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Fu…….
#18. Fu…….
저 멀리 뒷산에 피어오르는 불길을 보며 수많은 게스트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이런, 하필이면 저런 산중에서.”
“갑작스러운 사이렌부터 위치 선정까지, 아무리 봐도 민간 피해를 고려한 느낌인데.”
“흠… 피닉스와 발록 사이에 약조라도 있었나?”
“악연이래도 인연은 인연, 둘 사이에 따로 연락망이 있을지도 모르지.”
수많은 랭커들이 상황에 대한 의심을 할 때, 남다른 마당발로 그만큼 다양한 정보를 취급하는 멀록이 답을 끄집어냈다.
“그러고 보니, 발록과 CT헌터가 만났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이거 헛소리라고 생각했더니, 아무래도 그게 진짜였나 보네.”
감탄이 절로 나왔다.
“허… 지금 이 상황에 발록을 찾아가다니. 그놈도 보통 미친놈이 아니네. CT헌터, 확실히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겠어.”
대대적인 이동이 시작됐다.
발록 VS 피닉스!
그 역사적인 결전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 흥미진진한 전장을 시야에 담기 위함인지, 양측을 전부 시야에 담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이동을 거듭했다.
그런 장소가 몇 없다 보니 뿔뿔이 흩어져 있던 랭커들이 제법 뭉쳐 들기 시작하는데, 개중에는 악연도 여럿 있었던 터라, 자연스레 흉흉한 분위기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워~ 워! 진정하라고. 이러다가 저기 뜨거운 남자들한테 들키겠어. 세기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는데, 괜히 방해하지 말자고.”
거기서 마당발 멀록이 나섰다.
그는 욕을 먹더라도 적당히 먹는 타입이다 보니, 중재자 역할로는 가장 합당한 위치에 있었다.
“정 붙고 싶으면, 따로 빠져서 붙어.”
그러며 몇몇 열을 올리는 이들에게 제안했다.
“안 보이는 데서 치고받지 말고, 기왕이면 시야에 보이는 데서 좀 붙어 주라. 그래야 따로 돈이라도 걸고 응원을 할 거 아니냐.”
“지랄한다.”
“미친, 도박꾼 새끼!”
그 너스레에 졌다는 듯, 일제히 백기를 들며 기세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크으… 아깝다.”
정말 아쉽다는 듯 혀를 차는 모습에, 일제히 그를 향해 엄지를 뒤집었지만, 멀록은 어깨를 으쓱이며 그들의 비난을 튕겨 낼 뿐이었다.
“자아, 자! 그럼 상황도 정리된 것 같은데, 차분히 세기의 대결이나 구경하자고. 아, 혹시 돈 걸 사람은 이야기하셔.”
그의 절친이라 할 수 있는 가네샤가 조용히 다가와 뒤통수를 갈기며, 수다스러운 멀록의 주둥이마저 제압하니, 훌륭한 관람 분위기가 마련될 수 있었다.
* * *
폭발물이 없다는 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실제로 마루는 거리 어디에도 폭발물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 동네 하나 말아먹을 작정을 했더라면, 저 많은 숫자가 덤비더라도 문제없었을 것이다.
‘대신 평생 이면에서 썩어야겠지.’
적당히 벌금을 무는 선에서 폭발물을 설치할 수도 있지만, 마루는 그마저도 자제했다.
세상에 커다란 충격을 주기 위해서라도, 그는 폭발물이 아닌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번 상황을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트랩은 능력으로 치면 안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단순한 폭발 트랩이 아닌, 감각 기관을 놀리는 재주라면, 능력의 한 부분으로 치기에 충분했다.
그리해야 전 세계에 합당한 경고가 될 것이기에, 더더욱 폭발물은 사용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골치 아픈 건, 그 와중에도 제약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총기 계열 각성자!
그에게 붙은 꼬리표에 어울리는 능력을 보여야 했다.
각종 스킬들로 무장한 채, 쌍둥이를 경탄시켰던 아이언슈트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분명 상황이 수월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더 큰 위험을 불러올 뿐이기에, 오늘은 철저히 저격수로서 존재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10억이나 들였으니.’
또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며 참아 냈다.
사방팔방 솟구치는 빛무리 속에서, 10억이 한 줌 재가 되어 날아가고 있었다.
폭발물은 없다.
대신 더욱 신묘한 트랩들이 깔려 있었다.
존슨에게 배웠던 마석 결계술이 그 중심에 있었는데, 그와 같은 수준으로 여덟 개짜리 결계는 펼치는 건 아직 무리였지만, 어찌어찌 여섯 개까진 가능했다.
사실, 그의 한계는 다섯 개까지였는데, 스토어라는 편법을 통해 잠시간 여섯 개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반올림]
아주 독특한 아이템으로서, 장비의 성능을 계산한 뒤, 반올림을 시켜 주는 물건이었다.
결계에도 통용되는 것으로, 만약 그가 설치한 마석 결계의 한계점에 낮았다면, 아무 변화 없이 포인트만 소비하고 끝났을 터였다.
‘루미의 상세 설명 덕분에, 소비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
게다가 일회성 물품에 시간 제한도 있었다.
발록과의 거래에 진입 날짜를 끼워 넣은 건, 이 같은 이유가 결정적이었다.
‘오늘 안 왔으면, 포인트만 날려 먹는 거였는데.’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사방 가득 펼쳐진 빛의 물결을 살폈다.
저 빛무리는 저들 불청객들이 걸어야 할 길목을 밝히는 것으로, 만약 이를 벗어나려 한다면?
“끄아아악!”
“아아아악!”
저처럼 처절한 울부짖음을 터트리게 될 터였다.
환각 결계!
담장을 넘어 빛을 벗어나려 들면, 아주 거대한 어둠이 펼쳐지는데, 거기에는 직접적인 물리 트랩도 마련되어 있었다.
아주 단순하게 동물용의 덫부터 시작해서, 각종 가시밭과 송곳 등, 물리적인 함정들을 잔뜩 설치해 놨다.
게다가 어둠에 새겨 놓은 환각 현상과 함정에 발라진 독초의 연쇄 작용으로 인해, 그들은 끝없는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죽게 될 터였다.
함부로 거리를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였다.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보니, 거리를 서성이는 이들은 더 큰 공포 속에 움츠러들며, 저 멀리 보이는 것처럼 사냥하기 좋게 모여드는 것이다.
‘그래. 보다 보니까 기억나는 얼굴들이 있네.’
마루는 몇몇 얼굴 속에서 과거 사건들이 떠오르며, 악연들의 면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돈 떼먹으려 했던 개새끼!’
처컥, 착… 투웅….
‘계약서로 사기 치려던 돼지새끼!’
퉁… 투우우웅….
‘감히 나한테 밑장 빼던 소 새끼!’
투웅… 퉁….
살피고 보니 죄다 금전적으로 엮인 놈들 태반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러다 기겁할 만한 얼굴도 하나 발견해 버렸다.
―비누 좀 주워 줄래?
놈의 음성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등짝 좀 보자!
“히익!”
기겁하며 다급히 총탄 세례를 퍼부었다.
투투투투투투….
한 방에 탄창을 쏟아 내는 과격한 저격이었다.
“헉… 허억… 후우우우….”
곤죽이 된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빠르게 탄창을 교환하며 쉼 없이 저격을 이어 갔다.
솟구치는 핏물에 분노하며 그에게 다가오고자 하지만, 거리 곳곳에 감각을 교란시키는 결계와 환각제가 발동 중이다 보니, 마치 미로처럼 빛무리 속을 헤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가 마련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 * *
에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전방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분명히 미로 구간을 벗어났다. 쭉 뻗은 언덕길만 올라가면 끝나는 것이다.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적지는 쉬이 나타나질 않았다. 아니, 눈앞에 보이기는 했다.
‘거리가 좁혀지질 않아?’
마치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는 듯, 저 좁은 언덕길이 너무도 크고 넓게 확장되며, 그로 하여금 끝없는 마라톤을 하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이건, 뭔가….’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을 땐,
투웅….
너무 늦어 버렸다.
“커헉!”
호흡이 가빠 오는 가운데, 저 멀리 언덕길 너머로 옛 악연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었다.
“…윈도, 솔져… Fu…….”
이내 시야가 암전되고, 숨결이 흩어졌다.
* * *
겨우 1미터!
마루에게 닿기 위한 언덕길 아래, 짧게 펼쳐져 있는 마석 결계로 인해, 마치 1m를 100m, 1,000m처럼 보이게 만들며, 불청객들의 거리감을 엉망으로 조작했다.
단순히 마석 결계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었다.
이곳까지 이르며 들이마신 각종 환각제가 겹겹이 쌓이고 쌓여, 감각 기관에 커다란 오차를 발생시킨 뒤, 마석 결계의 공감각 오류 현상과 맞물리며, 극한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곳곳에서 마치 러닝머신을 뛰기라도 하듯,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물론, 이를 피하는 방법이 없진 않았다.
‘오는군.’
마루는 정답을 찾아 움직이는 이들을 확인했다.
공포심을 이겨 내며, 기어이 담장을 타고 어둠 너머로 길을 개척해 낸 이들, 그 겁 없는 문제아들이 저격 포인트로 접근하고 있었다.
쉬운 방법은 아니었다.
‘최악이네.’
같은 팀원들을 미끼로 던져서 담장 너머를 거듭 확인한 뒤, 그렇게 동료의 시체를 밟아 가며 이곳까지 다다른 것이다.
“라쿤! 이 빌어먹을 놈.”
“죽여 버린다. 으아아아!”
그들의 등장에 마루도 대처를 달리했다.
몇 차례 손목을 까딱이자 총기가 모습을 변화시키고, 원거리 저격수에서 쌍권총을 든 근거리의 건가드 태세로 전환됐다.
흠칫!
당장이라도 달려들려던 불청객들의 걸음에 제동이 걸렸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분노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마루를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건, 저격이 아닌 바로 저 근거리의 건가드가 아니던가.
‘일단, 대치만 하고 있어도 충분해.’
‘다른 팀이 올 때까지만 버티자.’
‘시간만 끌자.’
‘씨발!’
적당히 눈치를 봐 가며 거리 조절만 하려 드는 그들의 모습에, 마루는 마치 그들을 무시하듯 거리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금 저격을 시작했다.
권총 모드로 총기를 변형했지만, 사실 이 정도 범위에선 저격 모드와의 큰 차이는 없었다.
투웅… 퉁… 투우우웅….
묵직한 총성이 연달아 울려 퍼지고, 곳곳에서 허수아비처럼 휘청대며 쓰러지는 이들이 보였다.
치욕이었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해 가며, 등까지 보이면서 저격을 하는 모습에, 불청객들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죽여!”
뒤이어 폭발하듯 외치며 달려들었다.
그에 맞춰 마루의 쌍권총도 현란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 * *
뜻밖의 통수라고 해야 할까?
‘하!’
이선은 자신의 발목을 붙잡은 화염 채찍을 바라봤다. 그건 발록의 꼬리였다.
‘…부분 변화도 가능했던가?’
기억을 아무리 뒤져 봐도 없는 모습이었다.
항상 갑주 전체의 크기가 변형되었을 뿐, 개별 부위만 늘어나고 줄어드는 경우는 없었다.
‘그사이에 발전이 있었다는 거겠지.’
돌연, 뿔과 날개가 확 줄어든다 싶더니, 꼬리가 배 이상 길어지며, 기어이 그를 잡아채 버린 것이다.
“잡았다. 이… 다람쥐새끼!”
“…그걸 또 기억했냐?”
이선이 헛웃음을 지으며 열심히 발을 비틀어 보는데, 어찌나 강하게 묶였는지, 쉬이 풀리려 하지 않았다.
한껏 화염을 발산하며 끊어 보려고도 노력했지만, 발록 역시 그 강렬한 포스를 꼬리에만 집중시키는 듯, 오히려 조이는 강도만 높아질 뿐이었다.
그극… 그그극….
발록이 꼬리 길이를 줄이며, 조금씩 이선과의 거리를 좁히려 들었다. 이에 이선이 버텨 보려 하지만 쉽지 않았다.
포스양에 있어서는 랭커들 중에서도 탑이라 불리는 게 바로 발록이 아니던가.
어릴 적 실험이 그의 두뇌만 뛰어나게 만든 게 아니라, 포스 축적량에 있어서도 남다른 재주를 준 까닭이었다.
화르르륵… 퍼퍼펑!
버티는 한편, 연신 불길을 쏟아 내며 기회를 노리지만, 발록은 제 날개를 실드처럼 휘감으며,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그렇게 조금씩 좁혀지던 거리가 드디어 발록의 간격까지 이어지는데, 거기서 이선이 반전하듯 몸을 띄웠다.
당기는 힘에 몸을 맡기며 기습처럼 달려드는데, 그 모습에 발록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빤한 수작!”
계획이 들켰지만, 이선은 오히려 미소를 띠었다. 이에 의문을 느끼려는 찰나, 뜻밖의 반전이 한 차례 더 발생했다.
‘헛!’
깁스를 찬 팔이 거센 불꽃과 함께 스트레이트로 뻗어진 것이다.
퍼억!
생각지도 못한 일격이었다.
쿠당탕… 쿠웅… 쿠르르릉….
그 때문에 제대로 한 방 먹어 버렸고, 전신에 힘이 쭉 빠지며 꼬리까지 풀려 버렸다.
뿐만 아니라 불의 갑주까지 꺼져들고 있었다.
푸쉬이익….
이선이 눈가에 이채가 스쳐 갔다.
‘성공했나?’
좀 전 일격으로 반전만이 아니라, 승부까지 결정짓기 위해, 과하다 못해서 넘쳐흐를 수준의 포스를 담아 휘둘렀다.
오른팔의 감각이 엉망이다 보니, 제대로 들어갔는지 손맛을 인지할 수 없어, 이렇게 두 눈으로 상황을 살펴야만 했다.
‘젠장!’
그리고 이내 실망감이 동공을 흔들었다.
언뜻 불의 갑주가 사라진 듯 보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 위로 흐릿한 뿔의 형상이 남아서 어른거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좀 전의 일격이 치명타는 됐지만, 결정타는 되지 못했다는 증거였다.
아니나 다를까.
비틀대며 일어나는 발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그라졌던 불길도 다시 거세게 피어나며, 한층 사나운 악마의 형상을 갖춰 나가는 게 보였다.
“감히, 날 속이… 으음….”
속았다고 여겨 폭발하려던 것도 잠시, 발록이 신음하며 목소리를 죽였다.
일격의 반전!
그로 인한 피해는 이선이 더 컸던 것이다.
깁스는 박살 나 버렸고, 그 안으로는 핏물 범벅이 된 오른팔이 드러나 있었다. 어찌어찌 이어 붙인 팔뚝의 경계 사이로, 마치 폭포수처럼 핏물이 넘쳐흘렀다.
화르르륵… 화륵….
포스를 한껏 끌어 올리며 지혈하는 모습과 순식간에 땀범벅이 된 몰골에서, 그의 현 상태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으음….”
한 방에 모든 걸 걸었던 반동이었다.
멍청한 짓이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몸뚱이가 정상이 아닌 상황에 발목이 잡힌 채, 발록의 간격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어설픈 각오로는 풀려날 수 없음에, 차라리 큰 결심을 하며 반전과 역전까지 노린 것이다.
“하… 이거, 엿 됐네!”
그리 말하는 이선의 안색은 어느새 하얗게 질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