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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Die―Sun!

#21. Die―Sun!

소문 무성하던 아티팩트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장비는 좋아 보이네.”

딱 그 정도의 무구만 비친 게 전부였다.

때문에 관련한 진실 여부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놈은 되겠네.’

랭커들이 지닌 남다른 감이, 예비 초인을 감지하게 만들었다.

‘B급 A형 정마루.’

그 이름을 뇌리 깊이 각인하는데, 각자 그 의미가 달랐다.

‘세계의 축복이군.’

‘더 든든해지겠어.’

‘부담이 줄었군.’

등등, 마루의 등장을 환영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손가락 깔짝대는 게 전부인 놈이, 랭커?’

‘생긴 게 맘에 안 드네.’

‘싹수가 노랄 때 밟아 놔야 하는데.’

새로운 경쟁자를 향해 불순한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상당했다.

그렇게 환영과 경계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사이, 저 멀리 파이널 무대가 막을 내리고 있었다.

* * *

라일롱은 연신 시꺼먼 핏물을 게워 내며 주변을 돌아봤다.

“쿨럭… 컥… 커허어억….”

호흡이 가빠져 오는 가운데, 그의 시야 가득 담겨 드는 죽음의 그림자들이 보였다. 지난 회합에서 만났던 악연 모임의 수뇌부들이 차디찬 시체가 되어, 두서없이 너부러진 게 보였다.

그는 최후의 생존자였다.

아니, 몇몇 숨을 헐떡이는 이들이 보였지만, 시체나 다름없는 몰골로 핏물 속에 잠겨 들고 있을 뿐이었다.

유일하게 고개를 세우고 있는 건, 오직 그 한 명밖에 없었다.

“대체… 넌, 대체 뭐냐?”

이 많은 최정예의 실력자들을 혼자서 상대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트랩에 관해서는 스킬과 무관한 부분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면 격돌을 받아치는 건 이야기가 달랐다.

몸놀림은 분명 B급의 기준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B급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특별한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하다 여겼다.

“어떻게 이런… 쿨럭…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한 거지? 우웩!”

연신 핏물을 게워 내는 그의 두 눈 가득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았고, 피할 수 없는 것도 알았다.

그렇기에 죽기 전에 비밀이라도 듣고 싶었다.

“정말 소문처럼, 특별한 아티팩트의 힘이냐?”

마루는 순간 여의주를 떠올렸다. 그 역시 아티팩트로 분류되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그 이상의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저어 버렸다.

그러면서 라일롱이 바라고, 저 멀리 훔쳐보고 있을 이들이 원할 법한, 입맛에 맞는 대답을 꺼내 들었다.

“다이―선(Die―Sun)이라고 알지?”

라일롱이 두 눈을 부릅떴다.

“주… 죽음의 태양….”

그건 흔히 말하는 각성제의 한 부류였다. 굳이 비유하자면 비각성자의 히든카드라 불리는 ‘뱀플’과 비슷한 종류로서, 각성자의 뱀플이라고도 칭해지는 물건이었다.

마루도 나름 B급으로 신체의 제약을 걸고 전투를 치렀지만, 결국 감각을 비롯하여 여러 방면에서 등급을 아득히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 줬다.

아직 승급 사실을 밝힐 생각이 없는 만큼,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핑곗거리가 필요했고, 그렇게 선택된 게 바로 다이선이었다.

악마의 물약이라 불리며, 유통이 금지된 비약이기에 더더욱 얼버무리기 좋은 소재이기도 했다.

‘눈가리개로는 딱이지.’

오늘 보여 줘야 할 건 그의 전투력이 아닌, 트랩을 비롯한 각종 외적 물품들이었다.

다이선 역시 ‘물품’에 포함되는 데다가, 전투적인 측면도 상당 부분 커버 가능하단 점에서, 이만한 물건이 없었다.

‘게스트들을 낚기에도 딱이고.’

숨어서 지켜보고 있을 관전자들을 위한 트릭이자 트랩이기도 했다.

라일롱이 믿기 어렵다는 음성으로 물었다.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 있지?”

다이선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그걸 먹는 자들은 반드시 죽음에 이르기 때문이었다.

그에 이르는 시간은 30분!

지금의 전투는 1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마루의 모습이 믿기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다이선이 위험한 건 잠재력을 극한까지 폭발시키는 탓인데, 보통 이런 종류의 약물은 생명의 위기가 발생하면 급격히 체력이 다운되며, 강제 기절 및 가사 상태로 빠트리고는 했다.

그마저도 C~D급 수준이나 사용할 법한 약물들로서, B급 이상이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다이선 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이선은 한계에 이르러도 잠재력을 강요했고, 생명력의 바닥까지 끌어다 쓰게 만들었다. 생의 불꽃을 재가 남을 때까지 태워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 물약과 상성이 맞다고?”

최초, 유통 금지가 된 이유에는 부작용이 죽음과 직결되는 탓도 있지만, 실험 과정에서 워낙 많은 희생이 뒤따른 터라, 그 연구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는 점에 있었다.

반드시 각성자를 상대로 실험이 이뤄지기에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그 때문에 약물의 발동률이 반반인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은 100%였다. 상성이 안 맞는 이들의 경우, 의미 없이 생명력만 줄줄 흘리다 저승으로 끌려가는 것이다.

“가는 길 선물로 실물은 보여 줄게.”

그러며 마루는 품 안에서 악마의 비약을 꺼내 들었다.

마치, 태양을 담기라도 한 듯, 영롱한 황금빛으로 밝게 빛나는 액체가 작은 병 속에 담겨 있었다. 이를 본 라일롱이 깜짝 놀라 외쳤다.

“다이선!”

정말 그 실체를 눈으로 확인한 까닭인지, 라일롱의 동공 가득 격렬한 경련이 일었다.

유통이 금지된 물건이다 보니, 이면에서도 쉬이 볼 수 없는 약물이었고, 혹여 루트를 알게 될지라도 어마어마한 가격 때문에 선뜻 구입할 수도 없었다.

경악하는 라일롱의 모습에 마루는 내심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짐작건대 저 멀리 숨어서 관전 중인 게스트들도 같은 반응을 보일 거라 여겼다.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이건, 진품이니까.’

레베카를 통해 구입한 물건으로, 놀랍게도 교황청의 암실에는 이와 비슷한 물건들이 상당 부분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엔트라 데스크의 A등급 특전을 이용해, 교황청에 있는 성녀 레아와 장거리 물물 교환을 한 것이다.

물건 값어치가 워낙 높은 탓인지, 그만큼 포인트 소모가 많았을 터, 차후 제대로 된 보상을 해 줄 생각이었다.

라일롱이 물었다.

“어떻게… 쿨럭, 컥… 그렇게 멀쩡할 수 있지?”

“중화제가 있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마루는 슬쩍 시선을 돌려, 주변을 쭈욱 돌아보며 말했다.

“나한텐 실력 좋은 브라더가 있거든.”

그건 라일롱이 아닌 숨어 있는 게스트들을 위한 대사였다.

인디안 존슨!

웃기게도 그 이름 하나면 어지간한 건 가볍게 넘겨 버릴 수 있었다. 만능 치트키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아….”

라일롱 역시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는데, 그 모습에 마루는 살짝 양심에 찔렸다.

‘가는 길 선물로 구라를 한 보따리 선물하려니, 좀 미안하네.’

일부러 살려 놓으며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는 점까지 생각하니, 제법 뜨끔한 느낌이었다.

‘이거, 나중에 형님이 듣고 따지면 할 말이 없는데.’

존슨이 찾아올 때가 걱정이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었다.

‘투 플 한우면 되려나? 크흠!’

코를 쓱 닦는 와중에 라일롱의 고개가 꺾이는 게 보였다. 답을 구했다는 후련함에 결국 마지막 미련을 떨쳐 내며, 그렇게 생명의 불씨를 놓아 버린 것이다.

“푸후우우….”

마루는 주변을 쭈욱 돌아봤다.

“이 정도면 시체 처리 특수팀으로 불러야겠네.”

너무도 많은 죽음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음에, A급 전문가의 필요성을 느꼈다.

‘비싼데.’

그런 이유로 망자들의 주머니를 열심히 뒤졌다.

전리품을 챙길 시간이었다.

* * *

멀록의 두 눈 가득 탐욕의 빛이 어른거렸다.

‘다이선의 중화제라고?’

정보 계열에 발을 딛고 있기에 더더욱 놀랍고 또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군침이 절로 돌았다.

이를 들은 건 다른 랭커들 역시 마찬가지인 듯, 관련한 화제로 시끄러워졌다.

“아니, 그런 게 있었어?”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연구소 제품 맞아?”

“존슨 그 작자가 구한 거라면, 연구소가 아닐지도 모르지.”

“던전 물품이라는 건가?”

자연스레 존슨의 발자취를 좇게 되는데, 멀록은 그들에게 귀를 열어 놓는 한편, 멀리 보이는 마루의 모습을 꾸준히 눈에 담았다.

그러며 앞선 전투를 복기했다.

‘신체 능력은 B급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어.’

다이선은 ‘스킬’ 잠재력을 폭발시켜 주는 물건이었다. 이를 잘 되새긴다면 마루의 능력에 대해서도 유추할 수 있을 터였다.

‘일단, 이걸로 강화계의 곁다리가 아닌 건 확실해졌네.’

마루가 다이선으로 노렸던 또 다른 트랩이 발동했다. 멋대로 그의 스킬을 정의해 주고 있는 것이다.

‘감각일까? 아니면 시야?’

멀록은 꾸준히 복기하다 마루의 저격을 떠올렸다.

‘근접과 원거리를 한눈에 살피던 시야각! 그렇다면 감각보단 시야 계열이겠네. 확실히 그쪽이란 이야기가 많긴 했으니.’

열심히 이를 분석하고 있었는데, 이는 이곳에 모인 모든 랭커들의 공통된 반응이기도 했다.

“다이선 영향이라 해도 실력이 좀 과한 것 같은데.”

“말했잖아. 머리가 깨인 놈 같다니까.”

“흠… 그게 다이선이랑 만나서 시너지 효과가 났다?”

“그나저나 중화제는 도통 모르겠네.”

“아무래도 존슨을 한번 만나 봐야 하나?”

다이선이란 촉매제 때문인지, 마루에 대한 집중력이 극도로 높아졌고, 그들을 이곳으로 불렀던 발록에 대한 생각은 어느새 뒷전이 된 지 오래였다.

* * *

솔직히 맘에 들지 않는 의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였던 건, 양녀 산드라를 위해서일 뿐이었다.

‘얼음여제의 등장 타이밍이 아주 좋았지.’

발록은 그리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정당한 의뢰며 계약이었음에도, 어떻게든 발을 뺄 생각만 하던 자신이 우스웠던 것이다.

‘일단, 변명거리는 챙겼는데….’

이걸로 강만기를 압박하며 화염석을 받아 낼 생각이었다. 물론, 계약 위반이니 뭐니 하면서 내어 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나?”

그때는 마루가 건넨 파일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딸아이를 생각한다면,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추잡하게 굴 수 있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며 광호 길드로 향하는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또 뭐야?’

길드의 본진 가득 죽음의 그림자가 깔려 있었다. 마치 좀 전까지 머물던 전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느낌이었다.

연상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반란?’

일종의 폭동이 일어난 듯 보였는데, 저 아래 주차장 부근의 풍경이 실로 흥미로웠다.

구석에 몰린 강만기와 이를 에워싼 일단의 무리까지, 호위로 보이는 이들은 제압되어 바닥을 뒹구는 게 보였다.

그야말로 성공적인 반란 혹은 혁명의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으득… 이 방계의 천한 것들, 감히 이따위 짓을 벌이다니. 네놈들이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성난 강만기의 외침이 주차장 가득 울려 퍼졌다.

“회장님이 아시면, 네놈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이에 반군, 방계 무리의 수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그렇죠. 저희도 그 회장님이 무서워서 지금껏 얌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던 겁니다.”

“그럼 끝까지 대가릴 박고 있었어야지!”

“생각해 보십시오. 저희가 왜 움직였겠습니까?”

그 순간 강만기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아버지가….”

절망하는 그의 모습에 발록은 딱 좋은 타이밍이라 여기며, 그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화르륵!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하늘 위로 올라가고, 그들은 불의 악마가 떨어져 내리는 걸 볼 수 있었다.

절망하던 강만기의 표정 가득 희망이 샘솟는 순간이었다.

“오오… 발록!”

그 외침에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이들 중 상당수의 안면에 어두운 그늘이 지는데, 이면의 정보를 제법 핥아 본 이들로 여겨졌다.

그게 아니더라도 발록이 보여 주는 기세로 인해, 대다수가 바짝 굳어 있었다.

발록은 정확히 강만기의 전면에 착지한 뒤, 매서운 눈빛으로 주변을 쭈욱 둘러보며 물었다.

“좀 도와줄까?”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 같은 소리였는데, 이어지는 발록의 이야기가 그의 사고를 마비시켰다.

“써니를 처리하지 못해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이걸로 퉁치면 되겠군.”

발록이 웃으며 딜을 해 왔다.

“콜?”

강만기의 표정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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