 실눈캐니 뭐니 하는 소리를 듣고는 하는데, 그 분노가 극에 달할 때면, 두 눈이 번쩍 뜨이고는 했다.

제이미는 그 기색이 비치는 걸 보며,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켜야 했다.

“제퍼드는 뭘 하고?”

그 물음에 제이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 그게 연락 두절이라며….”

번쩍!

아니나 다를까. 분노의 상징처럼 감춰 있던 동공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보였다.

기세 역시 한층 늘어나, 어느새 제이미는 무릎을 꿇어 버렸고, 정신을 차렸을 땐 고개를 땅바닥에 박고 있었다.

불처럼 타오르는 안광으로 요원의 뒤통수를 내려다보길 한참, 바이퍼가 애써 화를 억누르며 호흡을 다스렸다.

제이미는 상당한 실력자로서, 쓰다 버리는 그런 소모품적인 요원이 아니었다. 짐작건대 스스로도 이를 알기에 직접 보고를 올리러 온 것이리라.

‘잔대가리 굴리기는… 쯧!’

한 집단의 수장답게, 분노한 와중에도 이런 부분들이 머릿속으로 계산되더니, 결국 뜨였던 두 눈을 감게 만들었다.

“후우우우….”

이에 머리를 박고 있던 제이미가 안도했다. 바이퍼의 한숨과 함께 짓누르던 기세가 상당 부분 깎여 나간 것이다.

“개리와 포더를 한국으로 보내.”

그 말에 깜짝 놀라야만 했다.

각기 키홀에서도 손에 꼽히는 요원들이건만, 그 둘을 동시에 보낸다는 게 놀라웠던 것이다.

특히나 지금 계획 중인 일들을 생각한다면, 둘을 동시에 보내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애써 그런 반문을 삼켜 내야 했다.

한 차례 화를 넘겼다고는 하나, 그 분노의 잔향은 여전히 맴돌고 있어, 언제든 다시 터져 버릴 수 있는 까닭이었다.

“바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제이미가 밖으로 나가고, 바이퍼는 창가로 걸어가 밤의 야경을 눈에 담았다.

‘연락 두절이라고?’

요 며칠 이상하게 가슴이 답답한 것이, 묘하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새로운 연합체 문제로 인해 상황이 안 맞는 걸 알면서도, 굳이 개리와 포더를 동시에 보내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반나와 존슨!

그 둘이 함께 있는 동네가 아니던가.

“패드….”

동생의 애칭을 입에 담으며, 답답한 가슴을 애써 쓸어내렸다.

* * *

가장 걸리던 제퍼드 문제가 해결됐기 때문일까?

‘슬슬 갈 때가 됐나.’

존슨은 때가 됐음을 깨달았다.

핸드폰의 메인을 채우고 있는 이반나와의 커플 사진이 눈에 걸리며, 좀 더 머물고 싶단 미련이 남았지만, 더 이상 비빌 수 없었다.

‘마침, 써니도 붙잡아 뒀으니까. 마루 녀석도 한동안은 걱정할 필요 없어 보이고. 걱정거린 얼추 해결됐네.’

아쉬움이 남아서인지 천천히 짐을 꾸리고 있는 그를 향해 마루가 물었다.

“빈손으로 와선, 뭘 그렇게 챙겨 갑니까?”

“안 쓰는 추리닝이잖아.”

“…….”

마루는 핼쑥해진 옷장과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가방을 보며 고개를 저어 버렸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가방도 그의 거였다.

참고로 냉장고도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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