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37화 (137/325)

#12. 트랩.

바글거리며 몰려오는 몬스터들이 보였다.

‘하나, 둘, 셋… 어우, 스물둘?’

마루가 약간의 수작을 벌여, 인근 지대의 몬스터 몇몇을 끌어모으는 게 계획인데, 저처럼 많은 수가 달려들 줄은 몰랐다.

‘근방에 부락이라도 있는 건가?’

이동 중, 쉬는 시간마다 조금씩 살포했던 유도제의 경우, 하급 몬스터의 체액을 제조한 것이다 보니, 저 정도로 많은 인원을 끌어들일 위력은 없었다.

확실히 달려드는 놈들의 종족이 하나로 통일된 거로 봐선, 놈들 영역과 겹쳤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 수가 상당했던 터라, 잠시 당혹감이 어리며 등허리에 땀이 찼지만, 곧 침착하게 상황을 대처할 수 있었다.

‘크흠! 좀 과하긴 하지만.’

말 그대로 ‘조금’ 과하다고 여길 뿐이었다.

‘케일 스메셔인가.’

B~A급을 넘나드는 몬스터들로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곤충 계열의 몬스터라고 할 수 있었다.

언뜻 사마귀를 닮은 외형을 지녔지만, 외형과는 달리 무리 생활을 하는 놈들로, 서로 잡아먹는 습성을 지닌 사마귀와 달리, 무리 생활을 하며 어울릴 줄 아는 데다가, 수컷이 더 크다는 반전도 있었다.

이놈들이 무서운 건, 강철도 무처럼 썰어 버리는 저 앞발이었다. 게다가 표피도 갑옷처럼 단단해, 사격으로 잡기도 쉽지 않으며, 골 때리게도 몸놀림도 매우 날렵했다.

그들을 찬찬히 관찰하는 모습이 답답했을까?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어느새 진형을 갖춘 가운데, 임지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마루가 손을 뻗어 그녀를 진정시킨 뒤, 선 자세 그대로 G―eye를 잡았다.

어느새 저격 모드를 풀어서, 권총 형태가 된 그것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B―eye를 꺼내 든 뒤, 양쪽의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이었다.

투투투투투퉁….

앞서 보여 줬던 속사가 펼쳐지는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총 열여덟 발의 탄환이 발사됐다.

한 번에 아홉 번씩 빠르게 두 번 연사한 것이다.

울컥….

횟수를 늘리진 못했지만, 일종의 쿨타임이라 할 만한 시간을 줄일 수는 있었는데, 고속 2연사는 그 역시 부담이 커서, 잠시간 속이 울렁거렸다.

그렇게 무리해 가며 선보인 탄환은 열여덟 마리의 케일 스메셔를 정확히 저격하며 날아갔다.

카카카캉….

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들어가는 건 없었다. 그 날카로운 앞발로 탄환을 전부 쳐 낸 것이다.

일순 기대감이 어렸던 저격수들의 표정이 꺼멓게 죽어 버렸다. 그들도 인정하고 이젠 존경까지 하는 마루건만, 그의 솜씨로도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절망감도 커지는 것이리라.

A등급 가드가 둘이나 있다지만, 과연 그들이 자신들도 확실히 지켜 줄지, 그에 관해서는 미지수였다.

불안감이 커지는 가운데, 임지현이 재차 외쳤다.

“빨리 이쪽으로 오라니까요.”

결국, 그녀가 직접 다가와 끌고 가려는 찰나, 마루가 재차 자세를 잡는 게 보였다.

“이봐요?”

임지현의 부름은 무시한 채, 케일 스메셔에게만 집중했다.

‘딱 좋네.’

조금 전 저격으로 놈들도 위기감을 느낀 듯, 일제히 진형을 갖추며 뭉치는 게 보였다. 그만큼 속도는 늦춰졌고, 덕분에 마루는 한결 편하게 타이밍을 잴 수 있었다.

무작정 몬스터들을 끌어들인 건 아니었다.

‘좀 더, 조금만 더, 지금!’

순간, 마루가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도 고속 연사였고, 또다시 열여덟 발의 탄환이 발사되는데, 앞의 경험으로 마루의 탄이 보통 위력이 아님을 경험한 탓일까?

경계하듯 놈들의 속도가 급격히 줄어드는데, 탄환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오발탄?

지켜보던 이들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던 찰나, 멋대로 날아간 탄환들이 수풀 곳곳을 두드렸고, 뒤이어 놀라운 현상이 발동됐다.

파아아앗!

대지 위로 섬광이 솟구치는가 싶더니, 달려들던 케일 스메셔를 일제히 휘감으며 철창처럼 가둬 버리는 것이 아닌가.

좀 전 사격은 이를 발동시키기 위한 거였다.

날카로운 앞발로 이를 베어 보려 노력하지만, 잠깐 갈라졌던 광채는 금세 새롭게 이어지며 케일 스메셔를 압박해 왔다.

‘트랩?’

일행들의 머릿속으로 지난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그레이 셰이드!

과거, 이면의 문제아들을 트랩 하나로 골탕 먹이며, 마루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렸던 사건이기도 했다.

그전에 건가드 영상도 있었지만, 규모 자체가 달랐던 터라, 업계 내에서는 트랩 사건이 좀 더 임팩트가 있었다.

‘뭐를 그렇게 설치하나 싶었더니.’

쌍둥이를 비롯한 화랑담배 길드의 요원들은 사냥 개시 전, 마루의 행동들을 연달아 떠올렸다.

저격 포인트 주변을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모습인데, 함정을 설치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저런 퀄리티를?’

‘말도 안 돼!’

생각보다 소요된 시간이 적었던 터라, 간단한 함정인 줄 알았더니, 저처럼 엄청난 걸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키는 와중에, 철창처럼 케일 스메셔를 가뒀던 광채들이 점차 범위를 좁혀 가더니, 놈들 하나하나에게 달라붙으며 족쇄를 채우는 게 보였다.

그건 이내 매듭이 되고 덩굴이 되어 형상을 이루더니, 땅끝과 단단히 연결되었다.

마루는 케일 스메셔를 정의하는 요소들을 떠올렸다.

빠르다. 날카롭다. 단단하다.

‘강하진 않지.’

이는 괴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특히 관절 부위가 약한 터라, 조금이라도 자세가 어긋나면 제대로 힘을 못 쓰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덩굴도 생각보다 단단하진 못한 듯, 놈들의 몸부림에 조금씩 늘어지고 뜯어지기 시작했다.

‘마석을 좀 더 투자할 걸 그랬나.’

이를 본 마루가 짧게 입맛을 다셨다.

물론, 단번에 끊어질 만큼 약하지도 않았고, 케일 스메셔들은 그만큼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케엑… 켁….

키이이익….

놈들의 당혹감 어린 울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마루는 침착히 탄창을 교체한 뒤, 다시금 쌍권총을 들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기에, 차분히 약점을 노린 채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투퉁….

깔끔한 엔딩이었다.

* * *

임지현과 임수현은 새삼 깨달았다.

‘제로 원의 형제, B급 A형 정마루!’

아이언슈트가 그를 서포트하라고 한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이래서 보낸 거구나.’

‘배울 게 많겠네.’

등급은 의미가 없었다.

‘저 정도로 대단한 트랩 설치 기술이라니.’

‘소문 이상이잖아.’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종류였다.

어지간한 전문가도 비빌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쌍둥이는 꼭 닮은 존경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여제께서 직접 스카우트했다더니.’

‘명함도 두 번이나 받았다며?’

한 분야의 달인이라면 그만한 대우를 받아도 이상할 게 없었다.

마루는 이들 남매의 눈빛이 달라지고 태도까지 바뀌는 걸 확인하며, 첫인상을 제대로 각인했다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몬스터가 개떼처럼 달려올 땐, 좀 당황했지만.’

등가가 촉촉해지던 게 지금도 선명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고자, 준비를 단단히 해 놓은 게 다행이었다. 발동된 트랩 외에도 감춰진 게 제법 남이 있으니, 더 위험한 상황도 괜찮았을 터였다.

‘계획대로 된 건 다행이긴 한데, 속은 좀 쓰리네.’

효과가 확실한 만큼, 트랩에 쓰인 가격도 상당했던 것이다. 존슨에게 배운 마석 결계술을 활용했는데, 미리 준비를 해 놓을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설치 자체는 간단했다.

‘얼마가 깨진 거야?’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한동안 허리끈을 졸라매야 할 듯싶었다.

‘한 방에 천만 원이 날아갔네.’

그나마도 케일 스메셔를 ‘잠시’ 가둬 두는 용도였기에 그 정도지, 제대로 제압하고 완전히 처리하고자 했다면, 그 이상 투자해야 했을 터였다.

그래도 효과는 확실했다.

사실, 이번 건 쌍둥이들만을 위한 무대는 아니었다.

‘구경꾼들 반응은 좀 어떠려나….’

슬쩍 화랑담배 길드의 요원들을 살펴보니, 그들 역시도 눈빛이 달라진 게 보였다. 이전에도 존경과 동경의 빛을 보이고 있긴 했지만, 거기에 조금 다른 의미도 스며든 것이다.

“건가드 말고 더 있다고?”

“원거리 저격, 근거리 총기술, 거기에 함정술까지?”

“와… 지려 버렸다!”

그들의 속삭임에 슬쩍 입꼬리가 올라갔다.

‘적당히 소문 좀 나겠네.’

그의 거처로 몰려드는 날파리 같은 불청객들을 생각해 봤을 때, 오래지 않아 사달이 날 것으로 예상됐다.

그 때문에 간단한 밑밥 깔기 작업의 일환으로, 오늘 한 차례 쇼를 보여 준 것이다.

비장의 카드가 될 트랩을 알려 준다?

‘이쪽 패가 확실하면, 굳이 감출 필요도 없지.’

후폭풍을 생각한다면 적당히 밝히는 게 나았다.

‘게다가 기왕 키울 판, 확실히 키워 놔야지. 이걸로 잔챙이들도 걸러 내면 좋고.’

그의 눈 위로 서늘한 안광이 스쳐 갔다.

* * *

팀장으로서 뛰는 첫 사냥인 탓일까?

‘좀 긴장해 버렸네.’

김연희는 쓰게 웃어 버렸다.

그간 부팀장으로서, 이선희를 대신해서 팀을 지휘한 경험이 상당하건만, 아예 팀장 자리를 맡아서 행동하는 건 느낌이 또 달랐다.

이선희가 없다는 점까지 포함해서, 괜한 부담감에 몇 차례 지휘 동선이 꼬이기도 했는데, 다행이라 한다면 그 정도는 문제없이 커버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혜성 특수 1팀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갑자기 말도 안 되는 저격 실력을 보여 준 마루의 도움도 컸다.

‘신입 둘에게 잘 보이려고 무리한 건가?’

어쨌든 이런 팀원들의 보조 덕분에 흔들렸던 초반을 잘 보냈고, 다시금 중심을 잡은 채 지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중간에 한 차례 마루 방면의 저격이 멈추긴 했지만, 일단 지원을 보내지는 않았다.

‘A급 가드가 둘이나 있으니까.’

정말 최악이라면 그땐 무전이 올 거라 생각한 것이다. 예상이 틀리지 않았던지, 오래지 않아 상황을 해결한 듯, 다시금 저격이 이어졌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화랑담배 길드의 요원들도 한 팔 거들고, 그 무렵부턴 사냥의 인계 작업이 이뤄지고, 막바지에는 뒤로 물러나서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매번 이 같은 작업이 반복되다가, 순차적으로 화랑담배 길드에게 던전 관리권을 넘기는 것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며 화랑담배 길드의 사냥을 구경하는 한편, 마루의 사냥에 대해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저격 실력, 시야, 판단력… 확실히 오더 내리는 건 저격수가 편하긴 한데.’

각기 일장일단이 있었다.

멀리서 넓게 보느냐, 가까이서 정확히 보느냐의 차이로, 그녀는 이미 마루의 팀장 평가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 수준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그녀가 팀장 ‘대행’으로 머무는 시간도 길어지게 되리라.

* * *

마루를 주시하는 눈동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레이 셰이드도 트랩에 당한 거였지.”

“건가드도 그렇고, 확실히 머리가 좋은 모양이네.”

“함정술 달인이라. 골 아프게 됐어.”

“존슨도 그 방면에 통달한 거로 아는데.”

“제로 원에게 배워서 업그레이드됐으려나?”

그 때문인지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현장을 함께하던 화랑담배 길드의 요원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혹은 담배를 나누며 자랑하듯 떠든 몇 마디 내용이 정보의 전부지만, 경각심을 새겨 주기에는 충분했다.

“괜히 어설프게 건드리면 안 되겠는데.”

“급수 안 되는 애들은 빼.”

“어설픈 놈들은 발목만 잡으니까. 정예로 정리해.”

“목표물들 주변 다시 한번 샅샅이 훑어.”

“그레이 셰이드 꼴은 나지 말아야지.”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좀 쾌적하네.”

이선은 주변을 쭈욱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록 문제도 있으니, 정예로 배치를 다시 한 모양이네.’

바글거리던 머릿수는 줄었지만, 예리함은 한층 올라간 느낌이었다.

그러며 생각했다.

‘트랩이라….’

존슨에게도 한 수 배웠다고 들었던 만큼, 내심 기대가 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여간 재주도 많아.’

옅은 실소를 띄우던 것도 잠시, 마루에 대해 떠올리니 걱정이 뒤따랐다. 오늘따라 유독 안색이 꺼멓던 게 생각난 까닭이었다.

‘뭔 일 있나?’

물어도 답해 주질 않았다. 그저 뭔가 소중한 걸 품은 듯, 옷깃을 여미며 밖으로 나설 뿐이었다.

* * *

수많은 고뇌와 갈등 끝에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어쩔 수 없나.’

마루는 조심스레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고, 일말의 주저함과 함께 어렵사리 손에 쥐었다.

한데, 마치 천근 바위라도 되는 듯, 말도 안 되는 무게감이 손끝을 타고 전해지며, 쉬이 들리려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발록과 눈을 맞췄던 기억과 함께, 그의 묘한 시선 처리까지 되새김질 되며 손끝에 괴력을 불어 넣어 주더니, 기어이 ‘물건’을 품 안에 챙기게 만들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며 밖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은행이었다.

통장의 배를 가르는 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