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급급여율령.
#4. 급급여율령.
프링쿨스 팀은 유독 실력자가 많다.
그 이유는 가장 위험한 마굴의 심처에서 이레귤러와 같은 난도 높은 문젯거리를 해결하는 생활 때문이었다.
정예 중의 최정예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리고 토비는 그런 최정예 집단의 2인자였다. 프링쿨스가 없을 때는 그 자리를 대신할 만큼의 실력자라는 의미였다.
그 때문에 랭커들도 감히 그를 경시할 수 없는 것인데, 워리어는 지금 이 순간, 그러한 기준점마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짧은 격돌에서 견적이 나왔다.
“너… 벽을 넘었구나?”
워리어는 유독 기세등등해 보였던 토비의 태도들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의 상황이 오더라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단 자신감의 발로였던 것이다. 일이 크게 꼬였음을 직감했지만, 발을 뺄 수는 없었다.
토비가 끌고 온 소수의 랭커 대응팀이 어느새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목이 컬컬해졌다.
* * *
한눈에 알아봤다.
‘이건… 꿈인가.’
프링쿨스는 자신이 현재 환상에 빠져 있다는 걸 단번에 눈치챘다.
모를 수가 없었다.
“헤이! 오늘도 클럽 어때?”
너무도 그리운 얼굴이 웃으며 다가왔기 때문이다.
“골드….”
한때는 나이트 울프라고도 불렸던 사내, 자신의 스킬과 꼭 닮은 스킬 때문에, 서로 쌍둥이처럼 여기며 의지했던 존재이기도 했다.
“쌍방울 형제가 나가신다!”
민망한 소리를 너무도 당당하게 입에 올리며, 어깨동무를 하는 그의 모습에 괜히 헛웃음만 나오는데, 그러는 한편으론 가슴이 뜨끔해지는 걸 느꼈다.
‘다이애나의 환각에 걸려 버렸나.’
잘 방비한다고 했건만, 그녀도 나름 성장을 거듭한 것인지, 그의 정신방벽을 파고든 듯싶었다.
‘그리운 시절이군….’
지금 이 장면은 과거의 어느 시점을 보여 주는 만큼, 오래지 않아 시간이 넘어가며 그를 악몽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푸흐… 크흐흐흐!”
골드의 금빛 눈동자 사이로 붉은 기운이 어리는 게 보였다. 친우, 아니 형제의 악몽이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날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자신의 입이 멋대로 당시의 대사를 따라갔다. 골드는 어느 시점을 경계로 미쳐 버렸다.
‘이레귤러!’
프링쿨스가 유독 더 열정적으로 세계 이면의 균열을 파고드는 이유도 이 무렵의 사건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마족 놈들!’
그들 형제는 대격변을 마주했고, 거기서 만난 마족에 의해 골드의 정신이 오염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사건 당시에 이를 눈치챘더라면?
‘악몽을 꾸는 일은 없었을 텐데.’
상황을 일찌감치 해결했던 터라, 별문제 없었다고 여겼었다.
인디안 존슨!
그 역시 이 무렵에 만났었는데, 그는 홀로 대격변의 초기 밀물 타임을 커버하며 그들을 구해 줬었다.
그리고 한 턴 휴식기인 썰물 타임에 맞춰, 지원 병력이 도착했고, 별다른 피해 없이 대격변을 처리할 수 있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격변의 현장 중 하나였다.
골드와 실버, 쌍방울 형제는 이미 큰 부상을 입었던 터라, 뒤에서 지켜만 봐야 했는데, 그렇게 구경을 하며 존슨의 절대적 존재감에 강하게 매료됐었다.
바로 그 시점에서 둘의 선택이 갈렸다.
프링쿨스는 밤거리 유흥에서 벗어나, 치열한 고행의 길로 스스로를 밀어 넣었는데, 그와 달리 골드의 경우는?
‘밤거리를 지배하려 들었지.’
처음엔 그저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려고 하는 줄 알았었다. 하지만 차후 그의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끼게 됐고, 오래지 않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흐… 흐흐….”
언제고 전투가 끝난 뒤, 몬스터의 피를 핥아 먹던 골드의 모습을 봤고, 두 눈 가득 번들거리는 광기까지 확인해 버렸다.
이후 골드의 뒤를 밟기 시작했고,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마주하기에 이른다.
“이 미친 새끼야!”
성난 그의 외침에, 골드가 히쭉 웃으며 돌아본다. 입가에 우적대는 저건 무엇일까?
간이다.
마치 동양 어느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골드는 사람 간을 빼 먹고 있었다. 밤거리를 지배한 건 팔팔한 ‘먹잇감’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
“흐흐흐흐….”
씨익 웃어 보이는 골드의 미소가 전에 없이 섬뜩했다.
“봐 버렸구나.”
그리 말하는 골드의 두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그 눈빛을 마주 보며 깨달았다. 그건 형제를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먹잇감!
어느새 그 역시 사냥감으로 인식되고 있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비명인지 절규인지 모를 포효 속에서, 그들 형제의 격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악몽이 끝을 맺었다.
“푸훅… 훅… 후우우욱….”
프링쿨스가 거칠게 호흡을 걸러 내며 전방을 바라봤다. 악몽의 주최자였던 여인, 다이애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 표정, 눈빛에서 알아 버렸다.
‘봤구나!’
그녀가 자신의 환각을 엿본 것이다. 갑자기 깨어진 악몽은 그가 이겨 냈다고 하기보단, 그녀가 스스로 무너진 결과이리라.
‘젠장, 환각을 훔쳐보는 능력은 없었던 거로 아는데.’
모르는 사이 또 다른 발전이 있었던 걸까?
“거… 거짓말…….”
바르르 떨리는 음성과 눈빛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렇게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무거운 정적 속에서 점차적으로 호흡이 안정되어 가는 가운데, 그의 숨결에 여유가 돌아올 즈음, 그녀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왜 숨겼어?”
그녀는 지금껏 프링쿨스와 골드 사이에 발생했던 다툼의 진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던전 속에서 발생한 아티팩트의 다툼 정도로만 전해진 게 전부였다.
그 때문에 균열을 정리하며 정의를 부르짖는 그의 모습을 위선이나 가식으로 보며, 미워하고 경멸하는 등 적대적인 시간을 쌓아 온 것이다.
프링쿨스는 중간에 끊겨 버린 악몽을 떠올렸다. 그녀는 마지막 이야기까진 닿지 못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실이 드러나 버린 상황이었다. 그녀의 물음을 피할 이유가 없었다.
“그 녀석이 부탁했으니까. 네겐 비밀로 해 달라고.”
광기에 미쳐 버렸던 골드지만,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는 결국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다시금 깨어난 형제의 간절한 부탁으로 인해, 프링쿨스는 모든 악업을 홀로 지고 가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추가적으로 한 가지 더,
‘결국, 골드를 죽인 건 내가 아니었지만….’
이 부분까진 밝히지 않기로 했다.
인디안 존슨!
과거, 마족의 손에서 그를 구해 줬던 영웅, 그의 등장으로 골드의 손아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금단의 힘에 손을 댄 골드였다.
아직 고행의 성과를 손에 쥐지 못했던 프링쿨스로선 당해 낼 수가 없었는데, 마침 그 무렵 금단의 술법을 추적하던 존슨이 등장하며 그를 구해 준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인디안 존슨은 현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영웅으로서, 그의 행동은 언제나 정당함을 끼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결국 골드에게 문제가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에, 더더욱 이를 밝히지 못한 채, 홀로 그 죄악을 품고 가기로 한 것이다.
모든 진실이 밝혀진 지금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존슨을 핑계 삼아서 그 뒤에 숨고 싶지 않았다. 결론만 놓고 봐선 골드에게 패배했지만, 당시 그가 형제의 목숨을 원했던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힘이 되고 능력이 충분했었더라면, 결국 존슨이 아닌 그의 손으로 형제의 목숨을 취했으리라.
그렇게 마지막 비밀을 홀로 삼키고 있는 가운데, 갑작스러운 진실에 혼란을 느끼던 다이애나가 돌연 걸음을 내딛는 게 보였다.
여전히 머릿속은 정리가 안 된 듯 보였지만, 그렇기에 오직 한 가지 분명한 사실에 매달리기로 한 것이다.
“결국, 네놈이 그이를 죽인 건 달라지지 않아!”
언뜻 광기마저 느껴지는 눈빛 때문일까?
골드와 얽힌 악몽의 편린이 떠오르며 프링쿨스를 괴롭게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전장에서 감정에 너무 빠지는 건 옳지 않았다. 고개를 저어 잡념을 털어 낸 뒤, 지금 이 상황 자체에만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며 포효하듯 하울링을 뽑아냈다.
워우우우우우!
왠지 모르게 구슬픈 울음이었다.
* * *
그건 너무도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퍼엉… 펑… 퍼버버벙!
화들짝 놀란 그림리퍼가 주변을 돌아봤다. 마치 그를 압박하듯 요란한 폭발이 그를 에워싸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화약?’
코끝을 스치는 향에서 인위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러고 보니….’
좀 전 마루의 이동 동선이 하나씩 머릿속으로 재생되는 가운데, 그의 신형이 연신 뒷걸음질을 반복했다.
막고자 하면 막을 수 있지만, 워낙 많은 폭발이 발생 중이다 보니, 불필요한 포스 소모가 심각할 것 같아, 일단 물러나는 걸 선택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코너에 몰릴 수밖에 없었고, 검은 불길이 등 뒤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는 마루만이 아니라 그 역시 가둬 두는 결계였기에, 이즈음 선택을 내려야만 했다.
포스를 둘러 막아 내느냐, 아니면 길을 여느냐. 암살자의 본능이 효과적인 선택지로 그를 이끌었다.
사르르륵….
검은 불길이 걷어지는 게 보였다. 그렇게 결계 밖으로 몸을 뺀 리퍼는 마루의 동선들을 되새기며, 어느 방향으로 추적해야 할지 루트를 짚고 있었는데, 그 순간이었다.
퍼어어엉!
폭발과 함께 피어나는 흙먼지 사이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돌연 솟구치는가 싶더니, 그대로 그를 향해 덮쳐들었다.
‘도망칠 줄 알았더니!’
그의 예상을 뒤집으며 오히려 달려들고 있던 것이다. 한 차례 반전을 꾀한 덕분인지, 약 반 호흡가량 마루가 선수를 취할 수 있었다.
좀 전에도 경험한 바 있지만, 근접전에 있어선 마루가 한 수 위였다. 하지만 리퍼는 제 몸을 제물로 바친 동귀어진식의 공격이 가능하다 보니, 언제든 등 뒤를 조심해야 했다.
거기서 마루는 일반적인 근접전이 아닌, 조금 다른 방식의 근접전을 준비했다.
착… 차착… 착….
이걸 과연 타격이라 할 수 있을까?
마루는 마치 터치 게임이라도 하듯, 리퍼의 전신을 타격하기보단 가볍게 마사지하듯 두드리고만 지나갔다. 등 뒤를 경계하듯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거리감도 유지하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짓이야?’
리퍼의 두 눈에 의문이 떠오르는 가운데, 좀 전 마사지를 당한 부위들의 이상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포스트잇을 연상시키듯, 뭔가 기이한 종잇장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 형태가 동양에서 사용된다는 주술을 연상시켰다.
‘부적… 이었나?’
느낌이 좋지 않아서 급히 이를 떼어 내려는데,
화륵!
갑자기 불이 붙는가 싶더니,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스킬? 트랩?’
그는 마루가 존슨의 남다른 재주인 마석 결계술을 배웠다는 게 떠올랐다. 거의 스킬 수준으로 특별한 게 바로 존슨의 결계술인 만큼, 지금 이 부적에 관해서는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애매하기만 했다.
만약 그에 관해 물었더라면, 마루는 이런 대답을 해 줬을 것이다.
―둘 다!
스킬이며 동시에 트랩이라 할 수 있었다.
[급급여율령]
PP의 주술계 유저들에게 골드를 주고 ‘전수’받은 전용 스킬 중 하나로서, 부적이 지닌 능력을 발현시키는 건데, 따로 부적을 준비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는 게 단점이었다.
이외에도 몇몇 진언들이 있는데, 이들이 전부 모여야 그 자체만으로 효력을 발휘하지만, 타 직업군에게 허락된 진언에는 한계가 있어, 급급여율령 하나 정도만 익히는 게 적당했다.
존슨을 통해 결계술에 대한 제반 지식이 상승하며, 이 방면에도 적잖은 관심사가 생기면서, 틈틈이 배워 놓은 공부였다.
추가적으로 결계 방면으로 이름을 떨치기 위한 밑밥 작업의 일환이기도 했다.
부적의 경우에는 따로 이름난 도사들을 찾아다니며 구한 거였다.
그 능력치는?
“급급여율령!”
뿌득!
다시금 팔 하나가 부러진 리퍼의 눈빛 가득 당혹감이 깃드는 게 보였다. 마루의 입가에 희미하니 미소가 걸렸다.
‘회복 저하!’
재생 수준의 스킬이라면, 효율이 꽤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일단 전처럼 단숨에 부상이 치유되진 않을 터였다.
발동을 위한 조건이 제법 까다로워, 따로 폭탄을 잔뜩 깔아 놓으며 시간 벌이를 한 것이기도 했다. 부적마다 발동 전 진언을 박아 넣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발동할 수 있는 부적 종류도 제한적이었는데, 그 때문에 몬스터들의 대표적인 재주에 맞춰서 세팅되어 있었다.
개중 가장 대표적인 능력군이 바로 회복과 재생이어서, 마루는 딱 거기까지만 기대하며 부적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는 뜻밖의 효과로 이어지며 리퍼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사기가 빠져나가고 있어?’
부적이라는 건 애초에 영적인 대상을 견제하기 위해 제작되는 주술적 도구가 아니던가.
회복 저하와는 별도로, 부적 본연의 본질적 능력치가 발휘되면서, 리퍼에게 흡수된 사기의 결속력을 흔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뜻밖의 변수 속에서 마루가 외쳤다.
“급급여율령!”
리퍼의 전신 가득 기이한 문양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