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가계약.
#18. 가계약.
존슨은 이야기했다.
―실버 박사는 특이 스킬 각성자였지.
스킬명은 좀 우스꽝스러웠다.
―엿보기 꾸운몽? 꾼몽? 꿈몽?
뭔가 은밀한 듯 혹은 오묘한 듯 보이는 명칭이었는데,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특별했다.
―오래전에 들은 거라 좀 헷갈리는데, 어쨌든 중요한 건 스킬명이 아니라 능력이지.
그러며 설명하길,
―꿈속에서 다른 세상을 훔쳐보는 거라더라.
PP에 등장하는 모든 몬스터들의 경우, 실버 박사가 꿈을 통해서 엿봤던 타 차원에 생명체들을 그대로 옮겨 왔다고 했다.
각성 이전부터 게임 개발자로 남다른 명성을 날리던 실버 박사였는데, 그 무렵부터 이미 독특한 발상이나 캐릭터 디자인으로, 업계 내에서는 상당한 명성을 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 각성을 하게 됐을 때, 그는 자신의 발상이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 알게 됐다며, 한층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상상 속 이미지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을 기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현실에서 등장한 몬스터들을 실시간으로 스캔해서 업데이트한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관련한 정보들은 이미 게임 내에 세이브된 상태야.
현실에 관련 몬스터가 등장하는 시기에 맞춰, 저장된 데이터를 불러오는 것뿐이라며, 그에 관한 사항은 PP의 인공지능이 체크하며 업데이트하는 거라고도 이야기해 줬다.
그렇다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게임에만 존재하는 몬스터들도 상당하잖아요?
PP는 방대한 세계관만큼 다양한 생명체들이 어우러지며 살아가는데, 거기에는 몬스터만이 아니라 드워프나 엘프등 여러 요정족과 마족 등의 유사 인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에 대한 대답도 놀라웠다.
―우리와 무관한 세상의 생명체들이라고 하더라.
그 말인즉,
―침략 차원과 아닌 차원의 구분이 가능하다나 뭐라나.
대격변 이후 다차원에 대한 부분이 증명되었고, 실버 박사는 꿈을 통해 적아를 살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해한 차원의 생명체들로 PP의 기본 베이스를 깔았다고도 이야기했다.
최초 언급되었던 ‘헌터 육성 프로그램’에 관한 부분은 언급도 되지 않았건만, 게임 배경에 대한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흥미진진한 내용들로 한가득이었다.
그 때문에 턱을 떨치고 있노라니, 존슨이 웃으며 한 텀 여유를 준 뒤 본론으로 넘어갔다.
―PP를 통해서 헌터들의 성장을 돕는 건, 너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모를 수 없었다.
현실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이 바로바로 업데이트되면, 이를 토대로 게임 속에서 모의 훈련을 하는데, 그 덕분에 PP의 등장 이전과 이후, 초보 헌터들의 사망률도 크게 달라졌다는 건, 업계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마루 역시도 PP를 통해 이런저런 모의 훈련을 하며, 생경한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업데이트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존슨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몬스터들은 전부 다른 세상에서 그대로 옮겨 온 것들이잖아.
그러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게임 내에 존재하는 공부들은 어떨까?
마루는 그 정답을 알았다. 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침묵했고,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 존슨의 이야기는 바로바로 이어졌다.
―게임 내의 공부도 다른 세상에서 가져온 것들이야. 만약 그중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익힐 수 있다면, 현실에서도 스킬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직까지 제대로 성공했다는 소릴 들어 본 적은 없다며, 아쉬워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거기서 실버 박사의 꿈이 언급됐다.
―로그인 더 헌터!
가만히 듣고 있노라니, 문득 궁금해졌다.
―나한테 이런 걸 알려 주는 이유가 뭡니까?
이 물음에 존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히쭉!
특유의 미소만 남긴 채, 그렇게 떠나갔다.
* * *
바르다 길드가 문제를 일으키면서 그들이 관리하던 던전은 온전히 혜성의 관할로 돌아왔다.
하지만 당장 혜성도 이를 컨트롤할 여력이 있진 않았다. 두 번의 던전 승급의 여파로 인해, 그렇잖아도 전력을 쪼개 가며 사용하고 있지 않던가.
보조적으로 지원을 할 수는 있지만, 당장 던전 하나를 컨트롤할 여력은 없는 것이다.
특히, 그 던전이 A급 던전임에야, 더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상황이었다.
그 같은 사정을 솔직하게 밝히며 관리 길드를 모집하니, 수많은 이들이 몰려들며 입찰을 하는데, 당연히 혜성의 하부 그룹으로서 컨트롤된다는 점을 주지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기는 뜨거웠으니, 이는 A급 던전이 주는 남다른 메리트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사냥 결과물과 보상 등이 다른 만큼, 단숨에 길드의 가치를 뻥튀기시킬 수 있는 게 바로 A급 던전이었다. 이 같은 열기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임시’ 관리 대행이 뽑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그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는 정리를 한 뒤에 넘겨주는 것이 관례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바르다 길드에게 한차례 데였던 바가 있는 만큼, 상대측에 대해 좀 더 철저한 조사까지 시행돼야 했다.
그러니 대행을 뽑은 이후의 검증 기간 역시, 생각보다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이 부분에서 문제가 드러났다면, 차 순위의 예약자들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때문에 ‘임시’라는 명칭이 붙는 거였다.
그리고 이런 사정으로 인해 한동안은 혜성 측에서 던전을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던전의 등급이 A급이다 보니, 일반팀으로 수습하기 어려웠고, 그만큼 혜성 특수팀의 고생이 더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일까?
지난 사건으로 잠시간 휴식기를 가졌던 특수 1팀도 결국 소환돼야만 했다. 보통 이런 사건이 있고 난 뒤에는 좀 더 장기적인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하기 마련이건만, 현재 혜성의 상황은 그럴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던전 하나가 통째로 넘어왔기 때문인데, 그게 어느 정도인고 하니,
“푸시! 푸시! 푸시!”
“1시 방향 마르다 출현!”
“저격조 2팀 보조!”
한 개 팀이 아니라 여러 팀이 함께 어울려서 움직여야 할 정도였다.
이는 팀마다 최소한의 휴식을 분배하기 위한 조치로서, 각기 컨디션을 체크하며 새롭게 조 편성이 나눠지는 것이다.
혜성 같은 대길드에는 엔트라넷의 간접 접속을 통해, 컨디션을 살피는 장치 정도는 마련되어 있었는데, 급박한 상황에는 이를 발동시키며, 헌터들의 차후 일정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엔트라넷과 달리, 그저 상중하 3단계로 간단히 나눌 뿐인데, 중급이 나올 경우가 바로 6~8점대의 일상 단계로 볼 수 있었다.
수시로 이를 살피며 팀의 구분 없이 상태 유무에 따라서 매번 새롭게 조가 편성됐다.
당연히 그 안에서도 출동이 잦은 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의 경우 차후에 있을 추가 수당이나, 여러 처리 보상금 등에서 정산 비율이 높아지겠지만, 그래도 당장 쉴 시간이 없다는 건 여러모로 죽을 맛일 터였다.
원래라면 욕지거리가 안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각 특수팀은 평소보다 여유가 생기는 걸 느껴야만 했다.
피로감이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심적인 안정감이 이를 다독여 주는 까닭이었는데, 놀랍게도 그 중심에는 혜성 특수팀의 신입이 자리하고 있었다.
“와… 미쳤네. 이래서 마녀가 직접 스카우트한 건가.”
“저격 퀄리티 봐라. 뒤를 신경 쓸 필요가 없네.”
덕분에 전투로 인한 피로도가 덜한 것이다.
“지리는 건, 저 친구 컨디션이지.”
“풀로 뛰고 있는데도 여전히 상태가 멀쩡하다며.”
“저격수라 체력이 멀쩡하니까. 당연한 거 아닌가?”
“멍청한 소릴 하네. 그쪽 계열은 정신력 갉아먹는 게 상당하잖아. 보통 지금쯤이면 2~3턴은 쉬었어도 이상할 게 없는데. 휘유… 대단한 놈이야.”
“어째, 1팀은 하나도 빠지는 애들이 없냐.”
매번 그러하듯, 마루에게서 시작된 감탄은 특수 1팀 전체로 퍼져 나갔다.
이들의 이야기처럼, 마루는 현재 풀로 던전 일정을 소화 중이었는데, 이는 그의 컨디션이 유독 멀쩡한 까닭이었다.
마루는 매번 중급으로 평가받았고, 덕분에 풀타임을 소화하며 빡빡한 일정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미치겠네. 쓸데없이 컨디션이 좋아서는….’
딱 일상 컨디션의 커트라인이라 할 수 있는 6점대에서 계속 머물고 있는데,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본신의 능력은 A급이건만, 현장에서는 B급 수준만 보여 주는 데다가, 본연의 장기인 치열한 근접 박투가 아닌, 여유를 둔 원거리 저격만 펼치니, 컨디션이 떨어질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개 사념폐해로 정신력이 다운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의 경우에는 각종 신성 스킬로 보호되니, 이런 부분에서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여유를 두는 사냥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의 최하점인 6점대인 이유가 뭘까?
그에 대해서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휴식이 없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때문이리라. 그로 인해 7~8점대가 아닌, 딱 커트라인에 걸친 6점대인 것이다.
이래저래 피로한 와중에, 최근 그를 더욱 피곤하게 만드는 소식이 전해졌다.
“방송국에서 나온다더라.”
“갑자기 웬 촬영?”
“뭐 홍보할 게 있다고?”
“있잖아. 그거.
“뭐? 아… 1팀장님!”
지난 사건 이후, 특수팀 전체를 들썩이게 만드는 소식이 하나 있었다.
초인 탄생!
얼음여제 이선희가 초월자가 되었다는 것인데, 대한민국이 들썩여야 할 소식이건만, 여태껏 어떤 사이트에서도 관련한 이야기는 단 하나도 언급된 바가 없었다.
이는 혜성 상부의 지시로 통제된 까닭이었는데, 어차피 당시 상황을 아는 건 극히 소수였고, 전부 혜성에서 컨트롤하고 있는 만큼, 통제하기가 크게 어렵지는 않던 것이다.
이 좋은 소식을 굳이 감춘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가장 대표적인 거라 한다면, 이선희와 혜성 상부 그리고 본사와의 마찰 등을 들 수 있었다.
“그 문제 때문에 본사 직계들 사이에서 매일 회의가 열렸다더니. 드디어 결론이 난 모양이네?”
“초인이잖아. 이전과는 대우가 달라야지. 게다가 더는 억누를 수가 없으니, 차라리 이참에 빵 터트려서 홍보라도 제대로 하겠다는 거겠지.”
“하긴, 재수 없어서 광호 꼴이 날 순 없으니까.”
“피닉스가 아까운 인재긴 했지.”
“그쪽은 준 랭커 상태였지만, 우린 완전히 랭커가 된 거잖아. 솔직히 고민할 이유도 없는 거 아닌가? 이렇게 시간을 끈 것 자체가 골 때리는 거라고 본다.”
상세 내용을 알고 있는 특수팀의 경우, 연일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주된 화제로 올라오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관심사로 꼽히는 건, 이선희의 위치 변화였다.
“듣기로는 각 특수팀을 통합해서 부서를 만든다던데.”
“하긴, 한 팀으로 뭉뚱그리긴 했지만, 우리가 전부 개별 팀이었으니, 슬슬 합칠 법도 하지.”
“그러면 1팀은 마녀가 팀장을 맡는 건가?”
“확률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높긴 한데, 마녀 성향이라면 팀장보다는 여제 보조로 따라가려 하지 않을까?”
1팀 내부의 여러 직위 변화에 대한 화제는 특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는데, 이런 주변의 반응과 달리 마루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그는 용병 계약이었다.
대외적으로야 혜성의 일원이지만, 실제로는 그저 한 발 걸치고 있는 정도가 전부였다.
단지, 방송국 카메라에 얼굴이 노출되고, 팀 단위의 사냥 영상이 퍼지면서, 또 한차례 인지도가 올라갈까 봐 걱정만 될 뿐이었다.
‘이놈의 유명세는 언제쯤 끝나려나.’
하지만 그런 그의 거리감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갑자기 면담이라니….”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김연희가 자리를 만든 것인데, 의아한 와중에도 조심스레 회의실을 열고 들어가니, 그 안에는 이선희도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놀라는 한편 일단은 발을 들이는데, 자리에 착석을 하기가 무섭게 김연희가 본론을 꺼냈다.
“정마루 씨와 계약서를 새로 작성하려고 불렀습니다.”
“…벌써요?”
마루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앞서 B급으로 승급하면서 재차 갱신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또 새롭게 쓴다?
“그 대신 이번 건 정식 계약이 아니라, 일종의 가계약 정도일 거라 미리 말씀드리죠.”
의아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는데, 문득 이선희가 입을 열었다.
“곧 특수팀이 통합될 겁니다.”
이래저래 들은 바가 있어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전 통합 부서의 장이 될 거고, 이후로는 여기 연희가 1팀의 팀장 자리를 맡을 겁니다.”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김연희는 이선희의 보조가 아닌 팀장 자리에 머물기로 한 모양이었다. 각 팀들의 내기 결과를 먼저 알아 버렸다는 생각과 함께, 빨리 나가서 돈을 걸어야겠단 결론으로 이어졌다.
‘배당이 얼마야? 와우….’
절로 군침이 넘어가는 가운데, 뜬금없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건 임시일 뿐이고, 차후 마루 씨가 팀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흐흐! 그러니까 배당대로라면… 응?’
돈 계산을 하던 중, 마루의 사고가 일시적으로 정지해 버렸다. 잘못 들었나 싶어 갸웃거리며 이선희를 바라보는 가운데, 그녀 옆으로 김연희가 입을 열었다.
“진급 절차는 짧게 반년에서 1년까지 기간을 보고 있습니다. 올해는 확실히 제가 책임지고 1팀을 이끌 예정입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정마루 씨가 1팀을 맡아 주셨으면 합니다.”
환청이 아니었다. 제대로 들은 게 맞았다.
‘아니, 대체… 내 뭘 보고?’
마루가 벙찐 표정으로 턱을 떨군 채, 두 여인을 번갈아 봤다.
그녀들이 물었다.
“1팀의 알파 자리.”
“맡아 주시겠습니까?”
마루의 대답은?
“…어… 어버버….”
말문이 막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