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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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날이면 날마다

오행기공과 엘레멘탈 다이얼!

이는 PP에서 배울 수 있는 원소 계열의 연공법들로써, 굳이 비유하자면 전자는 기사나 투사 같은 육체파를 위한 공부였고, 후자는 마법사나 주술사 같은 두뇌파들을 위한 공부라 할 수 있었다.

이 두 연공법의 특징이라 한다면, 각기 자신들의 전용 스킬 및 연공 스킬과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더 흥미로운 부분이라면, 오행기공이나 엘레멘탈 다이얼 모두 완성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행기공의 경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다섯 가지 기운을 다루는 것으로써, 이를 전부 모으지 않아도 충분히 연공이 가능했다.

단 하나만 지니고서도 연공할 수 있었는데, 이 하나의 연공법을 발전시켜서 오행기공과는 또 다른 방향의 연공 육성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이는 엘레멘탈 다이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연공법을 익히는 순간 회전 다이얼 전화기처럼 링이 만들어지고, 그 위로 하나씩 원소가 새겨지고 추가되며 다이얼을 완성해 나가는 것인데, 굳이 전부를 모으려 할 필요 없었다.

‘원소 하나만 박아도 다이얼은 돌릴 수 있지.’

두 연공법 모두 그 방대한 다양성이 놀라워 그의 연공법 연구에 주로 사용됐는데, 마루는 그렇게 연구한 결과물을 강하나에게 가르쳐 주고자 했다.

사실, 오행기공과 엘레멘탈 다이얼은 기운의 흐름 없이는 배울 수 없는 종류의 공부였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스킬과 조합할 경우, 전혀 다른 성질이 발생할 수 있음을 알았기에, 이 두 연공법을 내버려두지 않았고, 그렇게 이런저런 조합식을 짜던 중 구현 가능 스킬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활력의 춤처럼 호흡과 상관없는 연공법!’

단, 상위 조합을 통해 만들어 낸 공부인 만큼, 단순 동작의 반복이던 활력의 춤과 달리, 배워야 할 동작들이 상당했고 또 복잡했다.

그 때문에 어떤 걸 가르쳐야 할지 갈등하다, 이내 엘레멘탈 다이얼의 조합식으로 만들어 낸 화염 계열 공부로 결정을 내렸다.

생명의 불꽃!

조금이라도 더 익히기 쉬운 것으로 선택한 것이다.

‘하나가 이능계 각성자니까, 상성도 엘레멘탈 다이얼 쪽이 더 맞을지도 몰라.’

기회가 된다면 오행기공 방면의 공부도 가르치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선 일단 불의 노래가 충분한 효과를 보인 이후여야 할 터였다.

‘일단 효과가 나와야 다른 것도 가르칠 수 있겠지.’

여동생의 각성 이후로 연공법을 타인에게, 그것도 가까운 이들에게 전하는 걸 조심하고 있었는데, 이는 알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할까 우려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실버 박사와의 만남을 통해, 헌터 육성 프로그램의 진실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고, 덕분에 걱정거리를 덜어 버릴 수 있게 되면서, 연공법 전수를 결정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름 안전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는데, 연공법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생명의 불꽃은 활력의 춤과 마찬가지로 회복 특화형 공부였다.

강하나의 스킬 자체가 상성과 조화에 중점을 두고 있으니, 이 연공법과도 잘 어우러질 거라 여겼다.

아마도 ‘진화’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저나…….’

실버 박사의 만남 이후 공략법의 안전성을 보장받고, 강하나를 통해 본격적인 연공법 전수까지 이루고 난 까닭일까?

요 근래, 그간 발견한 구현 가능 연공법들에 대한 생각이 자주 이어졌다.

‘…살짝 아깝네.’

게임으로 치면 고생해 가며 공략법을 만들어 놓고, 그저 묵혀 놓고 있는 느낌이랄까?

뿐만 아니라 실버 박사와 직접 마주했기 때문일까?

[헌터 육성 프로그램]

그 기획을 마냥 무시하기가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생각해보면 실버 박사의 장대한 꿈 덕분에 그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아무나 가르칠 수도 없고.’

그런 고민이 이어지던 무렵, 그가 찾아왔다.

“아재.”

“…태식이냐?”

1년 전, 그의 직장 상사였던 김태식이었다.

“흐흐! 잘 지내셨수?”

특유의 능글거리는 말투와 함께 손을 흔드는 그의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나와 버렸다.

* * *

이리저리 옛 동료에 대한 정보가 풀리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루 아재가 싫어할 텐데.’

김태식은 나름대로 팀원들을 단속해 봤지만, 돈이 오가는 거래다 보니 쉽지 않다는 걸 알았고, 결국 고민 끝에 마루를 찾아가서 먼저 알리기로 결정했다.

일정의 자진 납세라 할 수 있었다.

오는 과정에도 적잖은 고민이 이어졌는데, 불과 1년 사이에 그와 마루 사이에 어마어마한 격차가 생겨 버린 것이다.

일종의 신분이나 계급차라고 해야 할까?

D급과 B급이었다.

그 사이에는 양반과 백정만큼의 격차가 존재하기에, 주저함에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가.

그렇게 어렵사리 옮긴 걸음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아재.”

전과 같은 모습과 반응으로 돌아보는데, 괜스레 긴장감이 풀리며 특유의 능글스런 말투가 흘러 버렸다.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가 실소하는 게 보였다.

괜스레 가슴이 뜨끈해졌다.

* * *

마치, 유목민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생활을 했다.

한 직장에 반년 이상 머물렀던 적이 거의 없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나, 가장 결정적인 건 남다른 발골 솜씨 때문이었다.

재주가 뛰어나다는 건 언제나 시기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사체 처리 방면에서 남다른 재주를 지녔다는 건, 타인의 일감마저 뺏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기에, 이래저래 견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바이트 3팀은 조금 특별했다. 누구 하나 그를 경계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의 솜씨에 감탄하며 어울리려 들었다.

마루는 그 중심에 김태식이 있었음을 알았다.

그 덕분일까?

‘2년이나 출근 도장을 찍었지.’

여러모로 김태식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웬일이냐?”

카페에 앉아 커피를 나누며 물었다. 이에 김태식이 쓰게 웃으며 찾아온 이유를 밝히는데, 마루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뭐, 별거 아니네. 팀원들한테 말해. 기왕 팔아먹을 정보면 술값 정도가 아니라, 밥값 정도는 벌어먹으라고.”

비록 김태식이 주도해서 분위기를 만들었다고는 하나, 팀원들 역시 이에 따라 줬기에 그가 머물 공간이 마련된 것이니 만큼, 마루는 팀원들의 행동을 탓하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부추길 정도였으니, 걱정하며 찾아왔던 김태식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떠지는 것도 당연했다.

“정말… 괜찮은 거요?”

연이어 이어지는 물음에 마루는 웃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너도 꿀 좀 빨아. 이참에 제수씨한테 안 들키게 비상금도 좀 만들고.”

그 말에 김태식이 웃으며 말했다.

“얼마 안 있으면 저 아빠 됩니다.”

“올~! 축하한다.”

20대에 일찌감치 결혼한 뒤, 쉬이 애가 들어서지 않아서 고생하던 김태식의 사정을 알기에, 더더욱 진심으로 그를 축하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 소식을 시작으로, 지난 1년 사이 있었던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눠갔다.

잡담으로 얼마나 이야기가 이어졌을까?

문득, 김태식은 참고 또 참았던 질문을 던져 버리고 말았다.

“예전에 휴가 썼던 거, 그때 이미 각성했던 거지?”

슬쩍 가벼워진 분위기에 묻어가듯, 그렇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내심으로는 긴장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상황에 따라서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인데, 그들 사이에 생긴 격차로 인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미 후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루의 반응은 이번에도 뜻밖이었다.

“역시 눈치가 빨라.”

너무도 태연히 받아 주며 분위기를 가볍게 풀어 준 것이다. 일순 긴장감이 맴돌 뻔했던 공기가 자연히 환기되는 걸 느꼈다.

그에 묻어 가듯 한차례 더 의문을 꺼내 봤다.

“백두산?”

“정답!”

연달아 이어지는 질문 속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던지, 이번에는 마루가 먼저 물어왔다.

“왜? 너도 똥물 좀 헤집고 싶냐?”

각성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를 묻는 거였다. 순간 김태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이유를 짐작하는 바, 마루가 재차 물었다.

“다시 꿈을 좇으려니, 제수씨가 걱정돼?”

김태식은 30대가 되던 무렵에 각성을 향한 꿈을 접었다. 그 말인즉, 그와 함께하던 20대 시절 그의 부인은 적잖은 고생을 했단 의미이기도 했다.

어지간하면 다시 꿈을 꾸지 않았으리라.

헌데, 하필이면 가까운 지인이, 그것도 서른다섯이라는 늦은 나이에, 늦깎이 각성을 해 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그를 비롯하여 여러 팀원들이 갈등하는 모습들을 보이고는 했다.

실제로 몇몇 팀원은 남몰래 똥물을 헤집고는 했는데, 웃기는 건 거기에 김태식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오늘 찾아온 건, 팀원들의 잘못에 대한 선처 때문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똥물을 뒤집던 노하우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컸다.

쉬이 대답하지 못하는 김태식의 모습에, 그의 상황이나 심경을 이해한 듯,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너 나 믿냐?”

뜬금없는 소리에 김태식이 의문을 내비치는데, 마루는 한결 진지해진 눈빛으로 묻기만 할 뿐이었다.

“믿어, 안 믿어?”

분위기가 돌변함에 있어, 뭔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김태식이 잠시간의 주저함 끝에 입을 열었다.

“믿수.”

이에 한 호흡 숨을 고른 뒤, 마루가 속삭이듯 물었다.

“각성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면 믿을래?”

김태식의 눈이 부릅떠지는 가운데, 마루가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제로 원, 그 양반한테 배운 비법이 있는데, 어때?”

적당한 안전장치로 존슨을 팔아먹은 것이다. 과연 그 이름값이 효과를 발휘하는 듯, 김태식의 두 눈 가득 생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다.”

그러면서 마루가 엄지와 검지를 모았다.

“쩐 좀 있냐?”

김태식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 * *

태호 그룹의 회장 강용호!

올해로 여든을 바라보는 그에게 있어 대격변 이후의 세상이란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흘… 예전이었다면 병상에 누워서 TV나 돌려 보고 있었을 텐데.”

하지만 그는 달랐다.

마치 젊은 청춘들처럼 혈기 왕성하게 활동하며, 여전히 그룹의 일선에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타고나기를 강골인 점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던전에서 나오는 여러 기적의 물품들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억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위 포션들을 마치 물처럼 들이부으며 일상을 살아가니, 몸 상태는 항상 최상이었고, 거기에 더해 아티팩트라 불리는 특별한 물건을 통해 신체 능력까지 끌어 올리니, 각성자 부럽지 않은 활력을 내비칠 수 있는 것이다.

비각성자였지만 몸에 두른 다양한 아티팩트의 영향으로, 어지간한 헌터 한둘은 찜 쪄 먹을 괴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그룹 본사에 출근해 업무를 본 뒤, 잠시간의 휴식을 통해 창밖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높은 고층 건물의 꼭대기에 회장실이 마련된 만큼, 제법 눈요기가 됐다.

그러던 중,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결국 일을 내는군.”

태호 그룹의 회장 강용호는 최근 연락이 끊겨 버린 사내를 떠올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구정국!

광호 길드에 붙여놓은 그의 귀 하나가 떨어졌음을 알았다.

‘기어이 선이 그놈을 치겠다는 게냐.’

아들, 강만기의 행보가 어디로 향할지 알기에, 재차 한숨을 내뱉어야만 했다.

“후우…….”

은연중에 구정국을 통해 그의 뜻을 전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처럼 행동한다는 건, 강만기의 결심이 확고하다는 의미이리라.

‘쯧!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느지막이 본 막둥이다 보니, 여러모로 된소리가 덜했던 듯싶었다. 게다가 모친의 치마폭에서 자라다 보니, 더더욱 안하무인격인 성향이 강해져 버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재능은 확실했던 터라, 자리에 맞는 행보는 취할 줄 알았다. 그 때문에 이번 경고도 먹힐 거라 여겼건만,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던 듯싶었다.

‘선이 그놈을 잘못 건드렸다간, 방계 놈들의 반발이 심할 수도 있건만.’

안타까운 일이지만 결심을 내려야 할 때라고 여겼다.

“슬슬… ‘다음’을 준비할 땐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며 그가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 태호 그룹의 최상층 꼭대기에서,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는 거리 전경을 조용히 즐겼다.

* * *

마루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내가 잘한 걸까?’

조금은 충동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태식이가 입이 무겁긴 해도, 연공법까지 전수한 건 너무 과했나?’

꾸준한 의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의 행동에 대한 해답이 뜻밖의 방향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아빠가 삼촌보고 잘했대.”

이젠 건물주가 아닌, 삼촌이란 단어가 더 익숙해진 듯, 초롱이가 그리 말하며 마루를 올려다봤다.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이름 없는 신]

PP에서 그의 후광으로 등록되어 있는 신앙이며, 여의주의 주인이자 초롱이의 부친으로 추정되는, 그간 조용하던 의문의 신이 뜻밖의 메시지를 전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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