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환전.
지인의 부탁으로 맡아준단 컨셉 때문일까?
초롱이는 밤늦은 시간이면 PP로 귀환하고는 했다. 물론 자고 가는 날들도 많지만, 이는 2~3일에 한 번 꼴이었다.
그 때문에 매번 마루는 아이를 데려온다는 명목으로, 의미 없는 걸음을 해야 했는데, 다행이라 한다면 이선이 이 부분에 대해 별다른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부모님께 인사 좀 드리고 싶은데.
-어디서 오는 거야?
-집이 어딘데?
등등, 세세한 질문을 했더라면 여러모로 골치 아팠을 터인데, 특수한 사정이 있겠거니 하며, 이런 부분을 넘어가 준 것이다.
여하튼 그 덕분에 한결 편하게 컨셉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 역시 그렇게 아이를 데리러 간다 말하면서 나오는 길이었다.
그리고 시야의 사각으로 몸을 숨긴 뒤, 초롱이를 소환했고 경악해야만 했다.
-주인님 오늘도 정의로운 도우미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루미팡! 루미피! 루미~얍!
그 같은 외침과 함께 루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어찌나 놀랐던지 입을 쩍 벌리고만 있는데, 루미 곁으로 함께 모습을 드러낸 초롱이가 입을 열었다.
“헤헤! 내가 데리고 와써.”
“...어...어...어걱...”
물론, 여전히 마루의 사고는 정지상태였다. 그가 온전히 제정신을 찾은 건, 루미가 걱정스레 그의 어깨위로 올라와 열심히 머리를 흔들 때였다.
-일어나세요 용사여!
덕분에 겨우 눈을 뜬 마루가 물었다.
“네...네가 어떻게 여기에...”
아직 온전히 깬 건 아닌지, 혓바닥에 버퍼링이 걸렸지만, 뜻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었다.
“말했자나. 내가 데리고 와써!”
초롱이의 이야기에 더더욱 의문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게임 내에서도 그의 소환이 있어야 둘의 만남이 이뤄지기 때문이었다.
이어진 루미의 설명이 놀라웠다.
-얼마 전부터 저희 통신이 되던데요. 아무래도 흑화한단 덕분인가 봐요. 헤헤!
직접적인 접점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특수한 매개체로 인해 둘 사이에 새로운 루트가 개발되어버린 것이다.
흑화한단!
현무의 신물이 둘 사이에 일종의 주파수를 맞춰준 것이다. 이를 통해 초롱이가 꾸준히 바깥 생활을 자랑했고, 루미가 연일 부러워했단 건데, 더욱 놀라운 건 다음에 이어졌다.
-흑화한단의 연결이 강해져서, 이젠 초롱이를 통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헤헤! 깜짝 놀랐죠?
그러며 내심 기대하는 눈초리로 마루를 바라보는데, 그 눈빛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전 캐릭, 관장공장공장장으로 강산이 바뀔 동안 함께했던 사이가 아니던가.
“안 돼! 바깥구경이라니. 그런 모습으로 어딜 돌아다니려고.”
라는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얍!
외침과 함께 루미가 변신했다.
-거대 루미 등-장!
그러더니 이내 입을 벙끗거리며 혼잣말을 하는데,
-아에이오우...아에...
“...이...오우~!”
어느 순간 온전한 음성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전까진 일종의 텔레파시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온전한 소리로써 형태를 이룬 채, 그의 귓전을 두드리고 있었다.
“헤헤! 어때요? 이젠 저도 초롱이처럼 돌아다녀도 괜찮죠?”
초롱이처럼 완전히 사람아이가 된 모습에, 말문이 턱 하니 막혀버렸다.
‘내가 애를 둘이나 어떻게...내가?’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
그렇게 이선의 일상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 * *
국가 간의 대립이나 갈등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초인의 탄생이라는 건 세계의 안전과 직결되는 부분이니 만큼, 새로운 랭커의 등장에 전 세계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큐멘터리 1부 때와 달리, 이번만큼은 순수하게 이선희 한명에게 모든 이목이 쏠리며 그녀를 축하해줬다.
앞서 의도적으로 마루에게 관심을 쏟아내며, 그녀에 대한 화제성을 잠재우던 일본 역시, 이번만큼은 그녀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아끼지 않았다.
본심이야 어찌 됐건, 초인의 탄생이란 전 세계가 환영하며 기뻐해야 하는 축제와도 같기 때문이다.
1부 때와 달리, 2부에선 분명하게 그녀가 초인이란 증거가 드러났기에, 더더욱 외면하며 발을 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축제가 연일 이어졌다.
당연하게도 드디어 자국에 초인을 보유하게 된 한국의 경우, 축제 그 이상으로 환호하며 기쁨을 표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날을 초인의 날로 지정해야 함!
-공휴일 만들자.
-청원 루트 뚫는다. 여기 클릭.
-가자!
실제로 많은 이들이 합심해 움직이며, 공휴일 부분에 관한 내용들이 기사화되기도 했고, 실제로 관련한 문제가 국회에서 언급되었을 정도였다.
초인이라는 건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가의 격이 올라갈 만큼 특별한 존재가 아니던가.
실제로 이선희의 승급으로 인해, 드디어 국가 전력이 5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였다.
공휴일에 관한 부분도 마냥 헛소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 이젠 혜성 독주체제려나?
-당연하지. 초인까지 보유했는데.
-광호 길드 타격이 크겠네.
-라이벌이니까.
-굳이 광호가 아니어도, 최상위 길드들은 전부 속앓이 깨나 할 걸.
실제로 여러 대 길드 들이 이 돌발 상황을 맞아. 다방면으로 타개책을 연구 중이었는데, 개중 특히 많이 언급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듣기론 대형 길드들끼리 연합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던데.
-레알?
-건너건너 건널목 썰이겠지.
-그래도 아주 헛소린 아닐 듯. 혜성 독주를 막으려면 확실히 그 방법밖에 없어 보이긴 하네.
-초인을 영입하지 않는 한, 힘의 균형을 맞추려면 그 방법밖엔 없을 듯.
이 같은 이야기가 마냥 헛소문은 아닌 듯, 실제로 몇몇 대길드 간에 은밀한 회동이 성사되고 있었다.
각자의 위치를 지키면서 혜성의 독주를 막기 위해, 그들은 독불장군의 자존심을 굽히며 힘을 합치고자 했다.
물론, 모든 길드가 한 뜻으로 움직일 수는 없었다.
혜성과 광호의 관계가 그러했듯, 다른 대형 길드들 사이에도 비슷한 라이벌 구도들이 제법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유독 치열했던 게 혜성과 광호일 뿐이었다.
“끼리끼리 뭉치는군.”
삼족오 길드의 수장 김수호는 실소하며 올라오는 보고서들을 훑었다. 각 길드들간의 연합에 관한 내용들로써, 재미있는 건 그들 삼족오에도 다방면에서 제안이 들어왔다는 점이었다.
“미친놈들.”
“예전에 한 짓거리들을 전부 잊었나 봐. 놈들 때문에 흘린 피가 몇인데.”
곁을 지키고 있던 부 길드장 장태산이 거들었다.
삼족오의 성장을 수시로 방해하던 이들이 바로 대형 길드이며 그들의 모태 그룹들이 아니던가.
그 같은 과거 때문에 삼족오의 성장 이후에도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것인데, 이제 와서 뜬금없이 손을 내민다?
“그래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으니.”
장태산의 이야기에 김수호가 물었다.
“왜? 저놈들 제안이 땡겨?”
“그런 건 아닌데. 후우...상황이 쉽지가 않네.”
한숨을 푹푹 내쉬는 장태산의 모습에 김수호가 쓰게 웃었다.
“너도 늙긴 늙었구나. 미친 멧돼지라고 불리던 놈이, 이젠 생각이란 것도 하고.”
“기왕이면 저팔계라고 불러.”
“허...그 별명도 싫어하더니.”
“돼지라고 불리는 것보단 이게 낫잖아.”
“이젠 타협까지? 세월에 장사 없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인 김수호가 타 길드에서 보내온 편지들을 한데 뭉친 뒤, 가운데 손가락으로 꿰뚫으며 말했다.
“방법이 없진 않지.”
“뭔데?”
“우리도 랭커를 만들면 되지.”
장태산이 눈으로 비난했다.
“헛소리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초인 한 명 만들면 만사 OK아니냐?”
“차라리 초인을 영입하라고 해. 그게 더 쉽겠다.”
“가능은 하고?”
“형님 개소리보단 확률이 높겠지.”
김수호가 웃으며 외쳤다.
“넥 슬라이스!”
그러며 장태산의 목을 ‘빡’ 소리가 나게 치는데, 기습이 제대로 들어간 모양인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 양반이 진짜!”
잠시 후 버럭 성을 내며 일어나는데, 김수호가 태연히 말했다.
“오늘부터 나 파업한다.”
기습처럼 이어진 김수호의 한 마디로 인해, 솟구치던 열기가 픽 식어버리며, 그의 사고회로에 에러를 일으켜 버렸다.
“...무...뭐?”
김수호가 엄지로 제 가슴을 찌르며 말했다.
“네놈이 말한 개소리. 한 번 짖어보마. 왈왈!”
그제야 뜻을 이해한 장태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담타는 법을 찾은 거야?”
“...도둑질하냐? 벽을 넘는 거라고 해.”
“잡소리는 됐고, 길을 찾았냐고?”
대답은 없었다. 대신 자신만만한 웃음은 있었다.
“우왓! 이 양반이 진짜.”
장태산이 기분 좋아서 그를 얼싸 안았다.
그리고,
꽈아아악...
강렬한 허리 조르기가 들어왔다.
“아야야야야얏!”
“복수는 나의 것!”
강화계의 신체변형 능력자인 장태산의 조르기였다. 그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강렬한 압박에 김수호가 비명을 내지르는 가운데, 밖의 비서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또야?”
“또네.”
그들은 안쪽에서 발생하는 소란에 조용히 고개를 저어주었다.
한 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김수호가 OTL자세로 허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끄응...무식한 새끼! 허리 나갈 뻔 봤네.”
“쓸 일도 없어 뵈는데, 뭘 그리 아껴?”
“우리 마누라한테 이른다.”
“킁! 유치하긴...어쨌든 폐관은 어디서 할 건데?”
“뻔한 거 아니냐?”
“PP?”
“당연하지.”
김수호가 엎드린 자세에서 엄지를 들어올렸다. 그러며 말했다.
“너도 빨리 3차 전직해라. 신세계다.”
“쯧! 거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언젠가부터 엔트라 데스크의 상위 게시판 내에서만 암암리에 도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PP는 특별한 게임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3차 전직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김수호는 실제 경험자로써,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명심해! 경험치가 전부는 아니야.”
“됐고, 파업이라며? 빨리 방 빼.”
그렇게 장태산은 길드장을 쫓아냈다.
* * *
엔트라 스토어를 사용하기 위해선?
데스크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포인트를 모을 수 있는 걸까?
‘댓글 하나당 1포인트. 게시글에 10포인트. 조회수는 추가 포인트, 좋아요 추천도 추가 포인트...’
마루는 포인트 적립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가 뭔고 하니,
“짜잔~! 스토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갑작스런 루미의 등장으로 인해, 뜬금없는 오일장이 열려버린 까닭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더니 발생한 돌발 상황으로써, S급의 특전이라 할 수 있는 엔트라 스토어를 루미가 컨트롤 하고 있던 것이다.
-여기서도 상점 오픈 가능하냐?
그렇게 물으니,
-한 번 열어볼께요.
라고 답한 뒤, 기이한 반응을 보여줬다.
-어라? 이건 내 상점이 아닌데.
그러면서 이내 뭔가를 읽는 듯 열심히 눈을 움직이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대뜸 스토어를 열어버리는 게 아닌가.
더욱 놀라운 건 다음부분에 있었다.
“골드를 포인트로 환전해 준다고?”
“예. 대신 2대 1 비율로 거래할 수 있어요.”
말인 즉, 게임의 2골드가 현실의 1포인트라는 의미였다. 마루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떻게든 2배적용을 하네.”
게임 내에서도 일반 상점의 2배가로 물건을 팔아먹는 게 요정상점이었다.
물론, 이 경우는 오히려 환영해야 할 부분이긴 했다.
포인트 모으기가 얼마나 힘이 들던다.
특히, 조회수로 들어오는 포인트의 경우, 정산할 때 엔트라넷에서 50%를 뜯어가는 탓에, 결국 반절 밖에 들어오지 않았고, 좋아요 추천의 경우에는 개개인이 직접 포인트를 소모해서 누르는 것이다 보니, 추천이 박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댓글을 쌓아올리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다.
아무 글이나 대충 써 올릴 경우, 엔트라넷 자체적으로 커트를 당하기 때문인데, 게시글과 의미가 맞지 않으면 자동 삭제였다.
‘힘들게 데스크 노가다를 해야 쌓을 수 있는 포인트인데, 그걸 이렇게 쉽게 벌 수 있다니. 꿀꺽!’
이거라면 포인트를 써야지 읽을 수 있는 상위 게시글도 맘껏 접속할 수 있을 터였다.
루미가 물어왔다.
“환전하실래요?”
그러면서 눈을 빛내고 손바닥을 비비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PP에서처럼 여기서도 루미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이 제법 되는 모양이었다.
“콜!”
“환영합니다. 고갱, 고객님!”
루미가 활짝 웃으며 환전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