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멀티.
#2. 멀티.
기간트는 사실 벙어리였다.
하지만 현대 과학의 힘에 의해서 이를 일부분 고칠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후유증이 남아 있어, 매번 문장이 아닌 최소 단위의 단어 조합 정도만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한 마디 뱉을 때마다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터라, 수시로 숨결이 거칠어지고는 했는데, 바로 이 같은 모습 때문에 그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놀림을 받으며 고통 속에 살아와야 했다.
그 때문일까?
그는 결국 비틀려 버렸다.
각성으로 능력을 얻고 강대한 힘을 손에 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르게 사용하기보단 비틀린 정의를 앞세우며, 그릇된 일탈에 일삼고는 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자연히 이면의 세상으로 흘러들어 그들의 일원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강화계의 신체 변형 능력자로서, 남다른 재주이자 스킬을 획득한 덕분인지, 이면에서 제 세상을 만난 듯 승승장구하며 이름값을 키워 나갔고, 그렇게 세력을 일구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모았으니,
타이탄!
장애인으로 이뤄진 이면 집단의 탄생이었다.
그 외형만 놓고 본다면 동정심을 자극하기 충분한 이들이 잔뜩 모여 있었지만, 내면은 잔뜩 비틀린 문제아들이 가득했다.
유년기와 성장기의 고통이 악질적으로 변질돼 버린 탓일까?
그 성향이 유독 악하고 악랄했는데, 그런 이유로 이반나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초기 타이탄은 붕괴되기에 이른다.
차후, 기간트가 초인이 된 게 알려지며, 더욱 거대한 타이탄을 이룰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악연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기간트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만든 ‘가족’이 아니던가.
비록 주변에선 최악이니 악질이니, 적잖은 비난이 쏟아졌다 할지라도,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애초에 이면의 문제아들 사이에서, 그 정도 악랄함은 이상할 게 없다고도 생각했다. 오히려 당연한 부분이라 여겼고, 그 때문에 이를 망가트린 이반나에 대한 원망과 원한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 반. 나! 후욱… 훅….”
기간트의 성난 음성에 이반나가 혀를 차며 스킬을 한계치까지 끌어 올렸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시작부터 전력으로 부딪칠 각오가 필요했다.
[스킬 : 루돌프 사슴코]
마치 한겨울 서리라도 맞은 듯, 코끝이 벌겋게 변해 가는 와중에 머리 위로 순록들 특유의 삐죽삐죽한 뿔이 솟아올랐다.
포스의 운용으로 그 두툼한 뿔을 마치 머릿결처럼 뒤로 넘긴 뒤, 기간트를 향해 손짓하며 외쳤다.
“컴!”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기간트가 달려들고, 이반나 역시 이를 정면으로 부딪쳐 가며, 두 랭커의 치열한 박투가 시작되었다.
쿠르르릉….
* * *
워리어는 황당하단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이게 말이 돼?’
갑자기 쏟아져 내린 수백 발의 총탄에 의해 진형이 망가져 버린 것이다.
팀원 상당수가 부상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각자 저격을 경계하며 포스를 끌어 올리고 있던 터라, 적절히 가드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관통상을 꿰고 있었다.
‘허….’
그건 남다른 경력을 자랑하는 워리어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장관이었다.
마치 집중 사격이라도 하듯, 일정 부분만 집요하게 공략하며 탄환이 쏟아지는데, 그로 인해 몇몇 가드가 깨어지며 관통상을 입은 것이다.
조금은 기이한 먹이 사슬이라고 해야 할까?
현대 무기는 몬스터를 잡을 수 없다.
몬스터를 잡는 건 각성자다.
하지만 각성자는 현대 무기에 약했다.
그 기이한 삼각관계로 인해 각성자들은 특히 더 저격수를 경계하기 마련인데, 그마저도 일정 수준이 되면 상당히 가벼워지는 경향이 있긴 했다.
A급 저격수가 극히 드문 탓인데, 동급 저격수가 아니고서야 그들이 긴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저 삼각관계 중 가장 영향력이 약한 게 현대 무기다 보니, 일반적인 대칭형이 아닌 비대칭 삼각관계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같은 의미에서 봤을 때, 상대는 A급의 저격수라는 의미였고, 거기에 더해 워리어를 감탄시킨 것까지 계산한다면, 경계를 엿보는 최상위급일 확률이 높았다.
더욱 놀라운 점이라면 조금 전 저격 방향이었다.
‘다수가 아니라 개인이었어!’
한 방향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물론, 한 장소에 여럿이 몰려 있는 경우의 수도 있지만, 가능성이 낮은 이야기였다.
‘미치지 않고서야….’
좀 전의 말도 안 되는 저격을 봤을 때, 저격수는 결코 여럿일 수 없었다. 아니, 여럿이어선 안 됐다.
새삼 그림리퍼의 선택에 안도했다.
‘리퍼가 움직여 줘서 다행인가.’
과연, 목표물을 포착한 모양인지, 잠시 후 저격이 멈추는 것이 아닌가.
작게 한숨을 내쉰 그가 팀원들을 지휘하며 새롭게 진형을 짜 맞췄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팀원들의 조합이다 보니, 그가 해야 할 일이 상당했다.
* * *
토비는 적잖이 놀란 얼굴로 후방을 바라봤다.
‘이게, B급 능력자라고?’
좀 전 폭격 수준으로 쏟아지던 마루의 저격을 상기한 까닭이었는데, 실로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 여겼다. 그러면서 걱정도 뒤따랐다.
‘역시 꼬리가 붙은 건가.’
갑자기 저격이 멈춰 버린 탓인데, 그림리퍼의 모습이 사라진 걸 확인하면서, 머릿속으로 연신 경종이 울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가드를 세우고 와야 했는데.’
마루 혼자 남겨 두고 왔다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더니, 결국 최악의 사태로 이어진 듯싶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퍼드의 손아귀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랭커가 오더라도 제 한 목숨 챙길 자신은 있습니다.
마루의 단호한 모습에 프링쿨스도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는데, 토비는 자신이라도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며, 뒤늦게 후회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마루의 자신감을 믿고 싶었다.
‘그래. 존슨 님의 형제니까.’
남다른 재주가 있을 거라 믿으며, 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파파파팍….
프링쿨스 팀과 워리어 팀의 치열한 격전이 시작됐다.
* * *
숨 막히는 침묵의 끝에서 그림리퍼가 입을 열었다.
“세상을 속이고 있었군요.”
그의 말에 마루는 입맛을 다셨다.
‘들켰나.’
좀 전 다급히 끌어 올린 사신 변환 스킬에 의해, 그의 쌈짓돈이 드러나 버린 모양이었다.
그림리퍼는 정보 업계에서도 활약하는 능력자로서, 단숨에 마루에 관한 모든 내용들을 머릿속으로 뽑아내 정리한 뒤, 지금 상황과 교차시키고, 거기서 어울리는 단어를 하나 끄집어냈다.
“설마, 멀티 능력자였다니.”
말도 안 된다고 여기면서도 베테랑 정보 업자의 경험치는 자꾸 그쪽으로 사고를 이끌었다.
일부러 운을 뗀 뒤 마루의 반응을 살피는데, 거기서 확신까지 얻어 버렸다.
‘맙소사! 정말로 멀티라고?’
가면 속 그의 동공이 부릅 떠졌다. 아주 짧은 찰나간의 반응이었지만, 마루가 ‘멀티’라는 단어에 흔들리는 걸 본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동공 반응을 체크한 마루 역시, 자신이 낚였음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잠시 짜증이 치밀기도 했지만, 짧은 한숨으로 훌훌 털어 버렸다. 어차피 이번 여정에서 어느 정도는 능력을 드러낼 생각이었다.
특히, 존슨의 마지막과 얽매여 있는 일정이니 만큼, 여차할 땐 본신의 능력까지 보일 각오도 품고 있었다.
그 같은 이유로 마루는 좀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사신 변환 ― 청룡]
돌연 푸른빛 아우라가 피어오른다 싶더니, 그가 내뻗는 쌍장이 허공을 격하며 그림리퍼를 두드렸다.
퍼퍼퍼펑!
낫을 휘둘러 이를 막아 낸 리퍼가 깜짝 놀라며 물러나는 가운데, 마루가 쉼 없이 손을 휘저었다.
그 손짓을 뒤따르는 파동에 그림리퍼의 두 눈에 이채가 스쳐 갔다.
‘이건, 염동력인가?’
놀라울 만큼 위력적인 공격이었고, 그 때문인지 그가 만들어 낸 낫 위로 실금이 가고 있는 게 보였다.
‘사기가 부족하군.’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며 짧게 혀를 찼다.
[스킬 : 사신의 낫]
딱 그가 들고 있는 게 스킬의 명칭이며 핵심으로서, 능력치가 실로 특수했다.
[망자의 사기 포식 및 강화]
다행스럽게도 이곳은 마굴이었고, 사방 가득 죽음의 향기가 넘쳐났으며, 그로 인해 발생한 사기 역시 가득했다.
포스를 끌어 올리며 사신의 낫에 주입하자, 주변 가득 흩어져 있던 사기가 빨려드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흐름은 낫을 타고 그림리퍼에게로 흘러들었고, 그와 동시에 전체적인 신체 능력치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분명 어마어마한 능력임은 틀림없지만, 결국 망자의 사기를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보니, 상황 조건 등이 잘 맞아야 한다는 단점과 함께, 사기 흡수에 따른 후유증도 남을 수밖에 없었다.
총기류 각성자가 자주 겪는 그 현상.
사념 폐해!
그와 비슷한 정신 오염이 발생하는 것이다. 사기를 거두면 멀쩡해지긴 하나, 발동 중 발생한 오염의 후유증이 잔상처럼 남아,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게 만들고는 했다.
이면으로 흘러든 것 역시 이런 스킬의 여파 때문이었는데, 존슨과의 마찰은 잘못된 사기 충전으로 인해, 오염도가 극에 달할 때 발생했었다.
당시, 죽다 살아났던 경험 때문인지, 존슨의 그림자만 봐도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던 터라, 그 같은 과거의 악몽을 걷어 내기 위해 찾아온 산타카타리나였다.
“푸후우우우우… 크륵… 크흐으으….”
마굴에 널려 있는 ‘짐승’들의 사기를 받아들인 까닭일까?
그림리퍼의 기질이 점차 거친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더니, 호흡 사이사이마다 야성의 으르렁거림이 끼어들었다.
사기가 충만해지면서 한층 커진 사신의 낫 위로, 언뜻 봐도 위협적인 검은 불길이 일렁거리는데, 이를 본 마루는 묘한 섬뜩함을 느끼며 훌쩍 거리를 벌려야만 했다.
바로 그 타이밍에 사신의 낫이 휘둘러졌다.
사악….
시꺼먼 불길이 대기를 불태우며 날아들었다.
화르르륵….
마치 그를 쫓아오듯 쭈욱 밀려드는 검은 불길에 마루가 바삐 양팔을 휘저었다.
퍼퍼퍼퍼퍼펑….
청룡의 기운이 어지럽게 펼쳐지며 불길을 쳐 내는데, 그 기세가 쉬이 줄어들지 않았다. 대신 일부분 속도를 늦출 순 있었고, 이를 틈타 방향을 전환하며 몸을 빼냈다.
그렇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문득 등 뒤가 섬뜩해지는 걸 느꼈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그를 지나쳐 갔던 불길이 저 뒤편에 부딪친다 싶더니, 그곳을 경계로 넓게 퍼져 나가며, 일종의 결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그를 가두는 것 같은 모양새였고, 좋지 못한 예감에 다급히 빠져나가려 하지만, 그림리퍼가 이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신체 능력이 급격히 상승한 그가 훌쩍 날아들며 낫을 휘두르는데, 어지간한 대검보다 커 보이는 낫을 마치 공깃돌처럼 휘두르는 모습에 기겁하며 물러나야 했다.
그 날카로움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어서, 궤적에 걸리는 나무나 바위 등이 마치 종잇장처럼 베어지고 갈라졌다.
마치 무게나 저항감이 전혀 안 느껴지는 움직임이었다.
사사사삭….
이 같은 마루와 비슷하게, 그림리퍼 역시 기겁하고 있었는데, 마루의 몸놀림이 말도 안 되게 유연하며 날렵했던 까닭이었다.
‘멀티 능력자인 것도 놀라운데, 강화계와 이능계의 특성을 전부 지녔다고?’
앞서 그의 공격을 막아 낸 부분에선 ‘스킬’ 정도로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금의 몸놀림은 그런 수준을 벗어나 있었다.
강화계의 남다른 신체 능력 외에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흥미롭군!’
그는 여러모로 마루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걸 느꼈다. 그 때문일까?
평소라며 보여 주지 않을 모습까지 드러냈다.
투툭… 툭… 투두두둑….
돌연, 그림리퍼의 신체가 부풀기 시작하는데, 조금은 왜소한 체형이던 그의 덩치가 마치 레슬러처럼 커진 것이다.
그건 마치 강화계의 신체 변형 능력자를 연상시킬 만큼 극적인 변화였다.
이해할 수 없는 기현상 앞에, 마루는 저도 모르게 한 단어를 입에 올렸다.
“멀티…?”
그 말에 그림리퍼의 가면 속 눈동자가 초승달처럼 휘어졌다.
웃고 있는 거였다.
“당신은 얼마나 다양한 스킬을 쓸 수 있는지, 기대해 보죠.”
그 말과 함께 그림리퍼가 달려들었다.
* * *
산타카타리나 마수지대의 심처.
화르르륵….
하늘 높이 타오르는 불기둥 너머, 대기가 갈라지며 발생한 균열 사이로 시꺼먼 어둠이 피어나는 가운데, 마치 거기에 반응하듯 불길이 한층 거세게 타오르며 어둠을 집어삼키려 움직였다.
파파파팍….
불길과 어둠, 그 사이에서 발생한 강대한 마찰과 파동에 주변 일대가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점차적으로 불길의 색상이 어두운 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