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20화 (120/325)

#20. 난 초롱이야!

아기 드래곤은 슬펐다.

호봇이 보고 싶고, 꼬봇도 보고 싶었으며, 차요의 버스놀이나 나바와 벌레 친구들이 꼬물대는 것도 보고 싶었다.

그 외에도 밖에서만 즐길 수 있는 여러 먹을거리도 맛보고 싶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 많았건만, 바깥세상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슬펐다.

물론, 이곳에도 먹을거리와 즐길 거리는 넘쳐나지만, 그건 현상과 환상의 경계 속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보니, 온전히 맛본다고 하기 어려웠고, 건물주가 함께하지 않는 이상 그마저도 즐기기 힘들었다.

그 때문인지 더더욱 바깥세상이 그리웠다. 건물주 없이도 즐길 수 있던 세상이지 않던가.

몰랐다면 모를까. 한 번 경험해버린 이상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리했고, 또 갈망했다.

-힝...나가고 싶다!

이런 간절한 바람이 통한 것일까?

우우우웅...

여의주가 크게 진동했고, 그간 흡수했던 흑화한단의 기운이 공명했다.

그 끝에 이뤄진 건?

“따단~! 건물두 나 이제 바께 나가도 대디?”

사람이 되어버렸다. 아직 적응을 덜 한 것인지 발달이 덜 된 것인지, 혀 짧은 소리가 자주 나왔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스킬 : 폴리모프]

[다른 종으로의 변신.]

아기 드래곤에게는 아직 허락되지 않을 스킬이었지만, 현무의 신물 덕분일까?

좀 더 일찍 스킬을 개화한 것이다.

그런 사정까진 알 수 없는 마루는 그저 벙찐 표정으로 초롱이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대략 3살가량의 아이 모습으로써, 이리보고 저리보고 아무리 돌려봐도 분명 완벽한 사람의 아이가 되어있었다.

‘맙소사!’

입이 떡 벌어지는 상황이 분명했다. 말문이 막혀 턱만 떨구고 있노라니, 초롱이의 재촉이 이어졌다.

“나 이데 바께서 바끄로 나가도 대디?”

밖의 밖, 이는 마루의 집을 벗어나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호보또 영하간에서 보고 그거, 키즈 카페도 가꼬야. 마따. 노리공언도 데려다 둬. 히히!”

이야기를 하다 보니 흥이 난 것인지, 신나서 방방 뛰는 아이의 모습에 조금씩 정신이 바로잡히며, 빠져버렸던 턱을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드래곤은 텅룡 열타를 타야 대!”

요상한 주장을 하는 아이의 모습에 뒤늦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지금껏 이 꼬마 드래곤을 게임 속에 남겨둘 수 있던 건, 바깥세상은 인외종에 대한 인식이 나쁘다거나, 손바닥 만한 아이가 감당하긴 어렵다는 등의 이유를 들먹인 덕분이었다.

허나 지금의 초롱이는 이런 주장이 먹힐 대상이 아니었다.

“히히! 이데 내가 누나보다 크다. 어흥!”

그러면서 루미에게 지금껏 당해왔던 복수를 하려 드는데, 여기서 마루는 또 한 차례 놀라야만 했다.

-루미팡! 루미피! 루미~얍!

특유의 요상한 주문을 외우는가 싶더니,

뿅!

루미도 커져버렸다.

“헉!”

어찌나 놀랐던지 결국 헛바람이 목구멍을 쑤셔버렸다.

-거대 루미 출동!

그렇게 외친 루미는 단숨에 반란군을 제압한 뒤, 그대로 껴안은 채 열심히 뒹굴었다.

-사랑과 루미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크왕!

“으으...분하다.”

그 품에서 초롱이가 울분 섞인 음성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가운데, 이 모습을 감상하던 마루는 새삼 힐링이 된다는 걸 느끼며 마냥 웃어버렸다.

초롱이의 외출?

‘저렇게까지 원하는데.’

뜬금 변신까지 해 버릴 정도가 아니던가.

“그래 밖의 밖으로 나가자!”

과감히 질러버렸고, 루미의 품 안에서 버둥거리던 초롱이가 더욱 격렬히 발버둥을 쳤다.

“만떼~!”

귀여움이 폭발하고 있었다.

* * *

촘촘히 좁혀드는 감시망을 물리는 건 아주 간단했다.

‘밥도 든든하게 먹었으니까,’

화아아아아악...

이선은 지닌바 포스를 한껏 개방하며 사방으로 그 기세를 넓고 또 강하게 퍼트렸다.

초인의 존재감!

그것만으로도 밀려들던 감시망에 급제동이 걸리더니, 빠르게 뒷걸음질을 치는 게 느껴졌다.

얼굴을 내비치며 어설픈 연극으로 존슨을 연기할 필요 없이, 이처럼 초인이 머물고 있다고 알리는 게, 저들을 속이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설마, 이곳에 존슨 말고 또 다른 초인이 있을 거라 생각이나 하겠는가.

초월자의 기세를 감당하는 걸 넘어, 이를 파헤치며 대략적인 정체까지 구분할만한 실력자가 끼어있다면 또 모를까. 어지간한 요원은 좀 전의 기세발산 한 번으로 걸음아 나 살리라며 내뺐을 터였다.

부상과 무관한 포스 개방이다 보니, 팔에 무리가 갈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자연계 각성자의 특징이 이런 종류의 광범위한 기세 발산이 아니던가.

‘결국 발각되겠지만.’

한동안 시간벌이는 해 줄 터였다.

만약 존슨이 아니라는 걸 알아채더라도, 선뜻 다가올 엄두를 내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두 번째 초인?

충분히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작정하고 기세를 발산한 것이니 만큼, 존재 자체가 경고이기도 했다.

그가 누군지 궁금하더라도 멀리서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걸로 한동안 얼씬 대는 놈들은 없겠네.’

밥값은 했다며 다시금 집안으로 들어갔다.

* * *

초월자의 기세를 버텨내며 그 포스의 향을 읽어낸다?

개리와 포더는 그게 가능했다.

물론, 그 방면의 전문적인 스킬이 있는 건 아니다 보니, 상세한 내력까지 알아낼 수야 없지만, 그 기운의 진위여부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각기 A급 최상위에 머무르는 헌터이며, 함께 어울리며 초인과도 대거리가 가능할 만큼의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이거, 존슨이 아닌데?”

“하지만 랭커는 맞아.”

그들 두 사람은 존슨의 기세를 정면으로 맞아봤던 경험이 있기에, 더더욱 모를 수가 없었다.

깜짝 놀란 그들은 머리를 굴리며 한국에 들어와 있는 랭커들의 목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면의 정보도 포함되는 것으로써, 그렇게 정리하고 보니 또 놀라웠다.

“워...두 자릿수나 들어와 있었네.”

“확실히 요즘은 한국이 핫 플레이스구나.”

“여기 아가씨들도 핫 하던데.”

“흐...오늘도 클럽?”

“당연하지.”

“OK!”

일은 일이고 즐기는 건 즐기는 거였다. 이를 위해 팀원들이 존재하는 게 아니던가.

잡담은 그쯤에서 거둔 뒤, 다시금 본론으로 돌아왔다.

“누굴까?”

“모르지. 랭커들이 워낙 많이 들어와 있어야지.”

“일단, 이반나의 동선 체크부터 해 보고...”

“아니. 그녀도 아니야. 내가 겪어본 적 있는데, 이건 그녀와는 느낌이 달라.”

그렇게 서로의 기억을 비교하며 하나씩 줄여나갔음에도 반절 가량이 남아버렸다.

“이건, 어쩔 수 없나?”

“직접 들어가 봐야지.”

한숨 나오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좀 미뤄두자. 쓸데없이 랭커 주변을 들쑤셨다가 초반부터 일정이 꼬이면 안 되잖아.”

“하긴, 원래 이쪽은 막바지에 조사할 계획이었으니까.”

“덕분에 존슨이 없다는 건 알았으니, 의미없진 않았어.”

“OK! 다시 혜성 쪽으로 가 보자고.”

개리와 포더는 그리 말하면서, 다른 요원들이 그러하듯, 조심스레 뒷걸음질을 쳤다.

* * *

조심스레 운을 뗐다.

“아는 사람이 애를 좀 맡아달라고 해서 그런데, 데려와도 되지?”

마루의 물음에 이선은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집 주인은 마루가 아니던가.

이에 마루가 후다닥 밖으로 나가는데, 다급한 그 뒷모습에 이선은 묘하게 불길한 예감을 느껴야만 했다.

‘요즘 저 녀석 바쁘지 않나?’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마치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3살 남짓이나 됐을까?

연예인을 시켜야 할 것 같은, 그런 남다른 귀여움을 지닌 아이가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난 초롱이야!”

마루가 언뜻 당황한 얼굴이 됐다.

‘...하루 만에 존대를 가르칠 순 없나.’

그의 당혹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롱이는 마루를 돌아보며 기분 좋게 웃었다.

“히히! 이번엔 데대로 발음해따.”

자꾸만 혀 짧은 소리가 나오는 탓에, 제 이름마저 토롱이라고 불렀었는데, 꾸준한 연습 덕분인지 드디어 제대로 된 발음을 한 것이다. 그에 대해 신경 쓰다 보니 존대에 대한 부분은 일찌감치 뒷전이 된 상태였다.

‘...딱 그것만 제대로 발음 했네.’

좋아라고 웃는 얼굴을 타박할 수 없어, 결국 마루는 변명을 늘어놨다.

“크흠! 외국에서 살다 와서 존대가 좀 서툴러.”

이선은 지금껏 미국에서 살았던 만큼, 선뜻 이해하며 받아들인 뒤, 앞서 떠올랐던 의문을 내비쳤다.

“그런데 너 요즘 한창 바쁘지 않냐?”

이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형님이 좀 봐줘.”

“...어?”

“밥값은 해야지.”

‘아니, 밥값은 분명...’

생각해보니 존슨과 이선 사이에서만 나눈 비밀스런 이야기며 계획이었던 터라, 일순 말문이 턱 막혀버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벙찐 표정으로 멍청하니 있자, 아이가 웃으며 안아달라는 듯 양 손을 활짝 벌렸다.

“아프로 달 부타캐!”

“...어?”

벙벙한 와중에 아이를 안아 올리며 마루를 돌아보는데, 이게 웬일?

없었다.

“다녀올게~!”

창밖으로 출근길에 오르는 마루의 외침이 들려왔다. 급히 내다보니 무슨 줄행랑을 치듯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어?”

그렇게 때 아닌 육아일기가 시작됐다.

* * *

여느 때처럼 빡빡한 던전 사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마주할 수 있었다.

“존슨이 안 떠났다고?”

다른 길드에서 건너건너 넘어온 소식을 들은 것인데,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마루의 거처를 압박하다가 존슨이 발산한 기세에 놀라 황급히 발을 뺐다는 것인데, 이를 듣고서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 떠났을 텐데?’

이선희와 김연희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아저씨야 워낙 이상한 재주가 많으니까. 또 결계니 뭐니 하는 걸로 수작부린 건가?”

혹은 이반나가 한 차례 거들어 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 당시 이반나의 동선이 함께 전해지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외해야만 했다.

김연희가 이런저런 의견을 내놓는 와중에도, 어째서인지 유독 이선희는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게 의아해서 김연희가 물었다.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이선희의 지금 표정이 딱 그랬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에 김연희가 잠시 합죽이가 되어주면서, 생각할 시간과 분위기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를 떠올린 듯, 이선희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지는데, 이를 본 김연희 역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굴빛이 어둡게 변했다.

‘그 인간이구나!’

그녀가 알기로 이선희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하나 뿐이었다.

이선!

한 차례 그에게로 생각이 닿기 시작하니, 뒤늦게 존슨과 이선이 함께하는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그 둘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지는 알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이반나와 이선 그리고 존슨이 함께 있던 게 기억난 것이다.

워낙 오래전 일이고, 당시에는 함께 어울릴 만한 위치가 아니었던 터라, 이런 정보들이 수집된 이후에야 겨우 연상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존슨 역시 계산하지 못했던 부분으로써, 설마 그녀들이 알아챌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의 위치를 알아버린 탓일까?

요 며칠 평정을 되찾았던 이선희의 두 눈 위로, 다시금 어지러운 격랑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 * *

그가 떠나기 전, 며칠 동안 정말로 아무런 걱정 없이 신나게 놀며 돌아다녔다.

발목을 잡던 문젯거리를 전부 해결한 덕분에, 특히 더 편하게 데이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쌓인 사진이었다.

-이것 좀 천천히 풀어줄 수 있을까?

그리고 이어진 부탁,

이반나와 존슨!

그들 연인의 최근 사진은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였다. 물론, 데이트 자체야 진실이지만, 최근에 찍은 게 아니라 이전에 찍어뒀던 걸 이제야 푸는 것이니, 시간 적인 부분이 조작된 것이다.

아는 기자들이나 인맥을 통해, 그렇게 조금씩 정보조작을 한 것인데, 조금은 즉흥적으로 계획된 작업인 탓일까?

“생각보다 빨리 들켜버렸네.”

이반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지금부터가 진짜 볼거리지.’

과연, 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지, 내심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궁금증도 일었다.

‘존슨 그 인간이야 가끔 허술한 부분이 있으니까, 모르고 넘어갔을 테지만. 이선...너도, 정말 몰랐니?’

그녀의 두 눈 가득 의심의 빛이 맴돌았다.

‘팝콘 땡기네.’

사실, 개인적으로는 어지간한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상황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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