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38화 (138/325)

#13. 가드&어택.

항상 유럽 방면에서만 활동했고, 아시아로 넘어오더라도 주된 활동 지역은 중국이었던 탓일까?

발록은 처음 방문한 한국이란 나라를 돌아보며, 이곳이 제법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했다.

‘먹을거리도 제법 입에 맞고.’

다른 무엇보다 그의 맘에 쏙 든 건?

‘치안이 제법 괜찮군.’

물론, 그만큼 이면의 은밀함도 남달랐지만, 유럽의 악랄한 놈들과 비교해 봤을 때, 여러모로 환경 자체가 쾌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교육 수준도 높고.’

때문에 생각하게 된다.

‘이곳으로 넘어오는 것도 괜찮겠네.’

그가 랭커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 작은 땅덩이는 양팔을 벌려 그를 환영하리라 여겼다.

갑자기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가 뭘까?

‘애를 생각하면, 확실히 이쪽이 더 낫겠어.’

대다수의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였다.

잠시 이런저런 비교들을 하던 것도 잠시, 자신의 모습을 상기하며 헛웃음을 터트려 버렸다.

‘이러니 애 아빠 다 됐다는 소리를 듣는 건가.’

그의 친우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 것이다.

‘3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했는데.’

당시, 이면의 한 불법 연구소를 해체하고 구해 낸 아이를 떠올렸다.

‘산드라.’

공식적으로 발표될 수 없는, 세계 최연소 각성자였다.

각성 시기는 11살이란 어린 나이로, 연구소에는 8살에 잡혀 와서 무려 3년간 실험을 당한 것인데, 아이에 대한 소문을 듣고 찾아간 거였다.

찾기까지 걸린 시간도 상당했는데, 자신의 모든 정보를 총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근 1년가량의 세월이 허비되었다.

그렇게 아이를 구해 내며, 당시 아이와 관련된 자료를 읽고 분노를 감출 수가 없었다.

프로젝트 발록!

바로 그를 재현하는 실험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스킬을 따라 할 수 있겠냐 물을 수도 있지만, 이는 마냥 헛소리는 아니었다.

그 역시 연구소의 실험체였던 까닭이다.

‘전부 소각시킨 줄 알았더니.’

기존 연구 자료가 남아 있던 것이다.

이면을 살아가며 이면을 향해 불길을 뿜어내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저들 세상에서 너무도 큰 상처를 입었기에, 맹수는 그들에게 발톱을 세우며 이빨을 들이미는 거였다.

어쨌든 그렇게 구한 소녀, 산드라는 연구소의 실험으로 인해 마음을 닫아 버린 아이로, 옛 생각이 났던 까닭인지, 더더욱 잘해 주려 노력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마음을 열어 가며, 어느새 정말 부녀지간처럼 가까워지는 시기가 찾아왔는데, 그 무렵 사건이 발생했다.

“후… 빌어먹을 프로젝트. 부작용까지 고스란히 옮겨 오다니.”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것만이 아니라, 그가 겪었던 고통까지 고스란히 닮아 버린 것이다.

스킬의 폭주였다.

그가 염화석을 찾아 헤매는 이유였다.

맘 같아선 바로 쳐들어가서 일을 처리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던 터라, 일 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자그만 동네에 최상위급 트랩이 잔뜩 깔려 있다니.’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의뢰인에게 통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의뢰인, 광호 길드의 수장 강만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뢰비의 절반, 선불로 받아야겠다.”

―…염화석을 원하십니까?

“감이 좋군.”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돈을 먼저 드리고 염화석은 일이 끝난 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상황이 달라졌으니 조건도 바뀔 수밖에. 염화석을 선불로 내놔라.”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소릴 하시는군요.

“이선만 해결하면 된다고? 너야말로 웃기는 소릴 하는군. 그놈보다 더 골치 아픈 게 잔뜩 깔려 있다. 의뢰비를 배로 받아야 할 상황이야.”

핸드폰 너머로 강만기의 옅은 신음성이 들려왔다. 그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인 모양이었다.

―일단, 확인을 좀 해야겠군요. 제가 따로 연락드리도록 하죠.

“오래 기다리진 않을 거다.”

그렇게 통화가 종료됐다.

* * *

머니마니 길드!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일종의 대부업체라 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

현실과 PP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었는데, 주된 작업장은 PP 방면이기는 했다. 시작은 현실이었지만 PP의 사업장이 더 잘나가면서, 아예 본진은 그곳으로 옮겨 버린 것이다.

“형님! 간만에 큰 건수입니다.”

칼치의 외침에 한창 리튜브를 즐기고 있던 박만수가 물었다.

“뭔데?”

“10억짜리 거래입니다.”

한껏 늘어져 있던 박만수가 자세를 바로잡았다.

“어디?”

“PP에서 골드 거래요.”

“누군지 확인은 했고?”

“아무래도 금액이 금액이다 보니, 면상은 공개 안 하던데요. 요상한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좌도 P포인트로 연결해서 하자던데요.”

PP와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가상 은행으로서, 계좌 추적이 어려운 특수한 시스템이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골드는 충분하고?”

“박박 긁으면 맞출 순 있을 것 같습니다.”

“OK! 혹시 부족하면 다른 애들한테 지원 부탁하고, 그래도 간만에 큰 손님이니까. 서비스 제대로 해 드려. 소환장도 하나 건네 드리고, 언제든 거래 필요하시면 부르라고 해.”

“에~ 이, 제가 초짜도 아니고. 그 정도는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십쇼. 그런데 저 혼자서 처리합니까?”

“슬슬 크게 놀 때 됐잖아. 왜? 너무 큰 건수라서 쫄리냐?”

“아닙니다! 맡겨 주십시오.”

넙죽 허리를 접은 칼치가 흥겹게 밖으로 향했다. 그가 나가고 문이 닫히는 순간, 박만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크으….”

새삼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에 쾌감이 밀려오는 것이다.

‘역시, 대세는 PP였어!’

과감히 사업장을 옮긴 스스로를 칭찬했다. 특히, PP 방면으로 자리를 이전한 이후, 거친 일들도 상당 부분 줄어들면서, 안정감이 생겼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었다.

‘그나저나 가면이라고?’

작년에 한창 캐릭터 가면이 유행했다는 게 떠올랐다.

‘유행 지난 지가 언젠데….’

이내 우스갯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설마, 본인은 아니겠지?”

스스로도 웃겼던지, 한 차례 실소를 터트리며, 다시금 리튜브 영상에 집중했다. 거기에는 지난 몬스터 웨이브의 활약상들이 쭈욱 펼쳐지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시선을 끄는 건, 건가드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마루의 영상이었다.

“휘유~! 진짜 장난 아니네.”

그러더니 몇몇 화면을 캐치해 짤방을 만든 뒤, 어딘가로 올리기 시작했다.

* * *

가드&어택!

마루는 낯 뜨겁단 얼굴로 이선이 보여 주는 사이트를 확인했다.

“그러니까… 이게 내 팬카페란 말이지?”

“어우! 회원수가 벌써 만 명을 넘어가더라. 개설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대단해!”

엄지를 세우는 이선의 모습에 푹 한숨을 내쉰 뒤, 사이트를 이리저리 확인하는데,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몇몇 게시글들을 찾아보고 관련 댓글이나 이야기들을 살펴본 결과, 현역 헌터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단 느낌을 받은 것이다.

―비각성 헌터의 희망!

―이분 건가드 보며 꿈을 키운다.

―저 퀄리티만 뽑아낼 수 있다면, 비각성자여도 C급 정도는 씹어 먹을 듯.

―쥐구멍에도 볕 들 날 있다.

―할 수 있다!

관련한 반응들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다양한 인생사들의 경우, 지난 15년 세월이 잔상처럼 흘러가며, 그들 이야기 하나 하나에 공감대를 불러오게 만들기도 했다.

실버 박사의 잔상이 스쳐 가는 이유는 뭘까?

‘아… 괜히 뜨끔하게 만드네.’

애써 외면하며 카페를 샅샅이 탐방했다.

마루의 팬카페라고 하지만, 그의 자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면 ‘건가드’ 게시판이라 명명된 곳엔, 세계 각국의 실력자들의 건가드 영상을 비롯해, 개인이 촬영한 영상 등, 건가드와 관련한 내용들이 가득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카페의 상징성을 앞세우려는 듯, 마루와 비교하는 댓글들이 넘쳐 났는데, 괜히 낯부끄러워서 길게 탐독하진 못했다.

―아무리 봐도 CT헌터님이 최고시다.

―몸놀림이 빠르면 뭐해, 정확도가 꾸진데. 역시 마루님이 최고시다.

―정확도가 좋으면 뭐해, 몸놀림이 꾸진데, 역시 마루님이 최고시다.

―역시 CT헌터가….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괜히 닭살이 올라와서 바로 나와 버렸다. 놀림 삼아서 비슷한 댓글을 다는 이들도 제법 보였는데, 진심으로 ‘최고’를 남발하는 댓글도 보여, 괜히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쯧….’

그래서일까?

실버 박사의 얼굴이 유독 더 떠오르는 것 같았다.

뒷머리를 벅벅 긁어 대던 그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며 밖으로 향했다.

* * *

혜성 특수 1팀의 사정에 의해, 마루의 일정이 빡빡하게 돌아가 버린 탓일까?

임시안은 한동안 별다른 가르침 없이, 지난 공부들을 복습하는 것으로 일상을 보내야만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불만을 가지거나 하진 않았다.

당장 전해진 공부들을 복습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빠개질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루만이 아니라 존슨의 특강도 중간에 끼어 있었던 만큼, 단기간에 소화하기 어려운 공부들을, 마치 욱여넣듯 뇌 속에 쑤셔 박은 상황이 아니던가.

오히려 이 같은 복습 기간이 반가울 정도였다.

그의 일과는 기상과 함께, 마루가 전수해 준 기이한 체조로 몸을 풀어 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단순한 동작과는 달리 심오한 깊이가 있는 것일까?

―오래 하면 할수록 좋은 거야.

무려 스승님인 마루의 이야기니 만큼, 믿어 의심치 않은 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최소 1시간씩 체조에 할애하고 있었다.

신기한 건, 모든 운동이 다 그러하듯 하다 보면 땀이 나기 마련인데, 이 기이한 체조는 그러면서도 지치기보단 시간이 흐를수록 활력이 넘쳐 난다는 점이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그런가?’

마루가 알려준 체조의 이름이 좀 황당했다.

―활력88 신수 팍!

대답하던 무렵 잠시 고민하던 모습에서, 묘하게 약 파는 냄새가 났지만, 어쨌든 이름이 용하다고 여겨질 만큼, 체조를 하고 나면 기력이 넘쳐 나고는 했다.

맘 같아선 2시간 3시간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복습해야지!’

각종 몬스터들에 대한 공략법, 마굴의 생태, 던전의 이해 등등, 하루 24시간으로는 부족할 만큼 방대한 양의 공부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몸 쓰는 것만 잘해서는 오래 못 가. 헌터는 길게 보고 설계할 줄 알아야 돼. 아는 만큼 보인다고, 대가리에 일단 욱여넣어. 쑤셔 박아!

건가드를 펼칠 때 나오는 기본 설계도 이런 지식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몸 따로 머리 따로 놀겠지만, 하다 보면, 결국 몸하고 머리하고 같이 썸씽 날 때가 올 거야.

만약, 그렇게 된다면?

―건가드는 마스터했다고 봐야지.

뿐만 아니라 헌터로서의 기본 소양도 갖춘다고도 했다.

―요즘은 기본도 안 된 놈들이 태반이긴 하지.

그러면서 구시렁대길,

―하… 몬스터 특수 부대가 엿 같긴 해도, 그럭저럭 기본은 가르쳐 줬네.

대다수가 간부가 아닌, 병사들끼리 구전으로 전하고 전해 온 공부들이라는 게 반전이지만, 어쨌든 그런 식으로나마 살길을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두뇌 공부로 꽉꽉 채운다면, 오후 시간은 육체 공부에 전념하며 보냈다.

활력88 체조는 기본이며, 이후 건가드의 기본 동작들을 반복하고, 뒤이어 몇몇 상황에 맞춘 설계형 건가드를 펼친 뒤, 각종 체력 단련 등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저녁 시간도 쉴 틈은 없었다.

기이한 체조를 통해 활력을 회복하고 나면, 바로 마루의 거처로 향하는데, 그의 집이 목적지는 아니었다.

―외곽부터 잘 살펴봐. 내가 가르쳐 준 것들을 제대로 이해했으면, 조금이라도 보이는 게 있을 테니까.

“으음….”

신음성이 절로 새 나왔다.

벌써 수일째 마루가 알려 준 포인트들을 살피고 있건만, 그가 이야기했던 트랩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하긴, 눈앞에서 직접 설치하고 위장한 것도 헷갈렸으니.’

이처럼 작정하고 숨긴 것들을 어찌 찾아내겠는가. 그나마 일말의 가능성을 지닐 수 있는 건, 마루가 직접 포인트을 짚어 줬다는 점이었다.

‘낮에 오면 더 쉬울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한 마루의 대답이 너무 단호했다.

―헌터는 밤눈이 밝아야 돼!

밝은 대낮보다 칠흑처럼 어두운 야간에 더 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면서, 시작부터 하드하게 레슨을 잡은 것이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열심히 포인트를 살피고 있을 때였다.

“눈깔에 힘준다고 답이 나오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그의 스승, 마루가 한심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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