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뿅!
무려 혜성 길드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특수 1팀의 팀장 자리였다.
그만한 지위를 각성 1년 남짓의 초짜에게 맡긴다?
이야기대로 일정 시간을 추가한다 해도, 2년차 정도일 뿐이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김연희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신입하게 팀장 자리를 준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당연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에 대한 이소희의 주장이 너무나 확고했다.
“벽을 넘고 나니까 더 확실히 알 수 있었어.”
“뭐가?”
“마루씨는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인재야.”
그녀의 감각은 여전히 마루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캐치하지 못했다. 초월자가 되었음에도 달라진 게 없던 것이다.
그 때문에 더더욱 특별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존슨의 조언도 있었고.”
사실, 그 부분이 결정적이기도 했다. 긴가민가했던 마음을 확실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그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데.”
“놓치면 후회할 거라더라.”
그리 많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딱 그 정도로 끝이었다. 하지만 성장한 만큼 넓어진 시야 때문인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와 닿는 바가 있었다.
너무도 단호한 이선희의 모습에 결국 김연희는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반쯤은 져준 경향도 있었다.
갑작스런 이선의 출현으로 반쯤 정신줄을 놨던 만큼, 이처럼 다시금 일에 집중하는 모습이 반가워, 최대한 그녀의 의견을 따라주고자 한 것이다.
물론,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 여겼다면, 끝까지 반대 의견을 내세웠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김연희 역시 마루를 놓쳐선 안 된다고 여기고 있지 않던가.
‘팀장까지 달아주는 건 너무 과한 것 같긴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적정선은 한 개 조를 이끄는 조장급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선희의 뜻을 따른 건, 각성 이후로 1년 남짓의 시간동안 마루가 이룬 걸 생각해 봤을 때, 유예기간 1년을 더 보내고 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까닭이었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뒤, 합당한 이유를 찾아나갔고, 그렇게 만들어낸 이유들을 강조하며 마루에게 설명을 이어나갔다.
“정마루씨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저희가 지켜본 결과,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연희는 그리 말하며 조사한 것들을 꺼내들었다.
“지난 15년 동안 군대에서도 그렇고, 해외 파견 중에도 수차례 팀장급 위치를 맡아본 걸로 나오더군요. 게다가 파견 임무 중에는 직접 지휘하면서 신입들까지 가르치며, 생존률을 높였다는 보고서도 여럿 확인했습니다.”
확실히 그 부분이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언젠가도 언급한 바가 있듯, 초짜들에게 뒤를 맡기는 게 불안한 탓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교육시킨 것뿐이었다.
과거에도 언급된 바 있듯, 한국 출신의 비각성 헌터들은 해외에서 대우가 좋은 편이기도 했다.
게다가 군부대 출신이라는 부분에서도, 이런 저런 역할을 부여하기가 편한 점도 있어서, 분대장급 역할을 자주 수행했던 것이다.
마루의 입장에서는 초짜들의 교육을 맡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추가수당이 짭짤했던 탓에 거절하지 못한 채, 대부분의 임무를 받아들이며 수행했던 것인데, 김연희 입장에선 변명거리로 사용하기에 딱 좋은 떡밥인지라, 회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야투란 마수지대 방어전, 가투소 마수지대 방어전, 다이야드 길드전, 마랑...”
그러면서 지난 경력들을 쭈욱 읊어주는데, 하나같이 마루가 분대장급 이상의 역할을 맡았던 것들이었다.
“솔직히 이런 경력만 놓고 보면, 당장 부팀장 급 정도는 달아줘도 될 수준이네요.”
해외파견 임무 중 상당수가 조장급 이상으로 활동했던 만큼, 그녀의 말이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3번의 임무를 뛰면 적어도 1번은 반드시 특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단지 문제라고 한다면?
“그렇지만 제 역할은 비각성 헌터들의 케어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같은 헌터로 분류되지만, 각성자와 비각성자들의 생태계는 전혀 다릅니다. 제 지난 경력은 큰 의미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어느 정도 정신줄을 다잡으며 말문이 트인 듯, 마루가 그리 이야기하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어놓는데, 김연희가 옅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 때문이 1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한 겁니다. 그동안 정마루씨는 지난 경력동안 보여줬던 리더십을 지금 환경에 완전히 이식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팀원들의 인정도 받아야겠죠.”
저격수 정마루와 달리 팀장 정마루라는 포지션의 경우, 적잖은 논란을 낳으며 분명 불화를 야기할 터였다. 그 괴리감을 완화시키기 위한 유예기간이었다.
이쯤 되면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굳이 절 팀장으로 뽑으려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에 대해서는 이선희가 답해줬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요.”
과거, 카페에서의 대면에서도 그랬듯, 이번에도 그녀는 과감한 직구를 꽂아버렸다.
이번에도 통한 것인지, 잠시간 벙찐 표정이 되는 마루를 향해 이선희가 연달아 강속구를 던졌다.
“원하신다면 굳이 계약 조건을 변경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용병 계약을 유지하시면서 팀을 맡아주셔도 됩니다.”
이는 김연희와 상의되지 않았던 부분인지라, 잠시 그녀의 동공이 흔들렸지만, 가까스로 표정이 구겨지는 것만큼은 참아낼 수 있었다.
마루를 확실히 잡기 위해서라도 용병 계약이 아닌, 정식 계약으로 묶어 놓자는 게 기존에 세운 계획이었다.
‘배팅을 너무 올렸잖아, 언니!’
그 같은 외침을 꿀떡꿀떡 삼켜내면서 힘겹게 둘 사이의 대화에 집중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었지만, 저는 마루씨의 성장 가능성을 아주 높게 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오랜 시간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게 솔직한 심경입니다. 용병 계약은 그걸 위한 발판이라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거기서 한 호흡 쉬던 이선희는 좀 더 안쪽으로, 꽉 찬 직구를 던지기로 결정을 내렸다.
“저는 혜성을 변화시킬 겁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김연희가 결국 표정의 컨트롤을 놓쳐버렸다. 섣불리 입에 담아서는 안 될 이야기인 탓이다.
눈에 띄게 당혹감을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 때문인지, 마루의 눈가에 이채가 스쳐가는 가운데, 이선희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혜성을 기업이 아닌 길드로 만드는 것, 그게 제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을만한 실력자가 필요했다.
“저를 너무 과대평가 하시는 것 같은데...”
“존슨은 아무나 형제로 삼지 않습니다.”
할 말이 없게 만들어버렸다.
* * *
최근 한국, 아니 세계까지 통틀어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커플을 꼽으라면, 단연 이들이 첫째로 언급될 터였다.
이반나와 존슨!
그들의 데이트 사진은 수시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었고, 그럴 때마다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며, 댓글 창을 마비시키고는 했다.
이는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까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반응하며 일으키는 열기였다.
별 거 없는 일상적인 데이트 사진일 뿐이지만, 그 커플이 이반나와 존슨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컷들이 베스트로 뽑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몇몇 눈치 빠른 이들의 경우, 그 베스트 컷 속에서 미묘한 괴리감을 느끼고는 했는데, 개리와 포더 역시 그러한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거...좀 이상하지?”
“그러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좀...”
“어째, 돌려막기 느낌인데.”
매일처럼 새로운 사진들이 업데이트 되는 가운데, 사진 속 복장이나 모습들이 지난 과거의 사진들과 겹치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순차적으로 모든 자료를 뽑아 다시금 확인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져 버렸다.
“설마, 존슨이 떠난 건가?”
이반나의 위치는 제대로 파악됐다. 하지만 존슨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캐치된 바가 없었다.
워낙 은밀한 움직임을 좋아하는 탓에, 그리 이상할 게 아니었지만, 올라와있는 사진이나 이반나의 동선 등, 이런저런 자료들을 종합해 본 결과, 존슨의 방랑벽이 다시금 도졌다는 결론으로 이어진 것이다.
“확인해 봐야겠네.”
“CT헌터 주변조사부터 다시 하자고.”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그들 팀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이선이 비록 모국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히어로라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방에만 박혀있진 않았다.
팔이 좀 붙기 전까지는 움직이는 걸 자제한 탓에, 대부분은 집안에서만 생활했던 것인지, 어느 정도 붙었다는 느낌이 온 이후로는 슬금슬금 집 밖을 나와서, 가벼운 산책 정도는 하기 시작했다.
물론, 역적 취급을 받는 만큼, 워낙 알아보는 이들이 많은 탓에, 철저히 위장을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는 했다.
거기에 스킬을 살짝 얹어서, 그 주변의 시야를 일부 흔들리게 만들어 놓으니, 알아보는 이 없이 편하게 산보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동네를 돌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경력이 15년은 된다고 했었지.’
군데군데 숨겨진 마루의 안전장치들을 발견한 것인데, 이선 역시 험난한 과거로 인해 이 방면에 제법 통달한 전문가였음에도, 극히 일부만 발견해 낸 게 전부였다.
‘보통 실력이 아니네.’
이 부분은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으로써, 마루 본연의 능력만이 아니라 PP에서 쌓은 능력치까지 더해진 탓에, 이선의 눈썰미로도 전부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존슨 덕분에 이쪽 계열 지식이 한층 성장하지 않았던가. 그러다보니 이 방면의 전문가라도 눈을 비비게 만들 장면들이 가득한 것이다.
그 때문일까?
산보를 하며 마루의 안전장치를 찾아내는 건, 그 나름대로 이 답답한 일상을 즐기는 한 방법이었다.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귀가하는 길, 한 차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하루 사이에 경계망이 꽤 좁혀졌어.’
마루의 거처 주변을 감시하던 눈길이 한결 촘촘해 진 것인데, 그 부분에서 예상되는 상황이 하나 있었다.
‘존슨이 떠날 걸 의심하고 있나.’
여러 단체에서 그에 대한 확인을 위해, 조심스럽게 거리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거리감을 확인해 본 결과, 하루 이틀이면 발각되겠다는 결론이 나왔고, 거기서 슬슬 준비했던 걸 시행하기로 했다.
‘약속한 것도 있으니까.’
잠시 존슨을 떠올리며 투덜거린 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갔다. 빠른 회복을 위해서라도 밥시간은 놓칠 수 없었다.
* * *
풀타임으로 던전을 뛰며 사냥을 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피로감이 크지 않은 탓일까?
마루는 바쁜 와중에도 PP의 접속을 잊지 않았다.
이젠 일과처럼 되어버린 현무의 신물 개방, 흑화한단을 초롱이와 루미에게 맛보게 해 주기 위함이었다.
-흑화한당!
-흐콰해~!
두 귀염둥이가 현무의 신물에 취해 씰룩대는 모습이란,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나름 하루를 마무리하는 힐링의 시간이기도 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PP에 접속한 뒤, 귀염둥이들을 부르는데, 루미가 등장과 함께 뜻밖의 발언을 하는 것이 아닌가.
-주인님 오늘도 정의로운 도우미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루미팡! 루미피! 루미~얍! 업그레이드 루미 탄~생!
마지막 외침에서 감이 왔다.
“성공했구나?”
그의 물음에 루미가 앙증맞은 양 손으로 더블 V를 그려보였다. 그토록 바라고 기대했던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는데, 그에 대한 루미의 답변은 간단했다.
-헤헤! 바로 보여드릴게요.
아무래도 어지간히 뽐내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루미팡! 루미피! 루미~얍!
특유의 외침과 함께 대뜸 그를 두드리는 게 아닌가.
토닥토닥...
뜬금없는 안마에 당황하는 가운데,
[루미가 스킬을 발동합니다.]
[요정 손은 약손!]
[회복력이 3% 상승합니다.]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버프라고?’
공격 스킬을 예상하고 있던 만큼, 뜻밖의 반전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의 입장에선 오히려 반가운 부분이기도 했다.
어설픈 공격보단 어설픈 버프가 나은 법이기 때문이다.
3%라는 부분이 미묘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회복 계열이라는 점에서 평타는 쳤다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어진 루미의 이야기가 일말의 아쉬움마저 털어버렸다.
-헤헤!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하면, 회복률도 올라갈 거예요. 게다가 다른 버프들도 추가할 수 있어요.
기대감이 한껏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뜻밖의 팀장 제안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했건만, 루미의 이 같은 변화는 잠시지만 그런 잡념들을 털어버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헌데, 놀라운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건물주! 나 이제 밖에 나갈 수 있어.
여의주에서 나온 초롱이의 뜬금없는 이야기에 의문을 느끼는 찰나였다.
뿅!
아주 잠깐 초롱이가 반짝인다 싶더니, 이게 웬일?
“히히! 나 어때?”
“......”
웬 아이 한 명이 눈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마루의 턱이 쏙 빠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