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꽃샘추위.
당혹스런 상황이었다.
‘A급...이라고?’
김연희는 마루가 보내온 인물 프로필들을 보며 잠시간 벙찐 표정이 돼버렸다.
그도 그럴게 무려 A급 헌터를 한 번에 3명이나 스카웃 해 온 것이다.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개중 한 명은 경력이 의문스럽긴 하나, 일단 등급 부분의 문제는 없었다. 나머지 둘의 경우에는 나름 업계에서 이름깨나 날리던 이들이었다.
임지현과 임수현!
쌍둥이 남매가 동시에 각성을 한 것도 모자라, 제법 좋은 스킬로 뛰어난 실력까지 갖췄고, 추가적으로 외모까지 훈훈했으니, 시선이 쏠릴만한 요소가 다분했다.
‘볼트 길드장과 한바탕 하고 쫓겨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부분을 상기하며 문제점을 짚어봤다.
‘길드장 측에서 잘못한 거였지.’
제법 억울한 면이 있는 퇴사조치였다.
듣기로는 정보부에 입사한 길드장 아들의 잦은 실수로 인해, 수시로 설계가 꼬이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그 때문에 남매가 크게 다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지적하며 한 소리를 하자, 그게 다툼으로 이어져 퇴사조치까지 번져버린 것이다.
‘볼트 길드장이 욱하는 성질이 있긴 하지.’
남매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보니, 특히 더 후회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게 떠올랐다.
‘이 둘은 문제가 없는데...’
나머지 한 명, 경력이 모호한 여인이 골치였다.
‘정보 검색이 안 돼.’
두 가지 경우의 수가 있었다.
‘이면에서 넘어왔거나, 특수 정보부 계열이거나.’
굳이 세 번째를 꼽아보자면, 이 둘이 교차되는 영역에서 일하는 경우를 더할 수 있으리라.
‘이만한 실력이면 이면 방면이라도 어느 정도 정보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특수 정보부일 확률이 높겠네.’
비각성자도 포함되는 일반 정보 계열과 달리, 오직 각성자만의 영역으로 이뤄진 게 바로 특수 정보부였다.
정보 계열 자체가 현대 문물의 활용이 원활한 영역이다 보니, 둘 다 다루는 범위가 비슷하지만, 아무래도 특수 정보계열이 좀 더 광범위한 활동범위를 지니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마굴이나 던전 등, 기기 문제가 자주 발생하거나 능력치로 판별되는 장소는 특수 정보계만이 발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김연희는 이 의문의 여인에 대해 어찌 처리해야 할지, 여러모로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정보계열을 함부로 들이는 거 아닌데.’
그렇다고 커트하기도 애매한 게, 마루가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며 강조 또 강조를 한 까닭이었다.
“후...일단 만나서 확인해 봐야겠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꽃샘추위가 시작 됐다.
그 때문인지 이선은 초롱이와 외출을 하기보단 집 안에서만 생활하고 있었는데, 내심 밖으로 나가고 싶었던 것일까?
창밖을 구경하던 초롱이가 뭔가를 발견한 듯 이선을 향해 외쳤다.
“삼촌, 눈 온다.”
흥분해선 밖으로 나가자며 방방 뛰는 아이의 모습에, 결국 옷을 챙겨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며 마루에게도 나가자고 제안하니,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나 간만에 제대로 쉬는 거야.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좀 자게 해 줘.”
그러며 침대를 뒹구는데, 확실히 그간 마루가 고생하는 걸 곁에서 지켜봤던 만큼, 고개를 끄덕이며 자유를 허락해줬다.
그렇게 초롱이만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꽃샘추위와 함께 온 눈이었다.
아마도 이번 겨울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사말이 아닐까 싶었다. 제법 굵직하게 쏟아지는 게 두툼히 쌓이리란 예감을 줬다.
아이는 눈을 생전 처음 보기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떨어지는 하얀 알갱이들은 요리조리 관찰하는데, 수시로 입에 가져가며 맛을 보려고도 했다.
호기심과 미각이 연결되는 애들 특유의 몸짓이 우스워 미소를 그려내는 한편, 혹시 모를 불청객을 대비하며 주변을 쭈욱 살필 때였다.
흠칫...
뭔가를 감지한 듯, 이선의 입가에서 미소가 떨어지고, 표정이 바짝 굳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의 동공이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고개가 돌아가고 요동치던 시선이 한 방향으로 고정됐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아...’
그녀였다.
‘희야!’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 이선희가 거기 있었다.
먼 거리였다.
하지만 너무도 선명하게 박혀드는 얼굴, 표정, 몸짓, 심지어 숨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했다.
얼음여제라는 이명을 연상시키듯, 차갑게 식어버린 그녀의 표정과 눈빛 등이 비수처럼 날아와 박혀들었다.
그 때문에 그토록 보고 싶었던 여인을 발견하고서도, 얼음처럼 굳어버린 채 쏟아지는 눈발에 어깨를 떨어야만 했다.
“삼촌? 아이스크림 먹자. 아이스크림. 눈 마즈면서 머거야지 마싯댓어. 이잉~! 어? 삼촌?”
아이의 애교 섞인 부름에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는데, 잠시 아이를 진정시키고 난 뒤, 다시금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땐, 마치 좀 전의 상황이 환상이라도 되는 듯, 더는 그녀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아...’
그 순간 깨달았다.
‘만나고 싶다!’
그저 얼굴만 보는 정도로 만족한다고?
웃으며 떠날 수 있다고?
잊고 살 수 있다고?
‘안 돼, 할 수 없어!’
억눌러뒀던 욕망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어다.
보고 싶었다.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만지고 싶었고, 아껴주고 싶었다.
그렇게 사랑하고 싶었다.
“삼촌? 왜 그래?”
초롱이의 부름에 재차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이내 쓰디쓴 미소와 함께 아이를 안아들었다.
“그만 들어가자.”
“아이스크림은?”
“감기 걸려.”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녀를 놓쳐버린 데에 대한 심술은 결코 아니었다.
“히잉...”
물론, 아이의 촉촉해진 눈시울 앞에, 결국 마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날 추우니까. 따뜻한 실내에서 먹자.”
감기가 문제면 환경을 바꾸면 될 뿐이었다.
* * *
마루는 간만에 휴일을 맞았다.
따로 휴가를 사용한 게 아닌, 길드 자체적으로 일정이 조절된 정식 휴일로써, 이는 바르다 길드 던전의 새로운 담당이 최종적으로 결정되면서 갖춰진 휴식이었다.
화랑담배 길드!
새로운 관리자들로써, 길드원 전원이 하드 스모커로 이뤄진 독특한 집단이었다.
이들 특수 팀에게 인계절차를 진행하며, 작게나마 여유가 생긴 것인데, 물론 이마저도 여전히 빡빡한 상황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휴식을 즐기기는 어려웠다.
풀타임으로 가장 많은 파트를 뛴 이들부터 순차적으로 휴일 분배가 된 것인데, 마루가 1순위로 뽑힌 것이다.
그렇게 얻어낸 귀한 휴일이다 보니, 마냥 뒹굴고 싶은 게 사실이었다.
실제로 눈을 감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심 기대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실버 박사를 만나는 것이다.
물론, 성공한 적은 없었다.
실버 박사의 말처럼 여의주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뤄진, 기적 같은 만남이었고, 이런 샛길은 한 번으로 끝인 듯싶었다.
‘엔트라넷과 PP...’
그 뒷이야기나 숨기진 진실들이 너무도 궁금했지만, 꿈이 닿질 못하니 알아낼 길이 없었다.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랭커가 되는 거라.”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군침을 삼켜버렸다.
꿀꺽!
정말로 초인이 되어 다시금 실버 박사를 만난다면?
‘그 많은 돈이...츄릅!’
실버 박사와의 만남이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좀 더 잠자리를 뒤척이던 것도 잠시, 이내 엉금거리며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와야만 했다.
‘어째, 영 잠이 안 오네.’
그러면서 창밖을 내다보니 그새 제법 눈이 쌓인 듯, 하얀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워왔다.
짐작건대 저 풍경이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리라.
실버 박사 외에도 그의 머릿속을 꾸준히 괴롭히는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쏟아지는 눈송이가 신경 쓰였다.
잠깐의 갈등 끝에 결국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그러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클린 바디]
일상을 위해 익혀놨던, 스킬 덕분에 샤워로 낭비하는 시간은 없었고, 그렇게 간단히 몸단장을 한 뒤, 밖으로 나섰다.
* * *
분통 터지는 상황이었다.
‘잊고 싶은데, 잊어야 하는데, 잊을 수가 없잖아!’
꼴도 보기 싫은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 거린 까닭이었다.
“빌어먹을 다큐멘터리!”
강하나는 짜증 섞인 얼굴로 망치를 손에 쥐었다. 마루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그렇게 한동안 그를 잊으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각종 방송 매체에서 놈의 얼굴을 띄워대니, 열불이 터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를 가득 담아서 망치를 내려치려던 것도 잠시,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다시금 내려놨다. 이런 기분으로 무구를 만들었다간, 몹쓸 녀석이 나올지도 모르기에, 결국 한 발 물러난 것이다.
“후우우우...”
바깥바람을 쐬며 머릿속을 환기 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밖으로 나선 순간, 놀라운 풍경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눈이 이렇게?’
화로를 곁에 둔 채, 뜨거운 불길 속을 살아온 일생이기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유독 이 하얀 풍경을 좋아했다.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앞서의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했다. 환기 한 번 제대로 하는 느낌이었다.
“하아...”
억지로 내뱉는 입김이 쏟아지는 눈송이와 만나 이리저리 흩어지는 게 보였다.
“후후~!”
그 모습에 괜히 흥이 올라서 이리저리 입김을 불어대며 눈송이와 마찰을 일으키길 한참, 그녀의 이 소녀 같은 모습에 매력을 느낀 것일까?
지나던 남성들이 접근을 시도했다.
“날도 추운데 그렇게 얇게 입어서 괜찮겠어요?”
“이것 좀 걸치시죠.”
그러면서 입던 코트까지 벗어주는데, 강하나의 표정에 언뜻 짜증이 스쳐갔다.
그녀도 이 바닥 생활이 10년이 넘어갔다. 게다가 부친을 쫓아다니며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났던 걸 더한다면, 오히려 마루보다 더 많은 경력을 지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덕분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면 놈들.’
첫 번째 승급 던전이 있던 지대다 보니, 이 주변은 이면의 문제아들이 제법 돌아다녔는데, 이들 역시 그런 무리로 보였다.
그녀는 빠르게 저들 복장 및 장비를 훑으며 전문가의 시선으로 견적을 뽑아냈다.
‘B급.’
그쯤 되는 실력자가 무려 둘이었다.
‘별 거지 같이 생긴 것들이.’
물론, 냉정한 관점에서 봤을 때, 모난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법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아 짜증이 난 터라, 그들 외모가 곱게 보이질 않았다.
화르륵...
그런 심경을 담아 과감히 능력을 드러냈고, 이에 깜짝 놀란 사내들이 서너 걸음씩 물러나는 게 보였다.
“이 날씨에 복장이 너무 프리해서 일반인은 아니겠거니 싶었더니.”
“워...워우...화끈하네. 크흠! 코트는 필요 없겠어.”
언뜻 여유로운 듯 보이지만 하나같이 긴장하고 있는 기색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만 않았을 뿐, 강하나의 등급은 무려 A급이었다.
주기적인 사냥을 나가고 있긴 하지만, 전투 경험치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었다. 가끔 몸 풀기 식으로 가볍게 뛰는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급까지 승급을 한 건, 헌팅이 아닌 다른 방향에서 경험치를 얻기 때문이었다.
각종 몬스터 사체를 다루며, 그녀의 불길로 이를 녹이고 늘리고 접합하는 등, 이런 과정을 꾸준히 거칠 경우, 신기하게도 포스 경험치가 쌓였던 것이다.
고위의 재료를 다룰 때면 특히 더 많은 경험치가 스며들고는 했다.
그렇게 30대 초반, A급에 오를 수 있었다.
이는 마루도 모르는 비밀로써, 기나긴 시간 각성에 대한 갈망을 해 왔던 만큼, 자칫 그녀로 인해 박탈감을 느낄까 우려해서 숨기고 있던 것이다.
가족들도 단단히 입단속을 시켰던 터라, 마루도 그녀의 등급을 알 길은 없었다.
‘야...이거 족 됐는데?’
‘어쩌지?’
두 사내의 얼굴이 검게 죽어갔다.
그들은 이면을 살아가는 주민이기에, 누울 자리 알아보는 눈치는 수준급이었다. 아주 잠시 갈등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한 걸음씩 더 물러나는 모습을 보여줬다.
“거, 그냥 좀 추워보여서 그런 거야.”
“말로하면 될 걸, 굳이...크흠!”
별 말 없이 기세만 피워내는 강하나의 모습에, 찔끔한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리는 찰나였다.
“동작 그만!”
그들 사이로 그림자가 하나 끼어들었다.
강하나가 깜짝 놀란 얼굴로 난입자를 바라봤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 등장한 까닭이었다.
‘마루?’
그 순간 그녀의 동공을 더욱 확장시키는 외침이 튀어나왔다.
“남의 여자한테 무슨 개수작이야!”
어찌나 놀랐던지, 화르륵 타올랐던 불길이 픽 하니 사그라졌다.
‘무...뭐라는 거야?’
그리고 이내 의미를 깨달았을 때,
퍼어어엉!
폭발 전 고요였다는 듯, 불길이 활화산마냥 터져버렸다.
“으악!”
그 갑작스런 폭발로 인해, 뒤통수에 불길을 맞은 마루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