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35화 (135/325)

#10. 발록.

맨 처음 든 궁금증은 이거였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 신이라서?’

그 부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전에, 초롱이가 연달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아빠가 잘했다며, 열심히 하면 보상도 준댔어.”

“보상?”

두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었다.

의아한 점이라면, 이전에도 연공법을 전수한 적이 있건만, 왜 이제야 이런 연락을 취하냐는 점이었다.

그에 대한 의문도 들은 바가 있었던 것인지, 초롱이는 막힘없이 답해 줬다.

“10명 채워서 알 수 있었대.”

신이라서 알았다기 보단, 인원에 맞춘 정보가 전달된 모양이었다.

문득, 마루의 눈에 의문이 내비쳤다.

‘어라? 그럴 리가 없는데?’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 봤다.

‘아빠, 엄마, 형, 형수님, 다솜이, 시안이, 하나, 태식이….’

순차적으로 그 숫자를 헤아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덟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불현 듯 깨달았다.

‘설마?’

쌍둥이들이 떠오른 것이다.

‘온전한 구현이 아니라, 그냥 외형만 따라 하는 정도인데.’

그 타이밍에 초롱이의 적절한 개입이 있었다.

“둘은 편법이지만, 아빠가 그것도 일단 OK랬어. 그런데 편법이 뭐야?”

당혹스러운 질문은 일단 뒤로한 채, 포인트에 집중했다.

‘10명을 채워서 알게 됐다고 했지?’

어쩌면 그도 모르는 퀘스트가 준비되어 있던 걸지도 몰랐다.

‘일종의 이스터에그(Easter―Egg) 같은 건가?’

게임 개발자가 게임 내에 재미로 숨겨 둔 메시지 등으로서, 이런 미스터리한 퀘스트도 그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이건 게임이 아닌 현실이었지만, 그의 성장이 게임과 연결되어 있다는 부분을 상기한다면,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 듯싶었다.

자연히 실버 박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와 관련 있는 걸까?’

당장은 알 수 없는 부분이었다.

‘으음… 연공법 전수를 계속하라는 뜻인가?’

확인을 위해 초롱이에게 물었다.

“몰라. 거기까지만 말하고 잠드셨어. 히히! 아빠도 초롱이처럼 잠꾸러기야. 난 아빠 닮았어.”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방끗대는 초롱이의 모습에 마루도 실소를 흘려 버렸다. 그러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전수하면서 알아봐야겠지?’

보상은 얼마만큼 전파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거란 예감이 왔다.

이 와중에 걸리는 건 2가지였다.

첫째,

‘어떻게 정체를 숨기면서 알리는지도 문제고….’

괜히 발각됐다간 골치 아파질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전파했다가, 실버 박사 보상이 넘어가면?’

지극히 탐욕적인 문제가 둘째였다.

‘아니, 첫 번째야 문제도 아니지만.’

두 번째는 솔직히 좀 많이 걸렸다.

‘혹시, 사방에 퍼트렸다가 랭커들 손에도 들어가면? 그랬다가 스킬 구현까지 하면, 한 방에 조건 성립인가?’

실버 박사의 재산까지 통째로 넘어갈 확률이 높았다.

그 때문일까?

‘기간 제약 퀘스트도 아니잖아?’

생각해 보면 시일이 정해진 것도 아닌 만큼, 당장 급하게 생각할 건 없다면서, 잠시 관련 문젯거리를 옆으로 밀어 버렸다.

문득, 초롱이가 외쳤다.

“삼촌 표정, 그거 알아! 악당들이 그렇게 웃었어.”

“크흠!”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 * *

흐름을 탔다고 해야 할까?

CT헌터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헌터의 거처 주변으로 수많은 헌터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개리와 포더는 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거, 경쟁이 치열하겠는데.”

“광호에서 일을 제대로 하네.”

“너무 잘해서 문제지.”

개리의 이야기처럼 목표물의 거처 주변에는 너무 많은 요원들이 몰려 있었다.

최초 그들의 예상했던 건, 마루와 악연이 있는 이들의 은밀한 접근 정도였는데, 광호 길드가 움직이면서 규모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명분이야 있었다.

“피닉스 한번 잡아 보겠다고, 너무 판을 키우는데.”

그리 말한 포더는 자신들이 끌고 온 팀원들을 떠올렸다.

‘이 정도 규모면, 우리 애들도 꽤 다치겠네.’

물론, 발을 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넌 또 술이냐?”

포더가 미간을 찌푸리며 개리를 바라봤다. 미니 포켓에 담아 몰래 한 모금 들이마시던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흐흐! 이 동네에 막걸리라는 게 제법 별미더라고.”

“으… 난 그거 별로던데.”

“익숙해지면 괜찮아.”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포더를 보던 개리가 한 소리 듣기 전에 슬며시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그나저나 유럽에선 슬슬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던데. 어때?”

“연합? 곧 오픈할 모양이더라.”

그들은 유럽의 무림맹이 될 단체, 위저드에 대해 떠올렸다.

이에 대항하기 위한 사흑련 포지션의 경우, 키홀을 비롯한 몇몇 이면의 대표 길드들이 앞장서서 만들어 가는 중이었는데, 그 때문에라도 제퍼드의 존재가 중요했다.

대항 세력을 만들기 위해 사흑련과 가장 자주 접촉하며, 일종의 얼굴마담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일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드는 탓에, 그들은 애써 제퍼드에 대한 언급은 넘어갔다.

“이름은 정해졌다고 하던데.”

“그래?”

호기심을 내비치는 포더의 모습에 개리가 웃으며 엄지 검지를 비볐다.

“공짜로?”

“치사하긴.”

“흐흐! 오늘 밤 술값은 네 몫이다.”

“전화 한 통이면 알 수 있는 걸, 뭐 하러?”

“아… 분위기 깨네.”

실망하는 개리의 표정에 포더가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알았으니까. 말해 봐.”

“레메게톤.”

“호….”

포더가 작게 탄성을 뱉었다.

“위저드에 대항하는 마도서라, 잘 지었네.”

솔로몬 왕의 작은 열쇠라고도 불리는 전설의 마도서로서, 이를 통해서 72악마를 소환하고 부렸다고 전해졌다.

“듣기로는 명칭에 맞게, 좌석도 72개 준비한다더라. 자잘하게 나누면 더 들이겠지만, 일단 위원석은 그렇게 할 모양이야.”

“빠르면 올해, 늦어도 내년인가?”

포더의 의문에 개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위저드가 언제 움직이는지에 달렸지. 어쨌든 레메게톤은 그놈들이 없으면 존재하기 어려우니까.”

“하긴….”

그렇게 잡담을 이어 가는 한편, 목표물의 거처 주변도 꾸준히 살피는데, 문득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얼굴이 하나 등장했다.

둘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시선을 붙였다.

‘마… 맙소사….’

‘미친! 저자가 왜?’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등장한 까닭이었다.

‘바… 발록….’

이면의 랭커를 발견한 까닭이었는데, 그들 두 사람이 이처럼 놀라는 건, 상대가 유럽에서 활동하기 때문이고, 그만큼 잘 아는 까닭이었다.

둘이 숨죽이며 속삭였다.

“아니, 발록이 왔단 소리는 없었잖아?”

“젠장! 이면 놈들이 언제 연락하고 오냐.”

확실히 그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특히, 발록처럼 특수한 위치에 있는 이들의 경우, 더더욱 위치 파악이 어려운 면이 있었다.

“아… 졸라 무섭네.”

“들킨 건 아니겠지? 쫄린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면의 랭커가 한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독 발록의 등장에 기겁하며 몸서리를 치는 이유가 뭘까?

“눈 마주치지 마. 걸리면 뒈진다.”

“젠장! 데스워치 없다고 안심했더니만.”

발록이 유럽 이면에서 맡는 포지션이 바로 데스워치와 같기 때문이었다.

이면의 주민이지만, 이면의 문제아들을 주로 사냥하는 발록의 성질상, 그들의 반응이 결코 과한 게 아니었다.

저 정도 되는 존재가 이 자리에 왔다?

“분명 유럽에 있어야 할 작자가 왜?”

“그게, 중요하냐? 안 들키게 고개가 박아.”

“젠장!”

개리와 포더가 은신처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듯, 다른 수많은 요원들도 꼭 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 * *

띠링….

강만기는 문자를 확인하며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드디어 도착했군.’

미국에 데스워치가 있다면 유럽에는 발록이 있단 소문을 만들어 낸 사내의 등장이었다.

특히, 나이가 들며 활동이 뜸해졌던 데스워치에 비해, 아직 한창 전성기인 발록이다 보니, 오히려 한 수 위로 보는 이들이 많을 정도였다.

‘이선 때문에 목표물을 놓친 뒤론, 사이가 별로 안 좋았다고 했지.’

미국의 3번째 영웅으로서, 남다른 입지를 다져 놨다지만, 그건 현재에 국한된 이야기였다. 과거에는 그 역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미국에 뛰어들었다.

A급의 남다른 재능을 지닌 각성자인 만큼, 대우가 나쁘진 않았지만, 이민자라는 포지션에서 문제가 꽤 있었다.

하필이면 그 무렵에 이민자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좋았던 적도 몇 없지만.’

그런 이유로 그곳에서도 한동안은 ‘사냥개’ 역할을 했었고, 당시 돈 많은 마피아들의 가드 역할도 간혹 수행한바, 거기서 발록과 악연을 쌓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정도로는 발록을 이곳까지 부를 수 없었다. 당연히 그에 합당한 값을 치르고서야 부를 수 있었다.

그러면서 꺼내든 건, 붉은빛 수정이었다.

언뜻 마석이나 마정석처럼 보이는 것이지만, 이건 그와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내부에 불꽃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일렁이고 있는데, 이를 살피다 보면 알게 된다.

실제 수정의 색깔은 투명하고, 붉은빛은 그 불꽃이 내뿜는 것이란 걸.

화염석!

과거, 이선을 낚기 위한 미끼로 준비해 놨던 물건으로서, 당시 그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스킬 폭주에 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었다.

‘발록이 이걸 모으고 있다고 했지.’

던전 내에서도 극히 희박한 확률도 발견되는 물건이었다. 이 물건에 상당수의 돈 그리고 피닉스라는 미끼까지, 발록을 끌어들이기엔 충분했다.

‘그런데 랭커인 그가 왜 이런 물건을? 폭주 문제는 초인이 되면 전부 해결되지 않나?’

의문은 극히 짧았다.

‘하긴, 나야 상관없지. 일만 제대로 처리만 해 준다면, 큭!’

뒷배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미국?’

실소만 나올 뿐이었다.

‘버킹엄도 단독으로 쳐들어갔던 발록이라면.’

물론,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이면의 사건일 뿐이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윈저성도 찾아갔다는 말이 있는데, 거기까진 이면 방면으로도 아직 확인된 바가 없었다.

‘눈 돌아가면 백악관도 들이받을지 모른다는 인간이니.’

강만기의 시선이 저 먼 하늘로 고정됐다.

‘어디,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보십시오. 아버지!’

그곳은 태호 그룹 본사가 있는 방향이었다.

* * *

발록은 한시바삐 의뢰를 해결하고 거처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혼자라면 부담스럽겠지만….’

그의 시선이 목표물 거처 주변을 쭈욱 훑었다.

‘저 잡것들을 부려 먹는다면야.’

군데군데 불순한 기척들이 잡혔는데, 평소라면 척살감인 이면의 문제아들이었다. 여러모로 맘에 들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그의 기준을 접어 두기로 했다.

‘지금은 화염석이 급하니까.’

유럽에서 이 먼 한국까지 날아오게 만들 만큼, 그에게는 절실히 필요한 물건이었다.

한시가 바쁜 상황이다 보니, 바로 쳐들어갈 생각이었다. 마침 이선이 부상 중이라는 소식도 듣지 않았던가.

‘기왕이면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보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지.’

그리 생각하며 목표물의 거처에 다가가던 중, 불현듯 걸음이 멎어 버렸다. 내딛고자 함에도 불구하고 선뜻 발이 가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묘한 예감에 기억을 되새겼다.

‘이 비슷한 느낌을 어디서 받았더라?’

오래지 않아 떠올릴 수 있었다.

‘버킹엄?’

한층 신중해진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빌어먹을!’

그리고 발견할 수 있었다.

‘트랩인가.’

알 수 없는 다양한 함정들이 목표물 주변에 잔뜩 깔려 있었다. 이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더욱 깊고 진해지면서, 그의 본능 가득 경고성을 두드리는 중이었다.

홀로, 무수히 많은 이면의 집단을 해체해 왔고, 그 같은 경험에서 쌓아 올린 함정가드가 발동한 것이다.

선 자리에서 고민하길 한참, 입술을 짓씹던 그의 시선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가에 이채를 띠던 그가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후우….”

그러더니 이내 발길을 돌려세웠다.

* * *

수많은 요원들이 주목하고 있는 건물의 옥상.

“씨발!”

마루는 간만에 욕지기가 치미는 걸 느꼈다. 토악질을 할 수는 없으니, 대신 욕설을 한 무더기 쏟아 내는 거로 대신했다.

‘발록이라고?’

멀리 아득한 거리를 격하고 그와 눈이 맞았고, 거기서 전달된 아찔한 감각으로 더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진짜 발록이잖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 작자가 왜?’

한참 유럽에서 날뛰고 있어야 할 인간이 아니던가.

‘아오, 닭살!’

전율이 이는 건, 과거 그를 마주한 바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가 이면에 한 발 걸치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로서, 언제나 그렇듯 이면의 문제아들을 소탕하던 발록과 마주쳤던 것인데, 당시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해서 자꾸만 속이 울렁거렸다.

―흥! 동료를 위해 목숨을 걸다니. 쓰레기는 아니군.

아니다. 단지 도망갈 길이 없었던 터라, 혼자 죽기는 싫어서 제법 친분이 있던 동료와 같이 죽자며 몸을 던진 것뿐이었다.

그냥 미친 짓이었건만, 요상한 오해를 한 것이다.

―재활용은 가능하겠어.

덕분에 그와 동료는 함께 살아남았는데, 마루는 이 사건 이후 이면에서 완전히 발을 빼게 됐고, 당시 살아남았던 동료는?

‘일주일 뒤에 뒈졌던가?’

정확하진 않지만, 며칠 못 갔던 거로 기억했다.

어쨌든 처음으로 마주했던 랭커의 기세였던 터라, 지금도 방광이 풀릴 것 같은 아찔함이 남아 있었다.

‘당장 쳐들어올 것 같더니만, 갑자기 걸음을 멈췄단 말이지?’

이유가 뭘까?

발록이 주변을 쭈욱 훑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아닐 거라 여기며 애써 고개를 젓는데, 묘한 불안감에 자꾸만 등허리가 간질거렸다.

‘아… 싸겠네.’

결국, 바지춤을 부여잡은 채, 다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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