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게이트 & 이레귤러!
#24. 게이트 & 이레귤러!
브라질 상파울루 과룰류스 국제공항!
그곳 입국장을 지나쳐 들어오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는데, 만약 이들의 정체를 아는 이들이 있었더라면, 당장 공항이 마비되며 난리가 나도 이상하지 않았으리라.
이반나!
그 혼자만 해도 충분한 화제성이 있건만, 최근 그 유명세를 세계적으로 떨치기 시작한 리튜브 신성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정마루!
하나 어느 누구도 이들을 알아보지 못했는데, 이는 적당한 위장 효과도 있지만, 일행을 이끄는 팀의 특수성 덕분이었다.
프링쿨스 팀의 환각계 스킬 각성자의 영향으로 주변 시선의 걱정 없이 활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너무 과한 스킬의 발동은 공항의 경비를 긴장시킬 수 있는 탓에, 아주 얕게 발현한 상태라, 적당한 위장은 필수였다.
이반나와 마루는 최대한 짧게 준비를 마친 뒤, 바로 브라질로 넘어온 상황이었다. 맘 같아선 프링쿨스가 왔던 날 바로 출발하고 싶었지만, 각자 위치나 입장이라는 게 있다 보니, 최소한의 조치 정도는 필요했다.
마루의 경우는 아직 ‘용병 계약’이라는 상황인 만큼 좀 더 여유가 있었지만, 이반나는 랭커란 위치 때문에 이래저래 거쳐야 하는 절차들이 상당했다.
특히, 그 행선지를 비밀로 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이다 보니, 더더욱 복잡한 면이 있었고, 거기서 제법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마루만 먼저 출발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목적지가 목적지인 만큼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산타카타리나!
그곳은 브라질에서도 알아주는 악명 높은 마굴이 아니던가. 거기서도 특히 심처라 할 만한 장소로 파고드는 일정이었다.
랭커의 투입은 그만큼 차후 일정을 앞당겨 줄 터였다.
공항 밖,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오른 뒤, 프링쿨스가 입을 열었다.
“다른 형제분들께도 연락을 취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당장 움직이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쯧….”
이반나는 혀를 차면서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존슨이 원하는 바를 시행하기 위해서라도, 그들은 행보를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도 그럴게 존슨의 형제로 불리는 이들 중 상당수가 랭커였고, 아닌 이들도 한때는 ‘영웅’이라 불리며 남다른 유명세와 영향력을 발휘하던 이들이었다.
당장 마루만 하더라도 그들 중 가장 수준이 딸린다고 하지만, 리튜브 스타로서 상당한 인지도를 자랑하지 않던가.
이들이 한꺼번에 움직인다?
그의 부고가 알려지는 걸 늦추기 위해서라도 자제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이반나와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경우도 상당했다.
원래라면 이반나도 기존 일정을 수행하는 게 옳았지만, 연인에게 그런 걸 강요한다?
안 될 일이었다.
프링쿨스도 그 때문에 그녀를 기다려 준 것이다.
그렇게 차량 이동이 시작되는데, 비행 중에도 그러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무거운 침묵이 차량 가득 맴돌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런 정적이 숨 막혀, 먼저 말문을 열고 떠들었을 마루지만, 이번만큼은 조용히 호흡만 고르고 있을 뿐이었다.
존슨의 죽음!
그건 그만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었다.
쉴 틈 없는 이동이 거듭되니, 산타카타리나까지 금세 다다를 수 있었는데, 거기서 한차례 여장을 푼 뒤 휴식에 들어갔다.
저 거대한 마굴을 목전에 두고, 어설픈 컨디션으로 돌입하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각자 엔트라넷을 열어 컨디션을 꾸준히 확인하고 또 조절하며, 평균치 이상은 만들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남다른 스킬들의 도움 덕분일까?
[컨디션 : 8]
마루는 생각보다 일찍 몸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 놓은 뒤, 숙소 쉼터로 내려갔다.
이후 간단히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바깥을 살폈다. 마굴을 목전에 둔 까닭인지, 거리 가득 헌터들이 득시글댔는데, 하나같이 기세가 범상치 않은 게, 비각성 헌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산타카타리나 마굴이 남미에선 손에 꼽힌다더니. 확실히 보통 놈들이 없네.’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의 곁으로 그림자 하나가 다가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컨디션 조절을 마친 것인지, 이반나가 커피 한 잔을 손에 쥔 채 그의 건너편 자리에 앉았다.
서로 말 없이 창밖을 내다보던 중, 문득 이반나의 입이 열렸다.
“바보 같으니라고.”
그 뜬금없는 소리에 의아할 이유는 없었다. 현 상황에 그녀 입에 올라올 존재란 한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루도 한마디 거들었다.
“멍청이죠.”
이에 이반나가 눈살을 찌푸렸다.
“누구보고 똥멍청이래?”
“…….”
‘아니, 똥멍청이라고는 안 했는데.’
하지만 날카로운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곤, 조용히 커피만 들이켜야 했다.
이후 다시금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그 무게감이 깊어질 즈음, 재차 이반나의 입술이 열렸다.
“그 작자가 밖으로만 나돈 이유를 알아?”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유독 신경이 날카로운 그녀로 인해, 숨소리마저 자제하는 중이었다.
“WHA를 나오고, 국적까지 포기한 건, 전부 세상이 미쳐서 그런 거야.”
그러다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다. 이유를 알지 못하기에 마루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이트가 어째서 발생할까?”
문득, 마루의 머릿속에 몇몇 유언비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애써 이를 지워 내며, 곧 밝혀질 진실에 귀를 기울였다.
“던전 때문이야.”
“……?”
의문을 내비치는 마루의 눈빛에 이반나가 말했다.
“던전이 오래되면 게이트가 발생해.”
“그게, 무슨…?”
결국 마루의 침묵이 깨지는 가운데, 이반나가 물었다.
“K―정 박사라고 알아?”
마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쉬이 떠오르지 않는 까닭인데, 이에 이반나가 차원방벽과 관련된 유명한 내용 하나를 입에 담았다.
“유산균이 장까지 살아갈 수 있게, 캡슐을 씌워 주는 겁니다. 어때요? 이해가 쏙쏙 되죠?”
“아… 설마?”
“데이터를 빠르게 많이 전송하려면 뭘 합니까? 그렇죠. 압축을 해야죠. 바로 그겁니다.”
“그것도?”
“전부 K―정 박사가 했던 말들이야. 한국계라고 들어서, 그래도 아는 이들이 꽤 있을 줄 알았더니… 정보 통제가 철저하네.”
그저 이름 모를 재야의 학자 정보로만 알려졌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니, 마루의 관심도가 한층 올라갔다.
“정 박사가 게이트에 남긴 이야기가 있지.”
이반나는 그리 말하며 K―정 박사의 또 다른 발표를 입에 담았다.
[음식이 오래돼서 상하면 곰팡이가 생기죠? 게이트도 그렇습니다. 던전이 오래돼서 썩은 물이 밖으로 새는 겁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죠. 당장 던전을 클리어하십시오.]
박사 특유의 쉬운 설명이 돋보이는 내용이었다. 문득, 이반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발표 후, 한 달 뒤에 종적이 묘연해졌지.”
옳은 소리를 하고,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려던 결과, 여러 대형 길드의 손아귀에 처리된 것이다.
그때는 이미 여러 길드들에 의해 던전의 독점 및 통제가 형성되던 시기였기에, 더더욱 K―정 박사의 입을 막아야만 했으리라.
뿐만 아니라 관련한 모든 파일들이 삭제되며, 철저한 정보 통제 속에서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에 분개한 존슨은 그가 남긴 정보를 토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설마, WHA에서 나온 게 아니라?”
“스스로 나온 건 사실이야. 단지,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내린 선택일 뿐이지. 결국, 퇴출당한 거나 다름없어. 그가 계속 자리를 지켰더라면, WHA의 기반이 흔들렸을지도 모르니까. 2대 회장, 그 또라이 덕분에 덩치는 커졌지만, 내실이 영 엉망이었거든.”
국적 역시 마찬가지였다.
“스스로 모든 걸 내려놓게 만들었지.”
본격적인 떠돌이 생활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제 스승의 유산인 WHA의 안정 때문에, 목소리도 높이지 못한 채, 그냥 행동으로 세상에 보여 주는 걸 선택한 거야.”
뜻밖의 정보 속에서 마루의 표정이 잔뜩 굳어 갔다. 존슨의 상황도 안타깝지만, 그 이상으로 여러 길드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솟은 까닭이었다.
이에 이반나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정 박사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꼭 옳다고만 할 수도 없어.”
던전의 클리어로 인해 돌발 게이트를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 던전을 클리어하게 될 경우, 반대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격변의 초창기를 떠올려 봐, 던전의 발생지를 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소모됐는지. 돌발 게이트가 사라지는 대신, 돌발성 랜덤 던전이 발생하게 되겠지.”
하지만 마루는 이에 동의할 수 없었다.
“과거 이야깁니다. 이젠 던전의 발생 조건이나 파동의 측정 여부가 가능한 세상이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결론은 각 길드와 단체의 욕심으로 귀결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돌발 게이트보단 돌발성 랜덤 던전의 민간 피해량이 더 낮다는 걸 생각해 본다면, 던전은 클리어하는 게 맞았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이반나는 방관자의 포지션을 고수하며, 암묵적인 동의를 해 왔을지도 몰랐다. 때문에 그녀의 표정 한편에 어둠이 깃든 것이리라.
그 같은 이야기를 털어놓는 건, 마루도 결국 위쪽 세상의 비밀들을 전부 공유하게 될 거란 이유도 있지만, 존슨의 죽음으로 인해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짧은 침묵이 이어지고, 그 끝에 이반나가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했다.
“게이트와 이레귤러의 차이도 모르지?”
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이반나는 재차 K―정 박사의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던전은 일종의 입국 심사장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레귤러는 이를 무시하고 불법으로 들어오는 밀입국 루트죠. 그러니 더 독하고 악랄한 놈들이 넘어오는 겁니다.]
다른 차원에서 바로 넘어오는 것, 그게 바로 이레귤러라 불리는 현상의 정의였다.
돌발 게이트와 비슷하면서 다른 건, 던전이란 완충제를 거쳤느냐 아니냐의 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던전이란 건, 어쩌면 우리들을 위해, 어떤 ‘신’적인 존재가 만들어 놓은 과속 방지턱 같은 걸지도 몰라.”
스킬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적응할 수 있는 방파제를 세운 것이라며, 그녀는 그간 발생했던 여러 이레귤러들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존슨이라는 점에서, 이레귤러에 관한 내용이 주가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대격변도 세상에 알려진 것 보다 많이 발생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혀지지 않은 건, 존슨의 주도 아래 초기 진압이 이뤄진 까닭이었다.
이걸 굳이 숨긴 이유?
“빤하잖아.”
각 단체들이 존슨의 명성이 더 이상 높아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보여 주는 영웅적인 행보로 인해, 그의 이름값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고, 결국 그를 절대적인 위치에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독립 초기에는 WHA 2대 협회장의 방해로 그를 처리하기 어려웠고, 어느 시점부터는 그저 존슨이란 존재 자체의 강함이 그를 건드리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마루는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만 줬다.
그가 아는 건 극히 단편적인 ‘영웅’의 행보일 뿐이지만, 그녀가 알려 주는 것들은, 그 이면에 숨겨진 고뇌를 비롯하여 여러 시련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이 깊도록 존슨의 이야기가 이어지며, 한 사내가 만들어 준 꾸준한 화제는 그들을 좀 더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다.
짧지만 ‘팀’이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 * *
산타카타리나 마굴의 깊은 심처!
화르르륵….
알 수 없는 불길이 끊임없이 치솟으며, 주변 몬스터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장소.
인디안 존슨의 무덤!
분명, 이레귤러를 막아 냈음이 분명하건만, 놀랍게도 불길 너머로 새로운 공간의 비틀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저적….
그리고 조금씩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이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불길 주변을 휘감으며 조금씩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가운데, 그에 따른 여파일까?
우워어어어어….
크워어어….
인근 몬스터들의 사나운 포효가 터져 나오며, 마굴의 심처 깊은 곳에서부터 농도 짙은 광기가 폭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