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드루와!
#17. 드루와!
프링쿨스는 외부에서 대기하던 중, 예정보다 너무 늦어진다는 생각에 의문을 느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엔트라 데스크를 확인하다가 글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서 발견한 메시지에 놀라 다급히 진입을 결정했고, 앞서 ‘이레귤러’가 발생했던 지점에 다다랐을 때, 눈앞의 불기둥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화르르륵….
불의 기둥을 마주했을 때, 직감적으로 산타카타리나에 들이칠 거대한 폭풍이 해결됐음을 알았다. 이레귤러의 파동이 사라진 게 증거였다.
‘대격변은 막았지만….’
너무 큰 희생이 뒤따랐음을 알았다.
‘…함께했어야 하는 것인데.’
일말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거대한 불길을 파헤치며 들어가고자 했지만, 안타깝게도 초인이라 불리는 그로서도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다.
불길은 마치 고정이라도 된 듯,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쉼 없이 타오르며, 주변을 뜨겁게 데우고 있을 뿐이었다.
‘꺼지지 않는 불이라니.’
저 안쪽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 확인 자체가 불가능했다.
엔트라 데스크!
존슨이 남긴 마지막 글을 떠올렸다.
[이레귤러의 이레귤러]
상황의 급박함 때문이었던지, 많은 내용이 올라와 있진 않았다. 두서없는 글귀와 문구였고 내용도 엉망이었지만, 중요한 포인트는 잘 담겨 있었다.
‘마족의 분신!’
차후 이레귤레를 커버하는 게 더욱 어려워졌다는 걸 알게 하는 내용이었는데,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 고민하게 만들었다.
‘혹시, 날 저격했던 것도?’
제대로 정체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고위종 몬스터들의 후방에 숨어, 꾸준히 그를 괴롭히던 존재가 있었다.
‘보통 실력이 아니었지.’
어쩌면 그것도 마족의 분신이지 않았을까?
그로 인해 이레귤러를 눈앞에 두고서도, 크게 한 방 먹으며 후퇴해야 했고, 결국 그의 영웅까지 부르지 않았던가.
그 결과가 너무 처참했다.
‘존슨….’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타오르는 불길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그가, 이내 입술을 짓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과감히 발길을 돌렸다.
팀원들을 돌아보면서 외쳤다.
“한국으로 가자!”
영웅의 유언을 따를 때였다.
* * *
트랩이 발동됐다.
파팟… 파파파팟….
사방팔방 솟구치는 빛무리에 깜짝 놀란 불청객들이 한데 뭉치기 시작했다.
밤의 어둠? 골목의 그늘?
이 갑작스러운 광채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당혹감 속에 주변을 살피던 그들은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뎠다. 다행히 어둠을 걷어 낸 것 말고는 별다른 이변은 찾아오지 않았다.
상황 변화에 맞춰 끼리끼리 뭉친 뒤, 각자 팀으로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동이 거듭되는 가운데, 문득 누군가 의문을 내비쳤다.
“이거… 원래 이렇게 길이 어지러웠나?”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이 길, 조금 전에도 왔던 것 같은데.”
그들은 같은 길만 빙글빙글 돌고 있던 것이다. 길이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었고, 그게 하나의 미로를 형성시키고 있음을 알았다.
그즈음 사냥이 시작됐다.
투웅….
시원한 총성이 울려 퍼지고,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컥!”
“저격이다.”
다급히 은폐 엄폐를 하는 가운데, 연달아 총성이 터져 나왔다.
투웅… 퉁… 투웅….
사방에서 핏물이 튀고, 그즈음 깨달았다.
‘숨을 곳이… 없어?’
어둠이 걷히고 나니, 그곳은 마치 개활지처럼 불청객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몸을 숨길 장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를 위해선 필연적으로 뒷걸음질을 쳐야만 했다.
나설 수 없는 상황, 일제히 담장 너머로 시선을 보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될 일.’
수신호가 오가고, 팀마다 공통되게 담을 넘기 시작했다.
투웅… 퉁….
그 순간 두더지 잡기를 하듯, 고개를 내민 불청객들의 머리 위로 총탄 세례가 쏟아졌다. 하지만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인 터라, 몇몇은 담을 넘는 걸 성공하는데, 그 순간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아아악!”
각 팀의 팀장들이 다급히 외쳐 물었다.
“무슨 일이야?”
“왜 그래?”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아아악!”
“꺼허억!”
그저 알 수 없는 비명과 신음성만이 담장 너머를 진동할 뿐이었다. 묘한 두려움이 밀려들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순간이었다.
미지의 공포가 그들을 휘감았다.
* * *
발록은 신기하단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흠… 이런 트랩이라니.’
감각계에 영향을 미치는 트랩이란, 그야말로 최상위권에 있는 재주였다. 그런 걸 이 넓은 범위에 걸쳐서 펼쳐 내는 모습에, 첫 방문 당시의 감각을 되새겼다.
‘버킹엄에 비견되는 줄 알았더니, 오히려 더한 것 같군.’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저 화려한 빛무리 너머로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져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경각심이 샘솟았다.
작정하고 기세를 발산하며 사방으로 포스를 휘두른다면, 충분히 깨부수며 전진할 수 있을 것이지만, 굳이 그렇게 하진 않았다.
‘괜히 변수가 발생하면 안 되지.’
목표물의 거처 주변으로 놀라운 수준의 트랩들이 깔려 있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약자에게 이를 감췄다.
‘뭐, 트랩에 대한 기본 정보는 퍼져 있었으니까.’
굳이 알릴 필요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지만, 사실은 이 위험한 현장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어중간한 경계심으로 건드릴 수준이 아니지.’
이유인즉,
‘쓰레기들을 소각하기엔 딱 좋은 장소군.’
이를 통해 이면의 문제아들을 싹 청소하기 위함이었는데, 그들이 발악하며 몸부림을 치는 만큼 트랩의 농도도 옅어질 것이기에, 그야말로 일석이조가 따로 없었다.
그렇게 걸음을 늦출 때였다.
파파파팟….
그의 앞으로 새로운 형상의 빛무리가 솟구쳤다.
‘화살표?’
마치 그에게 이동 방향을 지시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는데, 이에 의문을 내비치던 것도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을 시작했다.
새로운 빛무리 너머에서 익숙한 향기가 전해져 온 까닭이었다.
‘피닉스!’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 * *
새삼스레 놀라야만 했다.
‘보통이 아닐 줄은 알았지만, 저 정도로 엄청날 줄이야.’
이선은 뒷산에서 동네 전체를 내려다보며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허….”
박수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작지 않은 공간이건만, 그 넓은 영역에 걸쳐서 마루의 트랩이 발동되고 있는 게 보였다.
빛무리에 휩싸인 구역으로 트랩의 범위를 살필 수 있었기에, 이를 한눈에 살피는 것도 무리가 없었다.
짧게 감탄사를 내뱉는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의 오른팔에 채워진 깁스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터트렸다.
‘골 때리는 놈이야.’
엉망이 된 팔을 가지고 어찌 상황에 대처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거기서 마루가 황당한 제안을 꺼낸 것이다.
―강화석 발라.
그야말로 벙찌는 소리였다.
―깁스가 튼튼하면 좀 더 버틸 수 있잖아.
그 아까운 포인트를 겨우 이런 싸구려 깁스에 바르라는 제안도 황당했지만, 더욱 어이없는 건 그게 또 제법 그럴싸한 방법이란 점이었다.
결국,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질러 버렸다.
[+3 단단한 깁스]
그렇게 강화석을 7개나 들인, 초고급 깁스가 완성되어 버렸다.
확실히 팔의 지지대가 한층 튼튼해진 느낌이라, 괜히 든든해지며 자신감이 솟는 것 같았다.
그래봤자 초인의 공격을 얼마나 버티겠냐 싶지만, 그게 또 그렇지도 않았다.
강화석 효과인지 포스 전달이 한층 매끄러워진 것인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할 거라 여겼다.
화력 전달이 제대로 된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인 부분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이 깁스를 통한 공격이 변수로 작용할지도 몰랐다.
‘확실히 이 팔을 휘두르면 당황하긴 하겠네.’
실소를 내뱉는 한편, 호흡을 가다듬으며 다가올 격전을 대비했다.
저 멀리 점차적으로 다가오는 익숙한 불꽃 향기를 맡은 까닭인데, 그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공격적인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꼴이 말이 아니군.”
기다리던 존재, 발록이 그리 말하며 뒷산을 오르는 게 보였다. 이에 깁스를 흔들어 보이며 답해줬다.
“한 번 떨어졌던 건데, 이 정도면 양호하지.”
이에 발록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올라왔다.
‘…핌프가 상대였지.’
이선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생각에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그렇잖아도 불공정한 승부인 탓에 맘이 좋지 않건만, 이래서야 그에게 너무 유리하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승부는 승부였다.
“약한 소리 한다고 봐줄 생각 없어.”
“후… 기대도 안 했다.”
언뜻,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는, 마치 오랜 친우들이 간만에 친분을 나누는 것 같은 대화였지만, 주변 풍경은 전혀 달랐다.
파사삭… 푸슥….
은연중에 내뿜는 기세가 뜨거운 열기로 화하면서, 주변 일대가 점차적으로 물기를 잃으며 말라가고 있었다.
둘 다 화력을 대표하는 초인들이다 보니, 자연스레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두 초인이 본격적으로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하니, 풀 한 포기 남김없이 잿더미가 되어 흩어져 버렸다.
화르르륵….
화르륵….
두 초인의 불길은 전혀 달랐다.
이선의 화염은 마치 벌건 대낮, 태양처럼 타오르는 붉은빛이라면, 발록의 불길은 밤하늘에 녹아들 듯, 검붉은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게다가 명확한 형태 없이 타오르는 이선의 불길과 달리, 발록의 불길은 마치 갑주의 형태로 그를 휘감으며, 기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그 모습을 보면 공통된 단어를 입에 담고는 했다.
악마!
머리 위로는 두 개의 사나운 뿔이 솟구쳐 있고, 등 뒤에는 너무나도 선명한 한 쌍의 날개가 펄럭였으며, 그 아래로는 채찍처럼 흩날리는 꼬리가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불길로 이뤄진 까닭일까?
불의 악마!
발록에게 따라붙는 또 다른 이명이었다.
애초에 발록이란 것도 이명의 한 종류였는데, 그의 본명을 아는 이들이 없다 보니, 가장 대표적인 이명이 이름을 대신하는 것뿐이었다.
이선과 발록 모두 이능계의 자연 조작 능력자건만, 발록은 오히려 강화계의 신체 변형 능력자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 주고는 했다.
이 둘의 전투만 봐도 그 차이가 드러났다.
화르르륵….
거리를 두고 불길을 쏘아 내며 선공을 치는 이선.
화아악!
불의 날개를 움직여 전면을 방어하는 한편, 과감한 돌격으로 거리를 좁혀 가는 발록.
발록은 이선이나 여타의 자연계 능력자와 달리, 불을 쏘아 내는 게 아닌 휘감은 채, 근접전을 선호하는 것이다.
언뜻, 제퍼드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그 둘의 차이는 분명했다.
땅울림을 통한 거리 공격이 가능한 제퍼드와 달리, 발록은 제 몸에 휘감긴 불길만이 공격 수단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 거리 공격이 가능하긴 했다.
촤아아악!
접근이 쉽지 않아 꼬리를 휘두르며 공격을 하는데, 이마저도 거리 제한이 있는 터라, 이선이 몸을 빼는 것으로 해결되어 버렸다.
“쥐새끼 같은 놈!”
발록의 성난 외침에 이선이 피식 웃으며 반격했다.
“기왕이면 다람쥐라고 해 줘.”
평소라면 좀 더 과묵하게 무게감 있는 전투를 즐기지만,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하다 보니, 이런 식으로 입을 놀려 가며 판세를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놈!”
화르르륵….
발록이 범위를 늘리기 위한 조치로서 화력을 한껏 끌어올리니, 악마의 갑주가 더욱 크게 확장되는 게 보였다.
그에 맞춰서 이선 역시 기운을 가득 끌어내며 대항했고, 그렇게 두 초인들의 본격적인 격돌이 시작됐다.
* * *
마루는 저 한편으로 거대한 화마가 솟구치는 걸 보며 작게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괴물들이네.’
그는 두 초인의 격돌을 돌아보면서도 손가락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투웅… 퉁… 투우우웅….
시야가 따로 노는 와중에도 정확한 저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는 남다른 스킬 투자의 결과물이었다.
[삼시새끼 ― 눈깔 세 개인 놈]
두 눈이 따로 노는 [사시]스킬의 상위 버전으로서, 이마 위로 세 번째 눈이 뜨이는 스킬이었다.
자세히 살피면 실제로 그의 이마에 하얀 광채가 머물고 있었는데, 타인에겐 광채로 보이는 그게 바로 세 번째 눈이었다.
그 세 개의 눈이 전부 따로 논다는 것도 나름의 포인트였다.
세 번째 눈의 놀라운 점이라면, 마스터 등급에 이를 경우 360도 돌아가며, 전방위를 살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이마 높이를 기준점으로, 광채가 빙글빙글 돌면서 주변 상황을 전부 체크하고 있었다.
그의 트랩 발동 이후로 사방 가득 넘실대는 긴장감을 살필 수 있었는데, 짐작건대 언제 어디서 폭발물이 터져 나올지 몰라 저리 움츠리는 것이리라.
‘꿀깨나 빨았으니까. 슬슬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
마루는 실소하며 메시지를 날렸다.
―폭탄 같은 거 없어, 쫄지 마.
별다른 재주를 부린 건 아니고, 그냥 준비한 마이크와 스피커로 사운드 빵빵하게 내질러 줬다.
쉬이 믿기 어려운 소식인 터라, 오히려 낚시라 여기며 더욱 목을 움츠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는데, 마루는 그에 도발하듯 마이크를 잡았다.
―부랄 두 짝 건다.
확실히 자극이 되었던 듯, 곳곳에서 솟구치는 사나운 기세가 느껴졌다.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드루와!
사방팔방 난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