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 더 헌터-141화 (141/325)

#16. 또로록….

#16. 또로록….

광호 길드에 대한 전문가가 누구일까?

간단했다. 그들의 라이벌인 혜성 길드야말로 광호에 대한 전문가라 할 수 있었는데, 이반나는 바로 그 혜성의 간부를 통해 정보를 구했다.

이선희!

특히, 광호 길드의 수장 강만기로 인해 한 차례 커다란 시련을 겪었던 만큼, 그녀는 개인적으로도 광호에 대한 정보 조사를 꾸준히 진행해 왔었다.

그렇게 모인 정보였고, 그만큼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이반나는 이를 얻어다가 마루에게 전한 것인데, 그녀를 통해 발록의 사정을 듣고 광호의 정보까지 확인했을 때, 마루는 한 가닥 반전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일단 패를 던지긴 했는데.’

남대문에서 돌아오는 길, 마루는 발록의 반응을 되새기며 내심 입맛을 다셔야만 했다.

‘어째, 반응이 좀 미묘하네.’

자신의 제안에 대해서야 일단 기대치가 낮았던 터라, 상대 반응에 대한 실망감이 크진 않았다.

하지만 광호의 정보를 건네줬을 땐?

‘좀 더 격하게 반응할 줄 알았는데.’

분노하긴 했지만 폭발하진 않았다.

‘어쩔 수 없나.’

마루는 최근 환전을 통해 쌓아 놓은 50만 데스크 포인트를 떠올렸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 금액만 남겨 놓은 채, 전부 환전을 해 버린 것이다.

혜성 길드에서 활약하며 단숨에 통장이 빵빵해졌었건만, 포인트 확보를 위해서 다시 빈곤해져 버렸다.

그가 한 차례 호흡을 고른 뒤 외쳤다.

“루미야~!”

지름신이 강림할 때였다.

* * *

발록의 등장 이후 상황은 급전개되기 시작했다.

그간 알게 모르게 태호가 무대의 조명을 흩트리고 있었건만, 뜻밖의 배역이 올라오자 바로 손을 떼 버린 것이다.

“드디어 손을 드셨군.”

강만기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부친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걸 빌미로 나를 몰아내려 하겠지.’

차후에 발생할 상황까지 전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이번 선택에 대해 크게 후회하지 않았다.

‘그놈만 잡을 수 있다면야.’

분명 이런저런 반발의 목소리가 높아지겠지만, 이선을 처리하고 그걸 잘 활용만 한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나은 발언권과 인지도를 확보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마루와의 악연을 빌미로 무대 설비를 담당 중인 자들, 해외의 여러 불청객들이 좋은 매개체가 되어 줄 터였다.

‘방계 놈들도 납작 엎드리게 만들어 주마.’

태호의 방해가 사라진 지금, 그가 계획하고 광호가 설치하고 있던 기존 각도기가 다시금 돌아가며, 그들 연출에 맞춰 상황이 설계되고 있었다.

무대 위로 본격적인 조명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일찌감치 혜성 특수 1팀에 합류한 쌍둥이들과 달리, 레베카는 좀 더 시일을 두고 합류를 결정했는데, 이는 곧 마루에게 발생할 사건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그런 그녀에게 뜻밖의 임무가 내려졌다.

―가족들 좀 맡길게.

업계 내의 불문율을 강조하던 마루였건만, 이번만큼은 그도 자신하기가 어려웠던지, 레베카에게 직접 경호를 부탁한 것이다.

아무래도 이면에 돌고 있는 ‘특수 아티팩트’에 대한 소문 때문이라고 여겼다.

[CT헌터에게 경험치 부스터가 있다.]

일단, 아티팩트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이목이 집중될 것이건만, 마루에게는 ‘특수’라는 추가 사항까지 붙어 버린 상황이었다.

어떤 미친 짓들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마루는 또 이야기했다.

―혹시, 정말로 불문율을 깨트리는 놈들이 있으면, 최대한 살려 놔.

왜? 어째서?

이 와중에도 선의를 보이려는 건가 싶었는데, 이어진 내용이 뜻밖이었다.

―마경으로 보낼 생각이야.

그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마경, 그곳은 마굴처럼 몬스터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하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몬스터와 인간이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인데, 이는 그곳 주인의 능력과 관련되어 있었다.

마수왕!

이면 세상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항상 언급되는 사내로서, 한때는 WHA의 협회장을 대신할 만한 인재라는 이야기도 나돌았을 만큼, 아주 특별한 재능을 지닌 존재였다.

[스킬 : 비스트 마스터]

당당히 제 스킬 명칭을 드러냈을 만큼, 그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가득했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몬스터를 부리는 능력으로서, 마경의 몬스터들은 그런 마수왕에 의해 길들여진 놈들이었고, 그런 이유로 마경에서는 함부로 몬스터를 사냥할 수 없었다.

마경은 마굴처럼 세계 곳곳에 존재했다.

물론, 마수왕이 분신술을 쓰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가 머무는 본진은 한곳이지만, 마경을 관리하는 제자는 여럿이었다.

이곳 한국에도 소규모긴 하나 마경이 존재했고, 마루는 그곳으로 문제아들을 보낼 생각이었다.

이유인즉,

‘이면에서는 마수왕이 불문율의 상징이었지.’

불문율을 세울 당시,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였던 게 바로 마수왕이었다. 그 역시 혈육의 피를 통해서, 불문율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루는 이야기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멱따는 것 말고, 생각나는 게 없어.

하지만 그건 너무 쉬운 해결법이었다.

마경이라면 아주 잔인하게 문제아들을 처리해 줄 터, 과감히 그들에게 뒤처리를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런 문제에 관해서는 레베카도 걸리는 게 없었다.

성국의 이면을 살아가며, 지저분한 일거리를 여럿 해결해 왔던 과거가 있지 않던가.

마경에 맡기는 판단?

오히려 환영하는 바였다.

‘그나저나… 놈들이 오는 날은 어떻게 안 거지?’

마치 예정일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루는 가족들을 한데 불러 모았다. 덕분에 레베카는 한결 편하게 그들을 호위할 수 있었다.

그녀 나름대로 사람을 부리고 있긴 하나, 솔직히 호위 대상자들을 시야에 두고 관리하는 것만큼 베스트는 없었다.

게다가 이곳, 마루의 본가 주변에는 그가 깔아 놓은 트랩도 상당하지 않던가. 여러모로 호위하기가 편한 환경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슬쩍 하늘로 올라갔다.

―해가 떨어지면 시작이야.

저 멀리, 석양이 지고 있었다.

* * *

슬슬 분위기가 달궈지는 걸 느꼈다.

“오려나 보다.”

이산의 이야기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도 딜이 통하기는 했나 보네.”

“발록이 꽉 막힌 작자는 아니니까.”

마루는 이면의 문제아들이 들이닥치는 시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는데, 사실 이는 그가 점지한 날짜이기도 했다.

앞서, 발록에게 보여 준 파일에는 광호의 여러 비리가 담겨있었는데, 이를 건네면서 마지막에 추가로 그의 메시지도 끼워 놓았다.

―정보료는 D―day로 퉁치죠.

그렇게 진입 날짜를 거래했다.

발록의 등장과 함께, 이면의 문제아들은 은연중에 그의 뒤를 따르는 형국이 되어 있었기에, 발록만 컨트롤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해결될 터였다.

“민간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 발록 그놈도 원하는 걸 테니까.”

이선의 이야기에 마루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든 뒤, 김연희에게 문자를 보냈다.

―부탁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애애애앵….

돌발 게이트 알람이 울려 퍼졌다.

* * *

애애애애애앵….

갑작스러운 게이트 알람에 모두가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 발록만큼은 아무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 때문에 숨죽이며 그를 훔쳐보고 있던 수많은 불청객들도, 이내 상황을 파악하며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약속은 지켰군.”

나직하니 중얼거린 발록은 한 타임, 민간의 대피 시간을 체크하고 난 뒤, 천천히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기다렸다는 듯, 이면의 문제아들도 밤거리 사이사이, 골목의 그늘 속으로 스며들며, 목표물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많은 불청객들은 공통된 표지판을 눈앞에 뒀다.

[경고문 ― 개 조심]

그 같은 표지판이 거리 곳곳에 세워진 것인데, 이 뜬금없는 문구에 모두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특히, 표지판 아래 노골적으로 그어진 붉은 선으로 인해, 그게 목표물이 남겨 놓은 경계선임을 알 수 있었다.

한차례 폭소를 터트린 뒤, 일제히 분노를 폭발시켰다.

“라쿤, 이 건방진 놈!”

“죽여 버린다. 폭스!”

“이 머글 새끼가!”

“윈도 솔져!”

과거의 별명들을 입에 담으며, 옛 악연들이 선을 넘었다.

그리고,

파파파팟….

변화가 시작됐다.

* * *

애애애애애앵….

알람 소리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있던 수많은 구경꾼들이 일제히 눈을 빛냈다.

“드디어….”

“시작하는군.”

“발록 대 피닉스의 결전이라니.”

물론, 그들의 대결 못지않게 관심이 가는 것도 있었다.

“CT헌터가 저 많은 숫자를 상대로 얼마나 선전하려나.”

“혜성 특수 1팀이 움직일 줄 알았는데. 들리는 소식으로 보선, 그들도 방관 중인 것 같던데.”

“일부러 그들 개입을 막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호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건가?”

끼리끼리 모인 구경꾼들은 각자 의견을 나누며 상황을 관찰하는 한편, 나름대로 견적을 내며 즐기고 있었다.

그중에서 유독 목소리가 높은 이를 꼽으라면, 역시나 이면의 마당발 멀록이라 할 것이다.

“메인 이벤트 전에, 잔챙이 대결도 제법 볼 만한 재미가 있겠어.”

그의 이야기에 함께 자리하고 있던 이면의 랭커, 사스콰치가 실소하며 말했다.

“흐… 잔챙이치고는 제법 쓸 만한 놈들이 많아.”

“하긴, A급도 수두룩하긴 했지.”

“악연이니 뭐니, 적당히 명분 앞세워 놓고, 나름대로 작업 좀 친 것 같던데.”

“정말 아티팩트가 있다면, 확실히 노려볼 만하지.”

말은 안 하지만, 이곳에 모인 랭커들 중 몇몇은 그에 대해서도 욕심을 부리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초인의 영역에 이르면 경험치의 중요도가 한풀 꺾이는 만큼, 그 같은 탐욕을 부리는 건 극히 소수일 터였다.

“흐… 이반나가 개입할 줄 알았는데, 그녀도 그냥 방관 중인 것 같네.”

사스콰치의 이야기에 멀록은 앞서 만났던 그녀를 떠올렸다.

‘그냥 방관만 할 것 같진 않았는데, 착각이었나?’

만약의 가정일 뿐이지만, 이반나가 개입했더라면 그에 맞춰서 또 다른 지원군이 등장했을 터였다.

발록 역시 남다른 인맥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을 텐데.’

내심 아쉽게 됐다면서 입맛을 다시는 한편, 당장 눈앞의 상황에 집중하며 눈가에 이채를 띠었다.

파파파팟….

목표물의 거처 주변으로 특수 트랩이 발동된 것인지, 돌연 알 수 없는 광채가 솟아나며, 밤거리를 밝히는 게 보였다.

“호오!”

“이거 참, 눈이 즐겁군.”

구경꾼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 * *

저 밖으로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마루는 피눈물을 삼키는 심경으로 거리를 내려다봤다.

그의 거처가 오르막길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불청객들의 진입 과정을 더욱 상세히 살필 수 있었는데, 그 때문에 슬픔도 더욱 컸다.

전방위에 걸쳐 솟구치는 빛무리를 확인한 까닭이었다.

‘사방으로 쑤시고 들어오는구나.’

그 말인즉, 군데군데 빠질 것 없이, 아주 알차게 트랩이 발동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마루는 괜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내 돈!’

10억이나 추가로 쏟아부은 트랩이었다.

기존에 설치되어 있던 트랩들의 가격까지 생각해 봤을 때, 플러스알파 가격도 억 소리가 나는 것이다.

쨍그랑… 쨍그랑….

환청처럼 돈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흑!”

결국, 참지 못했음일까?

또로록….

눈물 한 방물이 볼을 타고 흘러 버렸다.

* * *

한국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있는 그 시각.

지구 반대편이라 할 수 있는 산타카타리나 내부의 깊은 숲속에서, 이면의 랭커 프링쿨스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전방으로 하늘을 뚫을 듯 치솟아 오른 불기둥이 보였다.

이를 바라보며 절망하는 그의 뒤로, 추적 스킬이 있는 팀원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분은… 저 안에 계십니다.”

프링쿨스는 절망하듯 두 주먹으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쾅! 쾅! 콰앙….

“으아아아아~!”

울분이 터져 나왔다.

그답지 않게 흐트러진 모습이었지만,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들 역시 비슷한 심경이기 때문이었다.

인디안 존슨!

저 뜨거운 불기둥은 그의 무덤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