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옛 사람.
마루의 스카웃 제안은 성공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혜성의 특수 1팀!
백수 신세인 남매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동아줄이 내려온 격이리라.
게다가 그들이 거절할 수 없는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게다가 띄워주기까지 했으니까.’
마루는 오늘 하루가 남매들에게 그리 유쾌하지 않았을 거란 걸 알았다.
하지만 그 끝에는 미소를 매듭지어 진 것도 사실이었다.
승급!
놀랍게도 그들 남매는 오늘 사냥을 통해 벽을 넘은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마루의 공이 컸다.
-어...호흡이 좀 짧지 않나? 호흡하고 포스하고 동조 시킨다는 느낌으로, 좀 더 늘어트려 보면 안 되나?
-포스 회수는 안 되나? 지켜보니까 가능 할 것 같은데.
-거기서 그런 움직임은 동선 낭비 아닌가? 몸을 이렇게 움직여 봐. 아니 그게, 포스를 이런 느낌으로 돌리면, 몸이 같이 돌아가잖아.
신기한 일이었다.
어찌 그걸 알아챈 건지 모르겠지만, 곁을 지키며 꾸준히 관찰하다 보니, 딱 그들 남매가 보완해야 할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다.
원래는 점심 즈음에 끝났어야 할 사냥이건만, 부족한 식사에도 불구하고 해가 떨어질 때까지 이어진 건, 그가 느낀 부분들에 대한 의구심을 풀기 위함도 컸다.
그 결과 남매는 도약의 발판을 얻어 마지막 벽을 넘었고, 마루는 그 특별한 감각의 정체를 깨달았다.
스탯과 스킬 그리고 경험이었다.
1년 남짓!
그는 빠른 속도로 성장을 거듭했다.
거기에는 스탯과 스킬의 영향이 컸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아니, 오직 그것만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존슨이 경험치를 새겨줬다.
아직 게임 감각으로 헌팅을 하는 그에게 현실감을 새겨준 것이고, 그게 1년간 축적된 공부들을 온전히 그의 것으로 소화시켜 준 것이다.
생각해보면 존슨을 통해 몇몇 스킬들이 뜻밖의 성장을 이루기도 했었는데, 이미 마스터를 한 스킬들이라 생각지도 못한 변화이기도 했다.
게다가 제퍼드와의 결전을 통해, 완성도까지 한층 더 높일 수 있었다.
그렇게 깨우친 공부들 중, 이번에 특히 도움이 되었던 건, 눈치코치의 오감계열의 완성형 스킬이었다.
[자치]
발음을 유의해야 하는 스킬이다 보니, 한 때는 그걸로 19금적인 놀림도 꽤 받던 스킬이기도 했다.
어쨌든 뜻은 참 간단했다.
[스스로를 다스린다.]
제 몸을 완벽히 이해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육감을 깨우는 스킬이었는데, 마스터 단계에 있는 스킬이 성장을 거듭했으니, 보이는 것 너머의 영역까지 감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남매의 문제점들을 찾아내 조언을 한 것이고, 그게 승급으로 이어진 거였다.
물론, 남매의 경험치가 꽉 찬 상태여서 상황이 맞물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마루의 조언을 통해 남매의 포스 효율이 한층 성장했다는 점이었다.
‘남은 건 면접인가.’
그 부분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 여기며, 다른 방향으로 사고가 향했다.
‘슬슬 들어왔을 것 같은데.’
마루의 머릿속으로 옛 기억들이 하나 둘 스쳐갔다. 그건 용병으로써 해외의 여러 현장을 뛰던 무렵의 기억들로써, 당시에 맺어뒀던 인연들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갑자기 웬 추억놀이냐 싶겠지만, 그가 이런 회상에 잠기는 것도 전부 이유가 있었다.
‘옛 악연인가.’
과거 인연들을 통해 지난 악연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까닭이었다.
‘확실히 뜬금없긴 하네.’
그들이 뭘 하고 있을지, 내심 궁금하긴 했다.
* * *
개별적인 루트를 통해 정보를 조사하다 보면, 간혹 타인과 겹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이런 상황이 여럿 중첩되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된다.
“설마, 너도?”
서로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개중 몇몇 안면이 있는 이들이 하나 둘, 건너건너 소식을 나누며 모이니, 이게 웬일?
“와...이렇게 많다고?”
“그 놈 경력이 15년이야.”
“대단하긴 대단하네.”
“하긴, 우리야 중간에 각성이라도 했지만, 그놈은 그 긴 시간을 밑바닥을 굴렀으니.”
“그 바닥이 원한 쌓기 딱 좋지.”
이면의 문제아들이 한 사내를 목표로 자리를 가졌다.
“정마루, 이제는 B급 A형이라지?”
“하...그러고 보니 본명은 지금 알았네. 여우같은 놈!”
“원래 이 바닥이 그렇잖아. 누가 본명을 써.”
“그거야 그렇지.”
당장 모인 이들도 전부 가명으로 이면을 살아가는 이들이 아니던가.
그들은 하나같이 과거에 마루와 마찰을 빗은 적 있는 이면의 문제아들로써, 마루가 혈기 왕성하던 시절의 악연들이었다.
지금이야 자비를 베풀 줄 아는 헌터가 되었지만, 이면에도 한 발 걸치며 생활하던 과거 시절, 그에게 있어 자비를 베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조금 일찍이 그에 관한 아픔을 깨우친 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라는 단어를 제대로 이행하기까진, 좀 더 성숙해지며 숙성될 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루와 달리 이들의 경우에는 일찌감치 각성을 하며, 밑바닥을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그곳 생활을 청산하다 시피 한 상태였다.
여전히 이면을 살아간다지만, 눈높이가 달라졌는데 밑바닥 시궁창에 고개를 들이밀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제와 다시 과거의 악연에 시선을 돌릴 이유가 뭘까?
마루의 눈높이가 그들과 같아져서?
그 유명세에 배가 아파서?
생긴 게 재수 없어서?
그 같은 이유들도 없진 않겠으나, 사실 이로 인한 중요도는 매우 낮았다.
그들을 움직인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저 말도 안 되는 성장은 아티팩트 때문일 거다!
이들을 움직이는 이유는 원한이나 복수 같은 게 아닌, 순전히 탐욕이라 불리는, 그들 본질에 닿아있는 본능 때문이었다.
1년차 헌터가 벌써 B급에 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아티팩트에 대한 의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물론 1년차에 B급에 오르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특수한 케이스로써, 각성 당시에 아예 B급이나 C급의 경계에서 시작하는 이들이었다.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특이 각성현상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마루는 밑바닥인 D급부터 시작해서 단숨에 B급까지 올라온 것이다.
한 등급 상승이라면 각성 당시에 남다른 경험치를 얻고 시작했다고 볼 수 있지만, 두 등급 상승이라면?
아티팩트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만이 아니라 이미 여러 세력권에서 의혹을 내비치고 있기도 했다.
단지, 존슨이라는 거물이 주변에 맴돌고 있는 탓에, 잠시 숨고르기를 하며 움츠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도 원래는 그런 무리에 포함돼야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일 수 있는 건?
명분!
과거의 역사가 그들에게 정당함을 부여해 준 것이다. 그들의 터전이 부정으로 넘치는 이면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면을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더더욱 필요에 의한 정담함과 명분 챙기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들은 일종의 ‘선발대’일지도 몰랐다.
마루에게 의구심을 품은 여러 세력들의 경우, 이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그에 대한 호기심을 해소하려 들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의뢰를 받아 움직인 이들도 있을 터였다.
그런 복잡한 사정들은 일단 뒤로 한 채, 안면을 익히기도 할 겸 해서, 간단히 정보 교류를 하며 마루와 관련된 스토리들을 하나 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자식이 설치한 덫에 걸려서 된통 당했지.”
“잔머리 하나는 기가 막힌 놈이라서, 제 놈이 일으킨 문제를 떠넘기는데, 하...그것 때문에 한동안 마드리드 근처는 얼씬도 못했다니까.”
“여기 보이지? 놈이 쏜 총알에 맞은 자국이야, 조금만 더 옆으로 갔어도 뇌가 날아갔을 걸.”
흥미로운 건 제법 겹치는 구석이 있단 점이었다.
“라쿤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뭔데?”
“능글맞은 구석이 있어서. 게다가 잔대가리도 잘 돌아가고. 너도 폭스라고 부르는 게 그래서 아니야?”
“하긴, 그 놈이 잔꾀가 많긴 하지.”
그 와중에 히트를 친 별명이 하나 있었다.
“윈도 솔져? 그건 또 뭐야?”
“예전에 21C초반에 쓰던 용어. 키보드만 두드리는 파이터들 있잖아.”
“아...”
“그거!”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 몇몇이 탄성을 터트렸다.
과거 온라인상으로만 떠드는 이들을 지칭하던 용어 중 하나였다.
마이크로시프트라는 기업의 대표 컴퓨터 프로그램과 군인이란 명칭을 절묘하게 섞은 것으로써, 인터넷상에서만 파워풀하고 현실에선 별 볼일 없다는 걸 비꼬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뒤에서 주둥이나 놀리고 손가락이나 까딱대서, 뭐 그런 식으로 부르곤 했지.”
모여 있던 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하긴, 그 놈한테 딱이긴 하네.”
“확실히 그 놈 주둥이가 날카로웠지.”
“그러고 보면 각성도 딱 어울리게 했네. 손가락 까딱이는 스킬이니까.”
“푸하하하하하!”
모두가 즐겁게 폭소하고 있지만, 분위기 자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웃고 떠드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서로를 향한 관찰의 시선이 교차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해관계가 얽혀 한 자리에 모여 있긴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면의 주민들로써, 서로의 등에 칼 꽂는 것 정도는 일상인 이들이었다.
웃는 얼굴 아래로 비수가 갈려있을 터였다.
* * *
에드는 모임 장소를 나오면서 길게 한숨을 늘어트렸다.
“푸후우우우우...”
저 안쪽에서야 웃고 떠들었지만, 이는 태연함을 가장하기 위함이었고, 실제로는 바짝 긴장하고 있었던 탓에, 바깥 공기를 쐬자마자 어깨가 추욱 쳐져버렸다.
언뜻 복수나 원한을 위해 모인 자리 같았지만, 진실로 그것 때문에 모인 이들이 몇이나 될까.
‘아니, 정말 있기는 한가?’
당장 그 자신만 하더라고 옛 악연이 아니, 다른 부수적인 이유 때문에 움직인 것이 아니던가.
게다가 추가적으로 그 본인의 의지로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윈도 솔져, 마루와 악연을 맺고 난 뒤, 오래지 않아 각성이라는 것을 했고, 어느새 10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다.
제법 쓸 만한 능력을 얻었고, 덕분에 이젠 그도 A급 각성자로써 개별 팀까지 꾸렸을 만큼 성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면이란 세상에서 혼자서 온전히 팀을 꾸려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런 만큼 그에게도 나름 후원자라 할 만한 이들이 존재했는데, 이 같은 배후의 입김이 작용해서 여기까지 움직인 것이다.
오늘 모임에서 바짝 긴장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상대가 전부 이면의 문제아들인 탓도 있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이면의 거물들이 부리는 꼭두각시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이번의 모임 자체도 정상적인 게 아님을 알았다.
‘정보 중첩? 화합?’
동선이 여럿 겹쳤다고는 하나, 그들 같은 이면의 문제아들이 그것만으로 이처럼 순순히 한 자리에 모인다?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자리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너무 빨랐다. 모임의 주최자가 따로 있다는 뜻이리라.
‘하나부터 열까지, 죄다 거짓인가.’
아마도 모였던 이들 중 상당수가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 여겼다.
‘뒤에서 손가락만 까딱이는 놈들이 너무 많네.’
“윈도 솔져 사냥이라 그런가.”
농으로 답답함을 털어내는 한편, 발길은 급하게 그곳을 벗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래 머물기 찝찝한 장소였던 것이다.
* * *
쌍둥이들을 살피며 알고 있던 걸 온전히 깨닫게 된 덕분일까?
마루는 이날 하루, 유독 감각의 날이 바짝 서 있는 걸 경험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귀가 후 잠자리에 드는 그 순간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그 영향인 것일까?
‘꿈이구나.’
현재,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꿈속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버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수풀이 우거진 것이, 숲 속이라는 걸 직감하게 만들어줬는데, 문득 코끝을 자극하는 냄새가 있어 저도 모르게 그 방향으로 걸음을 해버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 우거진 수풀 사이로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펜트하우스 한 채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그 앞에서 고기를 굽는 사내가 보였다.
그를 인도한 냄새의 정체였다.
군침이 절로 돌 만큼 강한 향을 발산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루의 시선은 고기보다, 그 고기를 뒤집은 사내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게,
“...실버 박사?”
너무도 뜻밖의 존재였던 탓이다.
존 실버!
PP, 퍼펙트 플레이의 아버지라 불리는 게임 개발자가 그곳에 서 있었다.
마루의 등장을 알아챈 듯, 그가 웃으며 손짓했다.
“기다리고 있었네. 와서 좀 들게나.”
그러며 고기를 흔드는데, 그 진한 향기에 이끌린 것인지, 저도 모르게 그곳으로 걸음이 향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