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다큐멘터리!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그러다 보면 잠들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고 했던가?
처음에는 그냥 상황만 정리하고 떠날 생각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자 멀리서 얼굴 한 번만 보고 싶어졌고, 또 시간이 흐르니 가까이서 살피고 싶어졌으며, 이내 눈을 맞추고 싶어지더니, 어느새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마음까지 생겨버렸다.
그 때문일까?
이선은 존슨의 계획을 들었을 때, 그 허점을 찾아냈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 하며 흘려보냈다.
문득 생각하기도 했다.
‘정말로 모르고 만든 허점일까?’
혹시, 어쩌면?
‘쓸데없는 오지랖일지도...’
그 진위여부 따윈 뒤로한 채, 허점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면서 기다렸다.
‘알아챘을까?’
계획의 허점, 그건 이선희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허점을 지니고 있었다.
메시지의 허점, 그녀가 과거를 떠올리지 못한다면, 돌아오지 않을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리라.
‘쪽팔린 일이지.’
직접적으로 나설 용기까진 없었던 터라, 결국 이 정도가 내딛을 수 있는 걸음의 전부였다. 그녀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었다. 혹은 알아채고도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때는 뭐...어쩔 수 없나.’
미국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기한은 팔이 다 나을 때까지로 두고, 스스로를 시험대 위에 올린 것인데, 하루하루 피가 말리는 심경으로 기다리게 될 거라 여겼다.
확실히 하루를 일 년처럼 보내는 중이기는 했다.
단지, 그 이유가 달랐다.
“텅룡 열타 타자! 로라코스터!”
어쩌다 보니 맡게 된 아이와의 일상이 피를 말리고 있었다.
‘그 놈도 참 대단하긴 하네.’
마루가 잠시 떠올랐다. 모국에서 대역죄인으로 알려져 있는 그에게 아이를 맡길 생각을 하다니.
‘아니, 게다가 난 환자잖아?’
어이가 없으면서도 결국 떠맡게 되어버렸는데, 오늘은 아이의 재촉으로 인해 놀이공원 나들이를 나온 참이었다.
당연하게도 갖은 방법을 총동원 해 가며 위장을 한 상태였다.
“태워둬~!”
청룡 열차를 보며 눈을 반짝이는 아이의 모습에, 살짝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그도 그럴게,
“안타깝게도 저건 아직 못 타.”
“...왜?”
“너무 작아서 안 된대.”
탑승 제한에 걸리는 것이다.
“끄앙!”
요 며칠 느낀 거지만, 리액션이 참 좋았다. 충격 받은 얼굴이 귀여워서 실소가 절로 나왔다.
“으우...나 코딱지만 해서 안 대는 거야?”
저런 말은 또 어디서 배운 것인지, 연달아 헛웃음을 흘린 이선이 한 팔로 아이를 안아든 뒤, 달래듯 흔들다가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 솜사탕 먹을까?”
시무룩하던 아이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도는 게 보였다.
“고우!”
마치 물질을 하듯, 그의 품 안에서 힘차게 팔을 젓는 아이의 모습에, 이선이 재차 웃으며 이동했다.
* * *
뜻밖의 스포트라이트라고 해야 할까?
‘엄청 부담스럽네.’
마루는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대포만한 카메라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카메라 옆에는 LBC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예정되어 있는 LBC방송국 측의 장비들이었다.
지난 웨이브에서, 전 세계에 그와 존슨의 관계를 폭로했던 방송국이기도 했다.
‘관계 폭로라고 하니까. 느낌이 좀 요상하네.’
어쨌든 저 같은 장비가 함께하는 건 대한민국 최초의 초인, 이선희의 특집을 기획하기 위함이었다.
촬영을 위한 장소로 선택된 장소는 방송국 스튜디오가 아닌, 구 바르다 길드의 던전 내부였는데, 일종의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보니, 자연스레 현장 촬영으로 이어진 것이다.
원래는 안전하게 정비된 던전에서 찍으려던 걸, 좀 더 생생한 현장감을 살리고 싶다는 방송국 측의 제안으로 인해, 이처럼 비 정돈 던전으로 선택된 거였다.
물론, 돌발 상황에 대한 대비책도 확실했는데, 저 카메라 후방으로는 가드들이 잔뜩 포진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촬영 제한이 걸린 비 정돈 던전이니 만큼 혜성의 요원들로 채워져 있었고, 등급이 A급이다 보니 특수팀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잖아도 빡빡한 일정이다 보니, 감히 특수팀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
그저 방송국 측에서 제시한 추가수당을 보여주며, 지원자를 받은 것인데, 금액이 상당했던지 제법 많은 수가 손을 들며, 뜻밖에도 탄탄한 지원라인이 구성되어 버렸다.
비 정돈 던전이라고는 하나, 방송국 측이 강하게 주장한다면 그들과 계약된 최정예 가드들이 나설 수 있었겠지만, 이참에 확실히 뽑아보겠다며 혜성의 윗선에서 작업한 결과, 이처럼 특수팀의 부수입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특수팀이 잔뜩 들어온 상황이었는데, 저들의 피로감과 무관하게, 일단 그 덕분에 한결 안정적인 사냥이 가능해지긴 했다.
만에 하나의 사태에도 뒤를 봐 줄 옵션이 여럿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기뻐할 틈이 없었다.
‘아니. 나는 왜 촬영하는데.’
요 근래 이런저런 화제몰이를 했던 만큼, 어느 정도 조명을 받게 될 거라 예상을 했지만, 이건 뭐 거의 카메라 샤워 수준이었다.
이유인 즉,
“2부작으로 제작될 예정이고, 1부는 혜성과 그 팀원들을 집중 조명할 계획입니다.”
이선희는 2부에 소개된다는 것이다. 1부 끝자락에 운을 띄워 관심도를 극한까지 끌어올릴 거라고도 이야기했다.
특수팀 내의 유명인사 순으로 카메라의 집중도가 정해졌는데, 마루는 세 손가락 안에 꼽혔다.
세계적인 영웅 인디안 존슨의 형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임팩트가 있건만, 그의 지난 인생사도 충분한 스토리텔링이 되니, 이래저래 주목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하...그래. 어차피 이놈의 유명세도 한 철이니.’
그러려니 하며 뜻밖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들일 뿐이었다.
[알파, 돌입!]
무전기를 통해 개전의 신호가 날아들고, 마루는 애써 카메라를 무시한 채, 한숨과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 * *
투웅!
시원하게 저격이 들어가는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여러 대의 장비가 다각도에 설치되어, 화려하게 전장 상황을 캐치하니, 단순히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마저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와...오빠 멋지다.”
정다솜의 이야기에 마루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과일만 집어먹었다. 촬영할 때는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완성본을 확인하니, 그야말로 예술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작정하고 만들었다더니, 진짜 영화가 따로 없네.’
이런 걸 화면발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 평소보다 30%는 더 잘생기게 나온 것 같기도 했다.
‘명암처리 오지네.’
게다가 사운드까지 제대로 잡았다.
“후우우우...”
그의 숨소리에 따라, 가족들도 함께 호흡을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호흡이 멎고, 손가락이 움직인다.
투웅! 퉁! 투우우웅...
마리오네트라도 된 듯, 그의 행동을 똑같이 따라하며 가족들도 손가락을 까딱이는 게 보였다.
민망한 한편으론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어쩌다가 소문이 나선.’
LBC는 이번 촬영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 부었다. 게다가 혜성의 특수 팀으로 호위를 구성하는 부분에서, 뜻밖의 지출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래저래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기획이었다.
물론, 소재 자체가 실패하기 어렵기도 했지만, 그들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공을 바라고 있었다.
그걸 위해서 다방면에 걸쳐 홍보를 거듭했는데, 그 와중에 자주 언급된 게 인디안 존슨의 형제, 정마루라는 B급 헌터였다.
밑바닥부터 시작된 인생사도 예고로 등장하는 등, 이래저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쳐주니, 결국 가족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됐고, 자연히 이처럼 본가 소환으로 이어진 것이다.
영상이 얼마쯤 더 진행되었을 즈음, 마루는 슬쩍 인상을 구겨버렸다.
‘일 났네.’
그의 과거지사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략적인 압축본일 뿐이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보고 싶은 영상은 아니었다.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의 품에서 잠들어 있는 조카 때문이었다.
“코오...”
주변 사운드는 참아도 직접적인 진동은 참지 못하기에, 그가 움직이면 바로 깨어나서 울어댈 확률이 높았다.
비각성 헌터들의 삶을 잠깐 조명하고, 그 끝에서 마루의 경력으로 자연스레 전환되는데, 이 부분에서 울컥했던 것인지, 모친의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부친이 어깨를 토닥이며 달래는 한편, 슬쩍 마루를 향해 눈빛을 보내왔다.
‘고생했다!’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 해, 마루도 그만 울컥해 버렸다.
“쿨쩍...”
형수도 비슷한 상황인 듯, 코를 먹으며 소매로 눈을 찍고 있었다. 그 곁으로 정가람이 부친처럼 어깨를 다독이는데, 누가 부자 아니랄까봐, 똑 닮은 눈빛으로 마루를 바라보는 게 아닌가.
이 부분에선 울컥하기 보단, 슬쩍 웃음이 나와 버렸다.
‘무슨, 데칼코마니도 아니고.’
여동생 정다솜이 조용히 엄지를 날리는 모습에선, 완전히 표정을 풀 수 있었다.
그렇게 옛 과거를 조명하는 한편, 다시금 현장으로 돌아와 사냥 장면을 띄우기도 하는데, 지루하기만 할 수 있는 저격이 아닌, 돌발 상황에 대한 액션도 함께 촬영됐다.
저격 포인트에 몬스터가 등장한 것인데, 사실 저건 조작된 거였다.
‘가드들이 몰이해 준 놈이지.’
구경 중이던 특수팀이 몇 놈 끌어온 것인데, 한 놈으로 충분한 걸 무려 다섯이나 몰아온 건, 마루의 실력이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건가드가 펼쳐졌다.
마치 약속 대련을 하듯, 그의 완벽한 컨트롤아래 몬스터들이 통제되는데, 자막과 내레이션이 또 사람 민망하게 만들었다.
-그의 건가드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오케스트라 한 편을 보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의 건가드는 마치 지휘자의 지휘봉처럼 움직이며, 몬스터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 같았다.
[마에스트로의 장엄한 손짓]
[춤추는 무희들]
띄워도 너무 띄웠다.
슬그머니 얼굴이 붉어지는 가운데, 새삼 깨달았다.
‘소환에 응하는 게 아니었어.’
가족들과 함께 보기에는 너무도 민망한 영상이었다. 뭐가 좀 나오기만 하면 그를 돌아보는데, 시선 어찌나 뜨겁게 모여드는지, 이러다가 프라이가 될 판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 외에도 다른 팀원들 역시 조명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의 비율이 좀 높은 편이긴 하나, 굳이 순위를 꼽자면 3순위 정도랄까?
신입 주제에 주목도가 너무 높지만, 최근의 유명세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방송국에겐 유명세야말로 시청률과 직결되는 경력이며 지위가 아니던가.
이후 다른 특수팀의 소개도 이어지고, 그보다 윗 순위로 조명 받는 부팀장 김연희 그리고 얼굴마담으로 유명한 서지한 등이 화면을 꽉 채웠다.
연예인 뺨을 양쪽으로 후리고도 남을 서지한의 외모란, 의미 없이 화면에 띄워만 놔도 충분할 듯싶었다.
“으앙! 지한 오빠. 날 가져요.”
정다솜이 헛소리를 했다가 모친에게 꿀밤을 맞으며 한 소릴 듣기도 했는데, 그 코미디 같은 순간도 오래지 않아 강제적으로 끝맺게 된다.
화면이 갑작스레 전환되며, 분위기마저 달라지는가 싶더니, 세계 각국의 수많은 초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초인의 계보를 써내려가듯, WHA의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부모님도 좋아하는 여러 영웅들이 튀어나오니, 한동안 영상에 집중모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헌터 전력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수준입니다.
그 와중에 나레이션이 이야기했다.
-랭커라 불리는 초월자가 존재하지 않았건만, 꾸준히 10위권 안에 드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죠.
뒤이어 현재 8위권에 올라있는 한국의 전력을 보여줬다. 그 전에는 7위였으며 한 때는 6위에도 있었다. 9위일 때도 있었지만, 어쨌든 꾸준히 10위권을 지켜왔다는 게 중요했다.
그러면서 묻는다.
-만약, 저희에게도 랭커가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자연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 타이밍이었다.
-그 답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며 올라오는 실루엣 하나.
검은 그림자뿐이지만,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이들이라면, 하나 같이 공통된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혜성의 특수 1팀 중, 여태껏 소개되지 않은 유일한 존재!
얼음여제 이소희!
언뜻 바바리가 연상되는 실루엣이 펄럭이는 가운데, 자막과 나레이션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최초의 초인!]
-2부로 찾아뵙겠습니다.
전율의 순간,
“......”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와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
“와아아~!
“만세~!”
뒤이어 난리가 났다.
당장 집 안 뿐만이 아니라, 주택가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의 외침이 들려올 만큼, 사방에서 요란한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앙~!”
어지간한 소란에는 깨지 않던 조카도, 이번만큼은 참지 못했던지, 결국 우렁찬 울음성을 터트리며 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